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합의 믿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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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브리서 11장은 기라성 같은 신앙 위인들의 믿음의 발자취입니다. 그 찬란한 신앙 위인들의 성좌 가운데 아주 특이한 인물이 한 사람 자리 잡고 있는데, 그가 바로 오늘 본문에 나오는 라합이라고 하는 여성입니다. 지금까지 살펴본 신앙 위인들이 대부분 남성들이었던 점에 비추어, 라합은 여성이면서 저 뛰어난 신앙 영웅들의 반열에 들어 있는 점에서 특이한 존재라고 아니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라합이 단지 여성이라고 하는 한 가지 사실만으로 특이한 것은 아닙니다.
라합은 선민이라고 자부하는 이스라엘 백성과는 상관이 없는 이방여인이었습니다. 그리고 라합은 보통 여성이 아니라 기생이었습니다. 우리 성경에는 그냥 기생이라고 번역되었으나 70인 역에서는 매춘부라고 번역하였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여인이 어떻게 저 기라성 같은 신앙 위인들의 반열에 들게 되고, 예수님의 족보에 까지 오르는 영예를 얻게 되었을까 참으로 놀라운 일이라 아니할 수 없습니다. 오늘은 바로 이 놀라운 일의 주인공 ‘라합’의 믿음을 살펴보면서 함께 은혜를 사모하고자 합니다.
먼저 본문의 배경이 되는 여호수아 2장을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모세의 뒤를 이어 이스라엘의 영도자가 된 여호수아 장군은 ‘싯딤’이라는 곳에 이르자 두 사람의 정탐꾼을 뽑아서 금성철벽 난공불락의 여리고 성을 정탐하게 합니다. 그리하여 두 정탐꾼은 여리고 성에 들어가 기생 라합의 집에 유숙하면서 정탐 활동을 하려고 하는데, 여리고 사람 중에 두 정탐꾼을 목격한 자가 있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곧 여리고 왕에게 “이 밤에 이스라엘 자손 몇 사람이 땅을 탐지하려 이리로 들어왔나이다.”고 일러바쳤습니다. 여리고 왕은 즉시 라합에게 기별하기를 “네 집에 들어간 사람을 끌어내라. 그들은 이 온 땅을 탐지하러 왔느니라.”고 명령했습니다.
그러나 그 때 기생 라합은 이스라엘의 정탐꾼을 지붕 위에 벌여놓은 삼대 사이에 숨기고서 “과연 그 사람들이 내게 왔었으나…어두워 성문을 닫을 때쯤 되어 나갔으니 어디로 갔는지 알지 못하되 급히 따라 가라. 그리하면 그들에게 미치리라.”고 하여 두 사람의 목숨을 구해주었습니다.
그러한 후 라합은 두 정탐꾼들에게 다음과 같은 말을 합니다. “여호와께서 이 땅을 너희에게 주신 줄을 내가 아노라. 우리가 너희를 심히 두려워하고 이 땅 백성이 다 너희 앞에 간담이 녹나니, 이는 너희가 애굽에서 나올 때에 여호와께서 너희 앞에서 홍해 물을 마르게 하신 일과, 너희가 요단 저편에 있는 아모리 사람의 두 왕, 시혼과 옥에게 행한 일 곧 그들을 전멸시킨 일을 우리가 들었음이라. 우리가 듣자 곧 마음이 녹았고 너희의 연고로 사람이 정신을 잃었나니, 너희 하나님 여호와는 상천하지에 하나님이시니라.”고 했습니다. 이러한 라합의 말과 행동에서 우리는 몇 가지 실로 귀중한 그녀의 믿음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1. 라합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구원하신 소식을 들었습니다.
