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가지 부족한 것이 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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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누가복음 18:18-30 | 설교자: 오덕호
본문
여러분 중에 혹시 제가 누가복음에서 재물에 대한 교훈을 조금 공부한 적이 있다는 것을 아는 분들은 오늘 본문을 보면서 “아하 오목사가 경제불황 시대를 맞아서 재물 사용에 대한 설교를 하려고 하는 모양이구나.” 라고 생각하시나요? 사실, 오늘 본문은 재물에 대한 교훈을 주로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그러나 오늘 우리는 그 주제 말고 다른 주제를 잠깐 생각해보려고 합니다. 다시 말씀드립니다마는 오늘 본문의 주제는 재물 사용에 대한 교훈이고 탐욕에 대한 경고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것을 잠시 보류하고 본문이 암시하는 다른 교훈을 살펴보려고 합니다.
제가 호남신대에 부임한지 얼마 안 되어 2학년의 필수과목을 하나 맡았습니다. 그 해에 2학년들이 학교의 무슨 문제를 가지고 심각하게 항의를 하면서 예배실에서 금식을 하고 또 수업을 거부했습니다. 여러 날 동안 수업을 못하다가 결국 방학을 맞이했는데 기말고사는 과제물로 처리하기로 했습니다. 저는 수업을 거부했던 학생들이 제대로 공부하지 않고 학점을 취득한다는 것이 너무나 부당하게 느껴졌기 때문에 엄청난 양의 과제물을 내줬습니다.
나중에 학생들의 말에 의하면 ‘수업을 하고 시험을 봤으면 좋았을 걸 그랬다.’고 하면서 한마디로 죽을 뻔했다고 하더군요. 그 이후 저는 기피 인물이 되어서 저의 선택과목은 죽어도 안 듣기로 작심한 학생들이 많았다고 합니다. 여하튼 그 때 내준 과제물이 이런 거였습니다. 신약개론에서 약 논술형 문제로 정답을 다 기록할 경우 상당한 분량이 되는 35개의 문제를 내주고 그에 대한 답을 제출하라고 했는데 이런 조건을 붙였습니다. “한 문제라도 빼먹은 답안은 받지 않는다. 평가는 35 문제 중 가장 답이 소홀한 답안 3 개만 가지고 채점한다.”
짐작하시겠지만 2학년 필수과목이라 그 전에 학점을 취득하지 못한 재수강생들이 몇 명 있었는데 그 중에는 4학년 재수강생들도 있었습니다. 그 4학년 재수강생 중 하나가 과제물 마감 날이 며칠 지난 후 겨우겨우 과제물을 제출했습니다. 마감 날이 지나도 감점은 하지만 성적을 처리할 수만 있으면 과제물을 받습니다. 여하튼 과제물을 언뜻 보니까 꽤 많이 했더라구요. 그래서 별 생각 없이 수고했다고 하며 받았습니다.
그 학생이 나간 후 얼마 있다가 그 과제물을 훑어보는데 아주 많은 분량의 답을 요구하는 문제를 하나 빼먹었습디다. 제 판단에는 의도적인 것으로 보였습니다. 그래서 급히 찾아보려고 나갔는데 이미 사라진 뒤였고 그 후로 그 친구는 서울에 갔다는 소문만 들은 채 연락할 방법이 없었습니다. 4학년 재수강 생입니다. 학점을 주지 않으면 졸업을 못합니다. 분명히 한 문제라도 빼먹은 게 있으면 과제물을 안받겠다고 했고 그렇게 하면 학점이 안 나와서 이 학생을 졸업을 하지 못합니다. 차마 그렇게 못하고 60점을 줬습니다. 속으로는 ‘비겁한 사람’이라고 욕하면서 그랬습니다.
그 후 오래지 않아서 우리 학교 교수님 한 분이 그 학생이 봉사하는 교회를 방문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학생을 그렇게 칭찬하는 겁니다. 얼마나 헌신적으로 교회의 장애인들을 봉사하는지 모른다구요. 말할 수 없이 희생적으로 봉사한다는 거예요. 저는 머리가 헷갈리기 시작했습니다. 비겁하게 남을 속이는 신학생과 장애인들을 헌신적으로 돌보는 전도사님.
