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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사속의 명설교

    이사야의 소명

    페이지 정보

    성경본문: 사 6:8-13 | 설교자: 김서택

    본문

    얼마 전에 우리나라 선원들이 많이 탄 큰 화물선이 동지나해 부근을 지나다가 갑자기 없어지는 사건이 생겼습니다. 그 배에는 수십 억원 어치의 식물성 기름이 실려 있었는데 갑자기 연락이 끊어지면서 사람도 없어지고 물건도 없어지고 배도 없어졌습니다.
    그것이 의미하는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그 배에 사고가 발생한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본사에서는 그 없어진 배를 찾기 위해서 긴급회의가 열리게 되는데 실제로는 별 뾰족한 수가 없습니다. 다행히도 선원은 여러 날이 지난 후에 작은 배를 타고 표류하다가 조업중인 다른 나라 배에 의해서 구조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 화물선과 거기에 실려있는 화물은 영영 찾을 수 없게 되었습니다. 왜냐하면 그 배는 연락이 끊긴 순간 해적들의 공격을 받았고 해적들이 화물선과 물건을 탈취해서 달아났기 때문입니다.
    또 다른 예를 하나 들면, 요즘은 다국적 기업이라고 해서 한 회사가 여러 나라를 걸쳐서 기업활동을 하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그 여러 지역회사를 연결시키는 것이 바로 전로 전산망인데 어느날부터 전혀 보고도 없고 연락도 없고 이익금에 대한 송금도 없다면 어떻게 된 것이겠습니까? 분명히 그 지점에 있는 회사는 사고가 난 것이 분명하며 본사에서는 그것에 대하여 빨리 대책을 세워야 합니다. 본사 대표를 파송하여 수습을 해서 정상 가동을 하든지 아니면 그 지역을 영구적으로 포기를 하든지 둘 중의 하나를 결정해야 될 것입니다.
    이사야가 살던 당시 유다 백성들은 어떤 형편에 있었습니까? 나름대로 열심히 신앙생활하고 있습니다. 예배도 잘 드리고 기도회도 잘 참석하고 돈도 잘 벌고 있었습니다. 겉으로는 전혀 문제가 없는 것 같았습니다. 또 이사야도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입장에서는 그렇지 않은 부분이 많았습니다.
    어느 한 순간부터 유다에서는 제대로 보고도 올라오지 않고 통신도 제대로 되지 않는 사고 지역이 대부분이었습니다. 하나님에게 있어서 유다 나라는 그냥 평범한 나라가 아니라 이 지상에 있는 하나님의 나라였습니다. 유다는 하나님이 직접 다스리는 나라였고 하나님 나라를 대표하는 나라였습니다. 쉽게 말하면 하나님 나라의 지점이요 하나님 나라의 대사관과 같은 곳이었습니다. 그러나 유다는 어느 순간부터 하나님 나라의 업무를 중단하고 세상 나라로 탈바꿈하기 시작했습니다. 이제 하나님께서는 유다를 두고 어떻게 할 것인지 하나님의 회의가 열리고 있습니다. 많은 천사들을 앞에 두고 하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누구를 보내며 누가 우리를 위하여 갈고? 이 사고 지역 유다를 다시 회복시키기 위해서 누구를 보내면 좋을꼬? 누가 가서 유다를 정상적인 하나님 나라로 회복시킬꼬?”라고 하나님이 질문 하셨습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혼자 탄식하는 소리입니다. 지금 하나님 나라에서는 유다의 변질을 놓고서 아주 심각한 회의가 열리고 있습니다.  
    “지금 유다는 사고가 터졌다, 통신도 전혀 안 된다, 하나님나라를 대표하지 못한다, 제 멋대로 행동하고 있다, 도대체 누가 가서 유다를 수습하겠느냐?” 바로 이 질문을 하나님께서 던지고 있습니다. 배로 비유한다면 유다는 완전히 엔진이 꺼지고 통신이 단절된 거대한 배, 바다 위를 표류하고 있는 배였습니다.
