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사람을 취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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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눅 5:1-11 | 설교자: 박은조
본문
9월에 연평도 근방에서 우리 남북의 해국이 충돌하는 아주 큰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우리 해군 함정 한 척이 북한 해군의 폭격을 받고 침몰되었고 네 명이 전사를 했고, 한 명이 실종이 됐고, 분당통합병원으로 옮겨와져 있는 수 십명의 부상자들 중에도 지금 두 명이 위독하다는 뉴스를 아마 여러분도 다 들으셨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월드컵의 분위기가 체 가시기도 전에 정신 바짝 차리고 우리가 얼마나 복잡하고 위험한 삶의 현장에 있는가를 다시 한 번 깨우치시면서 기도하라고 요청하시는 것 같습니다.
9월의 연평도에는 꽃게잡이가 한창이라고 합니다. 연평도에서 남북의 해군이 충돌했다는 기사를 보면서 제 마음에 아픔과 함께 그런 기사가 제 마음에 크게 느껴졌습니다. 꽃게잡이를 가야하는데 비상사태 때문에 모든 어선들이 묶여 있어야만 했습니다.
연평도 어민들이 별로 잘 사는 사람들 아닌 것 우리가 잘 압니다. 도시의 중산층과 비교하면 형편 없는 수준으로 사는 분들이 그 곳 어민들입니다. 저번에 일어났던 비상사태 때문에 꽃게잡이를 나가지 못해서 이 사람들에게 생기는 손실이 얼마냐고 보도가 되고 있느냐?하면 한 8,000만원 내지 9,000만원 정도의 손실이 있을 것이라고 그렇게 보도가 나와 있었습니다. 저는 그것 보면서 내가 동그라미를 잘못 헤아렸나 하고 다시 한 번 헤아려 봤습니다. 800만원이 아니고 정확하게 8,000만원, 9,000만원 손실이 있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이 땅에서 아주 평범하게 살고 있는 어민들의 가정에 8, 9천만원의 수입이 들어와야 한해 살림이 꾸려지고 아이들 등록금도 내고 생계도 꾸려갈 것이라고 생각했던 어민들이 8,000만원 이상의 돈이 들어오지 않으면 얼마나 그 사람들이 고통을 받게 될 것인지 우리가 충분히 짐작이 됩니다.
우리는 단순히 전쟁 소식에 좀 놀랬지만 연평도 어부들은 아마 더 힘이 빠져 있을 것입니다. 당장 먹고 사는 문제가 큰 문제이고 엄청난 돈의 손실을 눈 앞에 두고 고통 속에 있을 것이 틀림 없습니다. 오늘 본문 2절에도 보면 힘이 다 빠져 있는 어부들의 모습을 성경이 우리에게 묘사하고 있습니다. 게네사렛이라고 하는 곳은 갈릴리 호수의 또 다른 이름입니다. 이 갈릴리 호수가에서 밤새도록 고기잡이에 나섰던 시몬 베드로와 몇 몇 어부들이 밤새 아무 것도 잡지 못했습니다. 그리고는 그 다음날 아침에 피곤한 몸으로 긴 그물을 정리해서 올려 놓고 집으로 가서 발을 죽 뻗고 한 잠 자야되겠다…그런 마음으로 예수님을 만났다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그런데 아무 것도 잡지 못해서 기운이 죽 빠져있는 이 사람들의 모습을 보여주면서 오늘 본문 10절에는 이 사람들의 전혀 다른 모습을 또 한가지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것은 주님께서 묘사하고 있는 모습입니다.
힘이 빠져 있는 이 사람들이 앞으로 사람을 취하는 자가 될 것이라는 그런 그림입니다. 지금 이 사람들은 사람을 취하는데는 아무 관심이 없습니다. 이 사람들은 그저 하루 고기잡이나 잘해서 식구들 배나 곯지 않게 먹고 살면 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 정도 이상의 꿈을 가지지 않은 사람들이 바로 시몬 베드로, 안드레, 야고보, 요한이었습니다.
이 사람들은 구국의 일념을 가지고 “나라를 위해서 뭘 한 번 해보겠다!”는 뜻을 품고 살아가는 그런 수준의 지성인들도 아니었습니다.
그저 아주 평범한 저 변두리에 있는 갈릴리 땅에서 ‘가족들 배나 고프지 않게 하고 살았으면….’ 그런 소망을 가지고 살아가던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주님께서는 하루 고기잡이에 실패를 하고 힘이 빠져 있는 이 사람들을 그 모습과는 너무도 동 떨어져 있는 사람들에게 “사람을 취하는 자가 되게 하겠다. 사람을 행복하게 만드는 자가 되게 하겠다. 사람을 복되게 하는 자가 되게 하겠다.”고 말씀하십니다.
이런 놀라운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참 어울릴 것 같지 않은 그런 그림입니다. 여러분도 그런 생각들을 자주 해보지 않습니까? 내 연약함을 생각할 때 이런 저런 것 때문에 마음 상해 있는 나의 부족함과 어리석음과 죄악됨을 생각할 때 주님께서 말씀하시는 모든 족속으로 제자 삼는 사람, 사람들에게 예수를 전해서 그들을 행복하게 해주는 사람, 그런 모습과 나의 지금 모습과는 너무 동떨어져 있어서 우리가 얼마나 절망을 느끼고 얼마나 마음 속에 깊은 아픔을 느껴왔습니까? 그러나 주님께서는 오늘 이 두 모습을 선명하게 대조해서 보여주시면서 우리에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사람들이 실제로 그 길을 걸어갔다는 것입니다. 누가복음은 예수님께서 “너희로 사람을 취하는 자가 되게 하리라.”
그렇게 말씀하신 다음에 수 십년이 지난 후에 기록된 책입니다. 이 사람들이 실제로 그런 사람들이 된 것입니다. 그리고 바로 이 사람들 중의 한 사람의 제자였던 누가가, 그들의 모습을 다 지켜본 사람이 이 사건을 이렇게 기록하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안고 있는 여러 가지 문제와 어려움과 난관을 생각하면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람을 취하는 자가 되게 하고 사람을 복되게 하는 자가 되게 하고 이 세상을 밝은 세상으로 만드는 자가 되게 하겠다.”고 약속하고 계신 이 그림을 우리가 생각하면서 오늘 본문에서 주님께서 주신 몇 가지 교훈을 우리가 나누고자 합니다.
먼저 우리가 생각할 것은 사람을 얻는 자야 말로 이 세상에서 가장 귀하고 값진 것을 얻는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 사실에 동의하실 수 있습니까? 여러분 우리가 무엇을 위해서 지금까지 열심히 살아 왔습니까? 우리 대부분이 다 비슷할 겁니다. 가만히 돌이켜 보면 10대 때는 가장 큰 관심 중의 하나가 성적이 아니었던가 생각해 봅니다.
한국에는 공부를 못하면 사람을 바보로 취급을 하니까 공부 못하는 사람 설자리가 너무 없으니까, 부모도 악을 쓰고 공부 잘해야 된다고 아이들을 짓누르고 그 틈새에 껴서 10대 때는 얼마나 힘든 세월을 보내는지 모릅니다. 그래도 세월은 지나가기 때문에 좋은 대학에 가든지 못가든지, 대학 진학에 실패를 했든 성공을 했든, 20대에 접어들게 되면 짝을 찾아야 됩니다. 직장도 구해야 합니다. 그리고 나이를 조금씩 조금씩 먹어가면서 달라지는 게 별로 없습니다.
