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신앙(眞信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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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눅 18:8 | 설교자: 김동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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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신앙(眞信仰) / 김동훈(金東勛) <성결교 목사>
인자가 올 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 (누가 18:8)
“인자가 올 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 고 탄식하신 주의 말씀을 생각하면 주의 인정을 받을만한 믿음은 지극히 희귀한 것임을 알 수가 있다. 우리들은 겨자씨만한 믿으을 품고 박약(薄弱)한 체험으로나마 현대 신앙계를 관찰하여 거짓 믿음과 미숙한 믿음을 다수(多數)로 볼 수 있으며, 참 믿음을 만나 보기가 어렵다고 한다. 이 참 믿음은 삼단(三段)으로 되어 있는데, 이를 일단(一段)만 행하여 거짓 믿음이 되고, 이단만 행하여 미숙한 믿음이 되며, 삼단에 정립(鼎立)된 후에야 참 믿음이 되느니라.
Ⅰ제1단은 믿음의 형(形)
이는 믿음의 초보 곧 종교상 도덕과 의식을 준수하는 일을 말함이다. 곧 주일을 지키며, 예배하고 헌신하며, 세례와 성찬에 참례하는 일이며, 금주금연하는 일과 구제하는 일이며, 쉽게 나타나보이는 범죄를 하지 아니하는 일들이다. 이는 믿음으로 행하여 믿음의 행위요, 믿음 없이도 행하는 의식이니라. 신자는 믿음을 얻기 위하여서 이를 행할 것이며, 또한 믿음의 생활을 유지하기 위하여서 이를 마땅히 행하여야 할 것이다.
믿음은 인격과 방불하다. 형(形)이 없는 사람은 사람이 아니요 유령이며, 형뿐인 사람도 또한 사람이 아니요 허수아비(人形)니라. 그러므로 종교상 형식을 무시하는 자는 역시 종교상 유령아(幽靈兒)요, 형식만 행하고 그것으로 만족을 삼는 자도 역시 인형적 신자, 곧 악마의 완롱물(玩弄物)이니라. 예컨데 보리 이삭이 발(發)하는 당일에 추수하면 그 형(形)은 틀림없는 보리이나, 실은 아무 소용 없는 형곡(形穀)에 불과하는 것이다. 이 형곡은 도무지 소용없는 것이므로 “쭉정이는 꺼지지 않는 불에 태우시리라”(마 3:12)고 하셨다. 어떤 이는 이 형(形)에 머물러 있어서 스스로 신앙하는 줄로 인정하나니, 이런 이는 외형은 성도 같으나 내막은 생래(生來)의 옛 사람 그대로 있어 소위 낭심양의(狼心羊衣)의 기형적 신자가 되어 경건한 모양은 있으나 경건한 능은 없는 바리새적 신자가 되고 말 것이다.
그러므로 이제 기자는 크게 외치노라. 형을 무시하지 말라. 이를 믿음으로 행하여 거룩하여질지며, 또한 형만 행하여 만족히 여기지 말라. 이것은 지엽(枝葉)만 무성한 무화과 나무 곧 거짓 믿음이니라. 고로 이 형보다 더 깊은 은혜 중으로 나아가야 할지니라.
Ⅱ제2단은 믿음의 뼈
이를 대체로 말하면 성서의 도리를 그대로 다 신앙하는 일이니라. 다시 부분적으로 말하면 삼위일체의 신의 존재와 그 역사를 신망하며 십자가의 대능(大能)으로 인간이 죄사함을 얻고 새 생명을 받으며, 성결 곧 원죄(生來의 인간성)을 말살케 되는 것을 신앙하여 주의 재림과 부활과 심판과 지옥과 천국 등을 신앙하는 일이다. 이를 믿음의 골격이라고 말한다. 어떤 사람은 믿음의 형을 행하여 여러가지 의식은 지키면서도 성서의 도리는 그대로 다 신앙하지 않고, 자의(自意)대로 자기의 심리에 적합한 이론으로 그 신앙을 삼고 만다.