    언제 암초에 부딪쳐서 침몰할지 모르는데 배에 탄 사람만 그것도 모르고 먹고 마시고 웃고  떠들고 춤을 추며 즐기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 유다 때문에 지금 하나님 앞에서 비상 대책회의가 열리고 있는 것입니다. 어떻게 하면 유다를 다시 살려낼 수 있을 것인가? 그때 그  회의에 이사야가 뛰어들면서 “내가 여기 있사오니 나를 보내소서”
    이렇게 자원하는 모습이 오늘 말씀에 나타나고 있습니다.
    오늘 이 첫 번째는 생각해 볼 것은 유다의 사고입니다. 수년 전에 타이타닉이라는 영화가 인기를 끈 적이 있습니다. 이 타이타닉호는 한 백년 전의 배인데 영국에서 건조할 당시 최신형, 대형 유람선이었습니다. 사람들은 타이타닉호를 보고 “신도 이 배를 침몰 시키지 못할 것이다.”라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화려했던 타이타닉호는 처녀 출항을 하다가 북극에서 떠밀려온 빙산에 배의 옆이 긁혀 침몰하면서 수 백명의 사상자를 낸 아주 비극적인 참사의 배가 되고 말았습니다. 지금 유다는 어떻습니까? 겉으로 보기에는 무척 견고한 모습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엔진은 고장이 났고 통신은 두절되어 이 배가 표류하고 있는 것입니다. 겉으로는 더 튼튼하게 에워 쌓았는데도 전혀 하나님 나라의 기능을 하지 못하였고 하나님 나라와 교신도 되지 않는 완전히 고장난 배였습니다. 이사야도 성전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체험할 때까지는 유다의 상태가 그렇게 심각한 줄 몰랐습니다. 그런데 성전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보았을 때 유다의 상태가 심각하게 변질되어 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성전을 충만하게 채우고 있는 하나님의 영광은 무엇이었습니까? 그것은 정상적인 유다의 모습이었습니다. 성전은 늘 그랬어야 했으며 유다도 늘 그랬어야 합니다. 유다 백성이 함께 모이면 하나님의 영광이 충만하게 나타나고 하나님의 말씀이 권세 있게 선포되며 사람들이 변화되고 서로 하나되는 이것이 정상적인 유다의 모습이었습니다.
    그런데 이사야는 어렸을 때부터 병든 이스라엘의 모습만 보고 자랐기 때문에 그것이 정상인줄만 알았습니다. 늘 병든 사람만 보고 생활해 온 사람은 그 병든 모습이 정상적인 줄로 압니다. 그렇지만 육체와 정신이 건강한 사람을 만났을 때에야 비로소 우리들의 모습이 정상이 아니었음을 깨닫는 것입니다.
    이사야는 자신이 보았던 성전을 충만하게 채우고 있는 하나님의 영광이 진정한 성전의 모습이며 성전은 늘 그랬어야 했다는 것을 깨닫기를 원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유다 백성들이 생각했던 하나님의 백성은 늘 은혜와 기쁨이 충만하고 삶 속에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나고 늘 기도응답이 이루어지고 모이는데 힘쓰며 서로 사랑하는 모습이 아니라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하면서 사랑이 없으며, 모이기에 힘쓰지 않고, 목이 터져라 기도해도 응답은 없고, 모이면 싸우고, 흩어지면 남을 헐뜯는 모습을 정상으로 알았던 것입니다.
    여러분, 신앙생활하면서 건강한 교회를 경험해 보는 것이 굉장히 중요합니다. 예배 때마다 하나님의 영광이 충만하게 임하는데, 눈물이 흘러나오고 기쁨과 감사가 넘치고 용서가 일어나는 그 모습이 정상적입니다. 그냥 교회만 왔다 갔다 하는 것이 아니라 예배의 감격으로 집에 가도 잠이 안 오고 그 은혜가 새벽기도로 이어지는 경험이 필요합니다.