여전히 무겁고 힘든 과제들이 우리 앞에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래도 좋아하는 사람하고 결혼하면 인생에 핑크빛이 가득할 것 같았는데 그것도 그렇지 않다는 것을 곧 발견하게 됩니다. 그렇게 좋아하던 사람하고 물고, 뜯고, 싸우는 게 부부 간이라는 것을 곧 발견하게 됩니다. “그렇게 좋아했던 사람이 꼴 보기 싫은 사람이 되기도 하는 게 부부 간이요 그래서 갈라서면 남이구나, 원수가 부부구나!” 그렇게 말했던 앞서 살았던 분들의 말들에 우리는 고개를 끄덕이게 됩니다. 집도 한 칸 장만해야 되고 또 아이도 나아야 되고 이 아이가 건강하게 잘 자라는 것도 지켜보아야 합니다. 승진도 해야 합니다. 그러다 보니까 머리는 빠지고 살은 자꾸 찌고 건강도 젊은 시절에 공짜로 얻은 건강인가 했는데 건강에 조금씩 조금씩 문제가 생기고 가까운 친구가 암에 걸렸다는 소식을 듣게 되고…. 이렇게 나이를 먹으면서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무엇을 얻기 위해서 오늘까지 그렇게 애를 써 왔습니까? 그리고 그 얻은 것에 얼마나 만족하고 계십니까? 우리가 그렇게 애써서 움켜쥔 것들, 별로 힘을 안 들이고 움켜쥔 것들, 부모님이 그냥 물려준 것들이 있습니다. 애를 별로 쓰지 않았는데 그냥 사업이 잘 되는 분도 있습니다.
세상이 공평하지 않은 건지, 하나님이 공평하시지 않은 건지 고민에 빠뜨리는 일도 우리가 많이 보고 삽니다.
여러분! 우리가 움켜쥐고 있는 그것들이 우리를 얼마나 의미 있게 만들어 줍니까? 얼마나 우리를 행복하게 만들어 줍니까? 여러분 호숫가에 그물을 씻고 있는 이 사람들이 허탈해 할 이유가 없는데도 허탈해 한다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만일 이 사람들이 하루 고기잡이를 실패했고 하루 고기잡이 실패한 것만 회복되어서 행복하다면 우리 주님께서 고기나 더 잡게 해 주면 됐지 고달픈 길을 따라 나서라고 하셨겠습니까?
여러분 인생의 문제가 고기만 좀 많이 잡으면 해결이 되고, 그저 삶만 좀 형통하면 해결이 되고 부부 간의 왠만한 갈등만 극복하면 해결이 되는 그런 문제가 아니라는 데 우리의 고민이 있습니다.
제가 얼마 전에 이어령 교수를 비디오를 통해서 만났습니다.
어떤 교회에서 그분이 예수를 믿는 걸 알고 이분에게 부탁을 해서 성도들에게 보여주려고 비디오 테잎을 만든 비디오 테잎이었습니다.
이화여대 교수였고 우리 지성사회의 가장 대표적인 분이 어어령 교수라는 데 다 동의하실 것입니다.
문화부 장관을 지냈고 한 때 “문학사상”이라는 잡지를 만들어 한국 최고의 잡지로 한 때 만들기도 했습니다. 저도 20대 때부터 그분의 글을 좋아해서 한 때는 그분의 책이면 뭐든지 닥치는대로 읽기도 했습니다. 한 가지 그분에 대해 제가 부정적으로 가졌던 생각은 그 책 제목은 지금 잊어버렸지만 “저 물레에도 운명의 실”이라는 책이었는지 정확하지 않지만 이 책에서 이 분이 성경을 인용을 해서 써 놨는데 너무 성경을 엉터리로, 자기 마음대로, 자기가 해석하고 싶은대로 해 놓아서 당황했던 적이 있습니다.
‘이렇게 똑똑한 사람도 성경은 이렇게 마음대로 써 놓았구나.’고 생각했지만 그 분에 대해서는 좋은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분이 70이 넘어서 예수를 만난겁니다. 이어령 교수가 50대 때 인생의 위기를 만났습니다. 그 50대가 자기 인생의 황금기였다는 것입니다. 나이 50이 넘어섰을 때 이어령 이름만 대면 대한민국에 자기를 모르는 사람이 없고, 자기가 낸 책들은 다 베스트셀러가 됐고, 자기가 심혈을 기울여서 만든 문학사상이란 잡지는 한국 최고의 월간 문학 잡지가 됐고 그분이 표현은 안했지만 그분이 베스트셀러를 그렇게 많이 양산을 했는데 인쇄 수입은 또 얼마나 짭잘했겠습니까? 아마 물질적으로도 그분이 상당한 수준에 이르렀을 것입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에 자기가 가지고 있는 모든 것들이 너무 의미가 없다고 느껴지는데 죽겠더라는 것입니다. 자기가 내뱉은 말들 자기가 썼던 글들 하나 하나가 너무 의미 없는 것들이라고 느껴지고 그 고통 속에서 죽음까지도 생각을 했다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이 자기에게 말하기를 그런 위기의 순간을 넘어설 수 있는 방편이 있다고 했습니다. 골프를 배우라고 해서 열심히 골프를 배웠답니다. 그래서 이분이 골프를 치면서 그 문제에서 어느 정도 벗어날 수 있었는데 ‘70이 넘어서 예수를 만나고 보니까 내가 그 때 예수를 만나고 골프를 치지 않았으면 20년을 더 방황하지는 않았을 것이다.’고 말을 하는 것입니다. 그 말을 듣는 순간에 얼마나 마음에 감격이 되었는지 모릅니다. 일흔이 넘은 분이 전도 받아서 그렇게 말하는 것은 참 쉽지 않습니다. 더군다나 그 똑똑한 분이, 여러분 똑똑한 사람들은 자아가 얼마나 강한지 모릅니다. 그 분 입에서 그런 간증을 들을 것이라고 저는 상상도 못했습니다. 참 감격적이었습니다. 그분이 또 이렇게도 말했습니다. 자기가 최근에 오랫동안 집필을 하고 있지 않다는 것입니다.
집필을 안 하는 이유는 자기가 쓰고 뱉은 그 수많은 말들이 쓰레기 같은 말들이라는 것입니다. 그분이 표현은 그렇게 하지 않았지만 자기 자신도 자기의 삶에 목표도 제대로 정하지 못하고 자기 삶에 좌표가 없는 사람인데 누구를 향해서 무슨 말을 하랴?는 생각이 들어서 글을 쓸 수가 없었다는 것입니다. 저는 그분 이름으로 된 글이 요즘 나오지 않아서 왜 그런가 생각은 했는데 그 분 마음 속에 그런 깊은 전투가 있었던 것입니다. 제가 그 말을 들으면서 그런 기도를 시작했습니다. “이제는 하나님이 이어령씨가 글을 쓰게 해 주십시오. 자신이 만난 예수 그리스도 자신의 삶을 의미 있게 만든 예수 그리스도가 어떤 분인지를 그 분이 만약 글을 쓰기 시작한다면 우리 한국에 많은 사람들이 그로 말미암아 주님 앞으로 돌아오는 역사가 있을 것입니다.”
그런 희망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여러분 사람은 참 묘한 존재입니다. 여러분 사람은 원숭이하고 비슷한 그런 존재가 아닙니다. 사람은 물질 덩어리가 아닙니다. 사람은 돈 있으면 행복하게 살 수 있는 그런 종류의 짐승과 같은 동물 수준의 존재가 아닙니다. 사람을 만들 때 하나님은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만들었습니다. 하나님의 성품을 우리 속에 심어주셨습니다. 그래서 인간은 하나님의 성품이 우리 속에 회복이 되고 그 하나님과 서로 교제하고 하나가 되는 이런 연합이 없으면 인간은 아무리 굉장한 것들을 움켜쥐고 있어도 절대 행복할 수 없는 것이 인간인 것을 저는 이 이어령씨의 고백을 통해서 다시 한 번 생생하게 느낄 수 있었습니다.
가끔씩 저는 그런 의문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예술하는 사람들이나 아주 뛰어난 사람들이 자기가 숭배하는 가치를 하나님처럼 생각하고 사는 사람들, 대표적인 인물들이 예술인들이요, 간디 같은 분들 아니겠습니까? 그분들이 자기가 최고의 가치라고 생각하는 것들을 가지고 행복하게 사는 게 아닐까, 그렇게 살다가 가는 사람도 있겠구나.’ 그런 생각을 참 많이 했습니다. 그런데 간디라고 하는 분, 인도의 영혼이라고 불리웠던 그 위대한 한 인간도 죽음을 눈 앞에 둔 70이 넘은 나이에서 자기 삶의 무의미함 때문에 고통했던 것을 그의 전기에서 읽고는 소스라치게 놀란 적이 있습니다. 인간이라고 하는 것이 얼마나 오묘한 존재인지 모릅니다.
