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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사속의 명설교

    하나님이, 이스라엘 자손의 손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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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경본문: 삿 4:12-16, 23-24 | 설교자: 홍석용

    본문

    이스라엘과 가나안의 야빈 사이에 벌어진 이 전쟁은 결코 이스라엘이 이길 수 있는 전쟁이 아니었습니다. 이스라엘이 처한 상황을 놓고 보면 전혀 승산이 없는, 도저히 이길 가능성이 없는 매우 불리한 전쟁이었습니다. 이스라엘의 상태가 이 전쟁에서 승리할 가능성이 전혀 없는 열악한 상황이라는 것을 드보라 본문(사사기 4-5장)은 몇 가지로 이야기해줍니다.

    사사기 5:6-8절을 보면 이스라엘의 군사적 약세를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6. 아낫의 아들 삼갈의 날에 또는 야엘의 날에는 대로가 비었고 행인들은 소로로 다녔도다 7. 이스라엘에 관원이 그치고 그쳤더니 나 드보라가 일어났고 내가 일어나서 이스라엘의 어미가 되었도다 8. 무리가 새 신들을 택하였으므로 그 때에 전쟁이 성문에 미쳤으나 이스라엘 사만명 중에 방패와 창이 보였던고  

    관원은 전쟁에 참여할 수 있는 용사를 뜻합니다. 그런데 그 관원들이 그치고 그쳤다고 합니다. 즉 전쟁을 지휘하고 선봉에 서서 적들과 맞서 싸워야 할 용사들과 장군들이 이스라엘에 그쳤다고 합니다. 8절에는 이스라엘의 군인 4만 명 중에서 방패와 창을 가진 군인들이 없었다는 것입니다. 전쟁에 나가서 싸우려면 무기가 있어야 하는데 무기가 없는 것입니다. 군사를 지휘할 장군도 없고 선봉에 서서 적군을 위협할 용사도 없고 군인들은 싸울 변변한 무기 하나 갖고 있지 않습니다. 이것이 이스라엘의 형편입니다.

    그 반면에 가나안의 군사력은 어떻습니까? 4:13절을 보면 가나안의 군사력은 철병거 구백승으로 무장되었다고 합니다. 당대에서 철병거 구백승이란 엄청난 무기입니다. 그 당시로서는 최신식 무기였고, 철병거 부대를 가지고 있느냐 있지 않느냐로 근동 지역의 패권이 좌우될 정도로 강력한 무기였습니다. 더구나 철병거가 구백승이면 보병 부대의 규모도 엄청났을 것이고, 그 보병 부대가 지닌 무기도 만만치 않았을 것입니다. 그리고 이스라엘은 아직 청동기 문명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면 이 가나안은 이미 철기 문명에 진입한 강력한 집단입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당시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민족이 무서워서 대로를 나두고 소로로 다닌 것을(6절) 우리는 충분히 이해할 수 있습니다.  

    더구나 이스라엘과 가나안 사이에 군사력만 차이가 난 것이 아닙니다. 이 당시에 이스라엘은 분열의 상태에 있었습니다. 5:15-18절을 보십시오.

    15. 잇사갈의 방백들이 드보라와 함께하니 잇사갈의 심사를 바락도 가졌도다 그 발을 좇아 골짜기로 달려 내려가니 르우벤 시냇가에 큰 결심이 있었도다 16. 네가 양의 우리 가운데 앉아서 목자의 저 부는 소리를 들음은 어찜이뇨 르우벤 시냇가에서 마음에 크게 살핌이 있도다 17. 길르앗은 요단 저편에 거하거늘 단은 배에 머무름은 어찜이뇨 아셀은 해빈에 앉고 자기 시냇가에 거하도다 18. 스불론은 죽음을 무릅쓰고 생명을 아끼지 아니한 백성이요 납달리도 들의 높은 곳에서 그러하도다  

    가나안과의 전쟁에 온 이스라엘이 힘을 합쳐서 싸운 것이 아닙니다. 스불론, 납달리는 전쟁에 참여했지만 르우벤, 길르앗, 단, 아셀 지파등은 이 전쟁을 강 건너 불구경하듯이 합니다. 민족이 하나가 되어 총력전을 펼쳐도 이기기 어려운 전쟁에서 이스라엘은 분열합니다.

