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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사속의 명설교

    성령의 역사가 임하는 현장

    페이지 정보

    성경본문: 행 10:44-48 | 설교자: 피영민

    본문

    1. 서론

    사도행전 9장을 보면 사도 베드로의 기적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특별히 31절부터 큰 기적이 일어나기 시작합니다. 애니아라고 하는 8년 된 중풍병자가 등장합니다. 중풍으로 인하여 침상에 8년 동안 누워 있었다는 사실은 그 병의 증세가 매우 심각했음을 알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사도 베드로가 말씀 한 마디로 이 병자를 일으켜 세웁니다. 34절을 보면 베드로가 “예수 그리스도께서 너를 낫게 하시니 일어나 네 자리를 정돈하라”고 명령합니다. 그러자 성경은 그 병자가 곧 일어났다라고 증거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것은 폭발적인 성령의 역사를 알리는 전주곡에 불과합니다. 사도행전 9장 36절 이하의 내용을 보시면 실로 엄청난 기적이 일어납니다. 그것은 바로 베드로가 다비다라는 여자를 살리는 장면입니다. 이 다비다는 참으로 경건한 신앙인이었습니다. 이 여자는 평소에 주위에 있는 가난한 이웃들을 돌보는 착한 사람이었습니다. 자신이 가지고 있던 재능인 바느질을 통하여서 많은 사람들에게 따뜻한 옷을 지어 선물한 매우 선량한 사람이었습니다. 여기에 대하여 36절은 “욥바에 다비다라 하는 여제자가 있으니 그 이름을 번역하면 도르가라 선행과 구제하는 일이 심히 많더니”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런 사람이 죽었으니 이웃들이 사도 베드로에게 눈물을 흘리면서 그 다비다의 안타까운 죽음을 호소하였습니다. 그리고 베드로에게 이 다비다의 생전의 선행을 증거합니다. 이때에 베드로는 기도한 후 “다비다야 일어나라”고 명령을 합니다. 그러자 이 여자가 바로 눈을 뜨면서 그 자리에 일어나 앉게 되었습니다. 참으로 놀라운 기적입니다. 병자를 고친 것도 큰 기적인데, 더군다나 죽은 자를 살리는 것은 더욱더 큰 엄청난 기적이요 역사입니다.
    그러나 오늘 우리가 읽은 사도행전 10장의 본문을 보면 가장 큰 기적이 일어납니다. 그 기적은 바로 고넬료라고 하는 이방인이 베드로를 청하여 살아계신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때에 성령께서 그 고넬료라고 하는 이방인의 집안에 강하게 임재 하셨다는 사건입니다. 그리고 성령의 부어지는 역사를 통해서 그 집안의 모든 사람들이 방언을 말하며 하나님을 높이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침례를 받게 됩니다. 베드로의 말씀과 성령의 부어주심 이 두 가지가 함께 만나면서 이방인 고넬료 집안에 큰 구원의 역사가 일어나게 되었습니다. 이 사도행전 10장의 역사는 교회의 역사에 있어서 매우 중대한 사건입니다. 왜냐하면 사도행전 2장은 유대인이 성령을 받은 사건이고, 사도행전 8장은 사마리아 사람들이 성령을 받은 사건이지만, 그러나 사도행전 10장은 이방인들이 성령을 받기 시작한 사건이기 때문입니다. 유대인이 얼마 안 되고, 사마리아 사람들도 그 숫자가 얼마 되지는 않지만, 이방인들은 압도적으로 많은 무리의 사람들입니다. 우리 한국인들과 같은 이방인들이 성령의 부어주심을 경험한 사건이 바로 오늘 본문 사도행전 10장의 역사입니다.
    이 본문의 사건을 통해서 드디어 이방인들을 향한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와 성령의 부어주심의 축복이 일어나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사도행전 10장은 대단히 중요한 사건이요, 기적 가운데 가장 큰 기적입니다.