호숫가에서 그물을 씻으면서 허탈해 하는 인생, 그것은 소유가 적어서가 아닙니다. 내가 허탈한 것은 짝이 없기 때문이고, 집이 제대로 없기 때문이고….
아닙니다 여러분! 그렇게 생각하고 있으면 우리는 인생의 문제를 해결할 길이 없습니다. 우리 삶의 문제를 하나님이 보여주시는대로 정확하게 보아야 하는 것입니다. 호숫가에서 그물을 씻고 있으면서 허탈해 하는 그 인간의 모습은 다른 이유 때문이 아니고 예수의 생명을 소유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 자신이 하나님의 사람으로, 하나님의 것으로 부름 받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아니, 자기 자신이 자기 운명은 내 것이라고 움켜 쥐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들이 하나님이 주인이라고 자신의 삶을 내놓을 때 놀라운 일이 벌어질 것을 지금 주님이 말씀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우리들은 명확하게 하나님께서 세 번의 순종을 요구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첫 번째 순종은 3절에서 시몬 베드로의 배를 예수님의 설교를 위해서 내어 놓으라고 하셨습니다. 거기에 베드로가 순종했습니다. 그리고 4절에서는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내리고 고기를 잡으라는 주님의 말씀 앞에 순종하는 베드로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세 번째 순종은 10절에 있는 대로 사람을 취하는 자로 남은 생을 살아라 주님이 그렇게 말씀하셨을 때 모든 것을 버려두고 따라가는 그런 순종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여러분 이 세 가지 순종이 우리에게 주는 의미가 무엇입니까? 베드로가 가지고 있던 배. 그게 배건, 물질이건, 건강이건, 사회적인 지위이건 무엇이건 간에 우리에게 주어진 것들이 내 것이 아니고 주님 것임을 다시 한 번 고백할 수 있겠습니까? 그래서 주인이신 그분의 뜻을 위하여 쓰여져야 할 것을 진심으로 고백할 수가 있겠습니까? 만약 우리가 그 말씀 앞에 순종하겠다고 고백한다면 우리도 첫 번째 순종은 잘 통과한 사람입니다. 마음으로 순종하기로 결정하지 않으면 삶에서 순종하는 건 불가능합니다. 우선은 생각을 바꾸는 것이 중요합니다. 마음을 바꾸는 것이 중요합니다. 내가 주인이라고 생각했던 사람이 내가 주인이 아니고 하나님이 주인이고 예수 그리스도가 내 삶에 주인이심을 생각을 바꾸면서 고백하는 것이 첫 번째 순종인 것입니다. 두 번째 순종은 무엇입니까? 우리가 마음으로 고백할 뿐 아니라 실제로 우리가 깊은 데로 그물을 던지는 실천 우리 삶의 현장에서의 순종이 중요한 것입니다. 여러분 이런 순종을 해보려고 하면 이게 참 간단치가 않습니다. 여러 가지 장애물이 우리 앞에 있는 것을 경험하게 됩니다. 우선 자신의 판단이 옳은 것처럼 느껴질 때가 참 많습니다. 하나님께서 내가 하자는 대로만 하시면 훨씬 잘 될 것 같은데 이상하게 자꾸 엉뚱한 데로 끌고 가시고 하나님이 사람을 데리고 하는 걸 보면 때로는 동의가 안 될 때가 여러분은 없었습니까? 베드로는 어부입니다. 예수님은 목수입니다. 목수가 어부를 보고 저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던지라고 하면 쉽게 동의가 잘 안됩니다.
여러분 비슷한 생각 해 본 적 없습니까? 성경이 무슨 사업 교과서입니까? 사업하는 사람들이 무슨 성경을 보고 사업을 배워야 합니까? 그게 목수가 어부를 보고 이래라 저래라, 이 생각하고 뭐가 그렇게 다릅니까?
성경은 사업하는 사람에게는 필요 없는 책이 아니고 주부에게는 필요 없는 책이 아니고 우리 삶의 구체적인 현장에서는 필요 없는 그런 책이 아니고 우리 삶의 모든 영역을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뒤덮어야 하는, 어느 한 부분이라도 관련이 없는 책이 아닙니다. 그것이 바로 성경입니다.
밤새 일을 했기 때문에 몸이 참 피곤했습니다. 그것 때문에 순종하기가 더 어려웠을 것입니다. 아무리 젊은 어부들이라고 해도 밤 새도록 고기 잡는다고, 또 고기가 잡히지 않으니까 얼마나 발버둥을 치고 애를 썼겠습니까? 그리고는 지금 밖에 나온 겁니다. 그리고 그물을 지금 내려서 씻고 있습니다. 주님이 다시 나가라고 하면 그물 내리기 전에라도 얘기하면 일을 좀 적게 할 것 아닙니까? 그 그물을 내렸다가 올리는 일이 적지 않습니다.
제가 해본 건 아니고 구경만 했지만 그 그물을 전부다 다시 내렸다가 끌어올리려고 하면 그게 얼마나 사람 짜증나게 하는 일입니까?
예수님이 하라고 하면 좀 일찍 얘기하시든지 옷 다 벗고 누워 있는데 그제서야 또 나오라고 그럽니다. 옷 벗기 전에 말씀을 하시면 옷 입는 수고라도 좀 안 할 거 아닙니까? 아니 전화가 좀 빨리 오던지 사람이 한참 잠이 들었는데 전화가 와서 오라 가라고 합니다. 건강이 좋을 때 좀 말씀을 하시든지, 지금 감기가 걸려서 사람이 못살겠는데 이럴 때 누구에게 심방을 가야되느니 문병을 가야 되느니 합니다.
우리 삶에서 얼마나 장애물들이 많은지 모릅니다. 주님께서 잘 아십니다. 주님 자신이 몸이 약한 분이셨습니다. 주님 자신이 이사야 53장을 보면 병을 많이 앓았던 분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매일 콜록거리고 다녔는지 모르겠습니다. 일교차가 워낙 심하니까 감기는 주로 달고 다니시고 콧물도 늘 나고 그랬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피곤과 상관 없이 순종하기를 주님께서 요청하고 계십니다.
여러분 “피곤은 상관없이 까짓 거 믿음으로 한다.” 이것도 곤란합니다. 우리 교회는 그런 사람은 별로 없어 보입니다. 그런 사람이 생길 때 쯤에 제가 “너무 무지막지하게 그렇게 하지 맙시다.” 제가 그렇게 설교하겠습니다.
그런데 우리 교회는 그 설교가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 교회는 “좀 더 피곤해도 하나님 앞에 헌신하자.” 그 설교가 간절하게 필요한 교회 같아 보입니다. “아이고! 꽤 열심히 하는데 목사님이 뭘 알지도 못하고 저러나!” 그런 분이 계시면 양해하고 들어 주십시오. 그런 분이 없다는 뜻은 아니고 그런 분이 우리 가운데 꽤 있는 거 압니다마는 그러나 우리 다수는 아직까지 그렇지 못합니다. 피곤해서 못한다구요? 아닙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피곤은, 여러분 우리 육체의 피곤은 우리 정신으로 이길 수 있습니다. 잠은 7시간 자야 된다구요? 천만의 말씀입니다.
5시간 자고 일주일 버텨도 건강에 아무 문제 없습니다. 육체의 한계를 우리가 극복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주님이 명령하실 때 세상 지식도 그들이 순종하는데 굉장히 어려웠을 것입니다. “깊은 데로 그물을 던지라!”
깊은 데는 고기가 없답니다. 어떤 분이 주석을 써 놓았는데 보니까 그 갈릴리 호수에는 얕은 데만 고기들이 몰려 있고 깊은 데는 고기가 없답니다. 그러니까 어부들이 세상에서 배웠던 지식을 가지고 판단하면 주님의 말씀대로 하면 고기를 못 잡게 되어 있습니다. 내가 사업을 하면서 혹은 직장 생활을 하면서 선배들로부터 또 체험을 통해서 배운 지식으로 하면 성경이 말씀한대로 하면 뻔히 안 될 것처럼 보입니다.