그녀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어떻게 애굽에서 나오게 하셨으며, 어떻게 홍해를 건너게 하셨고, 강력한 아모리의 두 왕 곧 시혼과 옥을 어떻게 멸망시켰는가를 들었다고 했습니다. 그녀는 이 모든 이적과 기사들을 한번도 자신의 눈으로 직접 목격한 사실이 없지만, 그 놀라운 소식들을 귀로 자주 들었습니다. 그리고 그녀의 믿음은 이러한 들음에서 싹트기 시작했습니다. 듣지 않고서야 어떻게 그녀의 믿음의 행동이 가능했겠습니까? 롬 10:17에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느니라.”고 했습니다. 다시 롬 10:13절 이하를 보면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그런즉 저희가 믿지 아니하는 이를 어찌 부르리요? 듣지도 못한 이를 어찌 믿으리요? 전파하는 자가 없이 어찌 들으리요.”라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모든 사람에게 하나님의 아름답고 복된 소식 곧 복음을 열심히 전파해야만 하는 것입니다.
2. 라합은 하나님의 구원의 소식을 듣고 하나님을 믿었습니다.
라합은 참으로 현명한 여인이었습니다. 그녀는 애굽의 노예였던 한 민족이 거기서 기적처럼 탈출하고 홍해 바다를 육지처럼 건넌 것이나, 40년 간의 광야 생활을 버티어 내고 시혼과 옥의 군대를 전멸시킨 일련의 사건들이, 이스라엘 백성들의 힘만으로 이루어졌으리라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그녀는 이 모든 일들이 이스라엘을 도우시는 하나님의 무한한 능력이었음을 깨달아 알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오늘날 세상 학문을 신봉하는 사람들은 일개의 기생이었던 여인 라합도 상식적으로 알고 있었던 이치를 깨닫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변화시키고, 인간 역사의 모든 영역에 얼마나 많은 영향을 끼친 사실이나, 그의 초자연적 초인간적 능력을 수없이 들어서 알고 있으면서도, 예수 그리스도를 자신의 구주로 믿지는 않습니다. 이 얼마나 어리석고 무지한 인생들입니까? 진정 그들은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고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하는 가련한 자들이라고 아니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기생이었던 라합은 계속해서 들려오는 이스라엘 민족에 관한 소문에서 분명 그것은 상천하지에 홀로 계신 하나님, 그 하나님의 위대한 손길이 있었음을 알았던 것입니다.
배를 타고 강을 건너고 있던 아주 박학다식한 사람이 도중에 사공에게 ‘철학을 아느냐?’고 물었습니다. 사공은 모른다고 대답했습니다.
‘그럼 당신은 인생의 사분의 일을 잃었군요! 그럼 지리학은 아느냐?’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사공은 역시 모른다고 대답했습니다. 그러니까 그 석학은 말하기를 ‘그러면 당신은 인생의 반을 잃었군요!’라고 했습니다. 그 때 갑자기 돌풍이 불어 배가 뒤집히고 두 사람은 강에 빠졌습니다. 사공은 그 석학에게 ‘선생은 헤엄칠 줄 아십니까?’라고 물었습니다. 그 학자는 ‘몰라요!’라고 대답했습니다. 사공은 그 석학에게 ‘그럼 당신은 인생의 전부를 잃었군요!’라고 했다는 풍자적인 이야기가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만일 어느 누가 철학을 논하고 우주 과학을 다 논한다고 할지라도,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 알지 못하면, 그는 저 기생 라합만도 못한 어리석은 인생이요, 결국 자신의 인생 전부를 다 잃을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저 미천한 기생 라합에게는 하나님께 대한 믿음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마치 바다 밑의 보잘것없는 해초와 돌무더기 틈에 살고 있는 조개 속에 박힌 아름다운 진주처럼 보배로운 믿음이었습니다.