이런 사람은 골격 없는 사람과 방불하다. 이는 실로 무능력한 곤충과 다름이 없다. 이런 믿음으로서는 이 악마와의 전지(戰地)인 세상에서 패배하여 망하지 않을 수 없다. 이런 신자는 인형적 신자이다. 저들은 마귀의 완롱물이 되어 저의 시키는 대로 별별 기기묘묘한 장난을 하고 있다. 현대 교회내에 종종 당파․암투․시기․분쟁․결원․거짓말이 흥행되며, 심지어 음주․흡연․음행같은 것 까지 연술되며, 강단 위에서는 지상 천국설․사회주의설․枝 신학설․무슨 사상설 등을 선전하게 된다. 마땅히 신성(神聖)하여야 할 교회가 악마의 굴혈로 화하게 됨이 어찌 두려운 일이 아니리오. 이 원인은 다른 데 있지 아니하고 그 소위 신자에게 골격과 생명이 없는 거기에 있다고 하노라. 우리들은 이러한 형적 신자에게 양류신자(楊柳信者)라는 별명을 붙이고 싶은 것은 양류가 대소풍(大小風)을 물론하고 풍세(風勢)대로 아주 저항도 하지 못하고 동하는 것과 같이 저들도 그 환경의 지배를 받아 편당짓는 자를 향하여 한 가지로 편당을 짓게 되고 암투자를 향하여는 암투, 시기자를 향하여는 시기, 분쟁자를 향하여는 분쟁, 누가 별다른 주의․사상․학설 등을 합리적으로 이론(理論)하게 되면 즉시 거기에 피동(被動)되어 공명케 되느니라.
보라. 사도 베드로가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로 신앙할 때에, 주는 저에 베드로(반석)라는 새 이름을 주신 것이다. 베드로의 이 믿음이 곧 믿음의 골격이다. 이 반석인 믿음은 성서의 도리를 그대로 절실히 신앙하는 믿음이다. 이러한 믿음은 대양(大洋) 중에 돌출한 암석과 같다. 그는 폭풍노도가 침노하여도 일향(一向) 움직이지 않는다. 이러한 신자는 그 주위로부터 악자(惡者)의 악행과 모든 죄악의 유혹과 인간의 인조적주의(인造的主義) 사상 등에게 한없는 괴로움을 당하여도 조금도 요동치 않고 진리의 토대 위에 굳건히 서 있게 된다. 그 늠름한 기풍은 참으로 놀라지 않을 수 없느니라. 그러나 그것이 절대로 완전한 믿음은 되지 못한다. 곧 거기에 생명이란 것이 첨부되어야 할 것이다. 이것이 없고는 일종사체(一種死體)에 불과하니라. 이 소위 미숙한 믿음이니라. 형(形)과 해(骸)의 믿음을 소유한 형제와 자매들은 마땅히 일보 더 나아가서 이 신앙의 생명을 구득(求得)할지니라.
Ⅲ제3단은 믿음의 생명
“누구든지 저를 믿으면 영생을 얻으리라”(요 3:16) 하신 이 ‘영생’이란 글자는 천국에 가서 영생한다는 의미가 아니오, 영원한 생명이란 의미니라. 그 위에 있는 ‘저를 믿으면’이라는 그 ‘믿음’은 위에 말한 바의 ‘형해(形骸)적 믿음’을 가리킴이니 이는 사람 편에서 그대로 신앙하라는 인간의 행할 바를 가리킴이니라. 이 참 믿음은 사람 편의 노력이나 신념으로 믿음 전부를 소유할 수 없으며, 또는 하나님 편에서도 단독으로 주실 수 없는 것이다. 곧 사람 편에서 형해적 신앙으로 저를 믿으면 하나님 편에서 ‘영원한 생명’을 주시는 것이다. 이렇게 된 후에야 비로소 주의 인정하심을 받는 진신앙(眞信仰)자가 되는 것이다. 이 영원한 생명이란 것은 그리스도 자신인데(요 14:6, 요Ⅰ 1:2), 바울은 이 생명을 소유하는 일을 표시하여 이르기를 “우리의 생명되시는 그리스도”(골 3:4)라 하고, “그리스도가 너희 마음속에 형상을 이루기까지”(갈 4:19)라 하였으며, “그리스도의 신이 없는 사람은 그리스도인이 아니라”(롬 8:9)고 하였다.