그러나 이제는 그런 것이 거의 상식이 되었습니다. 최근에도 두 명의 신학생이 그와 비슷한 것을 보여줬습니다. 부정행위를 해서 학점을 못 받았습니다. 만나서 얘기를 하면서도 그가 양심적이라는 인상을 별로 못 받았습니다. 그러나 한 1년이 지난 후에 그 학생을 가장 헌신적인 전도사인 듯이 말하는 학생들을 봤습니다. 또 다른 학생은 아주 불성실한 학생이었습니다. 그러나 우연히 그 학생이 교육전도사로 섬기는 교회의 담임목사님을 만났다가 혼란을 겪었습니다. 그 담임목사님은 그 학생이 아주 성실하다고 칭찬하는 겁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고민을 할 때가 많습니다. “나는 사람들의 잘못된 모습만 보는 사람이 아닐까?” 주위의 많은 사람들은 그런 부족한 점에 별로 신경을 쓰지 않고 그 사람의 좋은 점을 보면서 좋아하고 칭찬하며 잘 지내는 데 말입니다. 여러분 생각은 어떻습니까? 어느 한 곳에 아주 부도덕한 부분이 있어도 다른 곳에서 성실하고 헌신적이면 괜찮은 건가요? 목회자가 열심히 기도하고 심방하고 교인들을 잘 보살피면 다른 잘못은 다 면제되는 건가요?
저는 지금 한 번 실수한 사람들을 말하는 게 아닙니다. 실수를 했어도 고치려고 하는 학생들도 많이 있습니다. 저도 그런 학생들은 실수가 없었던 학생보다 더 아끼고 사랑하는 마음으로 대합니다. 제가 말씀드리는 것은 그런 일은 별 잘못도 아니고 별로 중요한 일도 아니라고 생각하며 비윤리적인 행동을 서슴없이 하는 사람들에 대한 말입니다. 그런데도 그 사람들이 교회 일은 열심히 하고 또 유능하게 잘하면 괜찮은 겁니까? 여러분 의견은 어떻습니까? 자, 예수님은 그런 모습에 대해서 뭐라고 하시겠습니까?
한 부자 관원이 예수님께 와서 물었습니다. “어떻게 해야 영생을 얻겠습니까?” 예수님은 계명을 지키라고 하셨습니다. 이 관원은 기다렸다는 듯이 대답했습니다. “그런 계명들은 내가 어려서부터 다 지켰습니다.” 그러자 예수님이 다시 말씀하셨습니다. “네게 오히려 한 가지 부족한 것이 있다. 네 소유를 다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나눠주라. 그리하면 하늘에서 보화가 네게 있을 것이다. 그리고 나를 좇으라.”
여기서 하늘에서 보화가 있다는 말씀은 재물을 다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나눠주지 않으면 천국에는 가는데 보화는 얻지 못하고, 재물을 나눠주면 천국에도 가고 보화도 얻는다는 뜻이 아닙니다. 아예 천국에 못 간다는 뜻입니다. 본문을 보십시오. 예수님이 그 관원에게 한 가지 부족한 점이 있다고 하였지요? 무엇을 하는 데 부족하다는 겁니까? 영생을 얻는 데 부족하다는 말씀 아닙니까? 그리고 그 사람이 근심하자 부자는 천국에 가기 어렵다고도 말씀하시지 않습니까? 지금 예수님은 천국에 가느냐 못 가느냐의 문제를 가르쳐주시는 것입니다.
