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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사속의 명설교

    아골 골짜기

    페이지 정보

    성경본문: 호 2:1-23 | 설교자: 이동원

    본문

    호세아2장 1.너희형제에게는암미라 하고 너희자매에는 루하마라 하라
    2. 너희 어미와 쟁론하고 쟁론하라 저는 내 아내가 아니요 나는 저의 남편이 아니라 저로 그 얼굴에서 음란을 제하고 그 유방사이에서 음행을 제하게 하라
    3. 그렇지 아니하면 내가 저를 벌거 벗겨서 그 나던 날과 같게 할 것이요 저로 광야 같이 되게 하며 마른 땅 같이 되게 하여 목 말라 죽게 할 것이며
    4. 내가 그 자녀를 긍휼히 여기지 아니하리니 이는 저희가 음란한 자식들임이니라
    5. 저희의 어미는 행음하였고 저희를 배었던 자가 부끄러운 일을 행하였나니 대저 저가 이르기를 나는 나를 연애하는 자들을 따르리니 저희가 내 떡과 내물과 내 양털과 내 삼과 내 기름과 내 술들을 내게 준다 하였느니라
    6. 그러므로 내가 가시로 그 길을 막으며 담을 쌓아 저로 그길을 찾지 못하게 하리니
    7. 저가 그 연애하는 자를  따라 갈지라도 미치지 못하며 저희를 찾을지라도 만나지 못할것이라 그제야 저가 이르기를 내가 본 남편에게로 돌아가리니 그 때의 내 형편이 지금보다 나았음이라 하리라
    8. 곡식과 새 포도주와 기름은 내가 저에게 준 것이요 저희가 바알을 위하여 쓴 은과 금도 내가 저에게 더하여 준 것이어늘 저가 알지 못하도다
    9. 그러므로 그 시절에 내가 내 곡식을 도로 찾으며 그 시기에 내가 내 새 포도주를 도로 찾으며 또 저희 벌거벗은 몸을 가리울 내 양털과 내 삼을 빼앗으리라
    10. 이제 내가 그 수치를 그 연애 하는 자의 눈 앞에 드러내리니 저를 내손에서 건져낼 사람이 없으리라
    11. 내가 그 모든 희락과 절기와 월삭과 안식일과 모든 명절을 폐하겠고
    12. 저가 전에는 이르기를 이것은 나를 연애하는 자들이 내게 준 값이라 하던 그 포도나무와 무화과나무를 거칠게 하여 수풀이 되게 하며 들짐승들로 먹게 하리라
    13. 저가 귀고리와 패물로 장식하고 그 연애하는 자를 따라가서 나를 잊어버리고 향을 살라 바알들을 섬긴 시일을 따라 내가 저에게 벌을 주리라 나 여호와의 말이니라
    14. 그러므로 내가 저를 개유하여 거친 들로 데리고 가서 말로 위로하고
    15. 거기서 비로소 저의 포도원을 저에게 주고 아골골짜기로 소망의 문을 삼아 주리니 저가 거기서 응대하기를 어렸을때와 애굽땅에서 올라 오던 날과 같이 하리라
    16.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그 날에 네가 나를 내 남편이라 일컫고 다시는 내 바알이라 일컫지 아니하리라
    17. 내가 바알들의 이름을 저의 입에서 제하여 다시는 그 이름을 기억하여 일컬음이 없게 하리라
    18. 그날에는 내가 저희를  위하여 들짐승과 공중의 새와 땅의 곤충으로 더불어 언약을 세우며 또 이 땅에서 활과 칼을 꺽어 전쟁을 없이 하고 저희로 평안히 눕게 하리라
    19. 내가 네게 장가들어 영원히 살되 의와 공변됨과 은총과 긍휼히 여김으로 네게 장가들며
    20. 진실함으로 네게 장가들리니 네가 여호와를 알리라
    21.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그 날에 내가 응하리라 나는 하늘에 응하고 하늘은 땅에 응하고
    22. 땅은 곡식과 포도주와 기름에 응하고 또 이것들은 이스르엘에 응하리라
    23. 내가 나를 위하여 저를 이 땅에 심고 긍휼히 여김을 받지 못하였던 자를 긍휼히 여기며 내 백성 아니었던 자에게 향하여 이르기를 너는 내 백성이라 하리니 저희는 이르기를 주는 내 하나님이시라 하리라 아멘