인간은 이 생명을 받아서 비로소 그 신앙하는 성서의 도리를 실행할 산 능력을 갖게 된다. 물론 이것이 없이라도 성서의 도리를 능변으로 말할 수도 있고 승인하여 믿을 수도 있다. 그러나 그 실행 방면(實行方面)에 이르려는 도저히 불능한 것이니라. 이에 대하여 어떤 사람은 말하기를 - 목사의 입과 신자의 귀만은 넉넉히 천당에 들어가리라 - 고 한다. 이것이 악평 같기는 하나 사실은 사실이다. 현대 교회 안에는 한갓 구설과 귀로만 믿는 자가 다수를 점령하고 있다. 물론 그들도 실행해 보려고 애를 쓰지 않은 것은 아니다. 그러나 도저히 되지 않는 것이다. 그야말로 욕지부달(欲之不達)이라 행할래야 행할 수 없는 것이다. 돌배나무에서 참배를 구함은 무리의 극이다. 그러나 돌배나무라도 참배나무에 접만 붙이기만 하면 참배를 맺게 될 것이니라.
우리 생래(生來)의 인간에게서는 인간의 행위 밖에 나타날 것이 더 없다. 오직 그리스도의 생명을 받은 연후에라야 그리스도의 행위가 나타나게 되나니, 성서의 모든 도리는 인간성으론 절대로 실행할 수 없고, 오직 그 생명을 소유한 자만 그 실행의 가능성을 가지고 있느니라.
아, 신우여 당신은 매일 성서의 도리를 그대로 실행하려고 노력하고 있느뇨? 이는 신앙의 진리를 알지 못하는 자의 어리석은 일이니라. 이제부터는 그 인간의 쓸데없는 노력을 중지하고 이 그리스도의 생명을 받고 더 받으려는 일에 당신의 힘이 있으면 있는데로 다 쓸지어다. 당신은 마침내 이 생명을 받아서 당신의 영혼의 진정한 요구인 주의 진리를 능히 실행케 될 것이니라.
진실로 그러하다. 인간은 이 생명을 받아야 성서의 진리를 체험케 된다. 결코 인위적 형해의 신앙만으로는 여기에 도달치 못하느니라. 그러한 사람은 항상 반신반의의 미로에서 방황하고 있느니라. 그러나 사실로 보고 만져서 체험한 자는 어떠한 반대적 이론을 들을지라도 그 심리가 조금도 움직이지 아니하느니라. 이 일에 대하여 사도 요한은 “태초부터 있는 생명의 도를 의론(議論)컨대 곧 우리가 들은 바요 목도한 바요 자세히 상고한 바요 손으로 만진 바라”(요Ⅰ 1:1)고 증거하였다. 누구든지 이 생명을 가진 자는 그 영으로 이 같은 체험을 갖게 된다.
오! 신우여, 당신은 성서의 진리에 대해 가끔 의문나는 때가 없느뇨? 만일 있거든 이것을 이해하려고 스스로 연구하는 실수에 빠지지 말고 단지 생명이 없어서 그러한 줄 알고 이 생명을 받도록 진력할지어다. 그러하여 이 생명을 받고 더 받을수록 그 진리를 이해할 뿐 아니라 실지로 체험하고 더 체험하여 당신의 지각에 넘치게 될 것이니라. 아멘.
이제는 이 생명받는 방법을 말하고 그만 두고자 한다.
<결론>
1, 믿어라. 위에 말한 형태적 신앙에 불완전한 것이 있거든 참되게 회개하고 맹목적으로라도 막 승인하고 신앙하여라.
2, 회개하라. 이 회개에는 과거에 범한 죄를 일일이 통회 자복하는 동시에 현재에 행하고 있는 죄를 통절한 마음으로 돌이켜 고치라. 그리고 미래에 경영하고 있는 죄까지 회개하라. 이같은 회개가 없고는 생명이 오지 않느니라.