이 부자 관원은 어떤 사람입니까? 어려서부터 계명을 다 지킨 사람입니다. 칭찬할 게 얼마나 많은 사람입니까? 예수님 말씀대로 한 가지만 부족한 사람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어떻게 그 한 가지 부족한 것을 가지고 걸고 넘어지느냐 이거예요. 그보다 훨씬 더 많은 죄를 지은 사람들. 아니 아예 율법이라고는 지키지도 않은 사람들까지 다 용서하시는 주님이 왜 이 사람에게는 그 한 가지 부족한 것을 따지시는 겁니까?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예수님이 지금 은혜를 구하는 자는 다 용서하시고 무슨 죄를 지어도 구원하시지만, 자기 힘으로 구원 얻으려고 하는 자에게는 악착같이 어려운 계명을 주어서 구원 못 받는다는 것을 보여주시는 겁니까? 아니면, 구원의 자리로 인도하실 때에는 아무나 들어오게 하시지만 일단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야 하는 사명에 대해 말씀하실 때는 아주 엄격하게 말씀하시는 겁니까?
여러분, 예수님은 이런 분입니다. 용서하실 때는 무슨 죄도 차별 없이 용서하십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뜻을 가르쳐주실 때는 가장 엄격하고 완벽한 것을 가르쳐주시는 것입니다. 산상설교가 이것을 보여줍니다. 여러분, 그래서 주님이 우리에게 주님의 뜻대로 살라고 하신다면 그것은 모든 면에서 하나님의 뜻대로 살기 위해 최선을 다하라는 뜻입니다. 물론 우리는 그렇게 못하지요.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전적으로 세상의 가장 더러운 죄인처럼 하나님께 엎드려 자비를 구해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 저 못했습니다. 하려고 했지만 못했습니다. 자비를 베푸시고 용서해 주시기를 바랄 뿐입니다.” 그러면 사랑의 주님은 모든 것을 완전하게 용서해 주십니다. 그러나 그 후에 주님은 우리에게 또 다시 기대하시며 말씀하십니다. “얘야, 이제 일어나서 최선을 다해 걸어라. 빛 안에서 말이야.”
여러분, 한 가지는 확실히 압시다. 우리가 주님으로부터 용서받는 것은 철저한 회개와 주님의 절대적인 은혜로 받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것은 절대로 아닙니다. 내가 잘한 게 좀 있어서 잘못한 것과 상쇄되어 용서받는 게 아닙니다. 만일 그런 식이라면 예수 안 믿는 사람들 중에 우리보다 더 먼저 천국 갈 사람이 수두룩할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은혜로 용서받습니다. 그게 무슨 뜻입니까? 우리가 죄인인 것을 고백함으로써 용서받는다는 뜻입니다. 만일 “내가 선행한 게 많이 있으니까 잘못 좀 한 것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지 않습니까?”라고 말한다면 그 사람은 주님의 은혜도 십자가도 회개도 믿음도 용서도 모르는 사람입니다. 만일 우리가 교회에서 성실히 봉사하기 때문에 약간의 불의한 생활은 그냥 넘어갈 수 있는 것이라고 믿는다면 그게 믿음입니까? 그것이야말로 자기의 선행과 업적을 믿는 것 아닙니까?
저는 지금 우리가 모든 삶에서 바르게 살아야 한다는 말씀을 강하게 전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이것이 율법적입니까? 제가 바르게 살아야 한다고 전하는 것은 주님이 구원받은 우리에게 그것을 원하신다고 전하는 겁니다. 그것이 우리의 지향해야할 삶의 모습이라고 전하는 겁니다. 심지어 그래야 구원받는다고 전합니다. 그러나 주님의 은혜 없이 그런 삶을 통해 구원받는다는 뜻은 아닙니다. 그렇게 못살면 “나는 죽었다.”하고 부끄러워하며 회개하고 또 힘 얻어서 그렇게 살려고 노력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주님의 은혜만 의지하여 내 모든 죄를 내어놓고, 은혜 얻으면 내 삶의 모든 분야에서 바르게 살려고 노력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게 자신의 업적을 의지하는 겁니까, 아니면 내가 잘하는 부분이 있으니까 이런 것은 좀 못해도 괜찮다고 하는 것이 자기의 업적을 의지하는 겁니까?