    15절에 보면 “거기서 비로소 저의 포도원을 저에게 주고 아골 골짜기로 소망의 문을 삼아 주리라” 아골 골짜기란 말이 나옵니다. 우리는 호세아 2장에 나타나는 모든 이야기를 아골 골짜기라는 말로 상징 할 수가 있습니다. 2장이 열리면서 2절에서 호세아서의 기자는 이렇게 말합니다.  
    “너희 어미와 쟁론하고 쟁론하라” “저는 더 이상 내 아내가 아니다” 지금 누가 누구한테 하는 소리입니까? 호세아가 누구한테 하는 소리입니까? 자녀들에게 하는 소리죠. 니 어미와 쟁론하라 이 말을 다시 말하면 어머니를 고발하라 이런 말입니다.  
    “니 어머니가 음행에 빠져 있다. 바람나 있다.” 이말입니다. “니 어머니와 쟁론을 해서라도 니 어머니의 자리를 찾도록 회복시키도록 너희들이 도전하라!” 이말입니다.
    여기서 어머니는 이스라엘 민족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럼 이 자녀를 누구의 상징으로 봐야 합니까?
    이 자녀는 성서학자들은 남은 자들의 상징이다 이스라엘 백성 가운데 아직도 순결을 지키고 하나님을 섬기고 있는 남은 자들 그 남은 자들에게 호소하고 있는 것입니다. 너희들이 좀 노력해서 이스라엘 민족을 회복시켜라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하라는 메시지입니다. 그러나 이 어미를 돌이키게 하는 것 그것은 궁극적으로 이스라엘 백성의 남은 자들의 사역이라기
    보다는 궁극적으로 그것은 하나님의 사랑으로 회복될 수밖에 없습니다.  
    “여기 안타까운 하나님의 가슴이 이 남은 자들을 향해서 네 어머니를 좀 설득하라 도전하라 지금 네 어머니는 삶의 자리를 떠나서 방황하는 가운데 있다. 다시 나 여호와 하나님께로 돌아오도록 돌이키게 하라.”
    이 안타까운 하나님의 가슴이 결국 하나님의 가슴 속에서 있었던 하나님의 사랑이 이스라엘 민족을 다시 회복시키는 회복의 스토리가 아름다운 상징의 언어로 오늘 이 호세아서 2장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여기 타락한 이스라엘 백성들의 상태를 상징한 가장 아름다운 그들의 삶의 자리에 대한 상징적인 모습이 바로 아골 골짜기입니다. 아골 골짜기가 왜 아름다운 골짜기냐? 본래는 추한  골짜기입니다. 타락의 골짜기입니다. 그러나 이 타락의 골짜기가 하나님의 손길을 통해서 회복의 골짜기로 변합니다. 아골 골짜기 하면 누구 생각이 나십니까?
    이스라엘백성들의 역사 속에서 어떤 인물이 떠오르십니까? 아간. 여호수아 6장에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땅에 들어온 후에 여리고성을 매일 한바뀌씩 도는 엿새동안 돌고 마지막날 일곱 번 도는 이 믿음의 행진을 통해서 여리고성을 무너뜨리는 기적적인 역사가
    일어나죠? 여리고성은 거대한 성이였습니다. 이 거대한 성을 믿음으로 무찌를 수 있었던
    이스라엘 백성들은 용기 백배였습니다. 그런데 여리고성 다음에 전투는 아주 작은 마을이었어요. 그 성의 이름은 아이였습니다.
    아이같은 아이성이었습니다. 이 작은 아이성이라고 이스라엘 백성들이 깔보고 도전을 했다가 어떻게 되요? 보기 좋게 패배합니다. 그 패배의 원인이 어디에 있어요? 그 원인이 여리고성 전투와 아이성 전투사이에 일어나는 사건이 있습니다.
    여리고성 전투 이후에 승리한 후에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로 하여금 적의 전리품에 손을 대지 말도록 명하셨어요.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을 어기고 아간이란 사람이 어떻게 했습니까? 무엇에 대한 욕심을 냈습니까?
    여호수아 7장에 21절에 보면 아름다운 외투 요즘 식으로 말하면 밍크코트에 현혹이 됐어요. 그리고 금, 은 에 현혹이 됐어요. 하나님의 명백한 말씀을 경고한 말씀을 어기고 살짝 했습니다. 자기 주머니에 넣습니다. 결국 어떻게 됐습니까? 여호수아 7장에 마지막 부분에 보시면 이 골짜기에서 비극적인 스토리로 여호수아서 7장이 마무리되고 있는 모습을 볼 수가 있죠. 7장 21절부터 한번 보겠습니다.
    “내가 노략한 물건 중에 시날산의 아름다운 외투 한 벌과 은 이백 세겔과 오십 세겔 중의 금덩이 하나를 보고 탐내어 취하였나이다. 보소서 이제 그 물건들을 내 장막 가운데 땅속에 감추었는데 은은 그 밑에 있나이다.”
    22절, “이에 여호수아가 사자를 보내매 그의 장막에 달려가 본즉 물건이 그의 장막 안에 감취었는데 은은 그 밑에 있는지라.”
    어떻게 했습니까? 25절에 보십시오 “여호수아가 가로되 네가 어찌하여 우리를 괴롭게 하였느뇨 여호와께서 오늘날 너를 괴롭게 하시리라 하니 온 이스라엘이 그를 돌로 치고 그것들도 돌로 치고 불사르고” 26절, “그 위에 돌 무더기를 크게 쌓았더니 오늘날까지 있더라. 여호와께서 그 극렬한 분노를 그치시니 그러므로 그곳 이름을 오늘날까지 아골 골짜기라 부르더라.”
    “아골”이란 말은 고통이란 뜻입니다. 고통의 골짜기 이곳은 고통이 있기 전에 범죄가 있었습니다. 범죄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이 집행되었던 장소가 바로 아골 골짜기였습니다.
    하나님의 이스라엘 백성에 대한 이스라엘 백성들을 대표한 아간이란 한 사람이 대표하는 타락, 그 타락에 대한 하나님에 심판이 자행되었던 골짜기가 바로 아골의 골짜기였습니다.
    그런데 아골의 골짜기에서 일어났던 비슷한 사건이 지금 재현되고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때는 금이나 은이나 아름다운 외투를 보고 탐냈지만은 거의 비슷한 다른 이유로 이스라엘 백성들이 지금 타락의 골짜기를 방황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타락과 징계와 회복의 스토리, 아골 골짜기