빤히 보입니다. 그런데도 피가 터질 것을 우리가 생각하면서도 머리를 들이 밀고 들어가면, 바로 그런 순종과 헌신의 자리에 성령께서 역사하시는 것을 우리가 경험하게 되는 것입니다. 주님이 길을 확 열어 놓고 쉽게 쉽게 갈 수 있도록 이렇게 보여주시면 좋겠는데 그렇지 않습니다. 꼭 길을 좁게 만들어 놓습니다. 때로는 길이 아니고 길이 없는 거 같아 보입니다. 아예 길이 없는 데로 우리를 몰아 넣어 놓고는 우리보고 “가라, 가라.” 그러시는 것 같습니다. 좁은 길이라도 보이면 좀 가겠는데 주님께서는 우리보다 훨씬 지혜로운 분이십니다.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믿음을 요구하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순종을 요구하시는 것입니다. 세 번째 순종을 요구하신 말씀은 남은 생을 사람을 취하며 살라는 말씀이십니다. 그리고 그들이 아직도 예수 그리스도를 잘 몰랐지만 그들이 모든 것을 버려두고 사람을 낚는 어부로 살기 위해서….
사실 이 때 제자들을 보면 뭘 정말 잘 몰랐던 분들입니다. 아주 초신자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길을 나서는 모습을 주님께서 우리에게 보여 주고 있습니다. 여러분 사람을 취하는 자가 되는 것은 신학교로 부름을 받는 사람만 되는 것이 아닙니다. 장로나 권사 쯤 되는 사람만 가는 길이 아닙니다. 여러분 잊지마십시오. 예수가 내 주라고 고백하는 사람이면 모두 다 이 길을 가야하는 것입니다. 많이 모른다구요? 상관 없습니다. 많이 알고 모르고로 우리가 결판을 짓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순종하느냐 순종하지 않느냐 그게 문제일 뿐입니다. 순종하면 하나님께서 우리가 가지고 있는 것이 비록 작아도 그것 가지고 이 길을 가게 하실 것이고 더 풍성하게 공급하실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이미 많이 주셨습니다.
저는 오늘 이 분문을 보면서 하나님이 주신 것들을 가지고 나누지 못하고 섬기지 못할 때 어떤 모습이 되는가?하는 엉뚱한 그런 그림을 하나 발견했습니다. 실제로 보니까 주님께서 순종하는 사람 시몬 베드로와 그 주변 사람들에게 엄청나게 물고기를 잡도록 은혜를 베풀어 주셨습니다.
잡히는 건 물고기만이 아닙니다. 무엇이든지 주님께서 하나님의 말씀을 좇아 살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풍성하게 공급하실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믿는 자는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순종하는 자가 경험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이 이미 주신 것들이 우리에게 많습니다. 그런데 그 양이 얼마나 많았냐? 고 본문이 기록하는고 하니까 두 배에 나누었는데도 불구하고 두 배가 다 잠기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푹 물 속에 들어갔다는 말입니다. 조금만 더 잠기면 침몰을 할 정도로 푹 물 속에 잠겼다는 것입니다. 두 배가 잠길 정도였으니까 이거 나누지 않았으면 배 하나에다가 다 실었으면 그 배는 갈릴리 밑바닥에 벌서 가라앉고 말았을 것입니다.
하나님이 이미 우리에게 주신 것들이 많이 있습니다. “아이고, 하나님. 물질도 주시고 건강도 주시고…. 그러면 내가 섬기겠습니다.”
가라앉겠다는 소리입니까? 가라앉고 말겠다는 겁니까? 우리가 기도하기 전에 이미 주신 것 가지고 주님 앞에 섬기기를 힘쓰는 자가 되는 것이 마땅한 순서일 것입니다. 나누어 놓으면 그게 줄어드는 것이 아니고 나누어 놓았는데도 불구하고 두 배가 잠겼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호숫가에서 그물을 씻던 사람을 주님께서는 섬기는 자, 나누는 자로 부르셨습니다. 우리가 가진 것이 아닙니다. 주님이 우리에게 주신 것, 또 앞으로 주실 것들을 나누고 섬기는 자로 그래서 사람을 취하는 자로 그들을 복되게 하는 자로 하겠다고 말씀하고 계신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구하는 것이 많이 있다면 그 기도를 우리 입 밖에 내보내기 전에 “하나님 무엇을 내가 나누고 살까요? 이미 주신 것 가지고 무엇을 섬기며 살까요?” 그런 기도부터 하는 버릇을 우리 몸에 익힌다면 하나님 앞에 우리가 건강한 삶을 사는 성도의 모습이 될 것입니다.
지난 주말에 제가 두 가지 일을 경험을 했습니다. 선교사 자녀들의 일이었습니다. 제가 필리핀에서 선교사 사경회를 인도하고 돌아온 후 한 선교사가 자기 아들이 군대를 간다고 했습니다. 아들이 가는데 서울에 한 몇 달 있으면서 한국말도 좀 배우고 자기 생활비는 아르바이트를 해서 벌고 그렇게 해서 몇 달 있다가 한 9월쯤 군대를 보냈으면 하는데 이 아이가 있을 곳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아이 거처 문제 때문에 씨름을 했습니다. 고민고민하다가 서울영동교회 학사가 생각이 나서 전화를 했습니다.
그랬더니 마침 학사 담당자가 방이 8월 말까지는 여유가 있다고 해서 그 아이를 학사에 보내서 해결을 하긴 했습니다. 남미의 아르헨티나의 한 선교사로부터 편지가 지난 주말에 도착을 했습니다. 그 내용은 고등학교 3학년을 마치는 딸애가 이제 한국에 있는 대학에 가려고 하는데 이번 여름에 한국에 와서 대학가는 데 필요한 어떤 것을 꼭 해야하는데 아무리 애를 써도 이 아이를 한국에 왔다 가게 하는 비행기 값 1,500불을 못 구하겠다는 것입니다. 저희 교회가 지원하고 있는 선교사가 아닙니다. 저희 교회가 지원하고 있는 선교사면 후원교회 목사에게 그런 편지를 조심스럽게 보내기도 합니다. 그런데 전혀 지원하는 교회가 아닌데 자기가 지원 받고 있는 교회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교회에 편지를 못 쓰고 그 얘기를 하나 하려고 장장 A4 넉 장에다가 빽빽하게 편지를 써서 보낸겁니다. 제가 그 편지를 받고 이 선교사 내외가 나한테 이 편지를 보내기까지 얼마나 마음을 끓였을까? 참 마음이 아팠습니다.
여러분, 선교지에 가서 한 생을 보내겠다고 떠난 사람들이 이런 문제 때문에 얼마나 고통을 받는지 모릅니다. 선교사들이 한국에 오면 있을 곳이 없습니다. 그나마 부모나 형제집이 좀 크고 여유가 있는 사람은 열에 하나, 백에 하나 있을까 말까하고 또 부모님 집에 방 한 칸에 식구 넷이 들어가서 있고 형님 집에 누구 집에 잠깐 하루, 이틀은 모르지만 사흘, 나흘도 못 있습니다. 아이들에게 한국말을 가르치고 한국 풍습을 가르치고 싶은데 있을 곳이 없습니다. 얼마나 많은 선교사들이 그 문제 때문에 갈등을 겪고 선교지로 다시 돌아가고, 해외로 떠나는지 모릅니다. 해외는 선교사들이 있을 만한 곳이 많이 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오늘 우리가 나눌 곳이 참 많지만 복음을 위해서 헌신한 선교사들이 오늘의 한국의 수많은 그리스도인들과 더불어 이렇게 나눔을 받지 못해서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면서 참 얼마나 죄책감이 느껴지는지 모릅니다.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서 더 이상 우리를 호숫가에서 그물을 씻으면서 안타까워하는 그런 사람으로 만들기를 원치 않습니다. 사람을 취하는 자로 우리 남은 생을 살기를 원하십니다. 여러분 오늘 우리가 이 말씀 앞에서 다시 한 번 또 혹은 이전에 그런 고백을 해보지 못했던 분들은 새롭게라도 “주님, 남은 생을 사람을 취하는 자로 살아가겠습니다.”라고 응답하실 수 있겠습니까? 우리가 그렇게 응답할 때 성령께서 우리와 함께 하실 것입니다.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가진 그분이 우리와 함께 하실 것입니다. 우리 이 시간에 주신 말씀에 대한 응답으로 하나님께 앞에 한 1분만 함께 기도하기를 원합니다. 주님 그 길을 가게 하옵소서…. 성령께서 붙잡아 주시옵소서….