    또한 5:23절을 보면 가나안과의 전쟁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도와서 전쟁에 참여할 만한 부주변 민족들도 전혀 이스라엘을 돕지 않았다고 합니다.

    23. 여호와의 사자의 말씀에 메로스를 저주하라 너희가 거듭 거듭 그 거민을 저주할 것은 그들이 와서 여호와를 돕지 아니하며 여호와를 도와 용사를 치지 아니함이니라 하시도다

    그 반면에 가나안은 온 가나안 족속이 연합을 해서 이스라엘을 공격합니다. 5:19절을 보면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19. 열왕이 와서 싸울 때에 가나안 열왕이 므깃도 물 가 다아낙에서 싸웠으나 돈을 탈취하지 못하였도다

    그 당시에 가나안은 단일 국가를 형성했던 것이 아니라 여러 개의 소국가로 나누어져 있었고, 야빈 왕은 그 가나안의 여러 국가 중의 한 나라를 다스리는 왕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여러 가나안 국가들이 하나로 뭉쳐서 분열된 이스라엘과 전쟁을 벌이는 것이지요. 가나안의 여러 왕이 그들의 군사를 이끌고 이 전쟁에 출전했습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의 입장에서 이 전쟁은 도저히 승산 가능성이 없는 것입니다. 내부는 분열되었고 군사들이 가지고 있는 무기는 변변한 것 하나 없습니다. 주변에 이들을 도울만한 나라도 전혀 없습니다. 반면에 가나안은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막강한 군사력을 소유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런 전쟁에서 이스라엘의 승리를 기대한다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그런데 승리는 커녕 패배가 뻔히 보이는 이 전쟁에 드보라와 바락이 나섭니다. 바락은 군인이었기 때문에 이 전쟁이 얼마나 승산 없는 무모한 전쟁인가를 잘 알았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드보라를 통해 전해진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믿음으로 이 전쟁에 참여합니다. 상황은 암울합니다. 승리에 대한 일말의 기대감도 바라볼 수 없는 캄캄한 상황에서 믿음을 가지고 이 전쟁에 참여합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이 전쟁은 이스라엘의 절대적인 약세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간섭하심으로 이스라엘의 승리로 끝납니다. 겨우 겨우 이기는 정도가 아니라 대승을 거둡니다. 사사기 저자는 이스라엘의 패배가 뻔히 보이는 이 전쟁에서 어떻게 이스라엘이 승리를 했는지, 그리고 전쟁의 승리가 하나님의 간섭하심의 결과였음을, 하나님이 어떠한 방식으로 이 전쟁에 개입하셨는지를 이렇게 묘사합니다.

    5:13절을 보면 “여호와께서 용사를 치시려고 강림하셨도다”라고 합니다. 이스라엘과 가나안과의 싸움에 하나님이 개입하십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의 용사가 되셔서 이스라엘의 적들과 싸웁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강림이 어떻게 이루졌을까요? 또한 용사되신 하나님의 무기는 무엇이었을까요? 철병거 구백승으로 무장한 가나안 대군이 이스라엘을 공격하고 있는데, 그들과 대적해 싸우는 여호와 하나님의 무기는 무엇일까요?

    사사기 저자는 하나님이 이 전쟁에 개입하는 방식에 대해, 하나님의 무기에 대해 이렇게 묘사합니다. 사사기 4:13-14절, 5:4-5절, 19-21절을 봅시다. 이 단락이 무엇을 뜻하는가? 살펴봅시다.

    시스라가 모든 병거 곧 철병거 구백승과 자기와 함께 있는 온 군사를 이방 하로셋에서부터 기손강으로 모은지라. 드보라가 바락에게 이르되 일어나라 이는 여호와께서 시스라를 네 손에 붙이신 날이라 여호와께서 너의 앞서 행하지 아니하시느냐 이에 바락이 일만명을 거느리고 다볼산에서 내려가니 (4:13-14절)

    여호와여 주께서 세일에서부터 나오시고 에돔 들에서부터 진행하실 때에 땅이 진동하고 하늘도 새어서 구름이 물을 내렸나이다. 산들이 여호와 앞에서 진동하니 저 시내산도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 앞에서 진동하였도다(5:4-5절)