    교회는 굉장한 권세와 능력이 있습니다. 교회가 살아나면 그 지역이 다 살아납니다. 부자들도 없고, 대단한 사람들도 없는데 경제를 바꾸고 역사를 바꾸는 권세와 능력이 있고, 기도하면 응답되는 현장을 보아야만 합니다. 교회는 사람이 모인 곳이 아니라 하늘의 문입니다. 하나님이 임재 하는 곳입니다. 교회는 하나님을 만나러 오는 곳입니다. 만약 사람들이 교회에서 하나님을 만날 수 없다면, 또한 하나님의 영광을 경험할 수 없다면 그 배는 표류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교회를 보시고 포기해야 하는가? 완전히 버릴 것인가? 누구를 보내어서 치료할 것인가? 이 문제를 가지고 대책회의를 여실 것입니다. 본문을 보면  “누가 우리를 위하여 갈꼬?”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그 회의의 내용이 무엇인가 하면 “유다가 정상괘도를 벗어났다. 지금 하나님 나라의 기능을 잃어버렸다 제멋대로 지금 작동하고 있다. 어떻게 하면 좋겠는가?” 이것이었습니다.
    지금 하나님 앞에서 제일 중요한 문제는 어떻게 하면 유다를 회복시킬 수 있느냐 하는 데 있습니다. 왜냐하면 유다가 기능을 잃어버리면 다른 나라가 한꺼번에 멸망하게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제사장 나라의 특징입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이 자기 기능을 회복하면 주위에 있는 사람들이 저절로 은혜를 받습니다. 범죄률이 떨어지고 전쟁이 억제되고 천재지변이 줄어들어 저절로 은혜를 받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백성들이 죽어버리면 하나님의 은혜가 완전히 단절되어 주위에 있는 나라들이 연쇄적으로 멸망해 버립니다. 하나님은 지금 다른 것으로 걱정하지 않습니다. “지금 한국경제가 굉장히 어려운데 누가 가서 한국경제를 바로 잡을꼬? 지금 실업자도 많고, 결식아동도 많은데, 누구를 보내면 경제적으로 한국을 부강하게 만들꼬?” 하나님께서는 그런 회의 안 하십니다. 지금 한국의 병원이 모자라 입원 못하는 환자들이 많은데 누가 가면 병원을 많이 세워 의료 혜택을 받게 할꼬? 그런 걱정은 안 하십니다.
    하나님께서 가장 심혈을 기울여 걱정하고 있는 것은 어떻게 하면 교회를 회복시켜서 그 하나님의 교회에 영광이 임재하며 은혜가 충만하여 사람을 변화시키는 이 일을 누가 할 것인가? 입니다. 다시 말해 교회는 하나님의 은혜가 전달되는 통로입니다. 예수를 믿는 한 사람 한 사람은 은혜가 전달되고 있는 관인데 이 관이 막히거나 터져 버리면 은혜가 막히며 사라집니다. 참으로 하나님의 백성이라면 교회의 권세를 회복시키고, 영광을 회복시키고 능력을 회복시켜서 교회에서 선포되는 말씀을 사모하며 삶에 적용하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오늘날의 교인들은 다른 곳에 시선을 두고 있습니다. 교회는 황폐화되어 가는데도 그대로 내버려두고 가치 없는 곳에 온통 관심을 두고 있지만, 아무리 노력해도 되어지는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가장 먼저 회복되어야 할 것은 교회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예배드릴 때 영광으로 충만해 진다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에 권세가 있기 때문입니다. 요한복음을 보면 하나님의 말씀과 영광을 동등하게, 영생과 말씀을 동등하게 두고 있습니다.  
    교회에서 말씀이 영광스럽게 선포되고 성도들이 그 말씀을 은혜롭게 받아들이면 어떻게 됩니까? 눈에 보이지 않지만 성도들의 마음에 하나님의 영광이 가득 찹니다.
    사사기의 기드온 당시 이스라엘 백성이 미디안의 압제로 7년 동안  온갖 고생을 하게 됩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기드온에게 아버지 집에 있는 바알 단을 부수고, 아세라 상을 찍어버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행복하게 살지 못하는 것은 미디안 족속 때문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미디안 족속을 부수라는 말씀은 하지 않으십니다.
