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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사속의 명설교

    삶의 메시지

    페이지 정보

    성경본문: 호 1:1-9 | 설교자: 강신원

    본문

    인류의 역사는 유구합니다. 수많은 종족들이 명멸했습니다. 그럼 지금까지 생존한 인간들이 가장 힘세고 우수한 종족들이었는가?
    인류학자의 이야기는 그렇지 않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가장 지구환경에 잘 적응한 종족들만 지금까지 남아있다고 말합니다.
    사실인 것처럼 믿어집니다. 요즘 우리나라에서는 호랑이가 카메라 렌즈에 잡혔다는 보도로 인해서 그 진위논란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한반도 서식 동물 중 가장 힘세고 가장 용맹스런 호랑이가 가장 번성할 것 같은데 지금은 한 마리도 살지 않는다는 말과 또 카메라 렌즈에 잡혔다는 이 일로 인해서 많은 사람들의 관심이 집중되는 것 보면 가장 용맹해도 가장 날쌔도 가장 힘이 세도 소용이 없고 환경적응 잘한 오히려 적은 동물들이 더 번성하는 것 우리가 확인하게 되어집니다. 그렇다면 이 환경적응만 잘하면 이 땅에서 번성할 수 있을 것인가?
    이 말에 큰 함정이 있음을 기억해야 됩니다. 무조건 환경 적응만 잘하면 되는 것 아닙니다. 절대 가치기준이 흔들리지 않은 채 환경적응을 해야 합니다.
    다시 말하면 역사의 주인 되시는 여호와 하나님의 절대 주권을 인정하고 하나님의 뜻에 따라 살 때만 자신과 후손의 삶은 비로소 보장 받을 수가 있습니다.
    페루의 새 대통령 \알레한드로 폴레도\ 그는 그 유명한 마추피추 산장에서 두 팔을 펼치고 대통령 취임을 했습니다.
    460여 년 만에 그 원주민 피를 이은 폴레도씨가 마침내 페루의 통치자가 되었습니다. 마추피추는 하늘의 정원 또 공중도시로 불리우는 수수께끼의 잉카제국의 유적입니다.
    해발 2천2백80m 산꼭대기에 세워진 계단식 성곽과 그 터입니다.
    누가 언제 왜 이런 신비스러운 건축물을 어떻게 세웠는지 어떻게 해서 그곳에 살던 모든 사람들은 다 멸절된 채 그 유적의 흔적만 남아 있는지 도무지 분명하지가 않습니다.
    그런데 이 잉카제국은 12세기부터 남미 안데스 산맥의 원주민들의 나라로 커가면서 지금의 페루 전역은 물론이고 칠레, 에콰도르에 걸치는 인구 1200만 명의 대제국이 되어서 해안을 따라 33,600km에 이르는 도로를 개척했습니다.
    또 안데스 산맥을 따라서 그와 같은 길이의 또 다른 길도 만들만한 문명을 소유했던 거대한 제국이었습니다.
    그러나 1535년 소수의 스페인 군대에 의해 완전히 정복을 당하고 맙니다. 왜냐면 파워게임, 즉, 왕권다툼으로 내분과 암투와 국력소모가 거대 제국 멸망을 재촉했기 때문입니다. 강대하다고 제국을 이루었다고 생존할 수 있는 것 아닙니다.
    그런데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을 지킨다 하더라도 절대적으로 신뢰하고 청종해야만 합니다. 환경에 적응해야 한다고 하나님의 말씀을 상대화하고 이것저것 다 포용한다면 그것은 스스로 멸망을 자초할 뿐입니다.
    그런데도 인간은 끝없는 욕망의 노예의 탈을 벗어던지지 못해 잘 살게 되면 더 잘 살고자 하는 과욕에서 어리석은 행동을 답습만 합니다.
