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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사속의 명설교

    한나의 행복

    페이지 정보

    성경본문: 사무엘상 2:1-10 | 설교자: 한대근

    본문

    사무엘서는 한나의 눈물로부터 시작합니다. 한나는 아이를 낳을 수 없는 여인이었습니다. 한나는 아이를 낳지 못함으로 번민했습니다. 한나는 자신을 슬픈 여자라고 말합니다.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고 스스로를 불행하다고 생각했습니다. 남편의 특별한 사랑도 즐겁지 않았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한나는 자신의 괴로움과 슬픔을 하나님께 아뢰었습니다. 자신의 고통을 돌아보아 달라고 눈물로 간구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아이를 주시면 하나님께 바치겠다고 서원까지 했습니다. 자신이 아이를 품에 안고 키우지 못해도 좋으니까 아이 하나만 낳게 해달라는 최후의 간청이었습니다. 하나님은 한나를 생각하셨습니다. 그리고 그에게 아들을 주셨습니다. 그가 바로 사무엘입니다. 한나는 사무엘이 태어나자 최선을 다하여 양육했습니다. 금지옥엽과도 같이 귀한 아들이었습니다. 그러나 한나는 사무엘이 젖을 떼자마자 자신의 약속한대로 엘리 제사장에게로 데리고 가서 하나님께 바쳤습니다. 어린 아들을 늙은 제사장에게 맡기고 되돌아서는 어미에게서 기대될 수 있는 모습이란 어떤 것이겠습니까? 아무리 마음을 굳게 먹었다고 해도 눈물을 흘리며 차마 발걸음을 옮기지 못하는 모습일 것입니다. 그런데 한나는 울지 않았습니다. 성소 근처에서 방황하지도 않았습니다. 대신에 입을 열어 찬송을 부릅니다. 그것도 아주 기쁘게 부릅니다. 한나가 부르는 찬송을 가만히 묵상해보면 엄청난 행복이 느껴집니다. 그러면 도대체 무엇이 이렇게 한나를 행복하게 만든 것인가? 필사적으로 기도하여 얻은 아들, 기적적으로 잉태한 아들을 여호와께 바치고도 한나가 그토록 행복했던 비밀은 무엇입니까?

    버리고 순종하라
    사무엘은 한나가 그토록 간절하게 기도하며 구했던 아들입니다. 너무나 소중하고 귀한 아들입니다. 이제까지 한나에게 가장 행복하고 기쁜 날이 있었다면 그것은 바로 하나님께로부터 아들을 얻은 날이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 아들을 하나님께 바치고는 아들을 낳을 때보다 더 행복해하고 있습니다. 여기에 놀라운 진리가 있습니다. 참된 행복이란 많이 소유하고 넉넉하게 품고 있어야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늘 말씀 드리지만 가난하고 힘들게 살 때, 사람 사는 맛이 있었습니다. 먹을 것이 부족해서 배부르게 먹지 못했고, 수입이 넉넉하지 못해서 많이 배우지 못했지만 작은 것에도 감사할 줄 알았고 행복했었습니다. 그러나 오늘날 많이 먹고, 많이 배우고, 많이 편리해졌지만, \아! 나는 정말 행복합니다.\라고 말하는 사람을 만나기가 어렵습니다. 만나는 사람들마다 그 얼굴은 \나는 불행합니다.\라고 말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왜 그럴까? 그것은 바로 소유에 대한 집착 때문입니다. 포기하지 못하는 마음 때문입니다. 자존심을 포기하지 못합니다. 남보다 더 나아야 한다고 하는 강박관념이 무한 경쟁의 시대를 살면서 우리 정신을 마비시켜버렸습니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포기하지 못해서 가슴 아파하며 살고 있는지 모릅니다.

