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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사속의 명설교

    욥의 항변

    페이지 정보

    성경본문: 욥 1:1-22 | 설교자: 박유미

    본문

    욥의 이야기는 주일학교 때부터 많이 들어왔는데 주로 의로운 욥이 사탄 때문에 고난을 받지만 이를 잘 견디고 범죄 치 않아 나중에 배의 축복을 받는다는 내용이었다. 그러므로 욥기는 고난의 의미와 고난을 어떻게 견딜 것인가에 대한 교훈을 위한 성경으로 많이 인식이 되었다. 하지만 정작 욥기의 80%를 차지하는 욥과 친구들의 논쟁은 거의 설교되지 않고 무시되어 온 것이 현실이다.
    욥기는 장르상 내러티브가 아니라 시 형식의 지혜문학이다. 전체적으로 욥기의 구조를 보면 1-2장은 산문 형식의 서문이고 3-42:6은 시 형식의 대화로 본론에 해당된다. 그리고 42:7-17은 다시 산문형식으로 결어를 이룬다. 이런 전체적인 구도 속에서 보면 1-2장의 욥의 고난의 이야기는 3장 이하의 대화가 나오게 된 배경에 해당되는 부분으로 볼 수 있다. 즉, 1-2장의 욥의 고난에 대한 당시 사회의 신학이 3-42:6의 세 친구와의 대화 속에서 나오고 이에 대한 욥의 반박이 나오고 있다. 형식적으로 대화의 부분은 세 친구의 주장과 이들 각각에 대한 욥의 항변(엘리바스-욥, 빌닷-욥, 소발-욥)이 3번의 주기를 가지고 나타난다. 이런 대화의 형식은 지혜문학의 특징으로 논쟁을 통해 누가 더 지혜로운지 누구의 생각이 더 옳은지를 보여주는 것이다. 욥의 친구들은 같은 지혜문헌인 잠언에서 나타나는 것 같은 인과응보신학을 가지고 욥의 고난을 욥이 죄를 지었기 때문이라고 해석한다.
    이들은 죄를 지으면 벌을 받는다는 인과응보 사상을 반대의 경우에도 적용시켜 고난을 받는 것도 죄를 지었기 때문으로 애매히 고난을 받는 것은 있을 수 없다고 주장하며 욥의 회개를 촉구하다 못해 강요하고 있다. 예를 들어 엘리바스는 “생각하여 보라. 죄 없이 망한 자가 누구인가. 정직한 자의 끊어짐이 어디 있는가?(욥 4:7)”라고 한다. 이들의 논리나 신학만을 보면 전부 틀린 것은 아니다. 많은 인간의 고난은 죄로 인한 것이다. 그리고 신명기나 레위기의 율법에도 죄를 지으면 벌을 받는다고 가르치고 있다. 그리고 잠언은 이를 분명한 어조로 말하고 있다. 하지만 욥은 이런 신학에 대해 회의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그는 “하나님은 순전한 자나 악한 자나 멸망시키신다(욥 9:21-24)”라고 하면서 하나님이 이렇게 단순한 신학에 매이지 않는다고 강변한다. 그리고 그는 자신의 결백은 하나님께서 아시므로 하나님을 만나서 따지겠다고 말한다. “내가 하나님께 아뢰오리니 나를 정죄하지 마옵시고 무슨 연고로 나를 더불어 쟁변하시는지 나로 알게 하옵소서(욥 10:2)”, “주는 나를 부르소서 내가 대답하리이다 혹은 나로 말씀하게 하옵시고 주는 내게 대답하옵소서(욥 13:22)”
    결국 이들의 끊임없는 논쟁은 욥기의 마지막 부분인 38-42:6에서 하나님께서 친히 나타나심으로 끝을 맺게 된다. 하나님께서는 우선 욥에게 “너는 대장부처럼 허리를 묶고 내가 네게 묻는 것을 대답할찌라(욥 38:3;40:7)”라고 하시면서 욥이 그동안 하나님을 만나면 따지겠다는 것에 대해 자신의 질문부터 대답하라고 하신다. 먼저 “네가 내 심판을 폐하려고 스스로 의롭다 하려 나를 불의하다 하느냐(40:8)”하며 욥이 의로운 자나 불의한 자나 하나님께서 모두 망하게 하신다는 말을 꾸짖으신 후에 자연 만물의 근원과 동물의 습성을 말하시면서 네가 아느냐고 따지신다. 이에 대해 그동안 하나님을 만나면 자기의 의로움에 대해 따지겠다고 기세등등하던 욥은 이런 하나님의 질문에 유구무언이 되었다. 이런 하나님의 질문에 인간이 할 수 있는 대답은 오직 “모른다”는 것이기 때문이다. 드디어 여기서 참 지혜자가 누구인지 드러난다. 그것은 욥의 세 친구도 아니고 욥도 아닌 오직 하나님이신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 부분의 내러티브(욥 42:7-8)에서 하나님께서는 욥의 세 친구들에게 그들이 욥에게 한 말들이 옳지 못하다고 욥의 손을 들어 주셨다. 그리고 그는 그가 잃었던 모든 축복을 배로 받는 것으로 욥의 이야기는 끝을 맺는다.
    이런 욥기의 전체적인 그림 속에서 욥기 1-2장은 욥기 전체를 보는 아주 중요한 잣대를 준다.