    아골 골짜기의 상징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그 시대의 타락과 징계와 회복의 스토리를 보여 주고 있습니다. 이 골짜기에서 전개됩니다.
    첫째로 우리는 이 골짜기를 타락의 골짜기라고 부를 수 있습니다. 타락의 골짜기에서 일어난 타락의 이야기를 좀더 자세히 분석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왜 타락했는가? 그 시대의 이스라엘 백성들의 타락의 원인은 어디에 있었는가? 다시 본문에 보면 호세아 2장 처음 부분에 계속해서 많이 나오는 단어가 무슨 단어예요?
    무슨 단어가 많이 나옵니까? 2절에 보면 “음란, 음행”, 4절에도 “음란” 5절에도 “행음”이 나옵니다.
    우리가 이것을 문자 그대로 육체적인 음란 도덕적인 음란, 범죄 속에 빠졌다고 볼 필요는 없습니다. 우리가 성경을 좀 더 읽어보면 “그들의 음란함”이 “영적인 음란함”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5절, “저희의 어미는 행음하였고 저희를 배었던 자가 부끄러운 일을 행하였나니 대저 저가 이르기를 나는 나를 연애하는 자들을 따르리니 저희가 내 떡과 내 물과 내 양털과 내 삼과 내 기름과 내 술들을 내게 준다 하였느니라.”
    그래서 그 남자를 따라 갔다는 거예요. 고멜이 다른 남자를 따라 가는 원인은 이것입니다. 다른 남자가 뭘 준다고 했어요? “떡도 주고 물도 주고 양털도 주고 삼도 주고 기름도 주고 술도 주겠다.” 거의 비슷한 이유로 이스라엘 백성들이 같은 것을 탐하고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다시 말하면 떡과 물과 양털과 삼, 이런 것들은 일종의 필수품에 속할 지 모르죠.
    그러나 기름과 술은 일종의 사치품이라 할 수가 있습니다. 그들의 쾌락을 위한 것입니다. 그들의 필요뿐만 아니라 그들의 쾌락까지 제공할 수 있다고 선언한, 어떤 다른 신을 섬기기 시작한 거예요.
    그 신의 정체는 무엇입니까? 한마디로 말하면 무슨 신이예요? 바알신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본래 농사짓는 민족이 아닙니다. 유목 민족입니다.
    그러나 이제 그들이 광야에 여행을 거쳐서 가나안 땅에 들어와서 그들은 가나안 땅에 정착하여 농사를 지을 필요가 생겼습니다. 농사를 지울 줄 몰라요. 누구한테 농사를 배웠을까요? 가나안 원주민들에게 농사를 배웠을 것입니다. 가나안 원주민들을 가만히 보니까 그들은 농사만 짓는 것이 아니라 농사가 안될 때는 누구한테 제사를 합니까?
    바알의 신들에게 제사를 드리고 바알의 신들에게 기도를 하고 바알의 신들이 본래 농신 이예요 농사를 잘되게 하는 풍요의 신. 생산의 신. 농신입니다. 농사를 지어서 그거의 풍요와 수확을 가져다 주는 신이 바로 바알의 신이었어요.
    그래서 그들은 농사짓는 기술만 배우면 괜찮아요. 그런데 그 배후에는 뭘 배우기 시작합니까? 농사를 잘 지을 수 있도록 만들어 준다고 믿었던 바알의 신들을 섬기기 시작한 것이예요. 이것이 바로 이스라엘 민족들이 우상숭배 가나안 땅에 들어간 후에 우상숭배에 빠지게 된 원인인 것입니다.
    여기서부터 타락하기 시작합니다. 본문에 나타난 타락의 단계를 세 가지로 볼 수가 있어요. 어떻게 타락하는가? 타락의 골짜기로 상징된 여기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타락하는 모습을 세 가지 단계로 우리가 볼 수가 있습니다.
    우선 5절에 보면 “저희의 어미는 행음하였고 저희를 배었던 자가 부끄러운 일을 행하였나니 대저 저가 이르기를 나는 나를 연애하는 자들을 따르리니 저희가 내 떡과 내물과 내 양털과 내 삼과 내 기름과 내 술들을 내게 준다”고 합니다.
    누가 준다구요? 마치 고멜에게 남편 아닌 다른 남자가 나타나 내게 필요한 것을 다 준다고 이야기를 합니다. 고멜의 모든 필요를 충족하겠다고 선언한 남자가 나타나자마자 고멜은 밖을 향해서 달리기 시작했습니다.