    아프리카 원주민들이 원숭이를 사냥할 때 쓰는 제일 효과적인 사냥법은 목이 좁은 병 안에 원숭이가 좋아하는 과일을 넣어 놓는 것이라고 합니다. 원숭이가 과일을 먹기 위해 좁은 병 속에 손을 넣고 과일을 잡습니다. 그런데 손에 물건이 쥐어져있기 때문에 안 빠집니다. 그것만 놓으면 도망갈 수 있는데 과일을 포기하지 못해서 끝까지 붙잡고 있다가 사람들에게 잡히고 마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너무 많은 것을 갖고 싶어합니다. 많은 것을 누리고 싶어합니다. 그러나 많은 것을 소유하고 누리려는 집착이 강하면 강할수록 행복은 잃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소유에 대한 집착을 포기하는 데서부터 행복이 임한다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마음이 가난한 자에게 천국이 임하며, 온유한 자가 땅을 기업으로 얻을 것이라고 가르치셨습니다. 실제로 예수님은 우리들에게 모범이 되셨습니다. 빌립보서 2:5-10에 보면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 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었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셨으매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은 하늘의 영광을 버리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죽기까지 복종하셨습니다. 이렇게 자기를 버림으로 하늘의 영광을 얻으셨습니다. 버리지 않고서는 얻음이 없습니다.
    아브라함은 자신의 분신과도 같은 이삭을 번제로 바치라는 명령을 받고 그대로 순종했습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위해서라면 자신의 아들이라도 포기할 수 있다고 하는 믿음을 확인하셨습니다. 그리고 그에게 큰 민족에 대한 비전과 축복을 약속하셨습니다. 아브라함이 자기를 포기하고 하나님께 순종했을 때, 믿음의 조상이 되는 축복을 받은 것입니다.

    중세의 성자로 알려진 성 프랜시스는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만난 뒤 두 가지 마음으로 번민했습니다. 부유하신 부모님 밑에서 이제까지 누려오던 평상적인 삶을 계속 누릴 것인가, 아니면 과거의 방탕한 삶을 버리고 예수님을 따라 살면서 나누고 베풀며 사는 삶을 살 것인가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다가 어느 날, 자기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추위에 떨고 있는 거지를 보고 자기 아버지에게 물려받은 귀한 망토를 거지에게 입혀 주었습니다. 그런데 그날 밤 꿈에 예수님께서 자신이 거지에게 준 망토를 입고 빙그레 웃고 계셨습니다. 후에, 귀한 망토를 거지에게 준 일이 아버지에게 발각되어 호되게 질책을 받은 그는 굳은 결심을 하고 아버지에게 이제부터는 하나님의 아들로 새롭게 살겠노라고 말씀을 드리고 집을 나왔습니다. 그날부터 그는 맨발로 아시시의 거리를 걸어다니며 기도하는 삶과 더불어 가난한 자들을 돕는 삶을 살았습니다. 온 유럽이 부유함을 원할 때, 온 유럽이 성공지상주의에 빠져 있을 때, 그는 거꾸로 주님을 위해 버리는 삶을 살면서 가장 행복하고 기쁜 삶을 살았습니다. 그는 44년의 짧은 생애를 살았지만, 만약 그가 없었더라면 카톨릭은 그때 무너졌을 것이라고 할만큼 당시 유럽사회에 위대한 족적을 남겼습니다. 버릴 것을 버리고 하나님께 순종할 때, 그곳에서 참된 행복과 기쁨을 누리는 복을 누리게 될 줄 믿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지금 여러분들이 집착하는 것으로 인하여 마음이 불안하고 답답하지는 않습니까? 무엇인가 많은 것을 소유해야하겠다는 강박관념으로 인하여 밤잠을 설치고 있지는 않으십니까? 아니면 그 동안 누리던 것을 잃고 후회하고 낙심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예수님처럼 겸손히 내려놓고 포기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평안이 옵니다. 행복이 옵니다. 다시 얻을 수 있는 길이 보이게 됩니다. 이것이 성경이 말하는 행복의 비밀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소유를 포기하고 참된 행복을 얻기 위해서는 어떤 자세를 견지해야 하겠습니까?