    하나님의 선민을 자부하던 이스라엘 민족이 그 대표적인 예입니다. 주전 8세기 때입니다. 이스라엘 민족국가는 정치, 군사 면에서 크게 발전해 번영을 이루었습니다. 왜냐하면 이스라엘의 항상 위협적 존재이던 수리아가 패망함으로 그 수도 다메섹을 이스라엘 수중에 넣을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 다메섹이라고 하는 것은 무역통입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은 그 무역의 중심지가 되고 통로가 되어지는 이 다메섹을 장악한 연후에 무역권을 손에 넣어지게 됩니다. 상업이 발달됩니다. 날로 번영할 수가 있었습니다. 문화적으로도 우위를 점할 수가 있게 되어집니다.
    자연히 부유한 상인 계층의 사람들이 늘어나게 되어집니다. 그런데 재물을 축적하고 난 다음부터는 사치와 방종의 무리들이 늘어나게 되어집니다. 부자는 날이 갈수록 점점 부자가 되어지는데 가난한 사람들은 날이 갈수록 가난해 지는 모순의 사회가 심화됩니다. 농민들 그리고 기술 가지고 사는 장인들이 모두 부자들의 지배 하에 들어가게 됩니다.
    착취의 대상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인 율법은 \토지는 하나님의 소유\이기 때문에 영영히 팔 수 없다고 규정합니다.
    또 하나님의 백성들 간에는 서로 주종관계는 불가능합니다. 즉, 모두가 다 하나님의 자녀인데 누구는 군림하고 누구는 그 밑에서 지배를 당해야 하는가.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은 허용하지 아니합니다. 그런데 이방종교 사상에 물들어가기 시작하더니 하나님의 말씀을 경홀하게 여기고 저들의 하는 모든 것들을 모방하게 되어집니다.
    결국 이방종교 사상은 일찍부터 이스라엘 백성들의 신앙심을 좀먹기 시작하더니 이제는 저들로 하여금 돌이킬 수 없도록 만들어버리고 맙니다.
    430년 동안 바로 학정 속에 얼마나 고달픈 삶을 저들이 살았었습니까? 그러나 그 노예와 같은 고통 속에서 하나님은 기적으로 저들을 구원해 주지 않았었습니까? 또 저들이 40년동안 광야에서 유리방황할 때 저들은 발이 부르트지 않았습니다.
    또 옷이 헤어지지 아니했습니다. 저들은 배가 고프면 하나님께서 내려주시는 메추라기나 만나로 배를 부를 수 있었습니다.
    아무리 목이 말라도 우물을 파지 않았습니다. 저들은 반석을 치기만 하면 생수가 콸콸 쏟아져 목을 시원하게 축일 수 있게 되어졌습니다.
    그런데 저들은 가나안 새로운 문화, 사회 속에 들어와서 어떻게 적응할까 하는데 골몰하게 되어집니다.
    좀더 깊이 생각하고 하나님의 구원의 은총을 회고만 해보면 하늘을 쳐다보며 구원의 손길을 기다릴 수가 있었을 것입니다.
    또 새로운 농경문화에 적응하기 위한 하나님의 주시는 지혜로 얼마든지 새로운 삶의 터전은 윤택하게 꾸려 나갈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저들은 가나안 원주민들을 바라보며 저들에게 미혹을 당합니다. 저들이 섬기는 바알신은 비와 풍요와 다산을 보장하는 신으로 여기며 섬기고 있었는데 하나님의 백성인 이스라엘도 저들이 섬기는 바알을 따라가면서 똑같이 하늘에서 비가오기를 구했고 풍요로운 삶을 누리기를 원하며 많은 자손들의 번영을 번창을 바알신에게 구했습니다.
    그렇다고 여호와 하나님 섬기는 일을 저들이 저버린 것 아닙니다. 여호와 하나님과 바알을 동시에 섬겨서 여호와 하나님에 대한 의리도 지키고 바알을 통해서 실리도 챙기기로 한 것입니다. 편의주의적인 종교혼합주의에 빠져버리고 말았습니다.