    욥 1:1에서 나래이터는 욥이 의인이라고 밝히고 시작을 한다. “우스 땅에 욥이라 이름하는 사람이 있었는데 그 사람은 순전하고 정직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난 자니라”. 이 구절은 욥이라는 인물에 대한 총평이며 전제인 것이다. 2-5절까지는 욥이라는 등장인물에 대한 설명으로 특히 2-3절에서는 축복의 상징인 자손과 재물의 풍성함에 대해 자세히 묘사를 한다. 그리고 4-5절에서는 욥이 얼마나 경건한 자인지를 혹시 자녀들이 범죄하였을까봐 잔치 후에 제사를 지내는 예를 통해 보여준다. 이렇게 1-5절까지가 욥의 인물에 대한 묘사로 배경을 이룬다. 내러티브의 단계를 발단 전개 절정 결말로 나누었을 때 내러티브의 발단은 6절부터 시작이 된다. 장소는 천상의 하나님 보좌 혹은 어전으로 하나님께서 사단에게 “내종 욥을 유의하여 보았느냐 그와 같이 순전하고 정직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난 자가 세상에 없느니라(욥1:8)”라고 욥을 자랑하는데서 시작이 된다. 이런 하나님의 자랑에 대해 사단은 “욥이 까닭 없이 하나님을 경외하리이까?”하면서 하나님께서 그에게 많은 소유를 주셨기 때문이라고 딴지를 건다. 그래서 그 소유가 없어지면 욥이 하나님을 욕할 것이라 장담한다. 이런 사탄의 태도를 잠재우기 위해 하나님께서는 욥의 시험을 허락하신다. 얼핏 보면 하나님께서 사단의 도발에 넘어가 애지중지하는 욥에게 고통을 주게 된 것 같지만 그것은 표면적으로만 보았을 때이다. 사실 사단의 말에는 일반적인 진리가 담겨있다. 사람은 대부분 잘해주는 사람에게는 잘해주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모든 것이 풍요한 상태에서는 욥의 진가가 발휘될 수 없는 것이다. 사람은 역경 속에서 그의 진가가 발휘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그것을 아시고 사단에게 욥의 진가를 보여주고 싶으셨던 것이다. 모든 것을 아시는 하나님께서 욥이 사단의 시험을 능히 이기고 일반적인 진리를 뛰어넘는 인물임을 아셨고 그런 과정과 결과를 통해 사단의 입을 막으시고 또한 욥의 이름을 더욱 드높이고자 하신 것이다. 아버지가 자식의 성공을 위해 위험에 내보내신 것이다. 언제나 품에 끼고 있으면서 자식 자랑을 해봐야 아무도 인정을 안 하기 때문이다.
    전개에서는 이런 하늘에서의 하나님과 사단의 대결로 인해 지상에서 아무것도 모르고 있던 욥은 졸지에 자식과 모든 재물을 잃게 된다. 독자인 우리들은 왜 그런 일을 욥이 당했는지 알지만 욥은 정말 마른하늘의 날벼락을 맞은 것이다. 그러나 그런 상황 속에서 욥은 사단의 예상을 뒤엎고 하나님의 기대에 부응하는 반응을 보인다. “… 주신자도 여호와시료 취하신자도 여호와시오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찌니다.”
    이렇게 (해서 하나님과 사단의 대결 일회전은 하나님의 승리로 끝난다. 이것이 1장의 끝이다. 그러나 사단은 여기서 물러서지 않고 2장에서 재도전을 하는데 이번에는 좀더 강도를 높여 “사람이 그 모든 소유물을 자기의 생명으로 바꾸올찌라”라고 하면서 소유보다는 육체적 고통이 더 인간에게 치명적인 절망과 재앙이라는 일반적 진리를 말한다. 이것을 들으신 하나님께서는 그 일반적 진리도 욥은 능히 뛰어넘으리라고 생각하시고 사단의 도전에 응하신다. 그러나 그 결과도 하나님을 저주하라는 부인의 말도 욥은 뿌리치고 입술로 범죄치 않으므로 하나님의 승리로 끝난다.
    이런 두 번의 시험을 무사히 통과한 욥이지만 세 친구가 찾아와 논쟁을 하게 됨으로 이런 하나님의 행동에 대해 친구들과의 논쟁에 휩쓸리게 되고 서로 자기가 옳다고 주장하므로 시험이 계속되고 있다. 어찌보면 사단의 시험 보다 더 무서운 시험이다. 욥에게 재산과 건강은 외부적인 것으로 그의 신앙에 전혀 해를 줄 수 없는 것이지만 친구들이 욥을 죄인이라 칭하는 것에 대해서는 그는 절망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지금껏 그가 버텨온 근거는 아무리 고통을 당하더라도 하나님은 자신이 의롭다는 것을 알고 계시다는 사실로 여전히 자신은 하나님의 자녀라는 것이다. 그런데 친구의 말은 이런 근거마저 부수는 것이다. 이것이 욥의 최대 위기인 것이다. 그가 죄인이라면 그가 어디서 자신의 존재를 호소한다는 말인가? 그렇기에 욥은 필사적으로 자신의 의로움에 대해 항변하였다. 욥의 필사적이고 절망적인 모습이 그의 말속에 잘 나타나 있다. 이것이 절정에 해당하는 부분이다.
    그러므로 1-2장은 욥의 이야기의 발단과 전개에 해당하는 부분이고 욥의 고난의 절정은 친구들의 대화인 것이다. 이런 전체적인 그림 속에서 욥기를 해석할 때에 욥을 단순히 참혹한 고통 속에서도 인간적이지 않게 그 고통을 참아낸 인물이 아니라 그의 생일을 저주할 정도로 그의 고통에 대해 절규하며 애타게 자신을 도와주실 하나님을 찾고 자신을 찾아와 자신을 정죄하는 친구들에게  나를 더 괴롭게 하지 말라고 너희는 친구도 아니라고 외치는 인간적인 욥의 모습을 볼 수 있다. 또한 이런 욥에 대해 그다지 꾸짖지 않으시고 조용히 욥에게 인간의 지혜와 하나님의 지혜의 다름을 말씀하시고 그의 아픔을 치유해 주시는 하나님을 통해 우리는 위로를 받는 것이다. 그러므로 욥기의 고통의 신학의 정수는 논쟁 속에서 나타나는 욥의 말 속에 있음을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라 생각한다.