    다만 미디안 족속과 전혀 상관이 없는 바알을 부수고 아세라 상을 찍어버린 후에 중단되었던 예배를 회복하라고 말씀하십니다.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아무 힘도 없는 바울이 하나님의 영광이 몰아내었고 말 못하는 아세라 상이 미디안을 끌어들인 장본인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이 우상들을 제거하시길 원하시는 것입니다. 말씀대로 하나님의 영광에 걸림돌이 되는 것을 제거한 때부터 하나님의 말씀에서 능력이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바알을 부수고 아세라 상을 부수고 난 후 300명의 용사가 여호와를 위하여 외쳤을 때 약 15만 명의 미디안 사람들의 정신이 혼미해져서 서로 죽이는 사건이 일어나게 되었습니다. 또 창세기를 살펴보면 소돔과 고모라가 멸망하게 되었을 때 아브라함은 소돔과 고모라를 위해서 기도했습니다. 소돔과 고모라를 살리기 위해 아브라함의 기도는 의인 50명에서부터 하나님께 묻기 시작했습니다. 아브라함은 50명이 있으면 소돔과 고모라가 산다고 보았던 것 같습니다. “하나님! 의인 50명이 있으면 소돔과 고모라를 멸망시키시겠습니까?”라는 기도에 하나님께서 멸망시키지 않는다고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그 기도와는 달리 자신이 없었던 아브라함은 40명, 30명…. 자꾸 내리기 시작했습니다. 결국 10명까지 내려갔는데도 하나님은 “10명이라도 멸망시키지 않겠다.”는 놀라운 대답을 하십니다.
    계속 인원수를 줄이던 아브라함은 더 이상 흥정하지 않고 그대로 집에 가버립니다. 왜 아브라함은 10명에서 멈췄을까요?
    이 부분을 설명하는 입장이 있는데, 한 가지는 아무리 소돔과 고모라가 악하다 하더라고 의인 10명 정도, 아니 종교인이라도 10명 정도는 있을 것이라는 입장과 또 다른 하나는 의인의 기도가 호소력을 가지고 사회의 변화를 일으키려면 적어도 10명은 있어야 공동체를 구성할 수 있겠다라고 생각해서 10명까지만 기도했다는 입장입니다.
    유대인들이 회당을 세울 때도 10명이 구성단위입니다. 10명이 모여야 회당의 자격이 주어집니다. 이사야가 성전을 가득 채우고 있는 하나님의 영광을 보고서 생각한 것이 무엇일까요? 유대인이 생각하는 의의 기준과 하나님이 생각하는 기준은 너무나도 다르다는 것입니다.
    이사야나 유대인이 생각해 온 기준은 자신들은 다른 민족이 가지지 않은 신앙을 가진 데다가 이 세상에서 하나님 잘 믿고 악한 행동만 하지 않으면 의로운 모습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이 신앙만으로도 하나님 앞에서 합격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이사야가 성전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보았을 때, 하나님께서는 이사야나 유대인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휠씬 높은 수준을 요구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초등학교에서 시험을 칠 때 1학년 문제의 수준이 틀리고 5학년이나 6학년 문제의 수준이 틀립니다. 그런데 5학년이나 6학년이 1학년 수준으로 시험준비를 했다면 낙제할 것이 틀림없습니다. 다시 말해서 처음 예수를 믿는 신자들에게 요구되는 수준과 10년, 20년 믿은 신자들에게 요구되는 수준이 다르다는 것입니다. 처음 교회 다니는 사람이 수요예배, 새벽예배에 참석했다면 상당히 칭찬 받을 행동일 지 모릅니다.
    이것은 오직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받는 것의 의미와 다른 것이 없습니다. 이사야는 의인이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지라도 하나님께서 요구하시는 수준은 모두 다르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입니다.
