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고

한국신학정보연구원
로그인 회원가입
  • 색인초록 DB
  • 역사속의 명설교
  • 색인초록 DB

    역사속의 명설교

    다메섹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페이지 정보

    성경본문: 행 9:1-9 | 설교자: 고훈

    본문

    바울이 예수 믿기 전에는 전통 유대교의 지도자입니다.
    종교, 심한 말로 골수분자 중의 하나였습니다. 그 날도 대제사장으로부터 공문을 받아가지고 예수믿는 사람은 누구든지 현장에서 체포해서 끌고 올 수 있는 체포 영장을 발급받아가지고, 지금 시리아의 다마스커스라고 하는 도시인 다메섹으로 예수 믿는 사람 체포하러 가는 길이었습니다.
    갑자기 이상한 빛이 딱 비치더니 거기서 바울이 그 빛을 보고 거꾸러 지고, 삼일 동안 소경이 되어 볼 수 없게 되고 “당신이 누구십니까” 그랬더니 “나는 네가 핍박하는 예수다 어째서 나를 핍박하느냐 다메섹으로 들어가면 내가 보낸 선지자가 가서 너에게 안수해 줄텐데 그때 네가 그 선지자로부터 무엇 무엇을 해야하는지 들을 것이다.”라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그래서 사실은 예수 믿는 사람을 다 잡아 죽이려고 가는데, 그 길에서 180도로 자기 인생이 전환되어서 예수님을 가장 사랑하는 복음 전도자요, 사랑의 선교사가 된 사건이 바로 이 다메섹 사건입니다. 바울이라는 한 인간을 운명적으로 우리와 연결 시켜서 “바울이 그랬으니까 우리도 그랬다” 이렇게 말할 수는 없어요. 각 사람의 인생이 따로 있으니까, 바울의 인생이 따로 있고, 우리의 인생이 따로 있고, 각 사람의 인생이 따로 있으니까 그렇게 바로 적용시키기는 힘듭니다.
    그러나 한 가지 원리적으로 똑같은 것은 하나님은 바울에게 다메섹에게 역사했던 것같이 우리에게 역사하신다는 점입니다.
    다메섹에서 바울을 만나 역사했던 하나님이 어떤 하나님이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면, 우리 인생도 다메섹에서와 같이 잘 바꾸어진 인생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바울의 하나님은 어떤 하나님입니까?

    첫째, 계획을 가지고 계신 하나님이시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주 만물을 창조하시고 그대로 내버려 두신 것이 아니라, 모든 것이 손바닥 속에서 마음속에서 다 계획을 가지고 계십니다. 온 우주를 비추어주는 저 태양은 5천억 개나 되는 엄청난 행성 중의 하나라는 이야기이고 우리가 보는 은하수는 수 천억 개중의 하나라는 이야기입니다.
    많은 행성들이 움직이고 수, 금, 지, 화, 목, 토, 천, 해, 명이 움직이고 이런 크다고 말하는 별들이 다 자전을 하고 공전을 하고 태양을 향해서 돌고 스스로 돌고 하는 말하자면 떠돌이 별인데 이 행성들이 부딪히면 이 지구는 박살난다는 겁니다.
    근데 그것이 부딪치지 않게 계획하시고 조절하시는 이 하나님을 가르쳐 크신 하나님이라고 합니다. 마태복음 12장 9절에서 “장터에서 참새 두 마리가 한 앗사리온 조그만 동전 한 푼에 팔려 나간다. 하나님 허락이 없이는 그것이 안된다. 참새 새끼 두 마리도 하나님 허락 없이는 팔려 나가지 않는다. 하나님은 그렇게 세심하게 살펴보신다. 우리 뇌세포나 모든 이 직조된 것을 다 조직하고 조절하고 그 하나님은 세밀하신 하나님이다.”라고 말씀하십니다.
    보십시오. 주님께서 \이 사람은 내 이름을 이방인과 임금들과 이스라엘 자손들 앞에 전하기 위하여 택한 나의 그릇이라 \고 말씀하십니다.
