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고

한국신학정보연구원
로그인 회원가입
  • 색인초록 DB
  • 역사속의 명설교
  • 색인초록 DB

    역사속의 명설교

    이사야의 소명과 신앙 체험

    페이지 정보

    성경본문: 사 6:1~8 | 설교자: 조용기

    본문

    \‥‥‥내가 누구를 보내며 누가 우리를 위하여 갈꼬 그때에 내가 가로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나를 보내소서\(이사야 6 : 1 -8)

    웃시야는 유다의 훌륭한 왕이었습니다. 그는 16세에 왕으로 등극한 후 68세까지 52년 간 나라를 다스렸는데 그동안 산업 부흥에 힘을 써 국민을 잘살게 했고 치산치수를 잘해 국가를 부강시켰으며 국방을 튼튼히 해서 국민이 안심하고 살 수 있도록 했습니다. 무엇보다 그는 하나님을 잘 경배했습니다. 그 때문에 성경은 그에 대해 \웃시야가 그 부친 아마샤의 모든 행위대로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히 행하며 하나님의 묵시를 밝히 아는 스가랴의 사는 날에 하나님을 구하였고 저가 여호와를 구할 동안에는 하나님이 형통케 하셨더라\(대하 26 : 4, 5)고 했습니다. 그런데 이런 웃시야가 점점 득세하게 되니까 그만 교만해지고 말았습니다.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요 멸망의 앞잡이입니다. 사람은 어떤 위치에 있든지 하나님 앞에서 겸손해야지 그렇지 않으면 패망하고 맙니다. 웃시야는 제사장 대신 자신이 직접 여호와의 전에 들어가서 향단에 분향하려고 했던 것입니다. 이것은 큰 교만이었습니다(대하 26 :16). 제사는 제사장의 소관입니다. 그런데도 웃시야는 이를 무시하고 여호와의 전에 들어갔습니다. 그러자 제사장 아사랴가 ‘용맹한 자 팔십인\을 데리고 그 뒤를 따라 들어가 급히 왕을 막으며 “웃시야여, 여호와께 분향하는 일이 왕의 할 바가 아니요 오직 분향하기 위하여 구별함을 받은 아론의 자손 제사장의 할 바니 성소에서 나가소서. 왕이 범죄하였으니 하나님 여호와께 영광을 얻지 못하리이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웃시야는 향로를 잡은 채 노를 발했습니다. 이때 하나님께서 치시매 웃시야는 이 마에 문둥병이 걸리고 말았습니다. 이 심판으로 웃시야는 별궁에서 쓸쓸하게 여생을 마쳐야 했습니다. 웃시야가 죽자 이스라엘 백성들은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나라는 혼란에 빠지고 말았습니다. 한 가정에서도 가장이 훌륭한 인격을 갖추어 지도력을 발휘하면 가정이 흥왕 하지만, 방탕한 삶을 살면서 가족을 학대하면 가정이 피폐해지고 마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는 체험