3, 기도하라. 기도는 하늘에 쌓아둔 은혜의 보물을 실어 오는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철도 선로이다.
이 선로가 끊어져서 하늘의 은혜가 인간에 오지 못하는 것이다. 또 이 기도는 하늘과 사람 사이의 전선이라고 할 것이다. 하늘에 있는 생명과 진리는 이 선을 통하여 인간에 임하게 된다. 이 줄이 끊어져서 인간의 소원은 하늘에 미치지 못하며 하늘의 소식이 두절되어 인간은 하늘의 이치를 전연 알지 못하게 된다. 우리는 기도하되 정욕으로 땅에 있는 것을 구하여서는 안되겠다. “위에 있는 것을 찾으라(개정역에는 ‘하늘에 있는 것을 구하라’), 거기는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우편에 앉아 계시느니라”(골 3:1). 아! 하나님의 우편에 앉으신 그리스도를 얻으려고 기도하라. 이 그리스도 안에는 모든 보화가 충만히 들어 있느니라. 하늘의 길․진리․생명(요 14:6), 부활(요 11:25), 생명의 약식(요 6:48), 영원히 갈하지 아니하는 생수(요 4:14), 지혜․의․성결․속죄(고전 1:30)․성신의 열매(갈 5:22), 능히 헬 수 없는 모든 것이 풍성하니라.
아! 주는 인간의 영혼을 구원하시는 일로 가장 큰 만족을 삼으셨도다(요 4:32). 따라서 우리 인간은 이 그리스도를 얻음으로 성공의 만족이 있을지며, 이를 얻지 못해서 영원한 실패자 곧 현재로부터 영원까지의 고통의 소유자가 되느니라. 아, 신우여 기도하라. 이 생명을 받으려는 자도 기도하고, 이 생명을 받은 자도 기도하라. 이 기도는 우리의 영의 호흡이다. 인간은 호흡하여서 산자요, 호흡이 끊어져서 죽은 자니라. 솔로몬은 천하만사가 다 헛되고 헛되다고 주장하고, 결론에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 인간의 본분이라 하였다. 우리는 이 경외하는 법은 기도의 생애 그것이라고 한다.
아, 대재(大哉)라. 기도의 능력과 그 오묘함이여! 금일도 각처 무선전신 방송국에서는 별별 소리를 발하고 있으리라. 그러나 수화기가 설치되지 못한 곳에서는 아무리 듣고 싶어도 능히 듣지 못하리라. 또는 수화기는 비록 있어도 그 소리를 듣고자 하여 틀어 놓고 기다리지 아니 하면 역시 없는 것과 일반일 것이니라. 아! 신자의 영은 하늘 소리를 청취하는 수화기요, 기도는 그 소리를 들으려고 하늘을 향하여 틀어 놓고 기다리는 일이라 하노라. 라디오의 전파가 공간에 보급되는 것처럼 하나님의 진리와 은혜와 생명은 우주 사이에 충만하니라. 이것은 생명을 가지고 기도하는 자의 취득할 영분(領分)이니라.
오! 주여, 저는 미련한 입술로나 이 둔한 붓으로는 당신의 진리를 다 발표할 수 없사옵나이다. 혹 발표할 수 있다 하여도 이는 아무 능력이 없사옵나이다. 그러하오나 주여 에스겔이 골짜기에 예언할 때 당신의 능력의 바람으로 말미암아 마른 뼈가 살아나서 생명 있는 군대가 되었지요. 이 생명의 바람을 조선(朝鮮)의 뼈만 남은 영혼들에게 불어주소서. 무덤 속에 있는 형해(形骸)만 가진 나사로를 불러내어 살리시던 주여, 이 조선의 죽은 형해뿐인 영혼들을 부르시옵소서. 나인성 과부의 처량한 호곡성에 동정하사 그 독자를 살려 주시던 주여, 생명 있는 성도들의 호소하는 소리에 귀를 기울여 들으시고 이 죽은 영계(靈界)를 향하사 당신의 능력의 음성을 발하여 주옵소서. 그리하시면 생명의 군대가 일어나리로다. 아멘.