    사도 바울을 보고 하나님이 뭐라고 말씀하시냐 하면 바울을 거꾸러 뜨려서 3일동안 소경을 만들어 놓고, 말을 해서 다 조치를 3일 동안 하신 후에 자기가 지금 까지 얼마나 잘못인 것을 예수를 핍박한 것이 얼마나 잘못이었는가를 알았을 때 하나님이 “그는 나의 택한 그릇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참 재미있는 것은 \He is the chosen instrument of mine.\ 라는 말의 뜻입니다.
    이것은 “그는 선택된, 과거에 선택해 놓은 내 그릇이다.”라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놀라운 사실은 “선택은 과거에 했지만 과거부터, 지금까지 그 곁에 있었다. 그는 현존하는 현재 있는 내 그릇이다. 과거에도 내 그릇이고 현재에도 내그릇이고 앞으로도 내 그릇이다.”라는 의미를 담고 있는 것입니다.
    바울은 모르고 하나님을 반대하는 일을 했습니다. 유대교에서 공부하고 예수 잡아죽이는 일 하고 스데반을 죽이는 데 가표를 던졌습니다. “네가 그런 일을 해도 나는 언제나 네 곁에 있었다.” 하나님은 그렇게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우리 이야기를 한번 해봅시다.
    제 이야기를 하겠습니다. 저는 초등학교 다닐 때는 절에 가서 참선을 계속했어요. 그런데 초등학교 때도 내 마음에 만족이 없어서 아무리 부처 얼굴을 쳐다 보아도 저것이 무얼 줄 것 같지가 않았습니다. 중고등학교 다닐 때에는 통일교에도 데리고 가고, 전도관에도 데리고 가서 소위 이단으로 데려가서 거기서 아무리 사랑을 베풀고 교리를 가르쳐도 이게 말장난이었습니다. 다행스럽게 제가 빠지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나 기독교에 입문했을 때 제가 기독교에 심취해서 목사까지 되었습니다.
    하나님이 그 때에도 저와 함께 하셨습니다. 20살 예수를 믿기 전에도 하나님이 같이 있었습니다.
    바울과 같이 하나님이 “너는 내가 목사로서 너를 선택해 놨고 네 곁에 있었다”고 하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저를 선택하셨으니까 제가 이단에도 안 빠지고, 불교에도 안 빠지고 예수님에게 딱 빠지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부르실 때에는 그 계획을 가르쳐 주세요. 마스터 플랜이라고 하지요. 엄청난 계획! 계획을 가르쳐 줄 때 어떻게 가르쳐 주냐 하면은 “아브라함아, 너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라 그러면 너 큰 민족을 이루게 하고 네 이름을 창대케 하고 복의 근원이 되게 해 주겠다. 너 축복하는 사람은 축복하고 너를 저주하는 사람은 저주하게 해주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렇게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계획을 알고 가는 거예요. 하나님의 말씀을 듣기만 하면, 모든 민족 위에 뛰어난 민족을 이루게 해주고, 이름도 빛나게 해 줄 것이고, 복의 근원이 되게 해 줄 것이라고 알고 가는 것입니다.
    그런데 같은 시대 사람이라고 말하는 욥은 전혀 몰랐어요. 왜 내 자식이 10명이나 횡사를 당하게 되고 왜 재산을 다 잃어야 되는지 왜 내가 이 무서운 병을 내가 앓아야 되는지 왜 아내가 미쳐서 가출하고 하나님을 저주하고 떠나가야 하는지, 담즙이 쏟아져 나와서 견딜 수 없어서 얼굴이 누렇게 뜨는 고통과 구더기가 살을 파먹는 고통의 이유를 모른다고 했어요. 욥기에서는 “그러나 나의 가는 길을 그가 아신다. 나를 단련시킨 후에는 정금같이 나오리라.”고 욥은 고백합니다.
    아브라함은 알고 갔지만 욥은 모르고 갔습니다. “이 고통 속에 하나님의 놀라운 계획이 있다 말이야. 하나님의 놀라운 역사가 여기 있다.” 그것을 믿고 갔어요. 오늘날 우리는 알고도 가고 믿고도 갑니다. 아브라함을 적용해보면 알고도 가고 욥을 적용해 보면 믿고도 가는 거예요.
