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합의 하나님은 상천하지의 하나님
페이지 정보
본문
히브리서 기자는 히브리서 11장의 믿음의 장을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니(1절)”라고 하는 명제를 말하며 시작한다. 그리고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과 요셉과 모세와 같은 쟁쟁한 믿음의 선조들을 그 증거로 삼고 있는데 이들과 나란히 나오는 특이한 경력을 가진 여성이 바로 기생 라합이다. 과연 그의 믿음이 어떠하였기에 히브리서 기자는 라합을 그것도 기생이며 진멸의 대상이었던 가나안 여성을 믿음의 조상의 반열에 나란히 올려놓으며 칭송하고 있는 것인가? 그녀를 알려면 먼저 여호수아 2장의 역사적 사건을 알아야 할 것이다.
여호수아 2장은 1장과 3장 사이에 끼어 있는 형상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2장을 빼고 읽어도 사건의 진행에는 전혀 무리가 없이 진행이 된다. 1:10절과 3:2절은 언 듯 보면 서로 반복되고 있는 것으로 보여 비평학자들은 수2장은 독자적으로 전승되어온 본문으로 따로 떼어 생각하기도 하였다. 하지만 정복을 하기 전에 정탐을 하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행동이고 1장은 모압 평지를 배경으로 하고 있고 3장은 요단을 배경으로 하고 있으며 그 사이에 있는 싯딤이란 곳에서 정탐꾼을 보낸 것이다. 즉, 1장과 3장은 장소적 배경이 다르므로 단순한 반복으로 보는 것은 성경을 깊이 있게 드러내지 못하는 해석으로 보인다.
여호수아 2장의 구조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첫 번째로 배경(1절)이다.
여호수아가 여리고의 정탐을 위해 두 명의 정탐꾼을 비밀리에 보낸다. 이런 행동은 가나안을 목전에 두고 모세가 12명의 정탐꾼들을 보낸 것과 같은 맥락으로 모세의 계승자인 여호수아도 여리고 정복에 앞서 정탐꾼 두 명을 여리고 성에 보낸다. 두 명이란 숫자는 모세가 보낸 12명의 정탐꾼 중 긍정적으로 대답을 한 숫자와 같다. 그래서 두 명의 정탐꾼은 정보를 모으기 쉬운 술집인 기생 라합의 집으로 간다. 예나 지금이나 주점이나 술집이 이방인들이 정보를 모으기 가장 좋은 곳이기 때문이다.
두 번째 단계는 갈등(2-7절)으로 이번 정탐은 비밀리에 무사히 일을 마쳤던 이전의 정탐과 달리 정탐하러간 그날 바로 여리고 왕에게 이 사실이 누설되면서 문제가 시작이 된다. 분명히 1절에서 비밀리에 보냈는데 이 사실이 바로 여리고왕의 귀에 들어갔고 심지어 라합의 집으로 들어간 사실까지 알려졌다. 그리고 왕은 재빠르게 라합의 집으로 사람들을 보내어 그들을 끌어내어 잡으려고 하였다. 하지만 라합은 왕의 사람들이 도착하기 이전에 이미 이 사람들을 지붕위에 숨겨두었고 왕의 사람들이 도착했을 때는 그들을 알지만 그들이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갔는지는 알지 못한다고 시치미를 떼었다. 그러면서 넌지시 그들이 성문 닫을 무렵에 성을 나갔으니 그들을 따라가 보라고 능청스럽게 조언까지 하고 있다. 라합이 어떤 정보력을 가지고 있는지는 성경에 분명히 언급되고 있지 않으나 그녀는 대단한 정보력을 가지고 있는 사람임에 틀림없다. 그렇기 때문에 이스라엘 정탐꾼을 바로 알아보았고 그들의 목적을 알고 있었고 심지어 왕의 사람들이 올 것을 알고 그들을 미리 숨겨놓기까지 하였다. 이런 것을 보면 정보를 얻기 위해 정탐꾼들이 라합의 집으로 들어간 것은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닐 것이다. 사실 이런 라합의 행위는 목숨을 건 행동이었다. 자칫 발각이라고 되면 그녀와 그녀의 집은 반역죄로 몰살당할 운명이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라합은 이런 긴박한 상황에서 아주 태연하고 재치 있게 행동할 줄 아는 대담하고도 지혜로운 여성이었다. 결국 전개부분은 라합의 말에 속아 왕의 사람들이 성밖으로 나가고 성문이 닫히는 것으로 마쳐진다. 성문이 닫혔다는 것은 일단 그날의 위험은 지나갔다는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왜냐하면 성문이 닫히면 아침이 올 때 까지 성문이 열리지 않기 때문이다. 전개 부분에서는 왜 라합이 이런 위험천만한 모험을 하는지 이유가 드러나지 않는다. 그 이유는 라합 이야기의 절정에 해당하는 라합과 정탐꾼들의 대화에서 드러나게 된다.
세 번째 부분은 절정(8-14절)으로 이 부분에서 특히 9-11절은 라합의 독백이자 그녀의 신앙고백으로 라합 이야기의 절정에 해당하는 부분이다. 라합은 일단 위험이 사라지자 그들을 숨겨준 지붕으로 올라가 자신이 왜 이런 행동을 하게 되었는지를 설명한다. 그 첫째 이유는 이 땅을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에게 준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이 말은 수1:6절에서 여호와께서 여호수아에게 하신 말씀이고 수1:11에서 여호수아가 이스라엘 백성에게 한 말이다. 그런데 그 말을 여리고에 사는 기생 라합이 안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여기서 안다는 것은 단순히 지식적으로 안다는 것이 아니라 그렇게 될 줄을 확신한다는 믿음이 포함되어 있다. 그리고 둘째 이유는 이 땅의 백성이 이스라엘 백성을 두려워하고 그들 앞에서 간담이 녹았다(9,11절) 고 하였다. 이것은 모세가 이전에 12정탐꾼을 보냈을 때의 상황과 아주 대조가 된다. 신1:28에서는 “우리가 어디로 갈꼬 우리의 형제들이 우리로 낙심케 하여 말하기를”이라고 하였는데 개역 성경의 “우리로 낙심케 하여”는 히브리어에서 직역을 하면 우리의 마음을 녹게 하여(
-
- 이전글
- 축복하는 사람
- 24.08.28
-
- 다음글
- 먼저 네 부모를 공경하라
- 24.08.2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