    열왕이 와서 싸울 때에 가나안 열왕이 므깃도 물 가 다아낙에서 싸웠으나 돈을 탈취하지 못하였도다. 별들이 하늘에서부터 싸우되 그 다니는 길에서 시스라와 싸웠도다. 기손강은 그 무리를 표류시켰으니 이 기손강은 옛강이라 내 영혼아 네가 힘 있는 자를 밟았도다.(5:19-21절)

    철병거 구백승으로 무장한 시스라의 대군은 기손강가에 모여 있습니다. 그리고 드보라와 바락의 변변찮은 군대는 다볼산 위에 있습니다. 이 기손강가는 매우 독특한 지형의 땅입니다. 이 기손강의 주변에는 여러 산들과 언덕들이 둘러 쌓여 있는데, 그 중의 하나가 다볼산입니다. 그런데 비가 오지 않는 건기에는 기손강가는 마른 땅이 되어서 사람이 오고 갈수 있는 평지가 됩니다. 그리고 비가 많이 오는 우기에는 사방에 둘러쌓인 산과 언덕들로 인해 사람이 오고 갈 수 없는 거대한 강이 됩니다. 이것이 기손강입니다.

    오늘날에도 아프리카의 어떤 지역처럼 우기와 건기가 뚜렷이 구분이 되는 지역에는 이런 현상이 있지요. 비가 오지 않을 때에는 강바닥이 다 드러나서 평지처럼 보이다가 우기가 되어 비가 억수로 쏟아지면 순식간에 거대한 강으로 변하는 지역이 있습니다. 바로 이런 지역이 기손강가입니다.

    그런데 지금 시스라가 철병거 구백승을 포함한 많은 군대를 이끌고 기손강가에 진을 친 것을 보면 이 때의 기후는 건기였던 것 같습니다. 우기에는 큰 강으로 변하기 때문에 강가에 군대를 모을수가 없지요.

    자, 이 상황을 상상해 보십시오. 막강한 시스라의 대군이 지금 기손강가에 모여 있습니다. 강력한 무기로 무장한 정예군들입니다. 그리고 다볼산에는 이스라엘의 군대가 숨어 있습니다. 변변한 무기도 제대로 갖추지 않은 열악한 군대들입니다. 드보라와 바락은 상황의 절대적 약세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이곳까지 군대를 이끌고 왔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해야 할까요? 4:14절을 보면 드보라가 바락에게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일어나라 이는 여호와께서 시스라를 네 손에 붙이신 날이라 여호와께서 너의 앞서 행하지 아니하시느냐” 드보라가 바락에게 어서 내려가서 시스라를 치라고 합니다. 그리고 여호와께서 이미 행했다고 합니다.

    즉 13절(시스라가 대군을 기손강가에 모으고 이스라엘군은 다볼산에 숨어 있는 상황)과 14절의 사이에 무슨 일이 생긴 것입니다. 그 일을 드보라는 바락에게 “여호와께서 너의 앞서 행하신 일”이라고 하면서 일어나서 시스라를 치라고 합니다.

    그렇다면 여호와께서 행하신 일이 무엇일까요? 여호와께서 바락보다 앞서 행하신 일이 무엇일까요? 바로 그 여호와의 큰 일을 묘사하는 구절이 5:4-5절, 19-21절입니다.

    즉 이 건기의 시기에 갑작스러운, 전혀 예상치 못했던 번개와 폭풍을 동반한 엄청난 폭우가 쏟아집니다. 산이 진동할 정도로 엄청난 양의 폭우가 쏟아집니다. 하늘이 컴컴해지고 하늘이찢어진 것처럼 물이 쏟아져 내립니다. 사사기 저자는 그 비의 엄청남을 하늘이 새었다고 표현하고 그 비로 인해 땅이 진동했다고 합니다.

    전혀 예측할 수 없었던 폭우로 인해 기손강가에 있었던 시스라의 군대는 대혼란에 빠집니다. 상류에서 갑작스럽게 밀려드는 엄청난 강물로 인해 혼비백산의 상태에 빠집니다. 그들이 그토록 자랑스러워했던 철병거 구백승도 이러한 홍수 앞에서는 아무런 힘도 발휘하지 못하고 강물에 흘러 떠내려 갑니다. 순식간에 벌어진 일입니다. 그들의 자랑스러운 무기와 용사들이 이스라엘의 용사이신 여호와 하나님의 무기인 번개와 폭우 앞에서 무용지물이 되어 버립니다. 아무런 힘도 쓰지 못하고 강물에 떠내려 갑니다. 이스라엘 사람들로 하여금 대로를 나두고 소로로 다니게 만들었던 그 무시무시한 무기와 용맹스러운 군인들이 여호와 하나님의 무기 앞에서는 먼지만도 못한 존재로 전락합니다.