    1. 모든 것이 하나님의 것이라고 믿는 것입니다.
    사무엘은 한나가 기도하여 얻은 아들입니다. 한나는 분명히 아이를 낳을 수 없는 여인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그녀의 태를 열어 주신 것입니다. 한나는 사무엘이 자신의 소유물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자신의 소유이기 이전에 하나님께서 위대한 목적과 뜻을 가지고 계신 하나님의 택한 종이라고 믿었습니다. 오늘 본문에 한나의 찬송을 보면, 사무엘에 대한 이야기가 하나도 없습니다. 우리는 기도에 응답을 받을 때, 응답해주신 하나님보다 응답 자체를 기뻐하고 소중히 여기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런 경향대로라면 한나도 당연히 사무엘에만 관심이 쏠려야 마땅합니다. 그러나 한나에게는 사무엘이 행복의 근원이 아닙니다. 사무엘이 기쁨의 근원이 아닙니다. 한나의 행복과 기쁨의 원천은 기도에 응답하셔서 사무엘을 주신 하나님께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한나가 사무엘을 하나님께 드리고 행복해 할 수 있었던 비밀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넘어지는 것은 자신이 가지고 있는 것이 영원히 자신을 것이라고 착각하는데 있습니다. 모두가 \내 것\이라고 하는 소유욕에 사로잡혀 살기 때문에 세상이 점점 삭막해지는 것입니다. 사실 따지고 보면 이 세상에 내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뉴스를 보셔서 아시겠지만 몇 년 전 대한항공기 괌 추락 사건으로 인하여 온 가족이 목숨을 잃은 전 인천상호신용금고의 이사장의 상속권에 대한 최종판결을 대법원이 내렸습니다. 수천 억대의 재산을 두고 죽은 사람의 형제들과 사위가 맞붙은 싸움에서 사위의 손을 들어주었습니다. 사위는 상속받은 전 재산을 사회에 환원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고 합니다. 이런 뉴스를 접하면서 무슨 생각이 듭니까? 이 세상에 \내 것\이 정말 있습니까? 지금 여러분이 가지고 있는 모든 것들이 다 여러분들의 것이 맞습니까? 왜 포기하지 못합니까? \내 것\이라고 하는 잘못된 소유의식 때문입니다.
    요즘 우리는 새벽에 욥기를 읽고 있습니다. 욥에게는 엄청난 재산과 자랑스러운 자녀들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사탄의 계략으로 하루아침에 다 빼앗겼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가난에는 이깁니다. 가난하고 어려울 때는 쉽게 타락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부유할 때, 넘어집니다. 풍요에는 지는 사람이 많습니다. 풍요롭고 넉넉할 때, 타락하는 경우가 더 많습니다. 특별히 부유했던 사람이 갑자기 가난하게 되면 자살하는 경우가 더 많습니다. 상실감이 너무 크기 때문입니다. 이제껏 누리던 풍요로운 삶의 습관을 쉽게 잊을 수가 없어서 한꺼번에 무너지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욥의 경우가 이런 것입니다. 넉넉하게 누리고 살던 사람이 하루아침에 모든 것을 잃었습니다. 그런데 그가 이렇게 말합니다. \내가 모태에서 적신이 나왔사온즉 적신이 그리로 돌아가 올지라 주신 자도 여호와시오 취한 자도 여호와시오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지로다(욥1:21)\, 이 말을 듣고 있던 그의 부인이 화가 나서 \차라리 하나님을 욕하고 죽으라\고 악을 바쳤습니다. 그러자 욥은 \당신은 참으로 어리석은 여자로군 우리가 하나님께 복을 받았은즉, 재앙도 받지 아니하겠느뇨\ 하면서 하나님을 원망하거나 욕하지 않았습니다.

    이 풍요의 시대에 왜 사람들은 행복하지 못합니까? 버리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포기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왜 못버립니까, 왜 포기하지 못합니까? \내 것\이라고 착각하기 때문입니다. 소유에 대하여 집착하면 할수록 행복과는 거리가 멀어진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겸손하십시오. 내가 믿고 의지하는 재물이, 건강이, 자식이 영원히 견고한 행복의 원천이 될 수 없습니다. 재물도, 건강도, 자식의 미래도 하나님이 주관하시도록 겸손히 내어드리시기를 바랍니다. 거기서 참된 행복이 옵니다.