    사랑하는 여러분, 어떤 일을 당해도 실망과 좌절 속에서 낙심하지 마십시요. 큰 믿음은 무엇이며, 작은 믿음은 무엇이며 죽은 믿음은 무엇입니까? 큰 믿음은 나하고 하나님하고 모든 관계가 가까워요. 하나님의 모든 계획 속에 내 계획 속에 들어있다는 것, 이것이 큰 믿음이고. 작은 믿음은 “하나님이 멀리 있는 것 같애. 아이고, 나 이렇게 아픈 거 알기가 알겠는지. 하나님이 알면 우리 아들 죽을 때 내버려 두었어.” 이것이 작은 믿음입니다.
    죽은 믿음은 “나와 하나님의 관계가 싹 끊어졌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중요한 것이 하나 있습니다. “택자불멸”이란 말입니다. 택한 사람은 절대로 멸망하지 않는다는, 우리가 아무리 작은 사건 속에 있고, 수 천 억 인간 속에 있다고 할지라도 하나님은 하나님 자신을 위해서 나에 대한 계획을 다 자기 손바닥에 가지고 계세요.
    제가 아픈 동안에 번지 점프를 생각해 보았습니다.
    300미터 높은 곳에서 두 사람이 떨어집니다. 한 사람은 떨어지자 마자 바위에 부딪쳐 온 몸이 박살났습니다. 안 믿는 사람은 이렇게 되는 것입니다. 한 사람은 바위에 거의 3미터 가까이 떨어졌는데 다시 그냥 올라갔습니다. 왜냐하면 밧줄을 몸에 묶어 놓았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바로 번지 점프입니다.
    우리에게는 생명의 하나님의 밧줄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반석이시요, 요새시요, 나의 신입니다. 그러나 가장 좋은 것은 하나님이 “나의 생명”이라는 겁니다.
    우리가 아무리 어려움 속에 빠져도 다 욥과 같이 죽을 때까지 내려갈지라도 마지막에는 솟아오른다는 것입니다.
    이사야 49장 15-16절에 보면 “어떻게 어머니가 자식을 잃겠느냐, 혹시 어미는 그 자식을 잃을 지라도 하나님은 잃어버리지 않으신다”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손바닥에 새겨 놓으셨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모든 사건과 이름과 모든 것을 다 새기셨으니, 하나님의 손바닥이 얼마나 크시냐는 것입니다. 어떤 좌절과 어려운 상황에서도 낙심하지 마십시오.
    패밀리(family)라는 말이 있어요. 식구라는 이야기입니다. 우리는 왕같은 제사장입니다.
    제가 우리 딸 아이를 막 때렸어요. 도망가면서 “아빠는 나를 사랑안해 미워해!” 이렇게 말을 했습니다. 제 딸아이는 저의 패밀리입니다. 핏줄이요 태어나기 전부터 내 사랑을 받고 세상에 나올 때부터 저의 사랑을 받았습니다.
    늘 딸아이 곁에 제가 있었고 배설물을 쏟을 때도, 엄마의 젖가슴을 물어 뜯을 때도, 부모의 속을 썪일 때도 딸아이는 저의 사랑을 받고 있었습니다.  
    지금 한 가지 사건만 놓고 “아버지는 나를 떄렸어!”라고 말을 하는 것이 너무하지만 딸아이가 저의 핏줄입니다.
    지금 우리가 당하는 고통이 아무리 힘들어도 이 사건만 놓고 보지 마세요. 하나님이 엄청난 계획으로 인도해주실 줄 믿습니다. 우리는 “하나님 패밀리”예요. 제사장입니다.

    두 번째, 하나님은 계획만 갖고 계시는 분이 아니라 그것을 추진하시는 하나님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인도하실 때 조용한 방법과 급한 방법을 사용하십니다. 조용히 방법은 오이가 자라는 것과 같습니다. 자고 일어나면 조금씩 조금씩 오이가 자라 있습니다.