    하나님이 가나안의 야빈, 시스라, 철병거 구백승으로 무장한 그 막강한 군대와 친히 전쟁을 치루셨습니다. 5:13절에 “여호와께서 나를 위하여 용사를 치시려고 강림하셨도다”라고 노래하듯이, 하나님이 번개와 폭우라는 무기를 가지고 싸우는데 그 누가 용사이신 하나님을 대적하겠습니까? 그 누가 그 앞에서 그들의 무기를 순간이라도 사용할 수 있겠습니까? 그 누구도 당할 수 없지요.

    이제 이 번개와 폭우가 그치고 기손강가가 드러나자 바락이 군대를 이끌고 이미 강물에 휩쓸러 가서 그 흔적조차 찾기 힘든 시스라의 군대를 치러 가는 장면이 4:14-16절입니다.

    그리하여 이 전쟁은 이스라엘의 승리로 끝납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이스라엘의 용사로서 전쟁에 친히 개입하신 결과로 이스라엘은 가나안의 막강 군대를 물리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바락과 드보라는 하나님의 말씀과 약속을 믿고 순종하여 군대를 모았고, 여호와가 용사가 되셔서 싸우시는 그 전쟁에 참여하여 여호와의 승리를 맛보는 영광스러운 경험을 하게 됩니다.

    이제 우리는 사사기 저자가 이 전쟁의 승리를 묘사하는 방식을 살펴보아야 합니다. 사사기4:15-16절, 그리고 23-24절을 보도록 하겠습니다.

    4:15 여호와께서 바락의 앞에서 시스라와 그 모든 병거와 그 온 군대를 칼날로 쳐서 패하게 하시매 시스라가 병거에서 내려 도보로 도망한지라
    16 바락이 그 병거들과 군대를 추격하여 이방 하로셋에 이르니 시스라의 온 군대가 다 칼에 엎드러졌고 남은 자가 없었더라  

    4:23 이와 같이 이 날에 하나님이 가나안 왕 야빈을 이스라엘 자손 앞에 패하게 하신지라
    24 이스라엘 자손의 손이 가나안 왕 야빈을 점점 더 이기어서 마침내 가나안 왕 야빈을 진멸하였더라

    4:15절과 16절의 차이, 4:23절과 24절의 차이를 주목하십시오. 각각 시스라의 군대를, 그리고 가나안 왕 야빈을 이긴 것에 대한 묘사입니다. 그런데 같은 사건, 같은 상황에 대한 표현을 15, 23절에서는 여호와 하나님의 행하심으로 표현하고, 16, 24절에서는 바락 혹은 이스라엘의 행함으로 표현합니다. 그렇다면 사사기 저자는 왜 이렇게 표현했을까요?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가나안 땅을 주실 때, 그 땅은 아무도 거하지 않는 불모지가 아니었습니다. 이스라엘이 정착하기 전에 이미 가나안 땅에는 강성한 민족들이 거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이스라엘에게 가나안 땅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시면서 그들에게 명령합니다. “가나안 족속들과 타협하지 말고 내가 너희들에게 주겠다고 약속한 땅에서 다 쫓아내라”

    그런데 가나안 족속은 이스라엘보다 훨씬 더 강합니다. 군사들도 훈련이 더 잘 되어 있고, 무기도 더 월등합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이스라엘은 가나안 족속을 물리칠 수 있을 것인가? 그 의문에 대해 하나님은 율법을 잘 지키고 하나님의 계명을 잘 청종하고 준행하는 것이 승리의 길이라고 가르칩니다. 즉 주님의 명령과 말씀을 잘 따르면서 그 말씀이 가르쳐 주는 대로 싸우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 전쟁은 하나님이 하시는 하나님의 전쟁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자신의 전쟁인 이 전쟁을 이스라엘 백성을 통해서 하십니다. 즉 이 가나안과의 전쟁은 하나님의 전쟁인 동시에 이스라엘의 전쟁입니다. 어느 부분은 하나님이 하시고, 어느 부분은 이스라엘이 하는 식이 아니라 하나님과 이스라엘이 동시에 전쟁을 하는 것이지요.  