3. 라합의 믿음은 행동을 낳았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에 대한 하나님의 놀라운 구원의 소식을 듣고 알고 믿었던 라합은 그 믿음의 당연한 결과로 행동을 낳았습니다. 그래서 왕의 명령도 무서워하지 않고 생명의 위험을 무릅쓰고서 이스라엘의 정탐꾼을 숨겨주었습니다. 우리는 이 일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님을 알아야 합니다. 이스라엘의 정탐꾼을 살려 준 라합은“내가 너희를 선대하였은즉 너희도 내 아버지의 집을 선대하여 나의 부모와 남녀 형제와 무릇 그들에게 있는 모든 자를 살려 주어 우리 생명을 죽는 데서 건져내기로 이제 여호와로 맹세하고 내게 진실한 표를 내라”고 요청하였습니다. 이스라엘의 정탐꾼들은 라합에게 말하기를 “우리가 이 땅에 들어올 때에 우리를 달아 내리운 창에 이 붉은 줄을 매고 네 부모와 형제와 네 아비의 가족을 다 네 집에 모으라. 누구든지 네 집 문을 나서 거리로 가면 그 피가 그의 머리로 돌아갈 것이요, 우리는 허물이 없으리라. 그러나 누구든지 너와 함께 집에 있는 자에게 누가 손을 대면 그 피는 우리의 머리로 돌아오려니와, 네가 우리의 이 일을 누설하면 네가 우리로 서약케 한 맹세에 대하여 우리에게 허물이 없으리라”고 했습니다.
그 말을 듣고 라합은 너희 말대로 할 것이라 하고, 그들을 보내어 가게 하고, 붉은 줄을 창에 매어 달았다고 했습니다. 그러니까 붉은 줄은 이스라엘과 라합 사이의 구원의 약조였습니다. 윌리암 바클레이 같은 주경학자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승리할 확률은 백만분의 일이었다.’고 말했습니다. 그만큼 상황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불리하였습니다. 아무런 무기도 없이 사막을 건너 온 유목민들이 여리고 성을 정복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었던 것입니다. 그러한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라합은 눈에 보이는 현상보다 하나님의 전능하신 능력을 더 신뢰하였습니다. 그래서 라합은 말하기를 “여호와께서 이 땅을 너희에게 주신 줄을 내가 아노라.”고 했고, 그러한 확신에 가득 찬 믿음이 있었기 때문에, 창문에 붉은 줄을 매어 달았던 것입니다.
많은 학자들은 라합이 매어 달았던 붉은 줄은 단순한 약조의 표시만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은 속죄의 피를 예표한 것으로 봅니다. C. VONK 같은 학자는 말하기를 ‘여호와께서 생명, 구속, 정결케 함에 관하여 이스라엘 백성을 가르침에 있어서 사용하신 빛이 붉은 빛이다.’고 했습니다. 일찍이 이스라엘 백성들은 애굽에서 나오게 될 때에 문설주에 양의 피를 바름으로 구원받은 바 있었습니다. 그 때에 바른 양의 피도 물론 장차 오실 예수 그리스도의 피를 예표한 것이었습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의 구속사에서 중요한 피 빛은 이스라엘 역사에서 흐려지지 않고 전승되어 왔습니다. 라합은 이와 같이 깊은 의미가 담겨 있는 ‘붉은 줄’을 즉시 창문에 매어 달았습니다. 이처럼 산 믿음에는 반드시 행위가 따르게 됩니다.
성경에서 그리스도인의 행함을 가장 강력하게 역설한 책은 야고보서입니다. 그 야고보서에서 진정한 행함이 있었던 사람의 예로 주 사람을 말하는데, 곧 한 사람은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이요, 또 한 사람은 바로 기생 라합입니다.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과 함께 믿음을 행함으로 옮겼던 사람의 대표적인 인물로 성경은 라합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약 2:21에 “우리 조상 아브라함이 그 아들 이삭을 제단에 드릴 때에 행함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은 것이 아니냐?”라고 하였고, 약 2:25에 “또 이와 같이 기생 라합이 사자를 접대하여 다른 길로 나가게 할 때에 행함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지 아니하였느냐?”고 했습니다. 성경은 왜 믿음의 대표적인 인물로 아브라함만 말하지 않고 라합도 말하고 있습니까? 어떤 사람은 이 사실을 가리켜 말하기를, 하나님께서 여성도 그처럼 위대한 신앙을 가질 수 있다는 희망과 격려를 주시기 위함이라고도 했습니다.