    마찬가지로 이스라엘 민족이 뭐예요? 가만히 보니까 하나님을 믿는 민족이라고 하지만 가나안 땅에 도착하는 그동안에도 광야의 생활 속에서 얼마나 이스라엘 백성들이 뺑뺑이를 많이 했어요? 얼마나 고생을 많이 했어요?
    근데 이 가나안 땅에서 농사를 잘 짓고 풍요하게 사는 가나안의 백성들이 “우리들에게 이것들을 바알의 신들이 제공한다.”고 합니다. 이 소리를 듣자 이스라엘 백성들은 여호와 대신에 누구를 향해서 전하기 시작했습니까?
    바알의 신들을 향해서 경배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바알이 그들에게 떡과 물과 양털과 삼과 기름과 술들을 제공한다고 믿기 시작한 것 이예요.
    다시 말하면 축복의 근원을 혼동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이것이 타락의 첫 번째 단계예요. 축복의 근원을 혼동하는 것 누가 나에게 축복을 공급하는가? 누가 나에게 축복의 근원일 수 있는가?  우리는 열심히 하나님을 신뢰했습니다. 하나님을 경배했습니다. 그러나 어느날 갑자기 이런 회의가 올 수가 있어요. 정말 하나님이 내 모든 필요를 공급하시는가? 기도가 실감이 나질 않고, 신앙의 실제성이 의심되는 어느 한 순간이 있을 수가 있어요. 그 순간 우리는 하나님을 망각하고 그들의 신의 자신에 노력을 믿는다든지, 자신의 행위를 믿는다든지, 자신의 수단을 신뢰한다든지, 자신의 사업을 신뢰한다든지, 자신의 방법을 더 신뢰한다든지, 그 순간 그 인생의 초점은 하나님으로부터 자기가 행하는 그 무엇으로 옮겨지기 시작합니다.
    그 순간부터 그 모든 것이 우리의 우상이 되기 시작합니다. 우리는 축복의 근원을 혼동하기 시작하는 것이예요. 그것이 타락의 첫 단계입니다. 타락의 시작입니다. 자, 조금 더 진행이 됩니다.
    타락의 두 번째 단계를 보세요. 8절 “곡식과 새 포도주와 기름은 내가 저에게 준 것이요 저희가 바알을 위하여 쓴 은과 금도 내가 저에게 더하여 준 것이어늘 저가 알지 못하도다.” 여기서 중요한 단어는 “저가 알지 못한다.” 하나님의 음성입니다. “저희들이 알지 못한다.” 주께서 이 말씀을 하시면서 안타까워하는 하나님의 가슴과 하나님의 슬픔을 느낄 수 가 있어요.
    자, 곡식과 새포도주와 기름 심지어 바알들을 위해서 쓰고 있는 것, 우리의 육신의 쾌락을 위해서 우리가 쓰고 있는 모든 것, 이 모든 것도 실제는 뭐예요? 심지어는 우리가 타락을 위해서 사용하는 모든 것 타락을 위해서 사용하는 돈도 타락하는데 용감하게 사용하는 우리의 육체도 실상은 누가 주신 것입니까?
    하나님이 주신 육체 하나님이 주신 자원, 하나님이 주신 것, 그것을 가지고 타락을 위해서 소모하면서도 이 모든 것이 하나님께로부터 왔다는 사실을 우리는 알지 못하고 있습니다. 축복의 근원을 혼동하기 시작하자 우리는 축복의 근원을 잊어버리기 시작합니다. 이것은 조금 한 걸음 더 나아갑니다.
    타락의 세 번째 단계를 보세요. 13절, “저가 귀고리와 패물로 장식하고 그 연애하는 자를 따라가서 나를 잊어버리고 향을 살라 바알들을 섬긴 시일을 따랄 내가 저에게 벌을 주리라 나 여호와의 말이니라.”
    여기서 13절 중간에 보면 “연애하는 자를 따라가서 나를 잊어버린다.” 이쯤 되면 여기서 완전 잊어버렸다는 거예요. 미쳤어요. 이젠 환장했습니다.
    남편을 완전히 잊어버렸어요. 외간 남자에게 환장을 해갖고 완전히 남편을 잊어버린 타락한 아내의 모습과 조금도 다르지 않은 이스라엘 백서들을 지금 고발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들은 이제 하나님을 아예 망각했습니다. “나를 잊어버렸다” 너희들은 나를 잊어버렸단 말이야. 타락의 세 번째 단계예요. 자, 자기의 사랑하는 남편을 떠나서 불의한 사랑을 따라 떠나간 아내의 타락의 비극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비극이었을 뿐 아니라 오늘도 우리의 삶의 근원, 우리의 축복의 근원, 우리의 존재의 근원을 망각하고 하나님 아닌 다른데서 우리의 필요를 채우거나 하나님이 아닌 다른데서 우리의 허용을 공급받으려는 이시대의 현대인들에 타락의 모습과 조금도 다른 것이 없는 모습이 아니겠습니까?

