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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사속의 명설교

    하나님의 천칭(天秤)

    페이지 정보

    성경본문: 잠언 21:2 | 설교자: 강신충(姜信忠)

    본문

    하나님의 천칭(天秤) /  강신충(姜信忠) <장로교 목사>

    사람의 행위가 자기 보기에는 모두 정직하여도 여호와는 심령을 감찰하시느니라 (잠언 21:2)

    시대의 변천함을 따라 금세는 도량형(度量衡)의 시대다. 우리의 일용 사물에 모두 저울이 필요하다. 곡물을 매매해도 그 중량에 따라 매매되고, 약을 지어도 저울이 없이는 할 수 없고, 금은을 매매해도 중량으로서 매매된다. 그뿐이랴. 편지 한 장까지도 중량에 따라 요금이 들고 수하물도 중량에 따라 운임이 작정된다. 모든 물건이 저울로 달아서 중량에 따라 사용된다. 고로 고서에 왈 “권연후에 지경중하며 도연후에 지장단(權然後知輕重, 度然後知長短)” 이라 했다. 저울이 아니면 경중을 분명히 알 수 없고, 자가 아니면 장단을 정확히 알 수 없다. 그와 같이 지상에 존재한 인간의 경중과 장단도 헤아려 알 수 있는 길이 있을 것이다.
    인간을 측량하는 도량형은 무엇이며, 어떻게 누가 측량할까. 인간으로서 인생을 측량할 수 있을까? 없다. 인간을 측량함에는 인간으로는 불가능하다. 오직 무소불능하신 하나님이 친히 가지신 천칭(天秤) 밖에 없을 것이다. 하나님은 오늘 인간 세상의 정형을 달아 보신다.
    오늘 세상 사람들은 제각기 떠들기는 네가 잘 났다 내가 잘 났다, 내가 옳다, 네가 옳다, 우리는 문명국이고 너희는 야만국이다 하면서 서로 옳은 체 하지만 그것을 누가 판단할까? 오직 하나님의 천칭이라야 알 것이다.
    그런고로 하나님은 손에 천칭을 잡으셨다. 오늘의 정치가나 도덕가나 종교가나 예술가나 문학가나 자선가나 그 누구를 막론하고, 하나님의 천칭에서 시험한 후에야 헛 껍데기인지 알곡인지 판별될 것이다. 보라, 하나님의 천칭은 얼마나 크신가?

    Ⅰ하나님의 천칭은 온 세상을 달 수 있다
    이 얼마나 큰 천칭인가? 하나님이 노아의 세상을 달아 보셨다(창 6:5-13). 하나님이 천지만물을 창조하신 후 노아 때까지 연대가 몇 천 년인 것은 분명히 상고키 어려우나 창세기 5장을 보면, 당시 형편이 어떠하였던 것을 알 수 있다. 이때 하나님이 공평하신 천칭으로 세상을 달아 보셨다. 어떠했는가? 온 세상은 죄악이 관영하고 인심이 간회하고 회독이 충만함을 아셨다.
    그래서 하나님은 땅에 사람을 지으심을 후회하여 진심으로 슬퍼하시고 한탄하사 지면에 있는 인간으로부터 육비축과 금주수, 곤충 어별까지 쓸어 버리기로 하셨다. 왜 하나님이 유의코 인간과 만물을 창조하시고 어찌 또 멸망코자 했을까. 하나님의 공평하신 천칭에 달아 보시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사랑과 의(義)와 선(善)은 없었다. 모두 파괴와 악독뿐이었다. 그런고로 멸망당함은 정한 이치다.
    그러나 노아만은 당세의 의인이라 했다. 의인은 악인 중에서 멸망치 못할 것이다(시 10편). 노아는 방주를 예비하여 오직 한 가지 밖에 없는 구원의 도리를 전했다. 120년간 장구한 세월에 노심초사하며 전도하고 회개하기를 기다렸으나, 악인들은 구원의 소리도 들리지 않고 웃음과 핍박과 조롱으로 노아를 욕할 뿐이었다. 어찌 하나님의 진노를 피하랴. 사정없는 비는 주야 40일을 계속 내려 온 세계는 홍수뿐이요, 조롱하던 사람은 수중에 장사하고 조롱받던 노아의 방주는 물 위에 의기양양하게 떴을 때, 오직 구원받은 자는 노아의 식구 8인 밖에 없었다.
    보라. 상공업과 목축의 발달을 자랑하던 야발은 어디가고, 거문고와 퉁소로 사치하고 연락으로 향락을 꿈꾸던 유발은 어디 가고, 동칠놀이 한 기계를 만들어 물질문명을 자랑하며 팔을 뽐내던 두발 가인은 어디 가고, 유처취첩(有妻取妾)하여 방탕하게 놀며, 태평가를 부르고 안전세계(安全世界)의 자유의 노래를 부르고 죄악을 두려워하지 않던 모든 인간은 모두 어디로 갔을까? 어찌 무서운 하나님의 진노를 몰랐으리요. 여기에 비추어 금일의 세계를 보자. 하나님의 천칭에 달린 결과가 어떠한가. 20세기 황금 만능(黃金萬能)이니, 과학 만능이니, 물질문명이니, 부국강병(富國强兵)이니 하면서 떠드는 것이 마치 노아 홍수 멸망시대와 흡사치 않을까? 금일의 문명과 과학발달과 세상인심과 여락과 사치를 취함과 방탕 무도함과 부도덕함과 죄악의 관영함이 노아의 시대 같은 죄악 극성시대(罪惡極盛時代), 멸망의 시대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이것으로 능히 하나님의 천칭에 능히 달리기를 감당하겠는가? 오직 하나님은 사람의 중심을 감찰하시나니(삼상 16:7). 금일 20억만 민중의 그 머리에 무슨 생각을 품었는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의와 사랑과 선과 정직을 품었는가? 하나님의 공평히 심판하시던 천평을 쳐다보라. 두려울지라.