여러분, 주님은 우리의 수많은 죄를 용서하십니다. 한 가지 죄만이 아니라 만 가지 죄도 다 용서하십니다. 그러나 용서하신 주님은 우리에게 하나님의 자녀다운 삶을 요구하십니다. 우리가 수천 가지의 계명을 완벽하게 지켜도 주님은 우리에게 “얘, 다 좋은데 너 이게 부족하구나. 이것도 해야 되는 거야.”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다른 것을 잘했다고 우리는 바른 삶을 살아야 하는 의무에서 일점일획이라도 면제되지 않습니다. 나병환자의 손발이 되어서 수고를 했어도 주님은 우리에게 “너, 정직해야 돼!”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수 만 명의 영혼에게 복음을 전하고 그들을 생명의 길로 인도해도 주님은 우리에게 “너, 방탕한 말을 하면 안돼!”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 중에 아무도 완전한 사람은 없습니다. 아니 형편없는 죄인들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은혜가 없으면 다 쓰레기 같은 존재들입니다. 아무도 이 시간 다른 사람을 정죄할 수 없습니다. 제가 이 말씀을 전하는 것도 특정한 부분에서 잘못을 저지르는 사람들을 정죄하자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다 부족한 사람입니다. 우리가 이 시간 간절히 생각하려고 하는 것은 우리가 뭔가 잘하는 게 있어서 잘못하는 부분에서도 떳떳한 그런 가장 바리새인적인 생각에서 벗어나자는 것입니다. 자, 남을 보지 말고 내게 부족한 것이 무엇인지 생각해 봅시다. 오늘 본문은 부자가 천국에 들어가기 어렵다고 합니다마는 성경이 우리에게 부자만 천국에 들어가기 어렵다고 합니까? 성경은 우리에게 가르쳐 주십니다. 요한계시록 21장 8절과 21장 27절은 행음하는 자들과 거짓말하는 자들은 천국에 들어가지 못한다고 합니다. 갈라디아서 5장 16-21절은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같이 읽어 봅시다.
“내가 이르노니 너희는 성령을 좇아 행하라. 그리하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하리라. 육체의 소욕은 성령을 거스리고 성령의 소욕은 육체를 거스리나니 이 둘이 서로 대적함으로 너희의 원하는 것을 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라. 너희가 만일 성령의 인도하시는 바가 되면 율법 아래 있지 아니하리라. 육체의 일은 현저하니 곧 음행과 더러운 것과 호색과 우상 숭배와 술수와 원수를 맺는 것과 분쟁과 시기와 분냄과 당 짓는 것과 분리함과 이단과 투기와 술 취함과 방탕함과 또 그와 같은 것들이라. 전에 너희에게 경계한 것 같이 경계하노니 이런 일을 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것이요.”
만일 내가 “주님, 저 밤잠을 자지 않고 교회를 섬겼습니다.”라고 한다면 주님은 뭐라고 하시겠습니까? “잘했다. 그렇지만, 네게 한 가지 부족한 것이 있구나. 거짓말을 하지 말아라. 거짓말하는 자가 천국에 가는 것은 코끼리가 하늘을 나는 것보다 더 어려운거야” “주님, 저는 정직하고도 성실하게 살았습니다.” “그래, 그렇지만 네게도 한 가지 부족한 것이 있구나. 왜 그 사람과는 원수같이 지내니? 마음에 남을 미워하는 자가 천국에 가는 것은 해가 서쪽에서 뜨는 것보다도 어려운거야.”
여러분, 주님은 우리를 위해서 고난을 받으셨습니다. 그 은혜로 우리는 구원받습니다. 모든 죄를 다 용서받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이것을 꼭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의 죄는 그것이 어떠한 죄이든지 오직 주님의 은혜로만 용서받는다는 것입니다. 내가 무엇을 했다고 다른 허물이 가려지는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를 용서하신 주님은 우리에게 바른 삶을 살라고 명령하십니다. 자, 여러분 우리에게 부족한 것이 있으면 주님 앞에서 마음을 찢으며 용서를 구합시다. 제발 나는 공로가 있으니 괜찮을 거라고 생각하지 맙시다. 그리고 그 부족한 것을 고치기 원하시는 주님의 심정을 좀 생각합시다. 주님은 십자가에서 고통당하시는 그런 고통으로 우리가 그런 악을 벗어버리기를 기다리고 계실 것입니다. 우리의 악한 행실을 고치기 위해 애를 씁시다. 주님이 정말 기뻐하실 것입니다. 그리고 고칠 수 있도록 도와주실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를 귀하게 써 주실 것입니다.