    우리 교회의 표어를 “은혜와 진리가 만나는 교회”라고 정하였습니다. 그 이유는 은혜는 하나님의 성령의 역사를 의미하는 것이요, 진리는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베드로가 증거한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과 성령이 임한 폭발적인 은혜가 만남으로 인하여 고넬료 가정에 놀라운 구원의 역사가 임하였던 것처럼, 오늘날 우리교회에도 이러한 하나님의 놀라운 부흥의 역사가 임하기를 간절히 소원하는 마음으로 이 표어를 정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우리 교회를 통하여 한 두 사람이 구원을 받는 것이 아니라, 수많은 영혼들이 구원을 받는 역사를 꼭 보기를 원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바로 오늘 본문 44절과 45절에 나타난 성령의 내려오심과 성령의 부어주심이라고 확신합니다. 이 같은 성령의 임재하심이야말로 우리교회를 부흥시키고 한 걸음 더 나아가서 이 나라의 모든 교회를 살리는 유일한 방안이라고 생각합니다.
    지금 우리 성도들에게는 필요한 많은 것들이 채워져 있습니다. 좋은 집과 멋진 자동차, 맛있는 음식과 좋은 의복들이 너무나 풍족하게 갖춰져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좋은 환경에 살고 있는 우리 성도에게 꼭 필요한 것이 한 가지가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성령의 부으심입니다. 그럼, 왜 우리에게 성령의 부으심이 필요할까요?

    2. 성령 부으심이 필요한 이유

    오늘 본문에 등장하는 고넬료라는 사람에 대해서 우리가 주의를 기울일 필요가 있습니다. 이 사람에 대해서 사도행전 10장 1-2절은 다음과 같이 소개하고 있습니다.
    “가이사랴에 고넬료라 하는 사람이 있으니 이달리야대라 하는 군대의 백부장이라 그가 경건하여 온 집으로 더불어 하나님을 경외하며 백성을 많이 구제하고 하나님께 항상 기도하더니”.
    고넬료는 가이사랴에 주둔하고 있는 군대의 백부장이었습니다. 가이사랴는 유대 땅에서도 매우 아름다운 도시였습니다. 지중해를 끼고 있는 그 경관이 대단히 아름다운 절경을 자랑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당시의 로마의 군대가 이곳을 지배하였습니다. 특별히 로마의 총독이 이 가이사랴 도시를 다스리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달리야대라는 군대는 로마의 총독을 수호하는 매우 중요한 임무를 감당하고 있었습니다. 한 마디로 말해서 오늘날로 표현하자면 수도경비사령부입니다. 바로 고넬료는 그 조직의 백부장이었습니다. 아마 모르긴 몰라도 최소한 계급이 중령이상은 되는 권력을 가진 자였습니다. 이러한 사실을 미루어 짐작하건데 이 고넬료는 대단히 충성스러운 군인이었음을 알 수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충성심이 없이는 이러한 조직을 맡을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이 고넬료에 대해서 성경은 경건한 사람이요, 온 집으로 더불어 하나님을 경외한 사람으로 증거하고 있습니다. 원래 군인이라는 특수한 신분은 대단히 방탕하기 쉬운 직업입니다. 왜냐하면 대부분 집을 멀리 떠나서 근무를 하기 때문에 부모님의 간섭이나 어른들의 참견을 받지 않고 자신의 마음대로 살아가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약적을 이용해서 항상 군대의 주위에는 술집들이 번창을 하였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 등장하는 백부장인 고넬료는 군인이었지만 경건한 사람이었고, 또한 이방인이었지만 유대인의 하나님을 두려워할 줄 아는 신앙심을 소유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더욱더 훌륭한 사실은 자기 혼자만이 아니라, 온 집안의 사람들과 더불어 하나님을 경외하였던 매우 신실한 믿음의 사람이라는 점이었습니다. 자기 혼자 하나님을 믿고 경외하기란 그렇게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그러나 자기 집안 모든 사람들이 하나님을 믿게 하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목사요, 전도사요, 장로요, 권사요, 집사요, 성도이지만 자녀들의 신앙까지 책임을 지고 올바르게 양육하기란 매우 어렵습니다. 