    이사야는 명 설교자이며, 왕실 설교자였습니다. 이사야의 설교를 따를 자가 없었지만 그가 깨달은 것이 무엇입니까? 이사야는 자신이 설교자임에도 불구하고 입이 부정한 자였음을 고백하였습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은 교회에서 천국을 무한히 누려야 함에도 불구하고 교회 규모나 형식만 자랑했던 모습들 모두가 하나님 앞에 심판 받을 것이라는 사실을 이사야가 발견했던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영원히 찬양 받던 예루살렘 교회에 심각한 문제가 생겼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제 누가 가서 교회의 정상적인 기능을 회복할꼬? 도대체 어떻게 하면 유다를 회복시켜서 정상적인 교회의 기능을 하게 할 수 있을까?”라는 내용으로 하나님 앞에서 회의가 열리고 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이사야에게 물은 소리가 아닙니다. 하나님이 회의를 하면서 천사들에게 물어본 것입니다. 그런데 이사야는 “내가 여기 있사오니 나를 보내소서.”라고 대답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성도의 기도는 하나님의 의전회의에 뛰어드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내리는 중요한 결정에 영향을 미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그런 기도를 하기를 원하십니다. 만약 청와대에서 중요한 사안을 결정하는데 대통령 영부인도 못 들어가는 그 회의에 참여할 수 있다면 여러분은 굉장한 사람입니다. 여러분 우리나라 대통령이 회의를 할 때 참모 총장도 참여할 수 없습니다. 회의의 참석 여부도 허락이 난 뒤에야 가능하고 혹 참석하더라도 외식은 할 수 있지만 질문 할 때 이외에는 말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그 하나님의 의전회의에 일개 성도가 돌입을 할 수 있다는 사실은 놀라운 것입니다. 의전회의에 뛰어 들어서는 “저는 어때요? 저를 보내주세요”라고 이야기 하니까 하나님께서  “가라! 가라! 그래 너를 보내니까 가라!”라고 대답해주신다는 사실은 정말 굉장한 겁니다. 우리의 기도는 역사를 움직이고 그 역사에 개입할 수가 있습니다.
    어느 나라 대통령이, 어느 나라 왕이 하나님의 의전회의에 들어갈 수 있겠습니까? 그런데 우리 성도들은 그 곳에 들어간 것 뿐만 아니라 말도 안 되는 제안을 중요하게 생각해 주시고 채택해 주시고 인정해 주시고 그대로 섬겨주십니다.
    왜 이사야 가 자기를 보내달라고 했을까요? 사실 천사들을 보내는 방법이 훨씬 낫지 않겠습니까? 이에 대해서 이사야는 “하나님 유다 나라문제는 제가 더 잘 압니다. 왜냐하면 저는 여기 출신이거든요. 그리고 얼마 전까지 만해도 저는 이런 상태에 있었습니다. 저는 이들을 너무 잘 압니다. 이들이 왜 하나님께로 돌아오지 못하는지, 무엇이 걸림돌이 되는지 저 천사들보다도 더 잘 압니다. “하나님, 저를 보내주세요.”라고 기도합니다. 또한 하나님은 우리를 이중적으로 부르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들을 이 죄악된 세상에서 하나님의 백성이 되도록 부르셨습니다. 그런데 우리를 불러놓으신 후에는 가족들, 친구들, 직장동료가 있는 세상으로 보내십니다.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우리가 그들을 잘 알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그들을 위해 기도하지 않으면 누가 기도하겠습니까? 예수님을 믿고 하나님의 자녀가 된 성도들은 같은 집에 살고 있어도 입장이 틀립니다. 하나님의 대표로 부르심을 잊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똑 같은 회사를 다니고 있어도 하나님의 대표로 부름을 받았다는 사실, 다시 말해서 그들을 살리기 위해서, 그들을 건지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보내신 대표로 살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 하나님이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이 무엇입니까? 그들의 성질, 기질, 좋지 못한 성품을 더 잘 알고 있는 우리들이 그들을 위해서 기도하기를 원하십니다. 어떤 의미에서는 기도가 계속되고 있는 한 그들이 하나님을 거역해도 하나님이 보호해 주십니다. 사망으로부터, 어떤 위기로부터, 사고로부터 지켜주십니다. 왜냐하면 누군가 그들을 위해 하고 있는 기도를 듣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기도를 멈추게 되면 사실 중환자의 산소호흡기를 빼는 것하고 똑같습니다. 이만큼 우리가 누구를 위해서 기도를 해준다는 것은 아주 중요한 것입니다.