    총신대 대학원 구약학 Ph.D., Cand.

    *정필도 목사님*
    정필도 목사는 욥의 경건성에 초점을 맞추어 그가 물질적인 축복을 받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범죄치 않고 영적으로도 경건한 삶을 살았음을 강조했다. 목사님께서는 욥의 경건성에 대해 1장에 나온 자녀들을 위한 제사 이외에도 3장 이후의 욥의 말속에서 나오는 고아와 과부에 대한 대접과 가난한자에 대한 구제, 객을 위한 쉼터 제공 등을 언급하면서 욥의 경건성이 단순히 제사를 지내는 것과 같은 개인적인 측면뿐만이 아니라 공동체를 위해 사회적 책임을 성실하게 수행하였음을 지적했다. 그리고 욥의 이런 신앙을 본받기 위한 적용방법으로 날마다의 예배와 기도와 감사와 말씀 묵상을 강조했다.

    *은상기 목사님*
    은상기 목사는 고난의 비밀이란 제목으로 고난의 종류를 세 가지로 분류하고 그중에서 욥의 고난은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한 고난이라고 했다. 그는 욥1:21의 욥의 고백은 인간 본질의 진리와 하나님의 주권성과 욥 17:3에서는 하나님만이 모든 것을 알고 계신다는 것을 진리를 담고 있다고 했다. 결국은 인간은 약하고 죄가 있으므로 하나님께 나가려면 우리에게는 중보자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필요하다는 것을 역설하셨다. 그러므로 우리가 자신이 얼마나 죄인인가를 알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때 진정한 구원의 축복을 누릴 수 있다고 하셔서 욥의 고백 속에서 중보자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필요성을 발견했다.

    *조영호 목사님*
    조영호 목사는 고난은 죄인이나 의인이나 모든 사람에게 오는 보편적인 것이라고 전제하시고 욥도 나무랄 데 없는 사람이었지만 고난을 받았다고 했다. 그리고 고난 중에 욥이 찬송한 것을 예로 인간의 본연의 임무는 찬송이라 하시고 어떠한 경우에도 원망은 금물이라고 권면했다. 그리고 인간이 원망과 불평을 하게 되는 것은 은혜를 잊어버리기 때문이므로 하나님을 바로 만나 인간의 본연의 모습인 죄된 모습을 깨닫게 될 때 하나님의 은혜를 알게 된다고 하면서 고난은 인간의 본래의 모습을 깨닫게 해주어 하나님께로 나가는 길을 열어주는 것이라고 고난의 의미를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