본원 이사, 분당샘물교회 담임목사
9월의 연평도에는 꽃게잡이가 한창이라고 합니다. 연평도에서 남북의 해군이 충돌했다는 기사를 보면서 제 마음에 아픔과 함께 그런 기사가 제 마음에 크게 느껴졌습니다. 꽃게잡이를 가야하는데 비상사태 때문에 모든 어선들이 묶여 있어야만 했습니다.
연평도 어민들이 별로 잘 사는 사람들 아닌 것 우리가 잘 압니다. 도시의 중산층과 비교하면 형편 없는 수준으로 사는 분들이 그 곳 어민들입니다. 저번에 일어났던 비상사태 때문에 꽃게잡이를 나가지 못해서 이 사람들에게 생기는 손실이 얼마냐고 보도가 되고 있느냐?하면 한 8,000만원 내지 9,000만원 정도의 손실이 있을 것이라고 그렇게 보도가 나와 있었습니다. 저는 그것 보면서 내가 동그라미를 잘못 헤아렸나 하고 다시 한 번 헤아려 봤습니다. 800만원이 아니고 정확하게 8,000만원, 9,000만원 손실이 있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이 땅에서 아주 평범하게 살고 있는 어민들의 가정에 8, 9천만원의 수입이 들어와야 한해 살림이 꾸려지고 아이들 등록금도 내고 생계도 꾸려갈 것이라고 생각했던 어민들이 8,000만원 이상의 돈이 들어오지 않으면 얼마나 그 사람들이 고통을 받게 될 것인지 우리가 충분히 짐작이 됩니다.
우리는 단순히 전쟁 소식에 좀 놀랬지만 연평도 어부들은 아마 더 힘이 빠져 있을 것입니다. 당장 먹고 사는 문제가 큰 문제이고 엄청난 돈의 손실을 눈 앞에 두고 고통 속에 있을 것이 틀림 없습니다. 오늘 본문 2절에도 보면 힘이 다 빠져 있는 어부들의 모습을 성경이 우리에게 묘사하고 있습니다. 게네사렛이라고 하는 곳은 갈릴리 호수의 또 다른 이름입니다. 이 갈릴리 호수가에서 밤새도록 고기잡이에 나섰던 시몬 베드로와 몇 몇 어부들이 밤새 아무 것도 잡지 못했습니다. 그리고는 그 다음날 아침에 피곤한 몸으로 긴 그물을 정리해서 올려 놓고 집으로 가서 발을 죽 뻗고 한 잠 자야되겠다…그런 마음으로 예수님을 만났다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그런데 아무 것도 잡지 못해서 기운이 죽 빠져있는 이 사람들의 모습을 보여주면서 오늘 본문 10절에는 이 사람들의 전혀 다른 모습을 또 한가지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것은 주님께서 묘사하고 있는 모습입니다.
힘이 빠져 있는 이 사람들이 앞으로 사람을 취하는 자가 될 것이라는 그런 그림입니다. 지금 이 사람들은 사람을 취하는데는 아무 관심이 없습니다. 이 사람들은 그저 하루 고기잡이나 잘해서 식구들 배나 곯지 않게 먹고 살면 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 정도 이상의 꿈을 가지지 않은 사람들이 바로 시몬 베드로, 안드레, 야고보, 요한이었습니다.
이 사람들은 구국의 일념을 가지고 “나라를 위해서 뭘 한 번 해보겠다!”는 뜻을 품고 살아가는 그런 수준의 지성인들도 아니었습니다.
그저 아주 평범한 저 변두리에 있는 갈릴리 땅에서 ‘가족들 배나 고프지 않게 하고 살았으면….’ 그런 소망을 가지고 살아가던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주님께서는 하루 고기잡이에 실패를 하고 힘이 빠져 있는 이 사람들을 그 모습과는 너무도 동 떨어져 있는 사람들에게 “사람을 취하는 자가 되게 하겠다. 사람을 행복하게 만드는 자가 되게 하겠다. 사람을 복되게 하는 자가 되게 하겠다.”고 말씀하십니다.
이런 놀라운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참 어울릴 것 같지 않은 그런 그림입니다. 여러분도 그런 생각들을 자주 해보지 않습니까? 내 연약함을 생각할 때 이런 저런 것 때문에 마음 상해 있는 나의 부족함과 어리석음과 죄악됨을 생각할 때 주님께서 말씀하시는 모든 족속으로 제자 삼는 사람, 사람들에게 예수를 전해서 그들을 행복하게 해주는 사람, 그런 모습과 나의 지금 모습과는 너무 동떨어져 있어서 우리가 얼마나 절망을 느끼고 얼마나 마음 속에 깊은 아픔을 느껴왔습니까? 그러나 주님께서는 오늘 이 두 모습을 선명하게 대조해서 보여주시면서 우리에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사람들이 실제로 그 길을 걸어갔다는 것입니다. 누가복음은 예수님께서 “너희로 사람을 취하는 자가 되게 하리라.”
그렇게 말씀하신 다음에 수 십년이 지난 후에 기록된 책입니다. 이 사람들이 실제로 그런 사람들이 된 것입니다. 그리고 바로 이 사람들 중의 한 사람의 제자였던 누가가, 그들의 모습을 다 지켜본 사람이 이 사건을 이렇게 기록하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안고 있는 여러 가지 문제와 어려움과 난관을 생각하면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람을 취하는 자가 되게 하고 사람을 복되게 하는 자가 되게 하고 이 세상을 밝은 세상으로 만드는 자가 되게 하겠다.”고 약속하고 계신 이 그림을 우리가 생각하면서 오늘 본문에서 주님께서 주신 몇 가지 교훈을 우리가 나누고자 합니다.
먼저 우리가 생각할 것은 사람을 얻는 자야 말로 이 세상에서 가장 귀하고 값진 것을 얻는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 사실에 동의하실 수 있습니까? 여러분 우리가 무엇을 위해서 지금까지 열심히 살아 왔습니까? 우리 대부분이 다 비슷할 겁니다. 가만히 돌이켜 보면 10대 때는 가장 큰 관심 중의 하나가 성적이 아니었던가 생각해 봅니다.
한국에는 공부를 못하면 사람을 바보로 취급을 하니까 공부 못하는 사람 설자리가 너무 없으니까, 부모도 악을 쓰고 공부 잘해야 된다고 아이들을 짓누르고 그 틈새에 껴서 10대 때는 얼마나 힘든 세월을 보내는지 모릅니다. 그래도 세월은 지나가기 때문에 좋은 대학에 가든지 못가든지, 대학 진학에 실패를 했든 성공을 했든, 20대에 접어들게 되면 짝을 찾아야 됩니다. 직장도 구해야 합니다. 그리고 나이를 조금씩 조금씩 먹어가면서 달라지는 게 별로 없습니다.
여전히 무겁고 힘든 과제들이 우리 앞에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래도 좋아하는 사람하고 결혼하면 인생에 핑크빛이 가득할 것 같았는데 그것도 그렇지 않다는 것을 곧 발견하게 됩니다. 그렇게 좋아하던 사람하고 물고, 뜯고, 싸우는 게 부부 간이라는 것을 곧 발견하게 됩니다. “그렇게 좋아했던 사람이 꼴 보기 싫은 사람이 되기도 하는 게 부부 간이요 그래서 갈라서면 남이구나, 원수가 부부구나!” 그렇게 말했던 앞서 살았던 분들의 말들에 우리는 고개를 끄덕이게 됩니다. 집도 한 칸 장만해야 되고 또 아이도 나아야 되고 이 아이가 건강하게 잘 자라는 것도 지켜보아야 합니다. 승진도 해야 합니다. 그러다 보니까 머리는 빠지고 살은 자꾸 찌고 건강도 젊은 시절에 공짜로 얻은 건강인가 했는데 건강에 조금씩 조금씩 문제가 생기고 가까운 친구가 암에 걸렸다는 소식을 듣게 되고…. 이렇게 나이를 먹으면서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무엇을 얻기 위해서 오늘까지 그렇게 애를 써 왔습니까? 그리고 그 얻은 것에 얼마나 만족하고 계십니까? 우리가 그렇게 애써서 움켜쥔 것들, 별로 힘을 안 들이고 움켜쥔 것들, 부모님이 그냥 물려준 것들이 있습니다. 애를 별로 쓰지 않았는데 그냥 사업이 잘 되는 분도 있습니다.