특별히 오늘날처럼 인터넷을 통하여 전 세계를 자기 마음대로 돌아다니는 우리의 아이들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잘 양육하기란 너무나 어렵지 않습니까? 세상의 재미있는 문화에 길들여진 우리의 자녀들을 신앙적으로 교육한다는 일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그러나 고넬료는 자신의 집 안에서 종교적인 지도력을 발휘하였습니다. 집 안에서 드려지는 모든 예배 때마다 전 가족을 다 집합시켜서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를 드리게 하였습니다. 이런 고넬료의 훌륭한 신앙교육을 오늘날의 우리 성도들이 본 받기를 원합니다. 비록 우리 아이들의 문화와 관습을 잘 이해하지 못하더라도 하나님께 나아와서 예배를 드리는 일 만큼은 명확한 선을 그어서 어릴 때부터 하나님의 귀한 생명의 말씀으로 잘 양육하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제가 미국에서 5년 정도 목회를 하면서 어려웠던 것이 한 가지 있었습니다. 그것은 예배를 드릴 때에 조그마한 어린아이들이 예배실을 온통 휘젓고 다니는 것이었습니다. 어떤 때는 강대상까지 올라와서 설교하는 저의 바지를 아이들이 마구 잡아당기기도 하였습니다. 하지만 그 어느 부모하나 자기의 아이들을 나무라지 않습니다. 그저 씩씩하게 잘 뛰어 노니깐 그것이 좋아서 웃으면서 바라만 볼 뿐입니다. 그러나 미국의 사람들은 그렇지가 않습니다. 미국의 어린아이들은 예배시간에 절대로 떠들거나 장난을 치지를 않습니다. 왜냐하면 자신의 아이가 예배시간에 떠들 경우에 그 즉시 아버지가 자신의 아이를 예배실 밖으로 데리고 나가서 따끔하게 혼을 내기 때문입니다.
    가끔 어떤 분들이 저에게 우리 예배 실에도 엄마와 아이가 같이 예배를 드릴 수 있는 유모실을 만들자고 제안을 합니다. 하지만 저는 그 유모실 이야말로 아이들의 신앙을 망치는 곳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왜냐하면 그곳에 있는 아이들치고 예배를 제대로 드리는 아이를 제가 본적이 없고, 심지어 엄마들조차도 뛰어다니는 자기의 아이들을 보느라고 예배를 잘 드릴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 부모들은 자녀들의 신앙을 잘 양육할 책임이 있습니다. 하지만 이것도 때가 있는 법입니다. 나이가 들어서 아이들을 신앙으로 양육하기란 너무나 어렵습니다. 자녀들이 나이가 들 기전 어릴 때부터 하나님을 잘 경외할 수 있도록 우리는 고넬료처럼 가정의 신앙적 지도자가 되어야만 할 줄로 믿습니다.
    이런 신앙교육에 관한한 아주 모범이 되는 분이 계십니다. 그분은 바로 우리 침례교단의 총무를 지내신 김용도 목사님의 아버님이신 김석규 목사님이십니다. 이 목사님은 새벽 5시만 되면 찬송가를 불러서 자녀들을 다 깨우십니다. 그리고 아이들을 예배실로 집합시킨 후에 날마다 예배를 드렸습니다. 만약에 늦잠을 자서 나오지 못한 아이가 있다면, 그 아이에게는 바로 날 벼락이 떨어졌습니다. 무서운 사랑의 매질이 임하게 됩니다. 이러한 교육을 받은 자녀들이 나중에 네 분이나 목사님이 되어서 우리 교단의 발전과 성장을 위해서 지대한 공헌을 하게 되었습니다. 오늘 이 자리에 참석한 모든 부모님들이 이 고넬료처럼 자녀들을 하나님의 귀한 말씀과 신앙으로 잘 양육하기를 거듭 부탁을 드립니다.
    또한 고넬료는 자비심이 많은 사람이었습니다. 본문을 보면 그가 백성을 많이 구제한 내용이 나옵니다. 자기 자신의 이익만을 챙기는 이기적인 사람이 아니라, 불쌍한 백성들을 많이 구제한 자비심이 많은 사람이 바로 고넬료였습니다. 거기에다가 이 고넬료는 하나님께 항상 기도한 기도의 사람이었습니다. 여기에 대해서 사도행전 10장 22절은 “저희가 대답하되 백부장 고넬료는 의인이요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라 유대 온 족속이 칭찬하더니”라고 하였습니다. 지금 유대인들이 이방인인 고넬료의 신앙을 칭찬하고 있습니다. 얼마나 고넬료의 신앙심이 좋았으면, 이방인을 개처럼 무시하는 유대인들이 고넬료의 신앙심을 칭찬을 하겠습니까? 우리는 여기에서 고넬료의 신앙심이 얼마나 훌륭한지를 짐작할 수가 있습니다.