    일찍이 엘리야 선지자를 통해서 \어느 때까지 둘 사이에서 머뭇머뭇하려느냐. 만을 여호와가 하나님이면 그를 따르고 바알이 만일 하나님이면 그를 따를찌니라.\
    질타했던 말씀을 저들은 잊어버렸습니다.
    얼마 전 서울 강남 어느 식당 종업원으로 일하는 37세의 김모씨 횡재한 일을 보면서 나도  복권 좀 살걸 그랬구나 하는 분 있으신지 모르겠습니다. 복권 당첨사상 최고액인 25억원을 그는 받을 수 있게 되어졌습니다. 이 복권에 당첨되어 일약 백만장자가 아니라 억만장자가 된 사람들 얼마나 행복하게 살고 있을까. 미국의 한 신문사가 조사해 봤습니다.
    천만불, 우리나라 돈으로 132억원 이상 당첨한 사람들 조사해 보니까 반수 이상이 하나같은 행동을 나타냅니다. 먼저 새차를 뽑습니다. 그리고는 새집으로 이사를 갑니다.
    그리고 참으로 놀라운 일은 새 배우자를 선택합니다. 지금까지 살던 아내 내버립니다. 혹은 남편을 버립니다. 어떤 사람은 복권보다 더 많은 위자료를 주면서까지 이혼들을 했다는 결과까지 있습니다.
    이 천만불 이상 복권당첨된 지 10여 년 지난 사람들을 대상으로 또 흥미를 가지고 조사를 해봤습니다. 복권에 당첨되기 이전보다 오히려 당첨된 이후에 불행하게 되었다고 대답한 사람들이 놀랍게도 64%입니다. 비슷하던지 조금 더 행복해졌다고 대답한 사람은 36%에 불과합니다.
    그런데 이런 사람은 예외 없이 복권을 탔음에도 불구하고 이전과 다름이 없는 똑같은 생활을 한 사람들입니다. 아니면 이 복권 중에 상당한 액수를 자선단체에 기부를 한 사람들, 그저 복권에 당첨되기 이전과 같은 생활을 하거나 조금 행복을 누리며 산다고 대답을 했다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보면 미국 복권 역사에서 가장 큰 수혜자는 당첨자들이 아닙니다. 18세기 중엽 미국 지방자치단체들이 사회기반시설 마련하기 위해 복권을 발매하기 시작했습니다. 그 수익금으로 제일 먼저 시작한 것은 대학을 만드는 일이었습니다.
    세계적인 명문대학인 예일대학, 하버드대학, 콜롬비아대학, 브라운 대학 같은 곳은 이 이익금으로 만든 것입니다. 또 이 복권을 탄 사람들이 자기가 받은 것을 자기가 쓰지 않고 미국의 번영과 인류의 평화를 위해 기여할 인재들을 양성하는 대학의 기금을 위해서 내놓았기 때문에 이 대학들은 세계적인 명문으로 성장할 수 있게 되어졌습니다.
    우리는 일확천금에 현혹되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이마에 땀을 흘리며 살기를 명하십니다. 일하기 싫어하거든 먹지도 놀지도 말라고 하셨습니다.
    성실하게 매일 매일 자기 삶에 최선을 다하는 사람을 하나님은 기뻐하십니다. 요행이나 바라는 사람 오히려 화만 자처할 위험이 크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됩니다. 하나님의 주권만을 인정하며 최선을 다하는 삶 우리는 영위해야 됩니다.
    전도서 3:22에 보면 \내 소견에는 사람이 자기 일에 즐거워하는 것보다 나은 것이 없나니 이는 그의 분복이라\고 나와 있습니다.  
    전도서 9:9 이하에는 \네 헛된 평생의 모든 날 곧 하나님이 해 아래서 네게 주신 모든 헛된 날에 사랑하는 아내와 함께 즐겁게 살찌어다 이는 네가 일평생에 해 아래서 수고하고 얻은 분복이니라 무릇 네 손이 일을 당하는대로 힘을 다하여 할찌니라\ 권면하는 말씀을 귀기울여 청종해야 됩니다.