    유다의 백성들은 목자를 잃은 양처럼 우왕좌왕했습니다. 이럴 때 외세의 침략이 있는 것 은 당연한 이치입니다. 그 당시의 선지자는 이사야였습니다. 이사야는 왕족이었으며 애국 자였습니다. 그는 나라의 장래를 생각하며 뼈를 깎는 기도를 했습니다. 웃시야왕이 죽던 해에 이사야는 환상을 보았습니다. 성경은 이에 대해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습니다. \내가 본즉 주께서 높이 들린 보좌에 앉으셨는데 그 옷자락은 성전에 가득하였고 스랍들 은 모셔 섰는데 각기 여섯 날개가 있어 그 둘로는 그 얼굴을 가리었고 그 둘로는 그 발 을 가리었고 그 둘로는 날며 서로 창화하여 가로되 거룩하다 거룩하다 만군의 여호와여 그 영광이 온 땅에 충만하도다 이같이 창화하는 자의 소리로 인하여 문지방의 터가 요동하며 집에 연기가 충만한지라\(사 6 : 1-4)
    하나님께서 이사야에게 보여주신 것은 나라의 장래 모습이 아니라 하늘과 땅을 창조하시고 인간의 생사화복을 주장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이었습니다. 이는 대단히 의미 있는 일입니다. 오늘날도 한 개인이 사업 실패나 질병, 혹은 대인관계의 파경 등 절망적인 상황에 부딪치게 되면 그 고난이 계기가 되어 예수 그리스도를 발견하게 되는 것입니다. 타락한 인간에게는 육신의 정욕, 안목의 정욕, 이 세상의 자랑밖에 보이지 않습니다. 이 때문에 인간은 \썩어질 것\에 자신의 운명을 겁니다. 이런 인간이기에 부귀, 영화, 공명의 변화에 웃고 웁니다.
    그러나 진실로 인간의 생사회복을 주장하시고 역사를 움직이시는 분은 만왕의 왕, 만주의 주인 예수 그리스도이심을 우리는 분명히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이사야는 절망적인 상황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을 보았습니다. \보좌에 앉으셨는데\ 이것은 만유의 절대 주권자이신 예수님의 권세를 뜻합니다. \스랍들의 창화\는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과 위엄을 찬양하는 천사들을 뜻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사야에게 진실로 경외하고 따를 대상은 어떤 지도자나 세력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임을 계시하셨습니다. 이사야는 신령한 눈이 떠지지 않았을 때 유다의 절망적인 환경, 외세의 움직임을 보며 탄식했습니다.
    이런 이사야였기에 예수 그리스도의 환상을 본 다음 북방 앗수르나 바벨론, 남방 애굽을 두려워하지 않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을 보며 새로운 역사관, 인생관을 갖게 되었 던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발견, 이는 인간에게 있어서 가장 위대한 발견입니다. 인간은 깊이 의지하던 건강과 환경이 절망적인 상황에 이르면 예수 그리스도를 발견하게 됩니다.
    인간이 진정으로 의지해야 할 대상은 어떤 단체의 지도자나 물질, 배경이 아니라 전지전능, 무소부재하신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오늘날도 성도에게 \내가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마 28 : 18, 19)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오늘날도 성도에게 \내가 하늘과 땅의 권세를 가지고 있으니 너희는 나를 의지하고 가라!\고 말씀하십니다. 인류의 역사와 운명을 좌우하시는 분은 예수님이십니다. 소련도, 미국도, 중공도, 일본도 그 어떤 강대국도 인류의 역사와 운명을 좌우할 수 없습니다. 이러므로 우리는 그 어떤 강대국이나 강한 자를 찾지 말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찾아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높이시면 낮출 자가 없고 낮추시면 높일 자가 없습니다. 이사야는 위대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발견했습니다. 이사야가 이런 체험을 할 수 있었던 것은 성령의 역사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시오 자유의 창조주시요 절대 주권자이시며 심판주이시며 구원자이심을 믿습니까? 그렇다면 이는 큰 복이며 이를 믿게 해주신 분은 성령이십니다. 이 세상의 것은 다 물거품처럼 사라집니다. 청춘도, 건강도, 명예도, 쾌락도, 권세도 한 순간입니다. 영원한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의 신앙과 하나님 나라밖에 없습니다. 이 사실을 깨달은 것이 어찌 큰 복이 되지 않겠습니까? 하나님께서는 사람으로 하여금 이것을 깨닫고 해주시려고 건강을 빼앗기도 하시며 물질 을, 사업을, 자녀를, 배경을 빼앗기도 하십니다.
    사람은 이것을 빼앗길 때 \하나님이시여 철석같이 믿었던 나의 웃시야가 죽었나이다. 저는 주굴 믿고 사나요?\라고 탄식합니다. 그럴 때 하나님의 성령께서 \이 사람아, 보라. 예수 그리스도가 있지 않은가? 영광의 주, 구속의 주, 권세의 주, 만유의 주를 보라.\고 계시해 주시는 것입니다. 사람이 이것을 깨달으면 세상에서 아무리 값진 것을 보아도 모래알처럼 보여 오직 하나님께만 경배하게 되는 것입니다.