호남신학대학교 경건회[학부신학과, 신대원], 1998. 3. 10
전 호남신대 교수, 광주서석교회 담임목사
제가 호남신대에 부임한지 얼마 안 되어 2학년의 필수과목을 하나 맡았습니다. 그 해에 2학년들이 학교의 무슨 문제를 가지고 심각하게 항의를 하면서 예배실에서 금식을 하고 또 수업을 거부했습니다. 여러 날 동안 수업을 못하다가 결국 방학을 맞이했는데 기말고사는 과제물로 처리하기로 했습니다. 저는 수업을 거부했던 학생들이 제대로 공부하지 않고 학점을 취득한다는 것이 너무나 부당하게 느껴졌기 때문에 엄청난 양의 과제물을 내줬습니다.
나중에 학생들의 말에 의하면 ‘수업을 하고 시험을 봤으면 좋았을 걸 그랬다.’고 하면서 한마디로 죽을 뻔했다고 하더군요. 그 이후 저는 기피 인물이 되어서 저의 선택과목은 죽어도 안 듣기로 작심한 학생들이 많았다고 합니다. 여하튼 그 때 내준 과제물이 이런 거였습니다. 신약개론에서 약 논술형 문제로 정답을 다 기록할 경우 상당한 분량이 되는 35개의 문제를 내주고 그에 대한 답을 제출하라고 했는데 이런 조건을 붙였습니다. “한 문제라도 빼먹은 답안은 받지 않는다. 평가는 35 문제 중 가장 답이 소홀한 답안 3 개만 가지고 채점한다.”
짐작하시겠지만 2학년 필수과목이라 그 전에 학점을 취득하지 못한 재수강생들이 몇 명 있었는데 그 중에는 4학년 재수강생들도 있었습니다. 그 4학년 재수강생 중 하나가 과제물 마감 날이 며칠 지난 후 겨우겨우 과제물을 제출했습니다. 마감 날이 지나도 감점은 하지만 성적을 처리할 수만 있으면 과제물을 받습니다. 여하튼 과제물을 언뜻 보니까 꽤 많이 했더라구요. 그래서 별 생각 없이 수고했다고 하며 받았습니다.
그 학생이 나간 후 얼마 있다가 그 과제물을 훑어보는데 아주 많은 분량의 답을 요구하는 문제를 하나 빼먹었습디다. 제 판단에는 의도적인 것으로 보였습니다. 그래서 급히 찾아보려고 나갔는데 이미 사라진 뒤였고 그 후로 그 친구는 서울에 갔다는 소문만 들은 채 연락할 방법이 없었습니다. 4학년 재수강 생입니다. 학점을 주지 않으면 졸업을 못합니다. 분명히 한 문제라도 빼먹은 게 있으면 과제물을 안받겠다고 했고 그렇게 하면 학점이 안 나와서 이 학생을 졸업을 하지 못합니다. 차마 그렇게 못하고 60점을 줬습니다. 속으로는 ‘비겁한 사람’이라고 욕하면서 그랬습니다.
그 후 오래지 않아서 우리 학교 교수님 한 분이 그 학생이 봉사하는 교회를 방문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학생을 그렇게 칭찬하는 겁니다. 얼마나 헌신적으로 교회의 장애인들을 봉사하는지 모른다구요. 말할 수 없이 희생적으로 봉사한다는 거예요. 저는 머리가 헷갈리기 시작했습니다. 비겁하게 남을 속이는 신학생과 장애인들을 헌신적으로 돌보는 전도사님.