    Ⅱ하나님의 천평은 국가를 달아 보셨다(단 5장)
    주전 606년에 다니엘 선지가 바벨론으로 포로되었을 때에, 바벨론왕 벨사살이 관원 천 명을 불러 대연을 배풀 때에, 그 조부 느부갓네살왕이 예루살렘 성전에서 취하여 온 기명을 가져다가 술잔을 만들어 왕과 만조백관과 왕후와 빈궁들로 마시고 취하며 방탕하여 놀 때에, 은촉이 명락한 야삼경에 왕궁분 벽촛대 맞은편 벽에 한 사람의 손가락이 나타나 글씨를 쓰니 왕이 그 글쓰는 손가락을 보고 대경실색하여 요절이 녹는 듯하였다.
    그때에 바벨론 나라에 영을 내려 박사와 술객을 불러 해석케 했으나 능히 못하므로 다니엘 선지를 불러 그 글을 해석케 했으니, 왈 이 글은 메네 메네 데겔 우바르신이라 하였으니, 그 뜻을 해석하면 메네는 하나님이 이미 왕의 시대를 계산하여 마지막이 되었다 함이요, 데겔은 하나님이 왕을 달아 보니 부족하다 함이요, 베레스는 하나님이 왕의 나라를 나누어 메대와 바사 사람에게 주겠다 함이라 했다.
    이로 비추어 오늘의 세계 모든 열강을 보라. 우리 나라가 크니, 우리는 영토가 얼마이니, 육해군이 몇 사단이니, 군함이 몇 척이니, 비행기가 몇 백 대이니 하면서 백아루 높은 집에서 세계를 둘러 엎어 삼분할거우산책(三分割據紆算策)으로 만고운소일우모(萬古雲霄一羽毛)를 하고자 하지만, 나라를 달아 보는 하나님의 천칭의 시침을 보아야 알지 않을까? 만약 천칭에서 부족함이 있다면 하나님의 손길 밑에 모두 구추단풍에 낙엽(九秋丹楓落葉)일 것이다.
    백제 의자왕 말년에 나라에 재앙이 많더니, 하루는 귀신이 궁중에 들어와 크게 외치기를 ‘백제가 망한다’ 외치며 땅 속으로 들어가는지라, 왕이 사람으로 땅을 파니 귀신은 간 곳 없고 한 마리 거북이 있어 그 등에 글 한 귀가 있어 왈 “백제는 동월만이요 신라는 동월미(百濟同月滿, 新羅同月微)” 라 하였으므로 무녀에게 물으니 해석하되, ‘달이 차면 기울어지는 것이니 백제는 망하고, 달이 작으면 커지는 것이니 신라는 흥할 것이라. 왕은 덕을 닦고 재난을 물리치소서’ 했으나 왕이 대노하고 자기 권력대로 군사를 일으켜 신라를 침노하니, 신라 대장 김유신으로 병정 5만을 거느리고 당 태종에게 청병하여 소 정방을 보내매 합력하여 백제를 쳤다.
    정방이 백마강을 건너고자 한즉 왈 ‘자기 아들이 백마강의 백마강 용인데, 정방의 군사를 못 건너게 하는고로 그리로 갔노라.’ 정방 왈 ‘너의 아들이 무엇을 즐기느냐.’ 왈 ‘백마 고기를 즐긴다.’ 하니 곧 백마를 잡아 고기를 낚시에 미끼하여 강에 넣었더니, 용이 낚시에 걸려 잡은 후에 백마강을 건너 백제를 쳤다. 그런고로 오늘까지 부여 백마강변 조룡대엔 용을 잡은 형적이 있어 시인 묵객의 감탄을 일으킨다.
    어느 나라를 물론하고 하나님의 천칭에 부족하면 멸망을 면치 못할 것이다. 공의로운 하나님의 천칭에 부족하면 멸망을 면치 못할 것이니, 공의로운 하나님의 천칭이 무서우니라.