인자가 올 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 (누가 18:8)
“인자가 올 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 고 탄식하신 주의 말씀을 생각하면 주의 인정을 받을만한 믿음은 지극히 희귀한 것임을 알 수가 있다. 우리들은 겨자씨만한 믿으을 품고 박약(薄弱)한 체험으로나마 현대 신앙계를 관찰하여 거짓 믿음과 미숙한 믿음을 다수(多數)로 볼 수 있으며, 참 믿음을 만나 보기가 어렵다고 한다. 이 참 믿음은 삼단(三段)으로 되어 있는데, 이를 일단(一段)만 행하여 거짓 믿음이 되고, 이단만 행하여 미숙한 믿음이 되며, 삼단에 정립(鼎立)된 후에야 참 믿음이 되느니라.
Ⅰ제1단은 믿음의 형(形)
이는 믿음의 초보 곧 종교상 도덕과 의식을 준수하는 일을 말함이다. 곧 주일을 지키며, 예배하고 헌신하며, 세례와 성찬에 참례하는 일이며, 금주금연하는 일과 구제하는 일이며, 쉽게 나타나보이는 범죄를 하지 아니하는 일들이다. 이는 믿음으로 행하여 믿음의 행위요, 믿음 없이도 행하는 의식이니라. 신자는 믿음을 얻기 위하여서 이를 행할 것이며, 또한 믿음의 생활을 유지하기 위하여서 이를 마땅히 행하여야 할 것이다.
믿음은 인격과 방불하다. 형(形)이 없는 사람은 사람이 아니요 유령이며, 형뿐인 사람도 또한 사람이 아니요 허수아비(人形)니라. 그러므로 종교상 형식을 무시하는 자는 역시 종교상 유령아(幽靈兒)요, 형식만 행하고 그것으로 만족을 삼는 자도 역시 인형적 신자, 곧 악마의 완롱물(玩弄物)이니라. 예컨데 보리 이삭이 발(發)하는 당일에 추수하면 그 형(形)은 틀림없는 보리이나, 실은 아무 소용 없는 형곡(形穀)에 불과하는 것이다. 이 형곡은 도무지 소용없는 것이므로 “쭉정이는 꺼지지 않는 불에 태우시리라”(마 3:12)고 하셨다. 어떤 이는 이 형(形)에 머물러 있어서 스스로 신앙하는 줄로 인정하나니, 이런 이는 외형은 성도 같으나 내막은 생래(生來)의 옛 사람 그대로 있어 소위 낭심양의(狼心羊衣)의 기형적 신자가 되어 경건한 모양은 있으나 경건한 능은 없는 바리새적 신자가 되고 말 것이다.
그러므로 이제 기자는 크게 외치노라. 형을 무시하지 말라. 이를 믿음으로 행하여 거룩하여질지며, 또한 형만 행하여 만족히 여기지 말라. 이것은 지엽(枝葉)만 무성한 무화과 나무 곧 거짓 믿음이니라. 고로 이 형보다 더 깊은 은혜 중으로 나아가야 할지니라.
Ⅱ제2단은 믿음의 뼈
이를 대체로 말하면 성서의 도리를 그대로 다 신앙하는 일이니라. 다시 부분적으로 말하면 삼위일체의 신의 존재와 그 역사를 신망하며 십자가의 대능(大能)으로 인간이 죄사함을 얻고 새 생명을 받으며, 성결 곧 원죄(生來의 인간성)을 말살케 되는 것을 신앙하여 주의 재림과 부활과 심판과 지옥과 천국 등을 신앙하는 일이다. 이를 믿음의 골격이라고 말한다. 어떤 사람은 믿음의 형을 행하여 여러가지 의식은 지키면서도 성서의 도리는 그대로 다 신앙하지 않고, 자의(自意)대로 자기의 심리에 적합한 이론으로 그 신앙을 삼고 만다.