    그래서 사사기 저자는 드보라 이야기를 마무리지으면서 이 전쟁을 두 관점에서 동시에 묘사하는 것이빈다. 이것은 오늘날 하나님의 나라에 속해서 악한 세력과 영적인 전쟁을 치루는 신자들에게 아주 중요한 신앙의 원리를 가르쳐 줍니다.

    드보라와 바락은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고 이 시스라와의 전쟁이 하나님께 속한 전쟁이라는 믿음을 갖고 있는데, 그 믿음이 그들을 가만히 주저 앉게 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싸우신다고 했으니까, 하나님이 알아서 다 하신다고 했으니까 우리는 앉아서 굿이나 보고 떡이나 먹자.” 식이 아닙니다. 가만히 앉아서 지켜보는 것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이 전쟁에 참여합니다.

    믿음이란 무엇입니까? 하나님이 역사하시고 이 온 우주를 주관하시고 우리의 구원을 예정하시고 이 세상에 대한 절대 주권을 가지고 섭리가운데서 이 세상을 다스린다는 믿음이 우리를 어떻게 합니까? 이러한 신앙이 우리를 아무 것도 하지 않는, 가만히 앉아만 있는 사람들로 만들지는 않습니까? 하나님이 역사하시고 일하신다는 우리의 신앙이 우리를 어떻게 만듭니까?

    이 문제를 “하나님의 절대 주권과 인간의 자유의지”라는 교회사의 오래된 명제로 확대해서 살펴 보면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하나님의 절대 주권을 강조했던 일부 칼빈주의자들 중에 이런 극단적인 사람들이 있습니다. 칼빈이 가르쳤던 하나님 절대 주권 사상, 하나님의 예정에 대한 가르침을 잘못 적용을 해서 선교에 소홀히 했던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하나님이 다 예정하셨는데 무엇하러 선교를 하는가 식의 극단적인 주장을 한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종교 개혁 이후에 로마 천주교가 남미라든가 아시아 쪽에 선교사를 파송하고 교세를 확장할 때 이 극단적인 칼빈주의자들과 그들의 영향을 받은 교회들은 그냥 유럽 내에서만 머물렀지요. 그리고 개신교 내에서도 칼빈주의자들보다는 오히려 경건주의를 따르는 신자들이 선교에 힘을 썼던 것을 볼수 있습니다. 물론 이것이 그러한 이유의 전부는 아니지만 부분적인 영향은 끼쳤던 것 같습니다.

    이들은 지금까지 우리가 살펴본 드보라 이야기식으로 이야기하자면 15절 23절의 신앙에만 머무른 것입니다. 16절 24절까지 나아가야 하는데 그렇지 못했습니다. 매우 잘못된 신앙입니다.

    또 하나의 예를 들면 “워치만 니”라는 분의 사상을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이 분은 한국 교회에 알게 모르게 상당한 영향력을 끼친 분입니다. 긍정적인 영향도 끼쳤고 부정적인 영향도 끼쳤습니다. 긍정적인 영향은 칭의와 관련된 구원에 대하여 아무 명쾌하게 설명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부정적인 영향은 성화를 설명하는데 있어서도 칭의와 동일하게 설명했다는 것이지요.

    그는 하나님의 은혜로 인한 신분의 즉각적인 변화(칭의)와 신분의 변화를 받은 자가 그 수준에 있어서 하나님의 거룩한 성품까지 자라가야 하는, 즉 구원의 완성을 위하여 요구되는 거듭난 신자의 책임과 노력의 과정을 구별하지 않았습니다.

    한 마디로 이 분은 “하나님을 믿기만 하면 하나님이 다 알아서 해준다”식의 신앙을 가르쳤지요. 인간의 노력, 행위, 의지는 필요 없다고, 신앙에 있어서 방해거리로 가르쳤습니다. 그런 것은 하나님이 일하시는데 방해가 된다고 가르쳤습니다. 그래서 결과적으로 믿음과 행위를 서로 대립 구조로 만들어 버렸습니다. 그리고 이런 가르침의 아류들이 “믿기만 하면 된다, 기도만 열심히 하고 하나님의 역사를 기다리자”식의 신앙으로 가르치기를 한 것이지요.