그러나 이제는 그런 것이 거의 상식이 되었습니다. 최근에도 두 명의 신학생이 그와 비슷한 것을 보여줬습니다. 부정행위를 해서 학점을 못 받았습니다. 만나서 얘기를 하면서도 그가 양심적이라는 인상을 별로 못 받았습니다. 그러나 한 1년이 지난 후에 그 학생을 가장 헌신적인 전도사인 듯이 말하는 학생들을 봤습니다. 또 다른 학생은 아주 불성실한 학생이었습니다. 그러나 우연히 그 학생이 교육전도사로 섬기는 교회의 담임목사님을 만났다가 혼란을 겪었습니다. 그 담임목사님은 그 학생이 아주 성실하다고 칭찬하는 겁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고민을 할 때가 많습니다. “나는 사람들의 잘못된 모습만 보는 사람이 아닐까?” 주위의 많은 사람들은 그런 부족한 점에 별로 신경을 쓰지 않고 그 사람의 좋은 점을 보면서 좋아하고 칭찬하며 잘 지내는 데 말입니다. 여러분 생각은 어떻습니까? 어느 한 곳에 아주 부도덕한 부분이 있어도 다른 곳에서 성실하고 헌신적이면 괜찮은 건가요? 목회자가 열심히 기도하고 심방하고 교인들을 잘 보살피면 다른 잘못은 다 면제되는 건가요?
저는 지금 한 번 실수한 사람들을 말하는 게 아닙니다. 실수를 했어도 고치려고 하는 학생들도 많이 있습니다. 저도 그런 학생들은 실수가 없었던 학생보다 더 아끼고 사랑하는 마음으로 대합니다. 제가 말씀드리는 것은 그런 일은 별 잘못도 아니고 별로 중요한 일도 아니라고 생각하며 비윤리적인 행동을 서슴없이 하는 사람들에 대한 말입니다. 그런데도 그 사람들이 교회 일은 열심히 하고 또 유능하게 잘하면 괜찮은 겁니까? 여러분 의견은 어떻습니까? 자, 예수님은 그런 모습에 대해서 뭐라고 하시겠습니까?
한 부자 관원이 예수님께 와서 물었습니다. “어떻게 해야 영생을 얻겠습니까?” 예수님은 계명을 지키라고 하셨습니다. 이 관원은 기다렸다는 듯이 대답했습니다. “그런 계명들은 내가 어려서부터 다 지켰습니다.” 그러자 예수님이 다시 말씀하셨습니다. “네게 오히려 한 가지 부족한 것이 있다. 네 소유를 다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나눠주라. 그리하면 하늘에서 보화가 네게 있을 것이다. 그리고 나를 좇으라.”
여기서 하늘에서 보화가 있다는 말씀은 재물을 다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나눠주지 않으면 천국에는 가는데 보화는 얻지 못하고, 재물을 나눠주면 천국에도 가고 보화도 얻는다는 뜻이 아닙니다. 아예 천국에 못 간다는 뜻입니다. 본문을 보십시오. 예수님이 그 관원에게 한 가지 부족한 점이 있다고 하였지요? 무엇을 하는 데 부족하다는 겁니까? 영생을 얻는 데 부족하다는 말씀 아닙니까? 그리고 그 사람이 근심하자 부자는 천국에 가기 어렵다고도 말씀하시지 않습니까? 지금 예수님은 천국에 가느냐 못 가느냐의 문제를 가르쳐주시는 것입니다.
이 부자 관원은 어떤 사람입니까? 어려서부터 계명을 다 지킨 사람입니다. 칭찬할 게 얼마나 많은 사람입니까? 예수님 말씀대로 한 가지만 부족한 사람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어떻게 그 한 가지 부족한 것을 가지고 걸고 넘어지느냐 이거예요. 그보다 훨씬 더 많은 죄를 지은 사람들. 아니 아예 율법이라고는 지키지도 않은 사람들까지 다 용서하시는 주님이 왜 이 사람에게는 그 한 가지 부족한 것을 따지시는 겁니까?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예수님이 지금 은혜를 구하는 자는 다 용서하시고 무슨 죄를 지어도 구원하시지만, 자기 힘으로 구원 얻으려고 하는 자에게는 악착같이 어려운 계명을 주어서 구원 못 받는다는 것을 보여주시는 겁니까? 아니면, 구원의 자리로 인도하실 때에는 아무나 들어오게 하시지만 일단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야 하는 사명에 대해 말씀하실 때는 아주 엄격하게 말씀하시는 겁니까?