    호박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은 시편 121편 3절과 4절에서 “내가 산을 향하여 눈을 들리라 나의 도움이 어디서 올꼬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에게서로다.”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위하여 일을 하십니다.  우리가 힘들고 어려워 할때  살아계신 하나님, 계획을 가지고 계신 하나님은 어떤 일을 우리를 위해 추진해 주십니다.  
    시편 127장 2절을 보면 “사랑하는 자에게 잠을 주시는도다.”는 부분이 나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엄마는 다 잘 알고 있습니다. 애기가 자꾸 울면 성가셔서 엄마가 일을 못합니다. 그래서 아기들이 칭얼거리지 않도록 배불리 먹입니다. 아기들은 배 부르면 잠을 잡니다.
    아기가 잠자면 그 때 걸레도 빨고 우유병도 소독하고 청소도 합니다.
    여러분은 몰라도 여러분이 잠자는 사이에 하나님께서 일을 하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렇게 말씀하시는 분도 있습니다.
    “너무 복잡하면 집에가서 밥 먹고 주무십시오. 그렇게 하고 나면 무슨 일이 생깁니다.” 하나님은 그 때 일하십니다. 하나님께서 하시는 것이지 우리가 하는 것이 아닙니다.
    3절에 보면 “사울이 행하여 다메섹 가까이 가더니 홀연히 하늘로부터 빛이 저를 둘러 비추는지라 사울아 사울아 어찌하여 네가 나를 핍박하느냐”고 합니다.  
    여러분 생각해 보세요, 사람이 여럿이 같이 믿는 사람 잡아 죽이려고 가는데 다른 사람들은 빛도 못 봤고 소리도 못 들었고 사건도 모릅니다. “사울아 사울아 어찌하여 나를 핍박하느냐!” 이 소리를 들은 사람은 사울밖에 없어요.
    빛이 비추는데 똑같이 광선이 비추는데 다른 사람들은 아무런 상관이 없어요. 바울만 넘어졌습니다. 털썩 넘어지면서 눈이 캄캄해지고 아무 것도 볼 수 없었습니다.
    바울에게 쿠데타, 영적인 쿠데타가 일어난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변화시키고 새롭게 하실 때 이런 쿠데타가 일어납니다. 이런 경험이 얼마나 많은 지 모릅니다.
    전에 우리 교인들 중에 한 명의 남편이 예수를 믿는 데 핍박을 아주 심하게 했습니다. 눈오는 날 술 먹고 집에 오다가 눈 속에 빠져서 머리가 눈 속으로 들어가고 다리가 하늘을 향해 올라갔던 적이 있었습니다.
    그 사람에게는 혁명적인 사건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강하게, 급하게 역사하셨습니다.
    하나님을 위해서 그 다음에 우리 자신을 위해서 추진하시는 계획은 이와 같습니다. 마태복음 21장 44절에 “주님은 자기 자신을 돌이키라”고 했어요. “이 돌이 사람 위에 떨어지면 깨어지겠고... 사람이 돌위에 돌이 사람위에 떨어지면 가루를 만들어 흩어버리겠다.” 만일 하나님이 우리에게 가지신 계획을 실행하시는데 가로막는 것이 있습니다.
    홍해가 가로 막는다 그러면 홍해를 확 부셔버릴 것입니다. 요새 광고 중에 물을 확 끼얹으면서 “부셔버릴꺼야!”고 외치는 광고가 있습니다.
    하나님께 반대하면 하나님이 확 부셔 버리십니다.  이스라엘 백성을 막고 있던 여리고 성을 넘어뜨리셨습니다. 골리앗도 죽였습니다. 바울 속에 여리고도 있었고 바울 속에 홍해도 들어 있었고 바울 속에 요단강도 들어 있었습니다.
    로마서 11장 33-34절에 \깊도다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의 부요함이여, 그의 판단은 측량치 못할것이며 그의 길은 찾지 못할 것이로다 누가 주의 마음을 알았느뇨 누가 그의 모사가 되었느뇨\라는 부분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이삭의 말년에 이삭의 눈을 흐리게 합니다. 바울의 눈도 하나님께서 흐리게 하셨습니다.