    회개의 체험

    이사야는 이 환상을 본 다음 즉시 \화로다 나여 망하게 되었도다 나는 입술이 부정한 사람이요 입술이 부정한 백성 중에 거하면서 만군의 여호와이신 왕을 뵈었음이로다\(사 6 : 5)라고 고백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을 발견한 사람은 먼저 자신이 죄인이라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베드로도 예수님을 만난 후 \주여 나를 떠나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눅 5 : 8)라고 고백했습니다. 누구든지 자신보다 나은 위치, 환경에 있는 사람과 자신을 비교하면 부끄러움을 느낍니다. 하물며 인간이 만유의 주, 만왕의 왕 앞에 설 때 죄인이라는 생각을 갖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이사야는 하나님의 영광을 다음 자신이 죄인임을 깨닫고 탄식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이때는 웃시야나 유다나 바벨론이 문제가 아닙니다. 자신이 하나님 앞에서 죄인이라는 점이 가장 큰 충격이요 부끄러움입니다. 누구든지 예수님을 만나면 회개하게 됩니다.
    죄에 대한 통회자 복이 없는 신앙인은 형식적이며 의식적인 신앙인이요 이런 사람은 하나님의 은총을 받을 수 없습니다. 이사야가 이런 고백을 하자 천사가 화저로 단에서 취한 바 핀 숯을 가지고 이사야의 입 술에 대며 \보라 이것이 네 입에 닿았으니 네 악이 제하여졌고 네 죄가 사하여졌느니라\(사 6 : 7)고 말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회개하는 사람의 죄를 용서해 주십니다. 성경은 “저가 네 모든 죄악을 사하시며 네 모든 병을 고치시며\(시 103 : 3)라고 하였습니다. 인간은 하나님 앞에서 죄인입니다. 의인은 하나도 없습니다. 성경은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롬 3 : 23)라고 하였습니다. 타락한 아 담과 하와의 자손인 인간은 모두 죄인입니다. 이런 인간이 하나님 앞에 서려면 죄인임을 고백하고 하나님의 은총을 사모해야 합니다. 회개하는 사람만이 하나님의 은총을 받습니다. 베드로는 가야바의 뜰에서 예수님을 세 번이나 부인했습니다. 그때 닭이 울었습니다.
    베드로는 “닭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부인하리라\(마 26 : 75)고 하신 예수님의 말씀이 생각나 밖에 나가서 통곡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을 저주하며 배반한 베드로도 그가 회개했을 때 용서하여 주셨을 뿐 만 아니라 그를 위대한 사도로 세우셨습니다. 베드로가 성령이 충만해서 복음을 증거했을 때 예수님을 박해했던 유대인들이 ‘마음에 찔려\ 베드로와 다른 사도를 향해 ”형제들아 우 리가 어찌할꼬?\하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베드로가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얻으라 그리하면 성령을 선물로 받으리니\(행 2 : 38)라고 증거했습니다.
    회개하여 죄 사함을 받은 사람이 하나님 나라를 체험합니다. 그 때문에 세례 요한도 회개 하라고 했으며 예수님께서도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느니라\(마 4 : 17)고 말씀하셨던 것입니다. 인간은 하나님 앞에서 회개해야 합니다. 회개할 때 용서받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실 때 한 편에 달렸던 한 강도를 보십시오. 그는 살인자였습니다. 그는 다른 강도가 예수님을 향해 \네가 그리스도가 아니냐? 너와 우리를 구원하라.\고 비방 할 때 \네가 동일한 정죄를 받고서도 하나님을 두려워 아니하느냐? 우리는 우리의 행한 일에 상당한 보응을 받는 것이니 이에 당연하거니와 이 삶의 행한 것은 옳지 않은 것이 없느니라.\고 하면서 예수님께 “예수여, 당신의 나라가 임하실 때 나를 생각하소서.\라고 말했습니다.
    이때 예수님께서 그 강도를 심판하셨습니까? 아닙니다. 예수님께서는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눅 23 : 43)고 말씀하셨던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언제나 ‘상한 심령\을 유지하십시오. 성경은 “여호와는 마음이 상한 자에게 가까이 하시고 중심에 통회하는 자를 구원하시는도다\(시 34 : 18)라고 했습니다.