    오늘 하나님께서 이사야 의 지원을 듣고 “참 잘했다! 너는 어느 누구보다도 일을 잘 할 수 있을 거야.”라고 말씀하시는 대신 9절과 10절 말씀을 보면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가서 이 백성에게 이르기를 너희가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할 것이요, 보기는 보아도 알지 못하리라. 이 백성의 마음으로 분하게 하며, 그 귀가 막히고, 눈이 감기게 하라. 염려하건 데 그들이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마음으로 깨닫고 다시 돌아와서 고침을 받을까 하노라.”라고 말씀하십니다. 분명한 하나님의 영광을 보고 전하려고 하는 이사야가 유다 백성들을 위하여서 자기가 가겠다고 자원하는 이유는 ‘그 동안은 하나님의 영광을 잘 몰랐지만 정답을 안 이상 하나님의 말씀을 전해도 분명히 전하겠다.’라는 마음을 가졌습니다. 이사야는 ‘내가 하나님의 영광이라는 분명한 것을 보고 전하는데 유다 백성들이 보러 오지 않겠느냐?’라고 생각하면서 ‘결국에는 모두 보러 올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이사야에게 “절대로 쉽지 않을 것이다”라고 말씀하십니다. 바른 말을 전하면 전할수록 더욱 더 그들의 귀가 막히고 더욱더 그들의 눈이 어두워져서 전보다 훨씬 명확하고 은혜로운 말씀을 전하는 데도 불구하고 백성들의 마음은 더욱 완악하여져서 하나님을 떠날 것이다. 이렇게 말씀하시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예전에는 하나님의 말씀을 몰라서 방황했고 제멋대로 살았다고 하지만 이렇게 분명한 말씀을 듣고서도 하나님께로 돌아오지 않은 이유가 무엇입니까? 사람은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는 데 문제가 있습니다.
    사람이 짐승과 다른 점은 그 안에 인격이 있고 그 감정 또한 굉장히 복잡하게 얽혀있기 때문입니다. 옳은 것이 사실이어도 까다롭게 굴거나 순종하지 않는 모습들로 하나님께서는 안타까워하십니다. 하나님께서 문제를 주시면 힘들어 하면서 침체되고 조금 축복해 주시면 눈에 보이는 것이 없이 교만해지는 우리들의 모습을 보는 하나님은 성경 속에서 ‘내가 어쩌란 말이야? 내가 도대체 어떻게 하면 좋겠느냐?’라는 표현을 하십니다. 하지만 나약하고 어리석은 우리들을 하나님께서 중심으로 설득하시고 기다리시고 우리의 완악한 마음을 부드럽게 녹여주시니까 은혜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왕실 선지자요 탁월한 학자였던 이사야가 유다 백성들을 향해 가슴이 뜨거워져 있을 때 하나님께서는 유다 백성들이 좋은 말씀만으로는 변화되기 힘들다는 사실을 미리 가르쳐 주신 것입니다.
    사람들은 귀로 듣는 것으로는 절대로 돌아오지 않습니다. ‘유다 백성들의 복잡하고, 고집스러운 마음을 녹이시고 감동시켜주실 분은 하나님 뿐 이시오 오직 구원은 하나님의 주권에 있다’는 것을 보여주시는 것입니다. 이사야는 목이 터져라 설교하지만 열매를 거두지 못할 것입니다. 이 말씀을 듣고 꼭 돌아올 줄 알았던 사람들, 전부 그에게 등을 돌리고 떠날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그 때 깨닫는 것은 무엇일까요?  
    ‘나는 한 명도 구원할 수 없구나…역시 하나님이 하시는 구나. 하나님이 불쌍히 여겨 주셔야 되는구나.’ 이것을 이사야도 깨닫고 이스라엘 백성도 깨닫게 될 것입니다. 우리의 힘만으로는 한 사람도 돌아오지 않는 것이 정상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다른 영혼을 건지기 위해서 조직을 만들고, 예산을 편성하고 홍보를 하기 이전에 해야 될 것은 하나님께서 그 영혼들을 불쌍히 여겨주시도록 하나님께서 긍휼을 베풀어 주시도록, 완악한 마음, 돌 같은 마음을 녹여주시도록 엎드려 기도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사람의 마음이 하나님께 향하게 되면 절대로 예배에 참석할 것 같지 않던 사람도 주일이 되면 교회로 향하게 됩니다. 이러한 상황을 돌아볼 때 우리는 하나님의 섭리, 간섭을 느끼지 않을 수 없습니다.