여러분, 예수님은 이런 분입니다. 용서하실 때는 무슨 죄도 차별 없이 용서하십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뜻을 가르쳐주실 때는 가장 엄격하고 완벽한 것을 가르쳐주시는 것입니다. 산상설교가 이것을 보여줍니다. 여러분, 그래서 주님이 우리에게 주님의 뜻대로 살라고 하신다면 그것은 모든 면에서 하나님의 뜻대로 살기 위해 최선을 다하라는 뜻입니다. 물론 우리는 그렇게 못하지요.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전적으로 세상의 가장 더러운 죄인처럼 하나님께 엎드려 자비를 구해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 저 못했습니다. 하려고 했지만 못했습니다. 자비를 베푸시고 용서해 주시기를 바랄 뿐입니다.” 그러면 사랑의 주님은 모든 것을 완전하게 용서해 주십니다. 그러나 그 후에 주님은 우리에게 또 다시 기대하시며 말씀하십니다. “얘야, 이제 일어나서 최선을 다해 걸어라. 빛 안에서 말이야.”
여러분, 한 가지는 확실히 압시다. 우리가 주님으로부터 용서받는 것은 철저한 회개와 주님의 절대적인 은혜로 받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것은 절대로 아닙니다. 내가 잘한 게 좀 있어서 잘못한 것과 상쇄되어 용서받는 게 아닙니다. 만일 그런 식이라면 예수 안 믿는 사람들 중에 우리보다 더 먼저 천국 갈 사람이 수두룩할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은혜로 용서받습니다. 그게 무슨 뜻입니까? 우리가 죄인인 것을 고백함으로써 용서받는다는 뜻입니다. 만일 “내가 선행한 게 많이 있으니까 잘못 좀 한 것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지 않습니까?”라고 말한다면 그 사람은 주님의 은혜도 십자가도 회개도 믿음도 용서도 모르는 사람입니다. 만일 우리가 교회에서 성실히 봉사하기 때문에 약간의 불의한 생활은 그냥 넘어갈 수 있는 것이라고 믿는다면 그게 믿음입니까? 그것이야말로 자기의 선행과 업적을 믿는 것 아닙니까?
저는 지금 우리가 모든 삶에서 바르게 살아야 한다는 말씀을 강하게 전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이것이 율법적입니까? 제가 바르게 살아야 한다고 전하는 것은 주님이 구원받은 우리에게 그것을 원하신다고 전하는 겁니다. 그것이 우리의 지향해야할 삶의 모습이라고 전하는 겁니다. 심지어 그래야 구원받는다고 전합니다. 그러나 주님의 은혜 없이 그런 삶을 통해 구원받는다는 뜻은 아닙니다. 그렇게 못살면 “나는 죽었다.”하고 부끄러워하며 회개하고 또 힘 얻어서 그렇게 살려고 노력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주님의 은혜만 의지하여 내 모든 죄를 내어놓고, 은혜 얻으면 내 삶의 모든 분야에서 바르게 살려고 노력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게 자신의 업적을 의지하는 겁니까, 아니면 내가 잘하는 부분이 있으니까 이런 것은 좀 못해도 괜찮다고 하는 것이 자기의 업적을 의지하는 겁니까?