세상이 공평하지 않은 건지, 하나님이 공평하시지 않은 건지 고민에 빠뜨리는 일도 우리가 많이 보고 삽니다.
여러분! 우리가 움켜쥐고 있는 그것들이 우리를 얼마나 의미 있게 만들어 줍니까? 얼마나 우리를 행복하게 만들어 줍니까? 여러분 호숫가에 그물을 씻고 있는 이 사람들이 허탈해 할 이유가 없는데도 허탈해 한다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만일 이 사람들이 하루 고기잡이를 실패했고 하루 고기잡이 실패한 것만 회복되어서 행복하다면 우리 주님께서 고기나 더 잡게 해 주면 됐지 고달픈 길을 따라 나서라고 하셨겠습니까?
여러분 인생의 문제가 고기만 좀 많이 잡으면 해결이 되고, 그저 삶만 좀 형통하면 해결이 되고 부부 간의 왠만한 갈등만 극복하면 해결이 되는 그런 문제가 아니라는 데 우리의 고민이 있습니다.
제가 얼마 전에 이어령 교수를 비디오를 통해서 만났습니다.
어떤 교회에서 그분이 예수를 믿는 걸 알고 이분에게 부탁을 해서 성도들에게 보여주려고 비디오 테잎을 만든 비디오 테잎이었습니다.
이화여대 교수였고 우리 지성사회의 가장 대표적인 분이 어어령 교수라는 데 다 동의하실 것입니다.
문화부 장관을 지냈고 한 때 “문학사상”이라는 잡지를 만들어 한국 최고의 잡지로 한 때 만들기도 했습니다. 저도 20대 때부터 그분의 글을 좋아해서 한 때는 그분의 책이면 뭐든지 닥치는대로 읽기도 했습니다. 한 가지 그분에 대해 제가 부정적으로 가졌던 생각은 그 책 제목은 지금 잊어버렸지만 “저 물레에도 운명의 실”이라는 책이었는지 정확하지 않지만 이 책에서 이 분이 성경을 인용을 해서 써 놨는데 너무 성경을 엉터리로, 자기 마음대로, 자기가 해석하고 싶은대로 해 놓아서 당황했던 적이 있습니다.
‘이렇게 똑똑한 사람도 성경은 이렇게 마음대로 써 놓았구나.’고 생각했지만 그 분에 대해서는 좋은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분이 70이 넘어서 예수를 만난겁니다. 이어령 교수가 50대 때 인생의 위기를 만났습니다. 그 50대가 자기 인생의 황금기였다는 것입니다. 나이 50이 넘어섰을 때 이어령 이름만 대면 대한민국에 자기를 모르는 사람이 없고, 자기가 낸 책들은 다 베스트셀러가 됐고, 자기가 심혈을 기울여서 만든 문학사상이란 잡지는 한국 최고의 월간 문학 잡지가 됐고 그분이 표현은 안했지만 그분이 베스트셀러를 그렇게 많이 양산을 했는데 인쇄 수입은 또 얼마나 짭잘했겠습니까? 아마 물질적으로도 그분이 상당한 수준에 이르렀을 것입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에 자기가 가지고 있는 모든 것들이 너무 의미가 없다고 느껴지는데 죽겠더라는 것입니다. 자기가 내뱉은 말들 자기가 썼던 글들 하나 하나가 너무 의미 없는 것들이라고 느껴지고 그 고통 속에서 죽음까지도 생각을 했다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이 자기에게 말하기를 그런 위기의 순간을 넘어설 수 있는 방편이 있다고 했습니다. 골프를 배우라고 해서 열심히 골프를 배웠답니다. 그래서 이분이 골프를 치면서 그 문제에서 어느 정도 벗어날 수 있었는데 ‘70이 넘어서 예수를 만나고 보니까 내가 그 때 예수를 만나고 골프를 치지 않았으면 20년을 더 방황하지는 않았을 것이다.’고 말을 하는 것입니다. 그 말을 듣는 순간에 얼마나 마음에 감격이 되었는지 모릅니다. 일흔이 넘은 분이 전도 받아서 그렇게 말하는 것은 참 쉽지 않습니다. 더군다나 그 똑똑한 분이, 여러분 똑똑한 사람들은 자아가 얼마나 강한지 모릅니다. 그 분 입에서 그런 간증을 들을 것이라고 저는 상상도 못했습니다. 참 감격적이었습니다. 그분이 또 이렇게도 말했습니다. 자기가 최근에 오랫동안 집필을 하고 있지 않다는 것입니다.
집필을 안 하는 이유는 자기가 쓰고 뱉은 그 수많은 말들이 쓰레기 같은 말들이라는 것입니다. 그분이 표현은 그렇게 하지 않았지만 자기 자신도 자기의 삶에 목표도 제대로 정하지 못하고 자기 삶에 좌표가 없는 사람인데 누구를 향해서 무슨 말을 하랴?는 생각이 들어서 글을 쓸 수가 없었다는 것입니다. 저는 그분 이름으로 된 글이 요즘 나오지 않아서 왜 그런가 생각은 했는데 그 분 마음 속에 그런 깊은 전투가 있었던 것입니다. 제가 그 말을 들으면서 그런 기도를 시작했습니다. “이제는 하나님이 이어령씨가 글을 쓰게 해 주십시오. 자신이 만난 예수 그리스도 자신의 삶을 의미 있게 만든 예수 그리스도가 어떤 분인지를 그 분이 만약 글을 쓰기 시작한다면 우리 한국에 많은 사람들이 그로 말미암아 주님 앞으로 돌아오는 역사가 있을 것입니다.”
그런 희망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여러분 사람은 참 묘한 존재입니다. 여러분 사람은 원숭이하고 비슷한 그런 존재가 아닙니다. 사람은 물질 덩어리가 아닙니다. 사람은 돈 있으면 행복하게 살 수 있는 그런 종류의 짐승과 같은 동물 수준의 존재가 아닙니다. 사람을 만들 때 하나님은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만들었습니다. 하나님의 성품을 우리 속에 심어주셨습니다. 그래서 인간은 하나님의 성품이 우리 속에 회복이 되고 그 하나님과 서로 교제하고 하나가 되는 이런 연합이 없으면 인간은 아무리 굉장한 것들을 움켜쥐고 있어도 절대 행복할 수 없는 것이 인간인 것을 저는 이 이어령씨의 고백을 통해서 다시 한 번 생생하게 느낄 수 있었습니다.
가끔씩 저는 그런 의문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예술하는 사람들이나 아주 뛰어난 사람들이 자기가 숭배하는 가치를 하나님처럼 생각하고 사는 사람들, 대표적인 인물들이 예술인들이요, 간디 같은 분들 아니겠습니까? 그분들이 자기가 최고의 가치라고 생각하는 것들을 가지고 행복하게 사는 게 아닐까, 그렇게 살다가 가는 사람도 있겠구나.’ 그런 생각을 참 많이 했습니다. 그런데 간디라고 하는 분, 인도의 영혼이라고 불리웠던 그 위대한 한 인간도 죽음을 눈 앞에 둔 70이 넘은 나이에서 자기 삶의 무의미함 때문에 고통했던 것을 그의 전기에서 읽고는 소스라치게 놀란 적이 있습니다. 인간이라고 하는 것이 얼마나 오묘한 존재인지 모릅니다.
호숫가에서 그물을 씻으면서 허탈해 하는 인생, 그것은 소유가 적어서가 아닙니다. 내가 허탈한 것은 짝이 없기 때문이고, 집이 제대로 없기 때문이고….