    거기에다가 이 고넬료는 참으로 겸손한 사람이었습니다. 본문을 보면 고넬료가 기도하는 가운데에 하나님의 사자가 나타나서 이렇게 명령을 합니다. 5절을 보면 “네가 지금 사람들을 욥바에 보내어 베드로라 하는 시몬을 청하라”고 하였습니다. 그러자 그 즉시 하인들을 시켜서 멀리 50킬로미터나 떨어져 있는 시몬 베드로를 찾아가서 자신의 집으로 청하게 합니다. 그리고 사도 베드로가 자신의 집으로 들어올 때에 너무나 겸손한 모습을 보이게 됩니다.
    여기에 대해서 사도행전 10장 25절을 보면 “마침 베드로가 들어올 때에 고넬료가 맞아 발 앞에 엎드리어 절하니”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참으로 우리가 이해할 수 없는 고넬료의 겸손함입니다.
    보통 사회적인 관점으로는 지금 고넬료는 막강한 군대의 책임자인 백부장입니다. 하지만 베드로는 그 당시의 평범한 어부에 불과했습니다. 이것만으로도 고넬료와 베드로는 사회적인 신분이 너무 차이가 납니다. 아마 베드로가 군인이었다면 한 마디로 말해서 현역도 아니라, 방위병에 불과하였을 것입니다. 따라서 그런 베드로를 향해서 엄청나게 높은 권세와 권력을 소유한 백부장 고넬료가 반말을 한다고 해서 그 누구하나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이 없는 것은 당연합니다. 그러나 고넬료는 그렇게 함부로 베드로를 대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이 세우신 사도 베드로를 향해서 그 모습을 보자마자 그 자리에 무릎을 꿇은 참으로 겸손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을 통해서 우리가 깨달아야만 하는 중요한 사실이 한 가지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아무리 고넬료가 경건하고 하나님을 경외하고, 자비심이 많고 항상 기도하고 겸손한 삶을 살았다고 할지라도 구원을 받지 못했다는 사실입니다. 절대로 천국에 들어갈 백성이 되지는 못했습니다. 그럼, 고넬료가 천국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합니까?
    지금 고넬료에게는 결정적으로 부족한 것이 하나가 있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고넬료에게는 성령의 임재가 없었다는 사실입니다. 고넬료가 베드로를 만나기 전까지는 성령이 무엇인지도 몰랐습니다. 그러나 자신의 집으로 베드로를 초대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때에 비로소 하나님의 성령이 그에게 임하게 되었습니다. 이때에 선포된 베드로의 설교는 매우 간단하였습니다. 한 마디로 말해서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아들이 되시며, 그를 믿는 자에게는 하나님의 구원이 임하게 된다’라는 지극히 간단한 설교였습니다. 그러나 이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의 놀라운 성령의 역사가 고넬료와 그의 가정에 임하게 되었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이 같은 성령의 부어주심의 역사를 통해서 고넬료와 그 가정은 위대한 성령의 역사를 체험하게 되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지금 현재 우리가 아무리 교회를 잘 나오고, 열심히 기도를 하고, 말씀을 많이 보고, 헌금과 구제에 앞장을 서고 있다고 할지라도 성령의 부으심을 체험하기 전까지는 결코 천국에 들어갈 수 없다는 진리를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성령의 부으심의 체험이 없이는 그 누구도 천국에 들어갈 수가 없습니다. 심지어 천국관광조차도 불가능합니다. 여기에 대해서 성경은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다”라고 명확하게 경계선을 긋고 있습니다. 그러므로‘내가 성령으로 거듭나는 은혜를 경험하기 전까지는 하나님과 관계없는 사람이다’라는 사실을 깨닫기를 바랍니다. 따라서 우리 하나님의 교회는 무엇이 필요합니까? 절대적으로 성령의 부으심의 역사가 필요합니다. 아무리 설교자가 설교를 잘 한다고 할지라도 성령의 역사가 임하지 않으면 소용이 없습니다. 그것은 단지 울리는 꽹과리에 불과합니다. 그러나 성령이 그 말씀을 통해서 임하게 되면 엄청난 하나님의 역사를 일으키게 됩니다. 그래서 우리 교회는 표어처럼 하나님의 말씀과 성령이 함께 역사하는 교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다가오는 2003년도에 이러한 성령의 기름 부으심이 폭포수처럼 임할 수 있도록 모든 성도님들의 많은 기도를 부탁드립니다.