    다른 영혼을 찾아가는 사람은 이러한 하나님의 영광을 맛보는 것이 굉장히 중요합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맛본 사람은 예수님을 믿기까지 더딘 구원의 길도 얼마든지 기다릴 수 있습니다. 기도의 끈을 놓지만 않는다면 돌아올 것 같지 않은 사람이 돌아오는 은혜를 체험할 수 있게 됩니다. 우리가 다른 사람에게 갈 수 있으려면, 나를 얽매던 그 죄의 비참함과 하나님의 영광, 이 두 가지를 경험해 봐야 합니다. 경험한 사람들은 다른 사람이 복음을 아무리 거부하더라도 미워할 수가 없습니다. 이것을 경험한 이사야는 “유대 백성들은 열매도 없이 설교를 들으면 들을수록 마음이 완악해질 것과 귀는 더 막힌다는 것, 눈은 더 감기는 데다가 그들이 혹시라도 돌아올까 봐 겁난다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나서는 더욱 역동적으로 나아갑니다. “돌아올까 봐 겁난다.”는 말은 “강제로는 회개시키지 않겠다”라는 말씀입니다. 내가 마음을 열듯이 유다 백성들도 열지 않는다면 이 놀라운 구원의 은총을 주시지 않겠다는 말씀입니다. 이사야가 기가 막혀서 묻습니다.
    11절과 12절을 보면 “내가 가로되 주여 어느 때 까지 이니이까?” 대답하시되 “성읍들은 황폐하여 거민은 없으며, 가옥들에게는 사람이 없으며, 이 토지가 전폐하게 되며, 사람들이 여호와께 멀리 옮기어서 이 땅 가운데 패한 곳이 많을 때 까지니라.”  
    그러자 이사야가 묻습니다. “하나님 도대체 언제까지 안 돌아옵니까?”  하나님께서는 “망할 때 까지 안 돌아온다. 끝까지 안 돌아온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이사야는 처음부터 유다 백성들이 돌아오지 않을 줄 알았지만 끝까지 사랑으로 설교한 사람이었습니다.
    우리는 이사야와 같이 하나님의 일에 조건을 달면 안 됩니다. 안될 줄 알면서도 끝까지 마음에 품게 하신다면 그 사람을 놓고 사랑으로 기도할 수 있어야 합니다. 설사 부모님이 예수님을 믿을 수 있도록 기도했지만 하나님의 자녀가 되지 못한 채 데려가신다면 너무 마음이 아프지만 인정을 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구원은 하나님의 주권에 달려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이사야 이상으로 유다 백성들이 돌아오기를 원하시는 분이십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미리부터 유다는 완전히 멸망할 때까지 돌아오지 않는다라고 분명히 말씀하시고 계십니다. 왜 하나님께서는 유다 백성으로 하여금 이 땅과 현실에 대한 애착이 너무 크기 때문에 이 땅을 잃어버리기 전에는, 예루살렘이 멸망하기 전에는 절대로 돌아오지 못하도록 하셨을까요? 그것은 유다 백성들이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얼마나 교만하며, 얼마나 완악하며, 얼마나 멸망하기에 합당한 지  깨닫기 원하셨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끊임없는 사랑과 권면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거부했던 사람들, 그 사람들이 멸망으로 가는 것입니다.
    13절 말씀을 보면 “그 중에 십분의 일이 남아 있을지라도 이 것도 삼키운 바 될 것이나 밤나무, 상수리나무가 베임을 당하여도 그 그루터기는 남아 있는 것 같이 거룩한 씨가 이 땅의 그루터기니라.”라고 나와 있습니다.
    여러분 십분의 일이 남는다고 하는 것은 전멸을 의미합니다. 당시의 전쟁에서 전멸은 90%를 죽이면 전멸입니다. 100%를 죽이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다 죽여버리면 전쟁의 끔찍한 결과를 알려줄 사람이 없기 때문에 일부러 10%를 살려 주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유다 백성들이 치르게 될 전쟁에서 이같이 전멸하게 하셨습니다. 이것은 그토록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고 애타게 부르짖었는데도 불구하고 끝까지 마음 문을 열지 않은 유다 백성들에 대한 하나님의 진노가 얼마나 큰지, 얼마나 맹렬하게 진노하셨는지, 전쟁의 참혹한 결과를 통해서 보여주고 계십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믿기는 했지만 하나님의 기준으로 볼 때 살아있을 만한 사람은 한 사람도 없었습니다.