    만일 이삭의 눈이 밝았으면 큰 아들 에서를 축복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에서가 아닌 야곱을 축복하실 계획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 계획을 이루기 위해서는 이삭의 눈도 찔러서 시각 장애인이 되게 하세요.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보면 놀라운 것이 많습니다.
    우리 교인 중에 한 명이 말기 암 환자로 고대 병원에 입원해 있어요. 딸이 저를 찾아와서 “목사님, 우리 아버지가 새아버지인데, 어머니가 재혼 한지 1년 밖에 안되었는데, 어머니도 불쌍하고 아버지도 불쌍합니다. 목사님께서 심방와 주십시오.” 저에게 부탁을 했습니다.
    제가 그 병으로 고생했는데 거절을 하겠습니가? 제가 심방을 갔습니다. 심방을 갔습니다. 66세된 어르신인데 그 앞에서 제가 설교를 못하겠더라구요.
    “목사님, 괜잖아요. 길병원에서 췌장암 말기라고 수술을 못하겠다고 했습니다. 뼈까지 암세포가 퍼졌다고 해요. 괜잖습니다. 이제 하나님 앞에 가야죠.”
    제가 말문이 막혔습니다. “당신은 하나님 나라 가겠지만 이제 재혼한지 얼마 안된 가족들은 어떻게 하려고 그러느냐?”고 물었어요.
    “이 가족들은 걱정 없어요. 저는 하나님 나라 가고 남은 사람은 하나님 섬기면 됩니다.
    의사들이 항암치료 받으라 하는데 무슨 소용 있겠어요? 죽도록 고생만 하는 거지...”
    “66살이면 아직 살날이 많은데, 아무래도 희망이 있는데 그렇게 하나님 나라가 좋소?”
    “목사님, 작년 아프실 적에 설교하셨잖아요? 품위 있게 죽으라고...왕같은 제사장이니까...왕처럼 죽어야지, 어떻게 품위 없게 죽겠어요?”
    이 분은 제가 할 설교를 혼자서 다 해버리셨습니다.
    맞습니다. 우리는 품위 있게 죽어야 합니다. 우리가 다 왕같은 제사장 아닙니까? 왕이니 곱게 죽어야 하고 품위 있게 죽어야 하는 것입니다.
    죽음이 왔을 때, 임종이 왔을 때, 하나님의 백성의 임종은 바로 개선장군의 개선식같아야 하합니다.
    “ 그래, 이제 하나님 앞에 영광스럽게 가야지. 내 평생 소원 이것뿐. 주의 일 하다가 이 세상 이별하는날 주 앞에 가리라. ”
    여러분 이런 신앙 고백을 아무나 할 것 같습니까? 하나님은 이 보잘 것 없는 종 하나를 암의 구렁텅이 속에서 쓰러 뜨리려 하고 그것을 통해 우리 성도로 하여금 죽음을 두렵지 않게 하는 용기와 희망과 생명을 주는 설교 재료로 썼다면 나는 얼마나 감사하고 기쁩니까. 그러나 다시 아프고 싶지는 않아요. 정말로 이것이 하나님이 하시는 일이에요. 만약 우리 중에 하나님은 축복만 가지고 역사한다고 하면 반쪽 그리스도인이에요, 고난만 가지고 역사한다고 해도 반쪽 그리스도인이예요. 하나님은 축복을 가지고 역사하시기도 하고 고난을 가지고 역사하시기도 합니다.
    그렇게 하나님은 계획하시고 계획하신 일을 추진하십니다.
    세번째로, 하나님은 성취하시는 하나님입니다. 보십시오. 들어보시라 이 말입니다. 18절에 보면 “아나니아 선지자가 와서 바울에게 안수하고 그의 눈에서 비늘같은 것이 벗어지고” 그가 아라비아 광야에서 3년 동안 훈련받아 대사랑의 사도가 됩니다.
    빌립보서 1장 6절은 “너희 속에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예수의 날가지 이루실 줄을 확신하노라.”, 데살로니가 전서 5장 24절에서 “너희를 부르신 이는 미쁘시니 능히 이루어 주시리라.”고 나와 있습니다.
    하나님은 미쁘십니다. 믿음직하시다는 말입니다.