    우리 한국 침례교회가 원로 목사님 시대에 성령의 큰 기름 부으심을 경험한 후에 거의 40년이 지나가도록 젊은 목회자들 가운데에 그러한 경험을 한 사람이 없습니다. 특별히 요즈음 젊은 목회자들 가운데에 성령의 권능에 사로잡혀 목회를 하는 사람을 찾기란 매우 어렵습니다. 대신에 세상의 지혜와 공부와 학문과 연구를 통해서 설교하고 목회를 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입니다. 그러나 저는 이러한 방법이 아니라 위로부터 내려오는 성령의 부으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께서 맡겨 주신 이 귀한 목회의 사명을 감당하기를 감히 소원합니다. 원로 목사님께서 받으셨던 성령의 능력을 지금은 그때보다 세상이 갑절로 악해졌기 때문에 최소한 2배 이상의 폭발적인 성령의 기름 부으심이 저에게 임하기를 간절히 간구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 교회에도 이와 같은 사도행전에 임한 성령의 충만한 임재하심이 우리 시대에 언젠가 한 번은 일어나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바랍니다.
    목회를 하고 있는 제 친구들이 저에게 이런 질문을 가끔 하곤 합니다. “당신의 교회의 특징은 무엇이냐? 성경공부와 제자훈련이 특징이냐? 사회복지가 특징이냐? 기도와 찬양이 특징이냐?” 하는 질문입니다. 이때에 저는 자신 있게 이렇게 대답을 합니다. “우리교회의 특징은 바로 성령의 부으심이 강하게 임재 하는 교회이다”라고 말입니다.

    3. 그럼, 성령의 부으심이 임할 때에 어떠한 결과가 나타날까요?

    첫 번째로, 성령의 부으심에는 놀라운 변화가 나타납니다. 그 사람에게 깜짝 놀랄만한 큰 변화가 일어나게 됩니다. 교회도 변화가 일어나야만 합니다. 변화가 일어나지 않은 교회는 살아있는 교회가 아니라 죽은 교회입니다. 우리 강남중앙침례교회에는 성령의 부으심으로 말미암아 날마다 놀라운 변화가 일어날 줄로 믿습니다. 우리의 영성이 변해야만 합니다. 기도를 하지 않던 사람이 기도에 힘을 쓰고, 말씀을 읽지 않던 사람이 말씀을 사모하는 사람으로 변화하는 역사가 우리 가운데에 일어나야만 합니다. 또한 지금까지 신앙생활을 하면서도 남을 단 한번도 구제하지 않은 사람은 앞으로는 구제에 앞장을 서기를 바랍니다. 이러한 삶의 변화가 우리 가운데에 일어날 때에 우리 교회에 엄청난 변화가 일어나게 될 줄로 믿습니다. 그러나 나쁜 변화는 일어나지 않기를 원합니다. 성령의 부으심으로 인한 좋은 변화, 아름다운 변화가 계속해서 일어나기를 바랍니다.
    두 번째로, 성령의 부으심에는 초자연적인 능력이 나타납니다. 성령이 임재하기 전까지는 고넬료의 가정에는 방언이 무엇인지 아는 사람이 단 한 사람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성령이 내려오시니까 알지 못하던 언어로 기도하는 방언의 역사가 일어나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방언의 은사는 배워서 되는 것이 아닙니다. 또한 공부하고 연구한다고 해서 습득되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이 방언은 어느 한 순간에 갑자기 튀어나오는 현상입니다. 그것은 바로 성령의 초자연적인 능력에 의해서만 일어나는 하나님의 역사이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성령에 의한 초자연적인 현상은 방언만을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여기에는 세상의 의사도 포기한 육신의 질병도 고침을 받는 놀라운 치유의 역사도 있습니다. 또한 세상의 실패로 인하여 큰 절망 가운데에 처한 안타까운 사람에게는 새로운 삶에 대한 소망과 용기와 위로를 주는 회복의 역사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특별히 우리 교회의 성도님들 가운데에 육신의 질병으로 인하여 고통당하는 분들에게는 성령의 치유하시는 역사가 임하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마음에 큰 고통과 슬픔이 있는 분들에게는 성령의 담대한 용기와 소망과 위로가 넘쳐나시기를 원합니다.