    물론 듣기에는 아주 멋있어 보이고 믿음이 있어 보이고 하나님을 전적으로 의지하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속았지요. “하나님만을 의지하고 하나님만을 전적으로 믿자”는데 누가 시비를 걸겠습니까? 얼마나 폼 나고 명분이 있습니까? 오히려 시비거는 사람들이 이상하게 취급받게 되어 있지요.

    그러나 그 사상의 논리를 따라가 보면 “사람의 할 일” “사람의 책임”이 없어진다는 것입니다. 다 믿음으로 때우고 다 기도로 때우지 신자로서 마땅히 훈련해야 할 책임과 노력은 안 보입니다. “하나님! 도와주십시오”만 있지 자신은 아무 일도 하지 않습니다. 기도만 하면, 믿음만 있으면 저절로 다 이루어지는 줄 압니다. 사사기 4장식으로 이야기하자면 16, 24절이 없어지는 것입니다.

    이것은 성경이 이야기하는 믿음이 아닙니다. 믿음이 있으면 병을 사라지게 하는 것도 아니고 믿음이 있으면 고통이 없어지는 것도 아니고 기도를 하면 내 모든 문제가 만사형통하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믿음이 있으면, 그 믿음을 가지고 내가 가진 병과 싸우는 것이고, 내가 가진 문제와 씨름하는 것이고, 내가 가진 고통과 맞서는 것입니다.

    믿음이 강하다고 하여 내 삶의 문제가 덮어지거나 없어지지 않습니다. 믿음이 강하다고 해서 문제들이 피해가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 문제에 부딪쳐서 내 노력과 의지를 총 동원하여 열심을 다하여 싸우게 만드는 것이 믿음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들이 하나님의 자녀로 자라가는데 있어서 무엇보다 명심해야 할 것은 여러분이 마땅히 여러분의 손과 발과 머리를 움직여서 해야 할 일을 기도로, 믿음으로 때우지 말아야 합니다.

    믿음이 연약하다면 그 연약한 믿음을 강하게 해달라고 기도하는 것으로 믿음이 자라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여러분의 삶에 적용하고 그 말씀대로 순종하고 산다는 것이 도대체 무엇인가를 직접 체험하는 것으로 믿음은 자라는 법입니다.

    성경을 이해 못하면 “말씀을 이해하게 해주세요”라고 기도하는 것으로 이해되는 것이 아니라 눈을 부릅뜨고 성경을 보고 묵상하고 설교 시간에 졸리면 대바늘로 허벅지를 찌르면서라도 설교를 잘 들으려는 그 열심과 노력과 의지가 말씀을 이해하게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여러분의 책임입니다.

    “이웃을 불쌍히 여기는 마음을 주십시오”라고 기도하는 것으로 이웃을 불쌍히 여기게 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삶의 현장에 직접 참여하고 여러분의 가진 것을 내어 놓고 돌보는 것으로 이웃을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 생기는 것입니다.

    “하나님! 제가 교회에 올 때마다 저로 인해 성도들이 기쁨을 누리게 해주십시오!”라고 기도하는 것으로 성도들이 기쁨을 누리는 것이 아니라 여러분이 교회에 올 때 마다 그 차가운 얼굴 표정, 꽉 다문 입술을 입을 찢어서라도 미소를 지으며 부드러운 표정을 만들려는 그 노력과 의지가 여러분으로 인해 성도들이 기뻐하게 되는 것입니다.

    “제가 가진 물질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사용하게 해주세요”라고 기도하는 것으로 여러분의 돈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쓰여지는 것이 아니라 오늘 당장 집에 가서 가계부를 펴놓고 구체적으로 우리 가정의 돈이 어떻게 사용되었는가, 내가 얼마나 이웃을 위해서, 교회의 필요를 위해서, 선교와 구제를 위해서 사용했는가를 구체적으로 점검하고 사치와 낭비하는 곳에 사용하지는 않았는지를 점검하고, 구체적으로 액수를 정하고 도울 곳을 정하는 것으로 여러분이 가진 돈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쓰여지는 것입니다.

    제가 지금 기도나 믿음을 부정하는 것이 아닙니다. 믿음과 기도를 신자가 마땅히 해야 할 책임과 노력을 하지 않고 하나님께 떠넘기는 식으로 동원하는 것에 대해 반대하는 것입니다. 기도나 믿음은 그 자체로 따로 놀지 않습니다. 기도란 신앙의 전투를 하는 와중에 힘의 공급을 얻는 수단입니다. 신자로서의 책임을 다하고 하나님이 나에게 허락하신 것을 모두 동원해서 신자로서의 삶을 살아가는 그 노력과 의지의 현장에서 드디어 기도가 나오는 것입니다.