    타락의 골짜기

    여기 아골의 골짜기를 방황하는 인생들의 방황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아골 골짜기는 타락의 골짜기입니다. 그러나 동시에 두 번째로 이 골짜기는 징계의 골짜기였습니다. 이 백성을 그대로 둘 수 없는 하나님 골짜기 이 맛입니다. 그리고 사랑하는 자를 붙들고 그를 흔들기 시작합니다. 호소합니다. 설득합니다. 매를 칩니다. 여기 하나님의 사랑의 징계가 임하기 시작합니다.
    히브리서 12장은 징계의 장이라고 불려 지죠? 유명한 징계의 장에 보면 “사생아에게는 징계가 없다.”고 나와 있습니다.  
    우리의 삶 속에 징계가 있거든 하나님을 찬양하시기 바랍니다. 주께서 나를 망각하지 않았다는 증거입니다. 아직도 나에게 기대를 걸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그래서 나를 이용해서 채찍으로 다가오는 주님의 사랑을 인해서 주께 찬양을 드리시기 바랍니다.
    자, 이 징계가 어떤 단계로부터 임하는가 보세요. 징계의 세 단계를 또한 볼 수가 있어요. 첫째는 장애물을 설치하는 단계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징계하시는데 첫째로 장애물을 주십니다.
    6절, “그러므로 내가 가시로 그 길을 막으며 담을 쌓아 저로 그 길을 찾지 못하게 하리니” 우리가 나의 필요를 채워 준다고 하니까 나의 허용도 채워 준다고 하니까 그를 쫒아 간다고 할 때 그가 내남편이 나를 포기 했다고 하면 그대로 둘 것입니다. 나를 포기 할 수 없는 그 사랑 때문에 그가 어떻게 하십니까?
    가시로 그 길을 막아요. 그래서 우리는 가시밭길의 찔림을 당할 것입니다. 담을 쌓았습니다. 우리에게 인생의 길에서 어느날 갑자기 경험하는 가시. 또 내가 걷는 인생의 길에 우뚝 서서 내 갈 길을 막고 있는 벽이 있거든 갑자기 막혀버려요. 장애물입니다. 더 가면 안돼. 하나님의 위엄이 세게 내려요. 나를 향한 사랑의 경고입니다.
    내 인생의 길에 사랑하는 주의 백성들이 걸어가는 길에 갑자기 가시가 나타나거든 그리고 내 행진을 가로 막는 내가 타락하고 방황하는 걸음으로 갈 때에 그 길이 대로이면 이건 저주입니다.
    내가 타락해 하나님을 잃어버리는 망가의 길을 걸어갈 때에 내 앞길에 갑자기 가시가 등장하거든 그리고 벽이 우뚝 서거든 하나님을 찬양하십시오. 이 장애물은 사랑의 장애물입니다. 우리를 깨닫게 하시려는 사랑의 장애물인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자, 그때 비로소 뭘 깨닫게 되냐면요 7절, “저가 그 연애하는 자를  따라 갈지라도 미치지 못하며 저희를 찾을지라도 만나지 못할 것이라 그제야 저가 이르기를 내가 본 남편에게로 돌아가리니 그 때의 내 형편이 지금보다 나았음이라 하리라”  
    ‘돌아가는 것이 낫겠다. 이러고 사는 거 보다!’
    하나님의 징계를 경험하면서 주 앞으로 나오려는 사람들에게 반드시 이 경험의 단계가 있어요.