이런 사람은 골격 없는 사람과 방불하다. 이는 실로 무능력한 곤충과 다름이 없다. 이런 믿음으로서는 이 악마와의 전지(戰地)인 세상에서 패배하여 망하지 않을 수 없다. 이런 신자는 인형적 신자이다. 저들은 마귀의 완롱물이 되어 저의 시키는 대로 별별 기기묘묘한 장난을 하고 있다. 현대 교회내에 종종 당파․암투․시기․분쟁․결원․거짓말이 흥행되며, 심지어 음주․흡연․음행같은 것 까지 연술되며, 강단 위에서는 지상 천국설․사회주의설․枝 신학설․무슨 사상설 등을 선전하게 된다. 마땅히 신성(神聖)하여야 할 교회가 악마의 굴혈로 화하게 됨이 어찌 두려운 일이 아니리오. 이 원인은 다른 데 있지 아니하고 그 소위 신자에게 골격과 생명이 없는 거기에 있다고 하노라. 우리들은 이러한 형적 신자에게 양류신자(楊柳信者)라는 별명을 붙이고 싶은 것은 양류가 대소풍(大小風)을 물론하고 풍세(風勢)대로 아주 저항도 하지 못하고 동하는 것과 같이 저들도 그 환경의 지배를 받아 편당짓는 자를 향하여 한 가지로 편당을 짓게 되고 암투자를 향하여는 암투, 시기자를 향하여는 시기, 분쟁자를 향하여는 분쟁, 누가 별다른 주의․사상․학설 등을 합리적으로 이론(理論)하게 되면 즉시 거기에 피동(被動)되어 공명케 되느니라.
보라. 사도 베드로가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로 신앙할 때에, 주는 저에 베드로(반석)라는 새 이름을 주신 것이다. 베드로의 이 믿음이 곧 믿음의 골격이다. 이 반석인 믿음은 성서의 도리를 그대로 절실히 신앙하는 믿음이다. 이러한 믿음은 대양(大洋) 중에 돌출한 암석과 같다. 그는 폭풍노도가 침노하여도 일향(一向) 움직이지 않는다. 이러한 신자는 그 주위로부터 악자(惡者)의 악행과 모든 죄악의 유혹과 인간의 인조적주의(인造的主義) 사상 등에게 한없는 괴로움을 당하여도 조금도 요동치 않고 진리의 토대 위에 굳건히 서 있게 된다. 그 늠름한 기풍은 참으로 놀라지 않을 수 없느니라. 그러나 그것이 절대로 완전한 믿음은 되지 못한다. 곧 거기에 생명이란 것이 첨부되어야 할 것이다. 이것이 없고는 일종사체(一種死體)에 불과하니라. 이 소위 미숙한 믿음이니라. 형(形)과 해(骸)의 믿음을 소유한 형제와 자매들은 마땅히 일보 더 나아가서 이 신앙의 생명을 구득(求得)할지니라.
Ⅲ제3단은 믿음의 생명
“누구든지 저를 믿으면 영생을 얻으리라”(요 3:16) 하신 이 ‘영생’이란 글자는 천국에 가서 영생한다는 의미가 아니오, 영원한 생명이란 의미니라. 그 위에 있는 ‘저를 믿으면’이라는 그 ‘믿음’은 위에 말한 바의 ‘형해(形骸)적 믿음’을 가리킴이니 이는 사람 편에서 그대로 신앙하라는 인간의 행할 바를 가리킴이니라. 이 참 믿음은 사람 편의 노력이나 신념으로 믿음 전부를 소유할 수 없으며, 또는 하나님 편에서도 단독으로 주실 수 없는 것이다. 곧 사람 편에서 형해적 신앙으로 저를 믿으면 하나님 편에서 ‘영원한 생명’을 주시는 것이다. 이렇게 된 후에야 비로소 주의 인정하심을 받는 진신앙(眞信仰)자가 되는 것이다. 이 영원한 생명이란 것은 그리스도 자신인데(요 14:6, 요Ⅰ 1:2), 바울은 이 생명을 소유하는 일을 표시하여 이르기를 “우리의 생명되시는 그리스도”(골 3:4)라 하고, “그리스도가 너희 마음속에 형상을 이루기까지”(갈 4:19)라 하였으며, “그리스도의 신이 없는 사람은 그리스도인이 아니라”(롬 8:9)고 하였다.