    시편의 유명한 기도 중 시편  57편 2절에 \내가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께 부르짖음이여 곧 나를 위하여 모든 것을 이루시는 하나님께로다\가 있습니다.
    나를 위하여 모든 것을 이루어주시는 하나님이기 때문에 내가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입니다.
    세무사라고요? 세무사 직업이 괜찮죠. 변호사 세무사 거의 같은 등급을 가진 경제력을 가진 직업에 속합니다. 그런데 요새는 세무사 일감이 많지 않아요.
    그런데 회사에서 일감이 하나 들어왔습니다. 세무사 집사님이 일감을 보니까 건축자재 같은 것을 하는 회사에서 의뢰한 것인데 이 회사에서 탈세를 많이 했어요. 그것이 발각되면 금방 회사는 부도가 나고 말 상황이예요.
    그래서 집사님이 난처해 졌습니다. 도저히 어떻게 할 수가 없었어요. 이미 불법을 저지르고 어렵게 되어 그걸 어떻게 못하는 지경입니다.
    그쪽 사장이  “어떻게 길을 찾아보자.”고 합니다. 지금까지 경영이 어려워 세금을 못냈는데 이제 감사원 감사를 받게 된 것입니다. 감사를 받으면 이제 끝나는 겁니다.
    회사가 무슨 힘이 있겠어요. 감사하는 분이 왔는데 마침 공무원이 와서 감사를 할 준비를 하다가 나중에 하자고 하고 왔어요. 그런데 공무원이 봉투를 하나 놔두고 갔습니다,
    어느 회사를 감사한 서류였던 것입니다.
    그것을 잃어버리면 그 공무원은 해고되게 됩니다. 그런데 이 세무사 집사님이 양심으로 전화를 했습니다. “이렇게 중요한 서류를 놔두고 가면 어떻게 하느냐?”
    “아니, 거기다 놓고 갔습니까? 제가 정신이 없어서 그랬습니다. 한번 만나 뵙죠.”
    그래서 만났습니다.
    “세상에 이게 유출되면 나 이거 목이 날라가게 되었는데 당신은 얼마든지 나쁜 일에 써먹을 수 있었을텐데 어떻게 나한테 돌려줄 수 있었습니까?” 공무원이 질문을 던졌습니다.
    “나, 예수믿는 사람입니다. 그 회사를 살릴 방법이 없을까요?”
    그래서 이 회사는 살게 되었고 회사 사장은 세무사 집사님에게 소원이 무엇이냐?고 묻더랍니다. 그래서 “이 도시에 100평 정도 되는 땅에 교회를 세우는 것이 꿈입니다.”
    그랬더니 그 사장이 “나는 천주교 교인이지만 기초하고 골재는 우리한테 다 있으니, 그렇게 합시다. 이것은 당신한테 뇌물주는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성전 짓는 데 보태겠다 이겁니다.”
    골재까지 끝났다고 그 세무사 부인이 며칠 전 와서 간증을 했습니다.
    이 집사님이 개척교회하는 분들 중에 1천만원 헌금했던 분이에요. 하나님이 골조, 건축비 3-40%되는 것을 해결했다는 것입니다. 서류를 잃어버린 사건은 하나의 해프닝입니다. 그렇지만 중요한 것은 하나님께서 1-200평 땅에 하나님의 성전을 짓겠다는 그 계획을 보시고 성취하고 완성하는데, 공무원에게 정신 망각증을 주셔서라도 하나님이 역사하신다는 것이 두려운 일인 것입니다. 감사 서류를 본 것이 잘한 일이냐? 못한 일이냐?를 이야기하려는 것이 아니라 \Attmpt great things for God, expect the great from God.\를 이야기 하려는 것입니다. 오늘 왜 이렇게 문자를 써서 이야기하는가 하면은 너는 하나님을 위해 큰 일을 해봐라 그리고 하나님에게서 큰 것을 기대해 봐라 이말입니다. 기다려보라 이 말입니다, 시도해보고. 우리가 하나님을 위해 큰 계획을 가지면, 이루시는 분은 하나님이시라 이 말입니다..

    안산제일교회 담임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