    2. 하나님께서 다시 일으켜주심을 믿는 것입니다.
    4절부터 8절까지를 읽어보면 강한 자와 약자, 배부른 자와 배고픈 자, 자식을 많이 낳은 자와 낳지 못한 자를 서로 대조하면서 하나님께서 약자와 배고픈 자와, 아이를 낳지 못한 자들을 일으켜 주셔서 존귀하고 영광스러운 자리에 앉게 하신다고 노래하고 있습니다. 한나도 그들처럼 \일으키심\을 받은 사람 중에 한 사람입니다. 아이를 낳을 수 없는 희망이 없는 여인의 닫힌 태를 열어주셨습니다. 이 일은 도저히 인간의 힘이나 과학의 힘으로 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오직 하나님께서 한나를 위해 행하신 일입니다. 한나는 무에서 유를 창조하시는 하나님, 나쁜 상태를 좋게 하시는 하나님, 죽은 자를 살리시는 하나님을 믿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주신 아들 사무엘을 주님께 바치고도 행복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태를 열어주셨으니, 이제 사무엘에게 집착할 필요가 없지 않습니까? 2장 21절을 보시겠습니다. \여호와께서 한나를 권고하사 그로 잉태하여 세 아들과 두 딸을 낳게 하셨고, 아이 사무엘은 여호와 앞에서 자라니라\ 사무엘을 하나님께 바친 후에 한나는 세 아들과 두 딸을 더 낳았습니다. 그리고 사무엘은 사무엘대로 여호와 하나님 앞에서 훌륭하게 성장하고 있었습니다. 얼마나 행복한 모습입니까?

    우리가 세상을 살면서 느끼는 소외감이나 상실감의 원인 뒤에는 온통 사회가 승자의 시각으로 모든 것을 판단하는데 있습니다. 우리는 서열을 통해서 사람을 평가하는데 익숙해져 있습니다. 인격이나, 사람됨됨이는 별로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모든 것을 몇 등 했으며, 몇 점 맞았는지를 가지고 평가합니다. 잃은 자, 패배자, 가난한 자, 소외된 자들을 위한 배려는 별로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이것은 점수와 서열로 판가름나는 세상에 살면서 생긴 습관입니다. 그러나 성경의 역사와 하나님의 시각은 다릅니다. 하나님은 가난과, 약함과 소외감으로 냉대를 당하는 자들이 어떻게 하나님의 일으키심을 받았는지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성경의 중요한 지도자와 위대한 인물들을 보십시오. 대부분이 약자였습니다. 예수님도 약자였습니다. 사도행전의 교회도 약자였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이렇게 낮춤을 당하고, 약자로 소외당하는 사람들이 일으키심을 받을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주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요, 부활인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께서 우리를 진토에서 일으키시고 거름더미에서 들어주신다는 사실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잃어버린 것과 소유와 탐욕에 집착하지 않고 행복할 수 있는 것입니다. 다윗처럼 \여호와는 나의 목자 시니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라고 고백할 수 있어야 합니다. 바울처럼 \내가 자족하기를 배웠노니 내가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 일에 배부르며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는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하나님이 일으켜주시고 하나님이 갚아주시고, 하나님이 책임져 주실 것을 믿으십시오. 거기에 참 행복이 있습니다.

    3. 하나님이 열어주실 아름다운 미래를 꿈꾸는 것입니다.
    9절과 10절을 읽겠습니다. \그가 그 거룩한 자들의 발을 지키실 것이요 악인으로 흑암 중에서 잠잠케 하시리니 힘으로는 이길 사람이 없음이로다 여호와를 대적하는 자는 산산이 깨어질 것이라 하늘 우레로 그들을 치시리로다 여호와께서 땅 끝까지 심판을 베푸시고 자기 왕에게 힘을 주시며 자기의 기름부음을 받은 자의 뿔을 높이시리로다\

    한나의 노래의 결론부분은 장차 올 일을 기대하는 것으로 마무리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할 하나님이 책한 사람, 즉 자기의 기름부음은 받은 자에 대한 기대감으로 충만합니다. 히브리어로 기름부음을 받은 자는 \메시아\를 지칭합니다. 메시아는 자기 백성에 대한 하나님의 구원과 통치를 대행하기 위해 구별되고 임명받은 사람을 말하는 것입니다.