여러분, 주님은 우리의 수많은 죄를 용서하십니다. 한 가지 죄만이 아니라 만 가지 죄도 다 용서하십니다. 그러나 용서하신 주님은 우리에게 하나님의 자녀다운 삶을 요구하십니다. 우리가 수천 가지의 계명을 완벽하게 지켜도 주님은 우리에게 “얘, 다 좋은데 너 이게 부족하구나. 이것도 해야 되는 거야.”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다른 것을 잘했다고 우리는 바른 삶을 살아야 하는 의무에서 일점일획이라도 면제되지 않습니다. 나병환자의 손발이 되어서 수고를 했어도 주님은 우리에게 “너, 정직해야 돼!”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수 만 명의 영혼에게 복음을 전하고 그들을 생명의 길로 인도해도 주님은 우리에게 “너, 방탕한 말을 하면 안돼!”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 중에 아무도 완전한 사람은 없습니다. 아니 형편없는 죄인들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은혜가 없으면 다 쓰레기 같은 존재들입니다. 아무도 이 시간 다른 사람을 정죄할 수 없습니다. 제가 이 말씀을 전하는 것도 특정한 부분에서 잘못을 저지르는 사람들을 정죄하자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다 부족한 사람입니다. 우리가 이 시간 간절히 생각하려고 하는 것은 우리가 뭔가 잘하는 게 있어서 잘못하는 부분에서도 떳떳한 그런 가장 바리새인적인 생각에서 벗어나자는 것입니다. 자, 남을 보지 말고 내게 부족한 것이 무엇인지 생각해 봅시다. 오늘 본문은 부자가 천국에 들어가기 어렵다고 합니다마는 성경이 우리에게 부자만 천국에 들어가기 어렵다고 합니까? 성경은 우리에게 가르쳐 주십니다. 요한계시록 21장 8절과 21장 27절은 행음하는 자들과 거짓말하는 자들은 천국에 들어가지 못한다고 합니다. 갈라디아서 5장 16-21절은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같이 읽어 봅시다.
“내가 이르노니 너희는 성령을 좇아 행하라. 그리하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하리라. 육체의 소욕은 성령을 거스리고 성령의 소욕은 육체를 거스리나니 이 둘이 서로 대적함으로 너희의 원하는 것을 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라. 너희가 만일 성령의 인도하시는 바가 되면 율법 아래 있지 아니하리라. 육체의 일은 현저하니 곧 음행과 더러운 것과 호색과 우상 숭배와 술수와 원수를 맺는 것과 분쟁과 시기와 분냄과 당 짓는 것과 분리함과 이단과 투기와 술 취함과 방탕함과 또 그와 같은 것들이라. 전에 너희에게 경계한 것 같이 경계하노니 이런 일을 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것이요.”
만일 내가 “주님, 저 밤잠을 자지 않고 교회를 섬겼습니다.”라고 한다면 주님은 뭐라고 하시겠습니까? “잘했다. 그렇지만, 네게 한 가지 부족한 것이 있구나. 거짓말을 하지 말아라. 거짓말하는 자가 천국에 가는 것은 코끼리가 하늘을 나는 것보다 더 어려운거야” “주님, 저는 정직하고도 성실하게 살았습니다.” “그래, 그렇지만 네게도 한 가지 부족한 것이 있구나. 왜 그 사람과는 원수같이 지내니? 마음에 남을 미워하는 자가 천국에 가는 것은 해가 서쪽에서 뜨는 것보다도 어려운거야.”
여러분, 주님은 우리를 위해서 고난을 받으셨습니다. 그 은혜로 우리는 구원받습니다. 모든 죄를 다 용서받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이것을 꼭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의 죄는 그것이 어떠한 죄이든지 오직 주님의 은혜로만 용서받는다는 것입니다. 내가 무엇을 했다고 다른 허물이 가려지는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를 용서하신 주님은 우리에게 바른 삶을 살라고 명령하십니다. 자, 여러분 우리에게 부족한 것이 있으면 주님 앞에서 마음을 찢으며 용서를 구합시다. 제발 나는 공로가 있으니 괜찮을 거라고 생각하지 맙시다. 그리고 그 부족한 것을 고치기 원하시는 주님의 심정을 좀 생각합시다. 주님은 십자가에서 고통당하시는 그런 고통으로 우리가 그런 악을 벗어버리기를 기다리고 계실 것입니다. 우리의 악한 행실을 고치기 위해 애를 씁시다. 주님이 정말 기뻐하실 것입니다. 그리고 고칠 수 있도록 도와주실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를 귀하게 써 주실 것입니다.
호남신학대학교 경건회[학부신학과, 신대원], 1998. 3. 10
전 호남신대 교수, 광주서석교회 담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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