우리가 성경을 피상적으로 읽을 때 믿음과 행동이 서로 모순되는 것처럼 느낄 수 있습니다. 로마서를 읽어 보면 계속하여 행함으로는 의롭다 하심을 받을 수 없고, 오직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받는다는 말씀이 강조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야고보서를 읽으면 또 분명히 행함으로 의롭다 함을 얻게 된다고 말씀합니다. 그래서 믿음과 행함이 모순되는 것 같지만 ,사실은 전혀 모순되지 않습니다. 믿음이 있으면 행동을 낳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참된 믿음이 있는 성도에게는 성수주일 하는 행동이 따르게 됩니다. 그리고 참된 믿음이 있는 성도에게는 또한 십일조를 바치는 행함이 따르게 되는 것입니다.
요즈음 T.V에 자주 나오는 장경두 목사님이 이런 이야기 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믿음이 연약해 보이는 한 성도에게 세례 문답을 하면서 ‘만일 하나님께서 오늘 당신을 부르신다면 천국에 갈 수 있겠습니까? 라고 물었더니 확신이 가득 찬 어조로 ‘갈 수 있다.’고 대답을 하더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속으로 조금 놀라면서 ‘그러면 만일 공산당이 총을 겨누며 예수 믿으면 죽이겠다고 하더라도 예수를 믿겠습니까?’라고 물었더니 역시 확신 있게 죽더라도 끝까지 예수님을 믿겠노라고 대답을 하더라는 것입니다. 목사님은 다시 한 번 크게 놀라면서 마지막으로 ‘그러면 십일조 생활을 하십니까?’라고 물었더니 ‘아니요’라고 하더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목사님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위해서 순교라도 하겠다는 신자가 어떻게 십일조는 드릴 수 없다는 것인가? 만일 강도가 집에 침입해서 총을 들이대고 돈을 내놓으라고 할 때에 정상적인 사람 같으면 ‘돈은 있는 대로 다 가져가도 좋으니 제발 목숨만은 살려 달라’고 할 것이 아니냐는 것이지요. 그렇지 아니하고 ‘차라리 나를 죽여. 그래도 돈은 절대로 못 내놓아’하는 사람이 있을 수 있겠느냐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을 위해서 죽을 수도 있다는 신자가 십일조 생활도 하지 않는다면, 그 신앙 고백에 진실성이 없다는 말입니다. 참 믿음이 있는 곳에 언제나 반드시 행함이 따르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또 한 가지 라합은 이스라엘의 정탐꾼들에게 구원을 약속받을 때에 자기의 부모와 형제의 구원도 잊지 않고 간청을 드렸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이 정말로 구원받은 사실을 인하여 감사하고 또 그것을 가장 큰 축복으로 여기고 있습니까? 그렇다면 제일 먼저 생각나는 사람이 누구입니까? 사랑하는 여러분의 가족들이 아니겠습니까? 여러분의 불신 가족을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힘을 다하여 그들을 주님께로 인도하시기 바랍니다.
4. 라합의 믿음의 결과
그러면 기생 라합의 믿음과 행함의 결과는 어떠하였습니까? 마침내 여리고 성이 무너지는 날 그녀와 그 집 안에 있었던 모든 가족들은 다 구원을 받았습니다. 여리고가 심판을 당하던 날 라합은 자신과 가족들이 무사하게 되었다는 사실을 인하여 뛸 듯이 기뻐했을 것입니다. 라합은 그의 믿음으로 말미암아 여리고 성의 모든 사람이 멸망하는 중에서 구원을 받게 된 것입니다. 우리가 느끼는 여러 가지 기쁨 가운데 가장 큰 기쁨은 수많은 죄악과 영원한 사망의 형벌 가운데서 구원받은 기쁨일 것입니다. 이 기쁨이야말로 그 어느 것과도 바꿀 수 없는 영원한 것입니다.