아닙니다 여러분! 그렇게 생각하고 있으면 우리는 인생의 문제를 해결할 길이 없습니다. 우리 삶의 문제를 하나님이 보여주시는대로 정확하게 보아야 하는 것입니다. 호숫가에서 그물을 씻고 있으면서 허탈해 하는 그 인간의 모습은 다른 이유 때문이 아니고 예수의 생명을 소유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 자신이 하나님의 사람으로, 하나님의 것으로 부름 받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아니, 자기 자신이 자기 운명은 내 것이라고 움켜 쥐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들이 하나님이 주인이라고 자신의 삶을 내놓을 때 놀라운 일이 벌어질 것을 지금 주님이 말씀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우리들은 명확하게 하나님께서 세 번의 순종을 요구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첫 번째 순종은 3절에서 시몬 베드로의 배를 예수님의 설교를 위해서 내어 놓으라고 하셨습니다. 거기에 베드로가 순종했습니다. 그리고 4절에서는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내리고 고기를 잡으라는 주님의 말씀 앞에 순종하는 베드로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세 번째 순종은 10절에 있는 대로 사람을 취하는 자로 남은 생을 살아라 주님이 그렇게 말씀하셨을 때 모든 것을 버려두고 따라가는 그런 순종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여러분 이 세 가지 순종이 우리에게 주는 의미가 무엇입니까? 베드로가 가지고 있던 배. 그게 배건, 물질이건, 건강이건, 사회적인 지위이건 무엇이건 간에 우리에게 주어진 것들이 내 것이 아니고 주님 것임을 다시 한 번 고백할 수 있겠습니까? 그래서 주인이신 그분의 뜻을 위하여 쓰여져야 할 것을 진심으로 고백할 수가 있겠습니까? 만약 우리가 그 말씀 앞에 순종하겠다고 고백한다면 우리도 첫 번째 순종은 잘 통과한 사람입니다. 마음으로 순종하기로 결정하지 않으면 삶에서 순종하는 건 불가능합니다. 우선은 생각을 바꾸는 것이 중요합니다. 마음을 바꾸는 것이 중요합니다. 내가 주인이라고 생각했던 사람이 내가 주인이 아니고 하나님이 주인이고 예수 그리스도가 내 삶에 주인이심을 생각을 바꾸면서 고백하는 것이 첫 번째 순종인 것입니다. 두 번째 순종은 무엇입니까? 우리가 마음으로 고백할 뿐 아니라 실제로 우리가 깊은 데로 그물을 던지는 실천 우리 삶의 현장에서의 순종이 중요한 것입니다. 여러분 이런 순종을 해보려고 하면 이게 참 간단치가 않습니다. 여러 가지 장애물이 우리 앞에 있는 것을 경험하게 됩니다. 우선 자신의 판단이 옳은 것처럼 느껴질 때가 참 많습니다. 하나님께서 내가 하자는 대로만 하시면 훨씬 잘 될 것 같은데 이상하게 자꾸 엉뚱한 데로 끌고 가시고 하나님이 사람을 데리고 하는 걸 보면 때로는 동의가 안 될 때가 여러분은 없었습니까? 베드로는 어부입니다. 예수님은 목수입니다. 목수가 어부를 보고 저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던지라고 하면 쉽게 동의가 잘 안됩니다.
여러분 비슷한 생각 해 본 적 없습니까? 성경이 무슨 사업 교과서입니까? 사업하는 사람들이 무슨 성경을 보고 사업을 배워야 합니까? 그게 목수가 어부를 보고 이래라 저래라, 이 생각하고 뭐가 그렇게 다릅니까?
성경은 사업하는 사람에게는 필요 없는 책이 아니고 주부에게는 필요 없는 책이 아니고 우리 삶의 구체적인 현장에서는 필요 없는 그런 책이 아니고 우리 삶의 모든 영역을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뒤덮어야 하는, 어느 한 부분이라도 관련이 없는 책이 아닙니다. 그것이 바로 성경입니다.
밤새 일을 했기 때문에 몸이 참 피곤했습니다. 그것 때문에 순종하기가 더 어려웠을 것입니다. 아무리 젊은 어부들이라고 해도 밤 새도록 고기 잡는다고, 또 고기가 잡히지 않으니까 얼마나 발버둥을 치고 애를 썼겠습니까? 그리고는 지금 밖에 나온 겁니다. 그리고 그물을 지금 내려서 씻고 있습니다. 주님이 다시 나가라고 하면 그물 내리기 전에라도 얘기하면 일을 좀 적게 할 것 아닙니까? 그 그물을 내렸다가 올리는 일이 적지 않습니다.
제가 해본 건 아니고 구경만 했지만 그 그물을 전부다 다시 내렸다가 끌어올리려고 하면 그게 얼마나 사람 짜증나게 하는 일입니까?
예수님이 하라고 하면 좀 일찍 얘기하시든지 옷 다 벗고 누워 있는데 그제서야 또 나오라고 그럽니다. 옷 벗기 전에 말씀을 하시면 옷 입는 수고라도 좀 안 할 거 아닙니까? 아니 전화가 좀 빨리 오던지 사람이 한참 잠이 들었는데 전화가 와서 오라 가라고 합니다. 건강이 좋을 때 좀 말씀을 하시든지, 지금 감기가 걸려서 사람이 못살겠는데 이럴 때 누구에게 심방을 가야되느니 문병을 가야 되느니 합니다.
우리 삶에서 얼마나 장애물들이 많은지 모릅니다. 주님께서 잘 아십니다. 주님 자신이 몸이 약한 분이셨습니다. 주님 자신이 이사야 53장을 보면 병을 많이 앓았던 분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매일 콜록거리고 다녔는지 모르겠습니다. 일교차가 워낙 심하니까 감기는 주로 달고 다니시고 콧물도 늘 나고 그랬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피곤과 상관 없이 순종하기를 주님께서 요청하고 계십니다.
여러분 “피곤은 상관없이 까짓 거 믿음으로 한다.” 이것도 곤란합니다. 우리 교회는 그런 사람은 별로 없어 보입니다. 그런 사람이 생길 때 쯤에 제가 “너무 무지막지하게 그렇게 하지 맙시다.” 제가 그렇게 설교하겠습니다.
그런데 우리 교회는 그 설교가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 교회는 “좀 더 피곤해도 하나님 앞에 헌신하자.” 그 설교가 간절하게 필요한 교회 같아 보입니다. “아이고! 꽤 열심히 하는데 목사님이 뭘 알지도 못하고 저러나!” 그런 분이 계시면 양해하고 들어 주십시오. 그런 분이 없다는 뜻은 아니고 그런 분이 우리 가운데 꽤 있는 거 압니다마는 그러나 우리 다수는 아직까지 그렇지 못합니다. 피곤해서 못한다구요? 아닙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피곤은, 여러분 우리 육체의 피곤은 우리 정신으로 이길 수 있습니다. 잠은 7시간 자야 된다구요? 천만의 말씀입니다.
5시간 자고 일주일 버텨도 건강에 아무 문제 없습니다. 육체의 한계를 우리가 극복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주님이 명령하실 때 세상 지식도 그들이 순종하는데 굉장히 어려웠을 것입니다. “깊은 데로 그물을 던지라!”
깊은 데는 고기가 없답니다. 어떤 분이 주석을 써 놓았는데 보니까 그 갈릴리 호수에는 얕은 데만 고기들이 몰려 있고 깊은 데는 고기가 없답니다. 그러니까 어부들이 세상에서 배웠던 지식을 가지고 판단하면 주님의 말씀대로 하면 고기를 못 잡게 되어 있습니다. 내가 사업을 하면서 혹은 직장 생활을 하면서 선배들로부터 또 체험을 통해서 배운 지식으로 하면 성경이 말씀한대로 하면 뻔히 안 될 것처럼 보입니다.