    여호와 하나님과 바알신을 함께 섬겨서 아니면 여호와 하나님을 의지하고 또 다른 한편으로 요행을 바라는 마음으로 행복을 기다린다면 그 삶은 결코 보장받지 못한다는 것을 깊이 명심해야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정치, 경제, 군사적으로 크게 번영을 이루었을 때 영적으로만 타락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도덕적으로도 타락했습니다.
    온 사회는 심각한 부패에 말려들게 되어집니다. 그런데 이러한 때 참으로 납득하기 어려운 기이한 일을 여호와 하나님은 호세아에게 명하십니다. \는 가서 음난한 아내를 취하여 음난한 자식들을 낳아라\하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내가 거룩하니 너희들도 거룩하라. 그렇게 권면하지 아니하셨습니까? 호세아란 구원이란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는 의롭고 경건하고 구별된 거룩한 삶을 살았기에 하나님은 그를 택해 선지자로 예언자로 삼으신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일찍이 창녀나 기생 또 어떤 이유로든 남편과 함께 살지 않는 여인과는 제사장들은 결혼하지 말라고 말씀하신바 있으십니다. 그런데 어떻게 호세아에게는 이런 창녀와 결혼하라는 말씀입니까? \이 나라가 여호와를 떠나 음난함이니라\ 호세아서를 보면 여호와 하나님과 이스라엘은 결혼관계입니다.
    부부관계입니다. 2:7에 보면 여호와 하나님이 본 남편으로 불리워지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호세아 신학에 의하면 종살이하던 애굽 땅에서 이스라엘과 하나님 사이에 눈이 맞았습니다. 척박한 광야에서 달콤한 허니문을 보내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른바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에 들어와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이 남편인줄도 잊어버린 것처럼 정부인 바알신과 정을 통하게 되어집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이런 사실을 두 눈을 뜨고 똑똑이 바라보고 뉘우치게 하시게 위해 선지자 호세아로 디블라임의 딸이자 창녀인 고멜과 결혼하라 명하신 것입니다. 이 디블라임은 무화과 떡이라는 것을 상징합니다. 즉, 우상에게 바쳐지는 떡을 의미합니다. 즉, 음난과 쾌락의 상징어가 디블라임입니다.
    그 딸인 창녀 고멜과 결혼해라 말씀하신 것입니다. 호세아의 삶 그 자체 하나님 메시지가 되라는 말씀입니다. 이스라엘을 향하신 하나님의 사랑이 얼마나 극진하신지를 네가 몸소 보여라. 하나님의 사랑은 절대적이십니다. 무조건적이십니다. 하나님의 사람 호세아가 어떻게 창녀인 고멜을 아내로 맞이할 수 있었겠습니까?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은 창녀인 고멜만도 못한 음난했던 인간들임을 호세아의 삶을 통해 보여주게 하시면서 그럼에도 내가 너희들을 사랑한다고 하는 메시지를 드러내라 말씀하신 것입니다. 선지자 호세아는 자신의 삶 자체로 하나님의 메시지 역할을 한 것 여기서 끝나지 아니합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자녀들을 주시고 그 이름까지 지어 주셨습니다. 보통 가정에서 새로운 식구가 태어나면 온 가족이 함께 기뻐하지 않습니까?
    그 이름은 할아버지가 지어 주십니다. 온 가족들의 관심이 그 이름에 쏠립니다. 왜냐하면 그 이름에는 그 가정의 기쁨과 감사, 사랑과 희망이 담겨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호세아의 자녀들을 위해 여호와께서 지어주신 이름, 부당했던 결혼 요구 못지 않게 충격적입니다. 실로 가당치도 않은 이름입니다. 왜냐하면 맏아들의 이름은 \이스르엘\이라 하라 말씀하십니다.