그런데 여리고 성의 그 많은 사람들이 멸망을 당해야 했던 이유는 무엇이었을까요? 그것은 다름 아닌 불신앙의 죄 때문입니다. 그들은 라합처럼 똑같이 이스라엘 백성들을 구원하신 하나님의 크신 역사에 대하여 잘 들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하나님을 믿은 것이 아니라 오히려 하나님을 대적했습니다. 그러다가 그들의 죄 가운데서 멸망당하고 말았습니다.
그러면 죄 많은 기생 라합은 무엇 때문에 구원을 받았습니까? 하나님께서 기생 라합을 구원하신 것은 결코 그녀의 도덕성이 뛰어나거나 지식의 정도가 높거나 또는 훌륭한 인격을 갖추고 있었기 때문도 아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라합을 구원해 내신 것은 오직 그녀의 믿음 때문이었습니다. 그녀는 믿었고 다른 사람은 믿지 않았기 때문에 멸망을 당했습니다. 여리고를 비롯한 당시 가나안은 죄악이 관영할 대로 관영해서, 오래 참고 기다리시던 하나님께서도 더 이상 참지 못하시고 마침내 그들을 멸하시려 이스라엘 백성들을 보내신 것입니다. 그런데 그 죄악의 한 가운데서 살았던 기생 라합은 오직 하나님을 믿는 믿음 하나로 구원을 받았고, 다른 사람들은 믿지 않았으므로 멸망을 당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불신앙의 죄야말로 모든 죄 중에서 가장 크고 용서받을 수 없는 죄악임을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여기 이러한 사람이 있습니다.
그는 일기예보에서 비가 온다고 하면 반드시 우산을 준비하였습니다.
그는 식사 후에 반드시 이를 닦았으며, 직장의 서랍 속에도 칫솔을 두었습니다.
그는 인공조미료가 든 식품은 일체 먹지 않았습니다.
그는 물은 꼭 생수만을 마셨으며 무공해 식품만을 먹었습니다.
그는 매일 아침 종합 비타민을 먹었습니다.
그는 6개월에 한 번씩 꼭 건강 진단을 받습니다.
그는 매주 토요일이면 가족과 함께 외식을 하였습니다.
그는 하루 한 시간 이상 가족들과 대화를 하였습니다.
그는 회사에서 촉망받는 사원이었습니다.
그는 운전할 때는 반드시 안전벨트를 매고 절대로 과속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매일 최소한 8시간의 수면을 취했습니다.
그는 결코 담배를 피우거나 술을 마시지 않았고 화도 내지 않았습니다.
그는 일주일에 두 번 이상 꼭 등산을 했습니다.
그는 매일 운동을 하고 공원 산책을 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을 몰랐고, 예수를 믿지 않았으며, 영원을 준비하지 않았습니다. 그렇다면 이 사람을 우리는 뭐라고 불러야 할까요? 그는 참으로 미련한 바보천치 인생이라고 할 수 밖에 없습니다. 우리 가운데, 여러분의 가족 가운데 이렇게 어리석은 사람이 한 사람도 없으시기를 바랍니다.
이제 말씀을 마치려고 합니다. 오늘은 저 여리고 성의 한 죄 많은 기생이 어떻게 해서 그의 가족이 다 구원을 받았는가에 대해서 말씀을 드렸습니다. 기생 라합이 믿음으로 구원을 받았다면, 죄 많은 우리도 분명히 구원받을 수 있습니다. 라합처럼 하나님의 말씀 혹은 하나님의 하신 일을 듣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 누구나 죄 사함을 받고 영생을 얻습니다.
그러나 생명력 있는 참된 믿음의 소유자에게는 반드시 행함이 따른다는 사실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기생 라합이 붉은 줄을 창문에 매어 달아 구원을 받았던 것처럼, 여러분과 여러분의 사랑하는 가족이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의 공로를 의지하여 모두 다 구원을 받게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본원 이사, 명문교회 담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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