인간은 이 생명을 받아서 비로소 그 신앙하는 성서의 도리를 실행할 산 능력을 갖게 된다. 물론 이것이 없이라도 성서의 도리를 능변으로 말할 수도 있고 승인하여 믿을 수도 있다. 그러나 그 실행 방면(實行方面)에 이르려는 도저히 불능한 것이니라. 이에 대하여 어떤 사람은 말하기를 - 목사의 입과 신자의 귀만은 넉넉히 천당에 들어가리라 - 고 한다. 이것이 악평 같기는 하나 사실은 사실이다. 현대 교회 안에는 한갓 구설과 귀로만 믿는 자가 다수를 점령하고 있다. 물론 그들도 실행해 보려고 애를 쓰지 않은 것은 아니다. 그러나 도저히 되지 않는 것이다. 그야말로 욕지부달(欲之不達)이라 행할래야 행할 수 없는 것이다. 돌배나무에서 참배를 구함은 무리의 극이다. 그러나 돌배나무라도 참배나무에 접만 붙이기만 하면 참배를 맺게 될 것이니라.
우리 생래(生來)의 인간에게서는 인간의 행위 밖에 나타날 것이 더 없다. 오직 그리스도의 생명을 받은 연후에라야 그리스도의 행위가 나타나게 되나니, 성서의 모든 도리는 인간성으론 절대로 실행할 수 없고, 오직 그 생명을 소유한 자만 그 실행의 가능성을 가지고 있느니라.
아, 신우여 당신은 매일 성서의 도리를 그대로 실행하려고 노력하고 있느뇨? 이는 신앙의 진리를 알지 못하는 자의 어리석은 일이니라. 이제부터는 그 인간의 쓸데없는 노력을 중지하고 이 그리스도의 생명을 받고 더 받으려는 일에 당신의 힘이 있으면 있는데로 다 쓸지어다. 당신은 마침내 이 생명을 받아서 당신의 영혼의 진정한 요구인 주의 진리를 능히 실행케 될 것이니라.
진실로 그러하다. 인간은 이 생명을 받아야 성서의 진리를 체험케 된다. 결코 인위적 형해의 신앙만으로는 여기에 도달치 못하느니라. 그러한 사람은 항상 반신반의의 미로에서 방황하고 있느니라. 그러나 사실로 보고 만져서 체험한 자는 어떠한 반대적 이론을 들을지라도 그 심리가 조금도 움직이지 아니하느니라. 이 일에 대하여 사도 요한은 “태초부터 있는 생명의 도를 의론(議論)컨대 곧 우리가 들은 바요 목도한 바요 자세히 상고한 바요 손으로 만진 바라”(요Ⅰ 1:1)고 증거하였다. 누구든지 이 생명을 가진 자는 그 영으로 이 같은 체험을 갖게 된다.
오! 신우여, 당신은 성서의 진리에 대해 가끔 의문나는 때가 없느뇨? 만일 있거든 이것을 이해하려고 스스로 연구하는 실수에 빠지지 말고 단지 생명이 없어서 그러한 줄 알고 이 생명을 받도록 진력할지어다. 그러하여 이 생명을 받고 더 받을수록 그 진리를 이해할 뿐 아니라 실지로 체험하고 더 체험하여 당신의 지각에 넘치게 될 것이니라. 아멘.
이제는 이 생명받는 방법을 말하고 그만 두고자 한다.
<결론>
1, 믿어라. 위에 말한 형태적 신앙에 불완전한 것이 있거든 참되게 회개하고 맹목적으로라도 막 승인하고 신앙하여라.
2, 회개하라. 이 회개에는 과거에 범한 죄를 일일이 통회 자복하는 동시에 현재에 행하고 있는 죄를 통절한 마음으로 돌이켜 고치라. 그리고 미래에 경영하고 있는 죄까지 회개하라. 이같은 회개가 없고는 생명이 오지 않느니라.