    요즘말로 말하면 \네가 아들을 낳을 텐데, 피바다, 그렇게 이름을 지어라.\하는 말씀입니다. 이스르엘은 이스라엘 동쪽 끝에 자리잡은 도성의 이름입니다.
    이곳은 예후의 반역으로 아합 왕과 이세벨 왕비, 그리고 왕족들이 무참히 살해당함으로 그 땅을 피로 물들였던 곳입니다. 그런데 내가 이스르엘의 피를 예후의 집에 갚으리라 여호와께서는 말씀하십니다.
    지금 호세아는 여로보암 2세의 통치하던 때에 하나님의 말씀을 증언하는 선지자로 부름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여로보암 2세는 예후의 증손입니다. 그런데 이스르엘 골짜기에서 이스라엘의 화를 꺽으리라 여호와 말씀하면서 네 아들의 이름을 이스르엘 이라 지어라.
    즉 여호와 하나님께서 예후의 집과 그 나라를 멸망시키실 것이라는 선언입니다.
    맞아들이란 부모의 가산을 상속받아 장례도 책임지고 가문을 이어가야 하는데 피바다를 연상하는 이름을 지어주라 하시니 이 어찌된 일입니까?
    둘째딸 이름도 섬뜩합니다. \로루하마\라 지어라. 하나님의 자비와 긍휼과 은총이 없다는 말씀입니다. \내가 다시는 이스라엘 족속을 긍휼히 여겨서 용서하지 않을 것이리라\\하는 뜻이 거기 내포되어져 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인 이스라엘, 하나님의 자비와 긍휼과 은혜에 기초할 때 만 존재할 수 있지 않습니까?
    출애굽기 34:6 이하에 보면 \여호와께서 그의 앞에 지나시며 반포하시되 여호와로라 여호와로라 자비롭고 은혜롭고 노하기를 더디하고 인자와 진실이 많은 하나님이로라 인대를 천대까지 베풀며 악과 과실과 죄를 용서하나 형벌 받을 자는 결단코 면죄하지 않고 아비의 악을 자여손 삼, 사대까지 보응하리라\ 선언하셨는데 지금 이스라엘에게 이것을 실행하겠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7절에는 전혀 다른 말씀이 있습니다.
    내가 유다 족속을 긍휼히 여겨 그들의 여호와 하나님이 구원하겠고 활과 칼이나 전쟁이나 말과 마병으로 구원하지 아니하리라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 배성들도 유다 백성들도 똑같은 하나님의 선민인데 어떻게 이스라엘은 멸망하도록 하나님께서 내버려 두실 것이고 유다 백성들은 보호해 줄 것이다, 너희들 칼이나 군대나 마병으로 전쟁하는 것 아니다하는 보장의 음성을 들려주신다는 말씀입니까?
    이스라엘 백성들은 자기들의 무기, 힘을 하나님 대신해 구원의 수단으로 삼았기에 \잘해봐라\ 하나님 내버려 두시겠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유다는 하나님만 전적으로 의지하고 하나님만 바라보았기에 내가 너희들을 대신해 싸워주겠다는 약속, 역사적으로 보면 그대로 성취되어졌습니다.
    유다왕 히스기야 때입니다. 앗수르왕 산헤립이 18만 5천명의 군대를 이끌고 그리고 유다 땅을 침략해 들어왔습니다.
    이 때에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군사적인 방법이 아니십니다. 당신의 사자들로 앗수르의 군대 18만5천명을 다 섬멸시켜 주심으로 유다로 승리하게 하셨습니다.
    그 다음 남유다가 바벨론 느부갓네살 왕에게 멸망당했고 백성들은 다 포로로 붙잡혀 갔지만 바벨론 점령한 바사왕 고레스를 감동시켜 주셔서 이스라엘 백성들로 그토록 그리던 고토로 돌아오게 해 주시기도 하셨습니다.