    탕자도 마찬가지예요. 처음에 먼 나라로 갔을 때는 아주 신나라 그리고서 신바람나게 타락했습니다. 그러나 서서히 주머니가 비기 시작합니다. 마침내 쥐엄 열매를 먹게 되었습다.
    그때 누구를 생각합니까? 아버지를 생각합니다.
    우리 아버지 집에 있는 품꾼들 아버지를 섬기는 종들 그들이 차라리 현재의 내 형편보다는 나을 것이다. 비로소 아버지 생각하고 아버지와 함께 했던 삶의 자리를 생각합니다. 이럴 바에야 옛날 남편에게로 돌아가는 게 낫겠다. 그 생각을 해요. 장애물이 깨닫게 만들었습니다. 곧 장애물이 올 것입니다.
    하나님을 피하고 떠나는 인생의 길에 반드시 장애물이 나타납니다. 그러나 장애물이 오거든 주님을 찬양하십시오. 빨리 깨달으십시오. 돌이키시기 바랍니다. 본 남편에게로 여호와에게로 달음질치고 돌아오시기 바랍니다.

    상실의 두 번째 단계

    우리가 경험하는 것은 상실의 체험입니다. 상실, 잃어버린단 말이예요. 자꾸 잃어버려요. 9절 “그러므로 그 시절에 내가 내 곡식을 도로 찾으며 그 시기에 내가 내 새 포도주를 도로 찾으며 또 저희 벌거벗은 몸을 가리울 내 양털과 내 삼을 빼앗으리라” 아내에게 주었던 곡식 아내에게 주었던 기름 아내에게 주었던 삼과 벼와 양털 그것을 내가 도로 가져가겠다. 하나님이 주신 건강, 하나님이 주신 지혜, 하나님이 주신 삶의 조건 가지고 이 풍성한 조건 하나님 섬기도록 주님을 영화롭게 하도록, 주의이름을 높이도록 주께서 이 모든 것을 주셨어요. 그것을 가지고 우리는 타락했습니다. 그것을 가지고 우리는 하나님의 이름을 욕되게 했습니다. 그것을 가지고 우리는 바알의 우상의 산당을 찾아갔습니다. 주께서 어떻게 하시겠어요? 길은 하나밖에 없어요. “도로 내놔!”
    하나씩 하나씩 없어지기 시작합니다. 상실의 체험 없어지거든 찬양하세요. “본 주인이 가져가는 구나!”
    우리 남편이 가져 가는 것입니다. 우리의 삶의 궁극적인 주인 되시는 하나님이 가져가시는 것입니다.
    주시는 이도 여호와요. 취하여 가져가시는 자도 여호와인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러나 빼앗아 가면은 뜻이 있어요.
    “깨달으라.”고 주셨던 분이 “누구인가를 깨달아라.” 그리고 “삶의 자리에 제대로 서라.” 그리고 “나와의 관계를 회복하자.”
    이 하나님의 음성을 들으시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 바랍니다. 이 징계의 단계에서 반드시 두 번째 이루어지는 체험이 첫째는 장애물의 체험, 두 번째는 잃어버림의 체험. 상실입니다. 자꾸 잃어버려요. 빼앗겨요. 없어져요. 나가요. 지금 이 민족이 이런 경험을 하고 있잖아요. 잘나가는가요? 하나님이 주신 축복 하나님이 주신 이 땅에 주신 은혜를 가지고 하나님 섬기고 주를 영화롭게할 이 백성들이 도덕적으로 타락하고 우상숭배에 빠지고 하나님이 갑자기 어느날 장애물을 주십니다.
    그리고 하나씩 하나씩 뺏어가십니다.