    한나는 사무엘을 바치면서 하나님께서 사무엘을 통해 이루실 일들을 기대하고 꿈꾸고 있습니다. 사무엘이 열어갈 하나님의 거룩한 역사에 대한 꿈과 미래의 비전이 한나에게 있었던 것입니다. 너무나 귀한 아들을 하나님께 바치면서도 한나가 슬퍼하지 않고 오히려 행복의 노래를 부를 수 있었던 것은 사무엘이 하나님의 역사에서 위대한 일을 감당할 것이고 하는 꿈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한나의 행복이었습니다. 그리고 한나의 기대대로 사무엘은 이스라엘 역사에서 사울과 다윗을 왕으로 세우는 일을 행하게 됩니다. 그리고 나아가서는 다윗의 족보에서 예수 그리스도가 탄생하게 되는 놀라운 일의 수행자가 되는 축복을 받게 되었습니다.

    부모의 행복은 자식에게 있습니다. 자식이 건강하고 행복하면 부모도 행복합니다. 특별히 자식이 하나님의 역사에서 위대한 일을 감당할 수 있다면 그보다 더 행복한 일이 어디 있겠습니까? 이러한 희망이 있는 사람은 절대로 불행하지 않습니다. 미래를 꿈꾸는 사람은 행복합니다. 미래가 보이는 사람은 현실의 문제로 인하여 절망하지 않습니다.

    가나안 땅을 정탐하고 돌아 온 열두 명중에 여호와와 갈렙을 제외한 열 명은 현실주의자였습니다. 자신들의 경험하고 있는 현실을 근거로 가나안 땅을 평가했습니다. 열 명의 정탐꾼들에게 현실은 너무 컸습니다. 현실과 미래 사이를 가르는 벽이 너무 두텁게 느껴진 것입니다. 감히 자신들의 경험으로는 그 벽을 뛰어 넘을 수 없다고 믿었습니다. 그리고 자신들의 무기력한 현실을 두고두고 불평하다가 광야에서 다 죽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나머지 두 명, 여호수아와 갈렙은 달랐습니다. 그들은 미래를 볼 줄 아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꿈이 있었습니다. 자신들과 후손들이 하나님이 주신 젖과 꿀이 흐르는 땅에서 하나님의 축복을 누리며 사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현실은 삭막하고 부딪치는 장벽이 많았지만 꿈을 가진 그들에게 그것은 두려움이 될 수 없었습니다. 가나안 땅은 이미 그들의 소유가 되었습니다.

    지금 우리의 모습은 과거 몇 년 전, 우리가 꿈꾼 모습입니다. 그렇다면 우리의 미래는 지금 우리의 꿈속에 이미 있는 것입니다. 어떤 꿈을 가지고 사는가에 따라 우리의 미래는 전혀 달라질 수 있습니다. 여러분들이 그리는 그림이 앞으로 여러분의 인생을 결정하는 것입니다. 지금의 환경이 앞으로 더 나아질 것이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는 미래는 없습니다. 우리는 지금 우리가 경험하고 있는 삶의 환경이 이대로 굳어질 것이라고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아직 좋은 것은 오지 않았습니다. 그것이 지금 여러분 앞에 오고 있습니다. 가장 좋은 것을 꿈꾸고 소망하시기 바랍니다. 날마다 새롭고 행복하고 좋아질 것이라고 믿는 사람들이 가장 좋은 것을 경험할 수 있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미래를 꿈꾸시기 바랍니다. 미래는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 가는 것입니다. 내가 나의 미래를 선택하지 않으면 원치 않는 미래가 나를 선택하게 됩니다. 그때 가서 후회하면 소용이 없습니다. 일어나십시오. 깨어나십시오. 하나님이 열어주실 미래를 꿈꾸십시오. 날마다 행복할 것입니다.

    한나의 행복은 버리고 순종함으로 얻은 것입니다. 소유에 대한 집착으로부터 벗어나서 하나님이 주시는 행복을 누리기 위해서는 ①하나님의 주되심을 인정해야 합니다. 주신 자도 여호와시요. 거두어 가시는 분도 여호와이십니다. ②하나님께서 일으켜주심을 믿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죽은 자를 살리시고 나쁜 상태를 좋게 하시고 무에서 유를 창조하시는 분입니다. ③하나님께서 열어주시는 미래를 꿈꾸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저와 여러분들을 위해 아름답고 축복을 예비하고 계심을 믿음으로, 한나와 같은 행복을 누리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