    세 번째로, 성령의 부으심에는 하나님을 높이며 찬양하는 기쁨의 역사가 일어납니다. 전에는 교회를 다녀도 알지 못하였던, 그리고 맛보지 못하였던 기쁨이 마음속에서 솟아나면서 자연스럽게 하나님을 찬양하며 영광을 돌리는 현상이 성령의 부으심에 나타나게 됩니다.
    제가 얼마 전에 어떠한 권사님으로부터 참으로 가슴 아픈 한 마디의 말씀을 지나치면서 듣게 되었습니다.
    “목사님, 저는 아무리해도 처음에 예수님을 믿고서 알게 된 기쁨이 영 회복이 되지 않고 있어요!”그때의 그 말씀은 비수가 되어서 저의 심장을 찌르는 아픔과 고통으로 다가왔습니다. 왜냐하면 저의 힘으로는 그 권사님의 기쁨을 조금도 회복을 시킬 수 가 없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제가 노력을 해도 권사님의 마음 속에 참다운 기쁨을 줄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저는 마음은 아파도 절망하지 않습니다. 그 이유는 바로 성령의 부으심이 있으면 그 기쁨이 곧 회복이 되기 때문입니다. 성령의 강한 임재하심이 우리의 심령에 부어지기만 하면 아무리 강한 흑암의 세력이라도 당장 쫓겨나가게 될 줄로 믿습니다. 성령의 부으심의 역사가 일어나기만 하면 우리 교회의 모든 성도들은 날마다 참다운 기쁨 속에서 온전히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복된 믿음의 삶을 살게 될 줄로 확신합니다.
    네 번째로, 성령의 부으심에는 그 사람의 신앙이 진정한 신앙인으로 인정받게 되는 역사가 일어납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사도 베드로가 이방인 백부장 고넬료의 믿음을 보고서 그의 신앙을 인정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리고 사도 베드로는 고넬료의 신앙을 여러 사람들 앞에서 확증하기 위해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침례를 베풀어 주었습니다. 이 침례를 통해서 고넬료의 신앙은 많은 사람들 앞에서 진정한 그리스도인이라고 하는 인정을 받게 되었습니다. 성령의 부으심을 받으면 그 사람이 예수님을 믿는 사람이라고 굳이 말하지 않더라도 단번에 알 수가 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성령의 아름다운 향기가 그 사람의 삶 속에서 퍼져 나오기 때문입니다. 우리 교회의 모든 성도님들에게도 고넬료에게 임한 성령의 부으심으로 말미암아 아름다운 예수 그리스도의 향기가 가는 곳곳마다 진동하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다섯 번째로, 성령의 부으심에는 목회자와 성도의 좋은 관계가 이루어집니다. 오늘 본문 48절을 보면 “명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침례를 주라 하니라 저희가 베드로에게 수일 더 유하기를 청하니라”는 참으로 감동적인 장면이 나오고 있습니다. 지금 목회자인 베드로에게 성도인 고넬료가 자신의 집에 좀 더 머물 것을 간청하고 있습니다. 고넬료는 하나님이 세우신 사도 베드로가 자신의 집에 머물면서 하나님의 귀한 말씀과 기도를 계속해서 해 주기를 간절히 원하고 있습니다. 이 얼마나 아름다운 목회자와 성도의 관계입니까!