    Ⅲ하나님의 천칭은 교회를 달아 보셨다(계 1:20)
    오른손에 일곱 별을 잡으시고 일곱 금촛대 사이에 다니시며 밤낮 순찰하시는 하나님이 당신의 손에 천칭을 들고 교회의 경중을 달아 보셨다.
    보라. 소아시아 교회를 달아 보는 중 첫째는 에베소 교회 정형을 볼 수 있다. 에베소로 말하면 주를 위하여 수고와 참은 것도 알고, 악인을 용납지 아니하며, 주의 이름을 위하여 참고 게으르지 아니함을 아나, 그러나 달아보니 처음 사랑을 잃었다고 했다.
    버가모 교회는 니콜라의 교훈을 지켰다 했고, 두아디라 교회는 음행이 있다 하였고, 사데 교회는 유명무실이라 했고, 라오디게아는 불냉불열이라 하셨다.
    아! 여러분, 우리 조선 교회를 천칭에 달아 보신다면 부족이 무엇일까? 사랑일까? 믿음일까? 열심일까? 순종일까? 선행일까? 무엇일까? 현대 모든 사람이 요구하기를 복음 선전은 이미 많이 들었으니, 그만 두고 신자의 행위로 예수의 진리를 실제로 보여 달라고 한다. 하나님의 천칭에 달기 전에도 신자의 부족한 행동이 모든 사람의 목전에 드러난다.
    경계할 것이다. 처음 사랑을 잃지 않았는가? 이 곧 나의 교훈으로 교회 분립이나 없는가? 언론과 필단으로 말만 하고 글만 써서 유명무실이나 아닌가? 사실상으로나 실령상으로나 음행의 추태가 없는가? 불냉불열의 태도가 아닌가? 모든 것을 깊이 생각하고 반성하자. 하나님의 천칭에 달리기 전에 먼저 반성하자.

    Ⅳ하나님의 천칭은 개인의 행위를 달아 보신다(마 16:27)
    우리의 심리 상태와 행동을 감찰하사 달아보시는 하나님의 천칭을 바라보자. 누가 잘 믿나, 누가 못 믿나, 사람은 판단키 어렵다. 이것은 하나님의 천칭이라야 알 것이다. 사람 보기에만 점잖은 체, 의로운 체, 진실한 체, 잘 믿는 체하며 속일 수 있지만, 외양을 제하고 중심을 달아 보시는 하나님 앞에 어찌 감히 속이리까. 당 예수시에 바리새교인의 태도를 보라. 옷술을 크게 하고, 경문을 차고, 이레에 두 번씩 금식하고, 십일조를 드리며, 세리와 죄인의 동류가 아니라 자중하였지만, 중심을 보시는 예수님은 어떻게 가증하게 보셨는지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바리새인과 서기관이여, 박하와 회향과 채소의 십일조를 드리되 인과 의와 신은 행치 아니하며, 잔과 대접의 거죽은 닦되 그 안에는 토색과 불의가 가득하여 회칠한 무덤같이 겉으로 보기에는 아름다우나 그 안인즉 간사와 악독이 충만하며, 천국문을 사람 앞에 열어 놓고 너도 아니 들어가고 들어가는 자도 못 들어가게 하는 자로다 하였다(마 23장).
    잔치에 상좌와 회당의 높은 자리와 저자의 문안과 선생의 칭호를 듣기 좋아하는 바리새인의 태도와 현금 반백년 그리스도화된 조선의 교우의 태도가 방불한 점이 없는가 생각하라. 몇 십 년을 신앙생활로 교회 안에 중한 직분으로 풍상 열역 많은 분들이여, 뒤따라 오는 자에게 천국문을 열었나 닫았나 생각하자. 우리는 사랑이 얼마이며 야심은 얼마인가. 믿음은 얼마이며 형식은 얼마인가. 순종은 얼마이며 고집은 얼마인가. 충성은 얼마이며 나타나는 것은 얼마인가. 하나님의 천칭에 달아보자. 하나님의 천칭이 세계를 능히 달고, 국가를 능히 달고, 교회를 능히 달고, 개인의 심리와 행동을 능히 다는 것이니, 우리는 도덕상으로나 윤리상으로나 양심상으로나 무섭고 떨리는 하나님의 천칭에 부족함이 없이 행하기를 간절히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