    소명의 체험

    회개한 이사야는 자신의 소명을 깨달았습니다. \내가 또 주의 목소리를 들은즉 이르시되 내가 누구를 보내며 누가 우리를 위하여 갈꼬 그 때에 내가 가로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나를 보내소서\(사 6 : 8)
    이 세상에서 가장 가치 있는 인간의 삶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변화를 받은 후 하나님께 소명을 받고 그 소명을 위해 살아가는 삶입니다. “인생은 풀과 같고 그 영화는 풀의 꽃”과 같습니다. 서늘한 바람이 불면 풀이 마르고 꽃이 떨어지듯 죽음의 서늘한 바람이 불 때 인간은 다 허무하게 죽고 맙니다. 한 순간에 아침 안개처럼 인생은 끝이 납니다.
    인간은 모두 ‘무의 굴\을 파고 들어가는 존재입니다. 잠시 물질과 명예를 얻는 것 같아도 아무것도 아닙니다. 인생이 얼마나 허무한 지 전도서 기자는 첫 마디에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 사람이 해 아래서 수고하는 모든 수고가 자기에게 무엇이 유익한고\(전 1 : 2, 3)라고 자탄했습니다. 이런 존재가 인간입니다.
    이 때문에 영원한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 되어 하나님 나라의 일을 한다는 것은 얼마나 가치 있는 일인지 모릅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허무한 존재로 이 세상에 살다가 영벌을 받아야 하는 것이 인생인데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변화를 받아 허무와 무의미와 죽임의 절망을 극복하고 영원한 세계를 위해 살아간다면 이야말로 크나큰 복이요 보람된 삶이 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다윗도 “사람이 무엇이관대 주께서 저를 생각하시며 인자가 무엇이관대 주께서 저를 권고하시나이까 저를 천사보다 조금 못 하게 하시고 영화와 존귀로 관을 씌우셨나이다\(시  8 : 4, 5)라고 찬양했습니다. 회개함으로 주님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 된 우리는 새로운 세계에 삽니다. 우리는 어디에서 와서 무엇 때문에 살며 어디로 가는지 확실히 압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용서받은 자요 부활의 생명을 얻은 자요 하나님의 자녀가 된 자요 예수 그리스도의 권세를 부여받은 자요 믿음으로 사는 자입니다. 이런 우리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이겠습니까?
    우리는 이사야처럼 “내가 여기 있나이다. 나를 보내소서.\라고 대답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내가 누구를 보내며 누가 우리를 위하여 갈꼬\(사 6 : 8)라고 하셨던 것은 ‘이 유다의 세태를 지적하고 다가올 심판을 외칠 자로 누구를 보낼꼬\라는 의미입니다. 오늘날도 하나님께서는 ”죄악이 관영한 이 세태를 경고하고 주의 재림을 말할 사람으로 누구를 보낼꼬?\라고 말씀하십니다. 이럴 때 성도인 우리는 “내가 여기 있나이다. 나를 보내소서.\라고 대답하고 그대로 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런 체험이 없는 성도는 불행한 성도입니다. 이런 성도는 허무한 존재로 살아갈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받은 소명을 깨닫고 세월을 아껴 마음과 뜻과 정성을 다해 사람들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과 회개할 것과 주의 심판이 임박했음을 알려야 합니다.
    어떤 성도는 “나는 목사도 전도사도 아닌걸요. 나는 선교사도 제직도 아닌걸요.”라고 말하며 \내가 여기 있나이다.\라고 나서길 꺼려합니다.
    하나님께서는 각 성도 누구에게나 소명을 주셨습니다. 주의 종은 주의 종대로, 평신도는 평신도대로 다 소명이 있습니다. 성도는 이것을 깨닫고 가정에서, 이웃에서, 사회에서 하나님의 나라를 증거해야 합니다. 성경은 분명히 기록하였습니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라 이는 너희의 드릴 영적 예배니라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롬 12 : 1, 2)
    우리는 소명을 받고 외친 이사야처럼, 예레미야처럼, 아모스처럼, 호세아처럼, 베드로처럼, 바울처럼 믿음의 선배들처럼 삶의 현장에서 어떤 직분에 있든지 세상 사람들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과 재림을 늘 외쳐야 하는 것입니다. 이런 삶이 가장 가치 있는 삶이요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삶입니다.
    오늘날 우리는 그 어느 때보다 어려운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수만은 사람들이 가치관을 상실하고 죄악을 좇고 있음을 봅니다. 죄악이 홍수처럼 범람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때 위기를 극복하게 해주시고 영원한 소망과 기쁨, 용서와 사랑을 주실 분은 누구이겠습니까?
    오직 예수 그리스도 한 분밖에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역사하실 때 개인의 위기, 국가의 위기는 해소됩니다. 국가가, 개인이 사는 길은 복음의 확산밖에 없습니다. 사람이 예수 그리스도를 발견하고 죄인임을 깨닫고 소명을 받을 때 진정한 행복과 기쁨이 있다는 것을 우리는 외쳐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를 위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해 주셨습니다. 마게도냐 사람처럼 세상 사람들이 와서 도우라고 외치고 있습니다. 주님 안에서 변화를 받은 성도 여러분은 \내가 여기 있나이다. 나를 보내소서.\라고 고백하고 세상에 나가 외치는 주님의 일꾼이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여의도순복음교회 담임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