    싸움의 날을 위하여 마병을 예비하거니와 이김은 여호와께 있느니라. 잠언 21:31말씀입니다. 언제나 진리입니다. 호세아는 막내 아들을 또 낳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그에게 \로암미\라  이름을 붙여라 명하십니다.
    내 백성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나는 너의 하나님이 되지 아니할 것임이라. 말씀으로 말씀을 마쳤습니다. 레위기 26:12에 보면 \나는 너희 중에 행하며 너희의 하나님이 되고 너희는 내 백성이 될 것이라\하셨던 여호와 하나님 아닙니까? 그런데 이제 관계는 끝났다고 선언하십니다. 호세아의 자녀들의 이름을 다시 생각해보면 첫아들 이스르엘은 왕국의 멸망을 의미합니다.
    두 번째 난 딸 로루하마는 여호와의 은혜 상실되었다. 그리고 마지막 아들 로암미는 여호와의 관계단절을 가르칩니다. 하나님의 백성인 이스라엘은 왕이 없어도 살수 있습니다. 여호와의 보호가 없어도 멸망에 대한 두려움 끝없이 시달리게 되지만 생존은 가능합니다. 그러나 여호와 없이는 전혀 존재할 수 없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죄악이 점점 관영해 갈 때 하나님의 심판은 점점 고조시켜 갈 것을 호세아와 그 자녀들 이름으로 하나님은 드러내고 계십니다. 호세아는 결혼만이 아닙니다. 자녀들의 이름도 모두 하나님의 말씀 선포의 도구로 사용됩니다.
    즉, 말뿐이 아닙니다. 자신의 삶으로도 하나님의 메시지를 대변했습니다. 여기서 우리에게 주는 중요한 교훈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언제나 사람들을 쓰실 때에 그의 입만 부르신 것 아닙니다. 그의 삶 전체를 부르신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삶도 하나님 메시지의 도구가 되어야 합니다. 세상 사람들은 하나님의 사람들 그저 예수 믿는 사람들의 입만 주목하지 아니합니다. 그 삶에도 주의를 기울입니다. 삶의 메시지를 원합니다. 그렇다면 나는 지금까지 어떤 삶을 살아왔을까?
    지금 어떻게 살아가고 있습니까? 내 삶이 하나님의 말씀의 도구가 되고 있는지를 살펴봐야 됩니다.
    말의 메시지만 전하려 하면 아무리 애써도 아무런 감동을 남에게 주지 못합니다. 오늘 우리도 호세아처럼 내 삶 전체로 하나님의 메시지를 던지며 살아야 합니다.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다 너희는 세상의 빛이다. 주님 친히 말씀하셨습니다. 사도바울은 우리로 하여금 그리스도의 편지로 그리스도의 향기를 드러내며 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너희들은 신령과 진정으로 영적인 예배를 드리며 살아라. 너희들은 살아 있지만 제단위에 바쳐진 산 제물처럼 생활해라. 우리 육체의 정욕, 세상적인 모든 욕심은 다 십자가에 못 박고 부활하신 주님과 함께 새로운 삶의 모습으로 사람들에게 보여주며 살아라. 명하십니다. 거긴 호세아처럼 고통이 수반될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 삶이 그렇지 못했습니까?
    달걀도 분명히 닭의 새끼임에 틀림없습니다. 수정란일 경우 더욱 그러합니다. 그러나 어미 닭의 목소리를 듣지도 따르지도 못합니다. 그러나 엄마 날개품 아래 20여일 동안 품어졌다가 그 껍질을 깨드리기만 하면 아름다운 병아리 태어납니다. 그리고 엄마의 목소리를 들으며 어미 닭만 따라다니며 생활합니다. 우리도 나 자신의 아집과 고집과 선입견과 편견을 깨뜨려 버릴 때 하나님의 음성을 바로 들을 수 있고, 하나님의 말씀에 메시지 되는 삶, 감동적인 삶을 살수 있음을 기억해야 됩니다.

    노량진교회 담임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