3, 기도하라. 기도는 하늘에 쌓아둔 은혜의 보물을 실어 오는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철도 선로이다.
이 선로가 끊어져서 하늘의 은혜가 인간에 오지 못하는 것이다. 또 이 기도는 하늘과 사람 사이의 전선이라고 할 것이다. 하늘에 있는 생명과 진리는 이 선을 통하여 인간에 임하게 된다. 이 줄이 끊어져서 인간의 소원은 하늘에 미치지 못하며 하늘의 소식이 두절되어 인간은 하늘의 이치를 전연 알지 못하게 된다. 우리는 기도하되 정욕으로 땅에 있는 것을 구하여서는 안되겠다. “위에 있는 것을 찾으라(개정역에는 ‘하늘에 있는 것을 구하라’), 거기는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우편에 앉아 계시느니라”(골 3:1). 아! 하나님의 우편에 앉으신 그리스도를 얻으려고 기도하라. 이 그리스도 안에는 모든 보화가 충만히 들어 있느니라. 하늘의 길․진리․생명(요 14:6), 부활(요 11:25), 생명의 약식(요 6:48), 영원히 갈하지 아니하는 생수(요 4:14), 지혜․의․성결․속죄(고전 1:30)․성신의 열매(갈 5:22), 능히 헬 수 없는 모든 것이 풍성하니라.
아! 주는 인간의 영혼을 구원하시는 일로 가장 큰 만족을 삼으셨도다(요 4:32). 따라서 우리 인간은 이 그리스도를 얻음으로 성공의 만족이 있을지며, 이를 얻지 못해서 영원한 실패자 곧 현재로부터 영원까지의 고통의 소유자가 되느니라. 아, 신우여 기도하라. 이 생명을 받으려는 자도 기도하고, 이 생명을 받은 자도 기도하라. 이 기도는 우리의 영의 호흡이다. 인간은 호흡하여서 산자요, 호흡이 끊어져서 죽은 자니라. 솔로몬은 천하만사가 다 헛되고 헛되다고 주장하고, 결론에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 인간의 본분이라 하였다. 우리는 이 경외하는 법은 기도의 생애 그것이라고 한다.
아, 대재(大哉)라. 기도의 능력과 그 오묘함이여! 금일도 각처 무선전신 방송국에서는 별별 소리를 발하고 있으리라. 그러나 수화기가 설치되지 못한 곳에서는 아무리 듣고 싶어도 능히 듣지 못하리라. 또는 수화기는 비록 있어도 그 소리를 듣고자 하여 틀어 놓고 기다리지 아니 하면 역시 없는 것과 일반일 것이니라. 아! 신자의 영은 하늘 소리를 청취하는 수화기요, 기도는 그 소리를 들으려고 하늘을 향하여 틀어 놓고 기다리는 일이라 하노라. 라디오의 전파가 공간에 보급되는 것처럼 하나님의 진리와 은혜와 생명은 우주 사이에 충만하니라. 이것은 생명을 가지고 기도하는 자의 취득할 영분(領分)이니라.
오! 주여, 저는 미련한 입술로나 이 둔한 붓으로는 당신의 진리를 다 발표할 수 없사옵나이다. 혹 발표할 수 있다 하여도 이는 아무 능력이 없사옵나이다. 그러하오나 주여 에스겔이 골짜기에 예언할 때 당신의 능력의 바람으로 말미암아 마른 뼈가 살아나서 생명 있는 군대가 되었지요. 이 생명의 바람을 조선(朝鮮)의 뼈만 남은 영혼들에게 불어주소서. 무덤 속에 있는 형해(形骸)만 가진 나사로를 불러내어 살리시던 주여, 이 조선의 죽은 형해뿐인 영혼들을 부르시옵소서. 나인성 과부의 처량한 호곡성에 동정하사 그 독자를 살려 주시던 주여, 생명 있는 성도들의 호소하는 소리에 귀를 기울여 들으시고 이 죽은 영계(靈界)를 향하사 당신의 능력의 음성을 발하여 주옵소서. 그리하시면 생명의 군대가 일어나리로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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