빤히 보입니다. 그런데도 피가 터질 것을 우리가 생각하면서도 머리를 들이 밀고 들어가면, 바로 그런 순종과 헌신의 자리에 성령께서 역사하시는 것을 우리가 경험하게 되는 것입니다. 주님이 길을 확 열어 놓고 쉽게 쉽게 갈 수 있도록 이렇게 보여주시면 좋겠는데 그렇지 않습니다. 꼭 길을 좁게 만들어 놓습니다. 때로는 길이 아니고 길이 없는 거 같아 보입니다. 아예 길이 없는 데로 우리를 몰아 넣어 놓고는 우리보고 “가라, 가라.” 그러시는 것 같습니다. 좁은 길이라도 보이면 좀 가겠는데 주님께서는 우리보다 훨씬 지혜로운 분이십니다.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믿음을 요구하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순종을 요구하시는 것입니다. 세 번째 순종을 요구하신 말씀은 남은 생을 사람을 취하며 살라는 말씀이십니다. 그리고 그들이 아직도 예수 그리스도를 잘 몰랐지만 그들이 모든 것을 버려두고 사람을 낚는 어부로 살기 위해서….
사실 이 때 제자들을 보면 뭘 정말 잘 몰랐던 분들입니다. 아주 초신자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길을 나서는 모습을 주님께서 우리에게 보여 주고 있습니다. 여러분 사람을 취하는 자가 되는 것은 신학교로 부름을 받는 사람만 되는 것이 아닙니다. 장로나 권사 쯤 되는 사람만 가는 길이 아닙니다. 여러분 잊지마십시오. 예수가 내 주라고 고백하는 사람이면 모두 다 이 길을 가야하는 것입니다. 많이 모른다구요? 상관 없습니다. 많이 알고 모르고로 우리가 결판을 짓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순종하느냐 순종하지 않느냐 그게 문제일 뿐입니다. 순종하면 하나님께서 우리가 가지고 있는 것이 비록 작아도 그것 가지고 이 길을 가게 하실 것이고 더 풍성하게 공급하실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이미 많이 주셨습니다.
저는 오늘 이 분문을 보면서 하나님이 주신 것들을 가지고 나누지 못하고 섬기지 못할 때 어떤 모습이 되는가?하는 엉뚱한 그런 그림을 하나 발견했습니다. 실제로 보니까 주님께서 순종하는 사람 시몬 베드로와 그 주변 사람들에게 엄청나게 물고기를 잡도록 은혜를 베풀어 주셨습니다.
잡히는 건 물고기만이 아닙니다. 무엇이든지 주님께서 하나님의 말씀을 좇아 살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풍성하게 공급하실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믿는 자는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순종하는 자가 경험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이 이미 주신 것들이 우리에게 많습니다. 그런데 그 양이 얼마나 많았냐? 고 본문이 기록하는고 하니까 두 배에 나누었는데도 불구하고 두 배가 다 잠기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푹 물 속에 들어갔다는 말입니다. 조금만 더 잠기면 침몰을 할 정도로 푹 물 속에 잠겼다는 것입니다. 두 배가 잠길 정도였으니까 이거 나누지 않았으면 배 하나에다가 다 실었으면 그 배는 갈릴리 밑바닥에 벌서 가라앉고 말았을 것입니다.
하나님이 이미 우리에게 주신 것들이 많이 있습니다. “아이고, 하나님. 물질도 주시고 건강도 주시고…. 그러면 내가 섬기겠습니다.”
가라앉겠다는 소리입니까? 가라앉고 말겠다는 겁니까? 우리가 기도하기 전에 이미 주신 것 가지고 주님 앞에 섬기기를 힘쓰는 자가 되는 것이 마땅한 순서일 것입니다. 나누어 놓으면 그게 줄어드는 것이 아니고 나누어 놓았는데도 불구하고 두 배가 잠겼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호숫가에서 그물을 씻던 사람을 주님께서는 섬기는 자, 나누는 자로 부르셨습니다. 우리가 가진 것이 아닙니다. 주님이 우리에게 주신 것, 또 앞으로 주실 것들을 나누고 섬기는 자로 그래서 사람을 취하는 자로 그들을 복되게 하는 자로 하겠다고 말씀하고 계신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구하는 것이 많이 있다면 그 기도를 우리 입 밖에 내보내기 전에 “하나님 무엇을 내가 나누고 살까요? 이미 주신 것 가지고 무엇을 섬기며 살까요?” 그런 기도부터 하는 버릇을 우리 몸에 익힌다면 하나님 앞에 우리가 건강한 삶을 사는 성도의 모습이 될 것입니다.
지난 주말에 제가 두 가지 일을 경험을 했습니다. 선교사 자녀들의 일이었습니다. 제가 필리핀에서 선교사 사경회를 인도하고 돌아온 후 한 선교사가 자기 아들이 군대를 간다고 했습니다. 아들이 가는데 서울에 한 몇 달 있으면서 한국말도 좀 배우고 자기 생활비는 아르바이트를 해서 벌고 그렇게 해서 몇 달 있다가 한 9월쯤 군대를 보냈으면 하는데 이 아이가 있을 곳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아이 거처 문제 때문에 씨름을 했습니다. 고민고민하다가 서울영동교회 학사가 생각이 나서 전화를 했습니다.
그랬더니 마침 학사 담당자가 방이 8월 말까지는 여유가 있다고 해서 그 아이를 학사에 보내서 해결을 하긴 했습니다. 남미의 아르헨티나의 한 선교사로부터 편지가 지난 주말에 도착을 했습니다. 그 내용은 고등학교 3학년을 마치는 딸애가 이제 한국에 있는 대학에 가려고 하는데 이번 여름에 한국에 와서 대학가는 데 필요한 어떤 것을 꼭 해야하는데 아무리 애를 써도 이 아이를 한국에 왔다 가게 하는 비행기 값 1,500불을 못 구하겠다는 것입니다. 저희 교회가 지원하고 있는 선교사가 아닙니다. 저희 교회가 지원하고 있는 선교사면 후원교회 목사에게 그런 편지를 조심스럽게 보내기도 합니다. 그런데 전혀 지원하는 교회가 아닌데 자기가 지원 받고 있는 교회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교회에 편지를 못 쓰고 그 얘기를 하나 하려고 장장 A4 넉 장에다가 빽빽하게 편지를 써서 보낸겁니다. 제가 그 편지를 받고 이 선교사 내외가 나한테 이 편지를 보내기까지 얼마나 마음을 끓였을까? 참 마음이 아팠습니다.
여러분, 선교지에 가서 한 생을 보내겠다고 떠난 사람들이 이런 문제 때문에 얼마나 고통을 받는지 모릅니다. 선교사들이 한국에 오면 있을 곳이 없습니다. 그나마 부모나 형제집이 좀 크고 여유가 있는 사람은 열에 하나, 백에 하나 있을까 말까하고 또 부모님 집에 방 한 칸에 식구 넷이 들어가서 있고 형님 집에 누구 집에 잠깐 하루, 이틀은 모르지만 사흘, 나흘도 못 있습니다. 아이들에게 한국말을 가르치고 한국 풍습을 가르치고 싶은데 있을 곳이 없습니다. 얼마나 많은 선교사들이 그 문제 때문에 갈등을 겪고 선교지로 다시 돌아가고, 해외로 떠나는지 모릅니다. 해외는 선교사들이 있을 만한 곳이 많이 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오늘 우리가 나눌 곳이 참 많지만 복음을 위해서 헌신한 선교사들이 오늘의 한국의 수많은 그리스도인들과 더불어 이렇게 나눔을 받지 못해서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면서 참 얼마나 죄책감이 느껴지는지 모릅니다.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서 더 이상 우리를 호숫가에서 그물을 씻으면서 안타까워하는 그런 사람으로 만들기를 원치 않습니다. 사람을 취하는 자로 우리 남은 생을 살기를 원하십니다. 여러분 오늘 우리가 이 말씀 앞에서 다시 한 번 또 혹은 이전에 그런 고백을 해보지 못했던 분들은 새롭게라도 “주님, 남은 생을 사람을 취하는 자로 살아가겠습니다.”라고 응답하실 수 있겠습니까? 우리가 그렇게 응답할 때 성령께서 우리와 함께 하실 것입니다.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가진 그분이 우리와 함께 하실 것입니다. 우리 이 시간에 주신 말씀에 대한 응답으로 하나님께 앞에 한 1분만 함께 기도하기를 원합니다. 주님 그 길을 가게 하옵소서…. 성령께서 붙잡아 주시옵소서….
본원 이사, 분당샘물교회 담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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