    “하나님! 도와주십시오, 하나님 힘 주십시오, 하나님 없이는 아무 것도 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셔야 이 세상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라고 기도가 나오는 것입니다. 이런 기도는 신자로서 살지 않고서는 나올 수 없는 기도입니다. 즉, 신자로서 살아갈 때 필연적으로 나오는 것이 기도이지 신자로서의 책임과 노력은 버리고 그저 기도만 하는 것은 다 헛된 것들입니다.

    흔히 기도를 “숨쉬는 것”으로 비유하죠? 사람이 숨을 못 쉬면 죽습니다. 기도가 그만큼 중요하다는 뜻이지요. 기도하지 않는 신자는 상상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숨쉬는 것이 중요하다고 해서 숨쉬는 것을 삶의 목적이라고 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숨쉬는 것으로 사는 것을 때우는 사람은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믿음으로, 기도로 신자로서의 삶을 때워서는 안됩니다.

    예수님이 이런 비유를 하셨습니다. 마태복음25:14-30절에서 달란트 비유를 하셨습니다.

    이 달란트 비유에서 표면적으로 보자면 누가 믿음이 제일 강한 것 같습니까? 한 달란트 받은 자 아닙니까? 한 달란트 받은 자의 믿음은 어떤 믿음입니까? 24-25절입니다.

    “한 달란트 받았던 자도 와서 가로되 주여 당신은 굳은 사람이라 심지 않은데서 거두고 헤치지 않은데서 모으는 줄을 내가 알았으므로 두려워하여 나가서 당신의 달란트를 땅에 감추어 두었었나이다 보소서 당신의 것을 받으셨나이다”

    무슨 말입니까? “저는 당신이 다 하실 줄 믿었습니다. 제가 감히 어떻게 당신의 하시는 일에 참견을 하겠습니까? 저는 당신의 능력을 믿으면서 그 돈을 그냥 두었습니다.” 이것이 이 한 달란트 받은 사람의 믿음 아닙니까?
    그러나 이 사람의 믿음은 여지없이 정죄받습니다. 악하고 게으른 종이라고 책망을 받습니다. 이 주인의 능력을 믿고 아무 일도 하지 않았던 이 사람에 대해 하나님은 악하고 게으른 종이라고 책망합니다.

    저는 여러분 중에서 이런 사람이 있을까 두렵습니다. 여러분이 마땅히 해야 할 일을 소위 믿음이라는 명분으로, 기도로 때우면서 자족하는 분이 있을까 두렵습니다. 더구나 그런 사람들이 믿음의 모범자로 비추어지지는 않는지 두렵습니다.

    아무쪼록 오늘 말씀을 통해서 가나안과의 전투를 이 사사기 저자가 4:15,16절, 4:23,24절 식으로 표현한 의도를 제대로 확인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절대 주권에 대한 신앙, 하나님이 우리를 보호하시고 우리를 끝까지 책임져주신다는 그 믿음이, 창세로부터 우리를 예정했다는 믿음이, 세상과의 영적 전투에서 승리를 약속하신 그 분의 말씀에 대한 신뢰가 우리의 할 일을 없애고 우리의 노력과 의지와 책임을 없애는 잘못된 방향으로 가지 않기를 바랍니다. 오히려 하나님의 절대 주권에 대한 신앙으로 인해 믿음을 가지고 담대하게 이 세상의 악에 맞서서 싸워야 할 것입니다. 여러분을 공격하는 대적자들을 담대하게 물리쳐야 합니다. 여러분이 가진 것을 다 동원해서 신앙을 가진 자의 삶을 사셔야 합니다. 용사이신 하나님이 우리의 대적자를 향하여 번개와 우뢰와 폭우를 동반하여 싸우십니다. 이 싸움에 여러분이 가진 모든 것을 총동원하여 참여하십시오. 하나님의 승리가 여러분의 승리로 주어질 것입니다. 이 복된 삶이 여러분에게 있기를 주의 말씀에 힘입어 권면합니다.

    우리교회 담임교역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