    저는 우리 강남중앙침례교회에도 이러한 하나님의 축복이 임하게 될 줄로 믿습니다. 과거에 있었던 아름답지 못한 관계, 불편한 모든 관계가 성령의 부으심으로 말미암아 깨끗이 회복되어지는 역사가 임하게 될 줄로 확신합니다. 사도행전 10장에 나타난 성령의 부으심의 역사가 우리 교회에 임함으로 인하여서 성도인 고넬료가 목회자인 베드로를 진정으로 섬겼던 것처럼, 또한 목회자인 베드로가 성도인 고넬료의 신앙을 확실하게 인정해 준 것처럼 목회자는 주님의 사랑으로 성도의 신앙을 권면하며 인정하고 칭찬해 주고, 성도는 목회자의 영적인 권위에 늘 순종하면서 겸손함으로 섬기는 관계가 회복되기를 원합니다. 이와 같이 아름다운 목회자와 성도의 관계가 주님 오시는 그날까지 계속해서 이어지는 하나님의 축복의 역사가 우리 교회에 늘 임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4. 결론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의 마음대로 비를 오게 하고, 바람을 부를 수는 없습니다. 그것은 오직 이 세상의 만물을 주관하시는 하나님의 섭리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정하신 때와 시기에 비와 바람은 반드시 오게 마련입니다. 내가 아무리 마음속으로 비를 사모하고, 바람을 사모한다고 할지라도 나의 원하는 시간에 비와 바람을 부를 수는 절대로 없습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언제인지는 몰라도 비와 바람은 틀림없이 온다는 사실입니다. 비가 계속해서 안 올 수는 없습니다. 바람도 마찬가지입니다. 아무리 무더운 가뭄이 계속된다고 할지라도 일정한 시간이 지나면 언젠가는 시원한 빗줄기가 쏟아지게 됩니다. 중요한 것은 비가 올 때에 그것을 받을 그릇이 나에게 준비되어 있느냐 하는 문제입니다. 아무리 많은 비가 메마른 이 땅에 온다고 할지라도 그 비를 받을 수 있는 그릇이 없으면 아무런 소용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성령의 부으심도 이와 똑같습니다. 우리 교회에 하나님의 성령의 부으심이 폭포수처럼 크고 강하게 임한다고 할지라도 그 성령의 부으심을 받을 만한 신앙의 자세가 준비되어 있지 않다면 아무런 유익이 없다는 사실을 깨달으시기 바랍니다.
    그럼, 우리가 어떻게 해야 성령의 부으심이 임할 때에 그 은혜를 받을 수 있는 그릇을 준비할 수가 있을까요? 먼저, 성결의 그릇입니다. 만약에 고넬료가 더럽고 욕심이 많은 사람이었다면 성령의 역사는 일어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고넬료가 경건한 사람이었다고 증거하고 있습니다. 둘째는, 말씀을 사모하고 그 권위에 복종하는 그릇입니다. 고넬료는 하나님의 말씀을 간절히 사모하였습니다. 자신보다 세상적인 권위가 없는 사도 베드로였지만 그 입에서 나오는 말씀을 간절히 사모하였으며, 그 영적인 권위 앞에 겸손히 무릎을 꿇었습니다, 셋째는, 기도의 그릇입니다. 고넬료는 항상 하나님께 기도하였던 기도의 사람이었습니다. 그 기도의 삶을 통하여 고넬료는 하나님의 환상을 경험하게 되었고, 결국에는 사도 베드로를 만남으로 인하여서 놀라운 성령의 부으심의 역사를 경험하는 복된 믿음의 사람이 되었다는 사실을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이와 같이 세 가지의 그릇을 우리 교회의 성도가 잘 준비를 해야만 하나님의 놀라운 성령의 부으심의 역사가 오늘날 우리 교회에 틀림없이 임하게 될 줄로 믿습니다. 성령의 부으심이 일어날 때에 우리 교회는 크게 부흥하게 될 줄로 믿습니다. 우리교회가 크게 부흥할 때에야 비로소 이 세상의 많은 영혼들이 구원을 받게 될 것입니다.
    오늘날의 어떤 일본 목회자들이 이야기하기를 유럽의 교회에는 예수님이 이미 오래전에 떠나셨고, 미국의 교회는 얼마 전에 떠나셨고, 한국의 교회는 이제 예수님이 떠나실 준비를 마쳤다고 합니다. 그러나 우리 강남중앙침례교회가 간절히 기도하며 부르짖는 가운데에 중국으로 떠나 시려는 예수님의 허리춤을 꼭 붙잡기를 원합니다. 그리하여서 사도행전 10장에 기록된 고넬료의 가정에 임한 성령의 부으심의 역사가 바로 우리 교회에 임할 수 있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강남중앙교회 담임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