    유다 백성의 그 완악함에, 그 패역함에 진노하신 하나님께서는 십분의 일만 남아도 전멸인데 그 십분의 일도 실제로는 남기기 싫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그 진노하셨던 하나님께서는 아무리 밤나무, 상수리나무가 베임을 당해도 그루터기가 남는 것처럼 하나님께서는 유다가 그렇게 멸망하는 가운데서도 그루터기를 남겨놓아서 그들로 하여금 하나님을 강권적으로 믿게 만들고, 은혜를 체험하게 하여 하나님을 찬양하고 하나님 뜻에 순종하도록 만들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똑같이 패역한 자들인데 하나님께서 그 중의 일부를 살려내어 다듬으셔서 하나님을 믿는 자로 만들겠다고 말씀하십니다. 오늘날 신약교회의 우리들이 남은 자, 바로 그루터기입니다. 우리도 유다 백성들과 똑같이 은혜 받기에 굉장히 부족한 사람들입니다. 지금 이 시간 예배를 드리면서도 깨달아야 할 것은 “도대체 내가 어떻게 해야 하나님의 은혜에 동참하는 자가 될 것인가” 입니다. 허물과 죄로 죽었던 우리가 어떻게 이 자리에 왔으며, 어떻게 하나님의 자녀로 부름을 받을 수 있었을까요?
    하나님께서는 사랑과 관심의 손길로 집요하게 우리의 엇갈린 사업을 치시고, 건강을 치시고, 어떤 사람은 결혼에 실패하게 하셔서 결국은 하나님 앞에 돌아오게 만드셨습니다. 우리가 그루터기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두 세계를 이미 경험한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이 없는 추악하고 거짓되고 소망 없는 삶을 경험했습니다. 또 하나는 하나님의 말할 수 없는 긍휼과 은혜와 축복을 경험한 사람들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은 무엇일까요? “다시는 유대인들과 같이 패역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향하여 마음 문을 열고 이제는 하나님의 백성답게 천국의 지점으로서, 천국의 대사관으로서 그 역할을 온전히 수행하라는 것입니다. 교회 안에 하나님의 영광이 임하고 성령이 임하시고 기도가 응답되며 눈물이 있고 감격이 있고 용서가 있고 회개가 있는, 능력과 영광이 충만한 교회의 모습을 회복하고 그것을 목숨 걸고 지키는 것이 우리가 해야 할 일입니다. 다른 것들은 잃어버려도 교회가 영광을 잃어버린다면, 병들어 버린다면 그것은 가정에 계시는 어머니가 병든 것과 같을 것입니다.
    오늘 우리들은 이중적으로 축복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영원히 멸망 할 수 밖에 없는 우리들을 심판에서 건져주셨을 뿐 아니라 유대인들에게는 격렬히 진노하시면서 주시지 않았던 은혜를 우리에게는 억지로 은혜를 주셔서 구원해 주시고 그 사랑 앞에 눈물 흘리게 하시고 하나님을 아버지라 고백하게 만들어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며 사는 자들로 만들어 주셨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하나님의 자비하심과 거룩하심과 성실하심을 찬양하십시다.
    그 분의 말씀이 내 영혼을 충만하게 채우도록, 우리교회를 충만하게 채우도록, 하나님의 교회가 영광스러워지도록, 온 힘을 다하여 주님을 높여 드리십시다.

    본원 이사, 대구동부교회 담임목사



    그러나 여러분! 믿음은 대단히 역동적입니다. 어떤 사람이 믿음의 말씀을 듣고 마음 문을 열고 순종하면 믿음이 자라기 시작합니다. 점점 자란 믿음은 능력을 가지기 시작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서도 마음을 닫아버리면 있던 믿음이 없어집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자기가 생각해도 신앙이 있는지 없는지 구별이 안 될 정도로 믿음이 없어집니다. 과거의 잘 믿었던 것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중요한 것은 지금 내가 하나님의 말씀에 대해서, 은혜에 대해서 어떻게 반응하느냐 입니다. 믿음은 믿으면 믿을수록 더 자랄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