    수치의 세 번째 단계

    세 번째 체험입니다. 수치의 체험입니다. 부끄러움의 체험 10절“이제 내가 그 수치를 그 연애 하는 자의 눈 앞에 드러내리니 저를 내손에서 건져낼 사람이 없으리라” 부끄럽게 하십니다. 그게 IMF에요. 온 세상 앞에 부끄럽게 하십니다. 괜히 어깨에 힘주고 온세상을 돌아 다니면서 타락하던 한국 사람 동남아시아에 흥청거리던 유흥의 물결 죄악의 물결 부도덕의 물결 상당한 기여를 한국 사람이 했습니다. 그리고도 우리는 자랑했습니다. 갑자기 한순간 이 나라는 무너지기 시작했고 온 세계의 웃음거리가 되기 시작했어요.
    우리는 이 부끄러움의 원인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나 이것이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이라면 우리가 경험하는 이 상실과 부끄러움의 체험 이것은 아직도 이 민족을 포기하지 않았다는 증거예요. 우리가 죄를 짓는대도 그냥 잘 나간다.
    그럼 그건 저주예요. 아예 희망이 없어요. 그냥 놓아두신 거예요. 최대의 저주 최대의 심판은 무엇인 줄 아십니까? 하나님이 인생을 향한 하나님의 최대의 심판의 방법은 그대로 버려두시는 거예요. 부모가 자식을 잘못 나가려고 하는 자식들을 설득해 봅니다. 호소해 봅니다. 타일러 봅니다. 회초리를 들어 봅니다.
    별별 수를 다 써봐요. 그러나 정 안되면 나중엔 포기합니다. 포기는 최대의 저주예요. 최대의 심판입니다.
    그런 상황이 로마서 1장에 나와 있어요. 하나님을 떠난 이방인들의 범죄의 십상을 고발하고 있는 장이 바로 로마서 1장입니다. 24절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저희를 마음의 정욕대로 더러움에 내어 버려두사 저희 몸을 서로 욕되게 하셨으니.” “내어 버려두사” 26절, “이를 인하여 하나님께서 저희를 부끄러운 욕심에 내어 버려 두셨으니 곧 저희 여인들도 순리대로 쓸 것을 바꾸어역리로 쓰며” 28절, “또한 저희가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하매 하나님께서 저희를 그 상실한 마음대로 내어 버려두사 합당치 못한 일을 하셨으니” “내어버려두사” 는 최대의 저주예요.
    죄를 범하는데 잘 된다 이건 최고의 저주예요. 죄를 범했는데 갑자기 내 인생 속에 장애물이 생기고 어려움이 생겨요. 잃어버려져요. 그건 바로 “하나님이 간섭 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는 나를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내 인생 속에 간섭하십니다. 채찍으로 다가오십니다.
    나를 향한 주의 사랑이 포기 되지 않았다는 증거입니다. 그 하나님을 찬양하시기 바랍니다. 저는 우리민족을 하나님이 버리지 않으셨다고 믿습니다.
    이 민족은 회복될 것입니다. 그래서 지금 하나님이 간섭하시는 거예요. 분명한 사실입니다. 제가 지나간 두 주, 목사님들을 만나고 오는데 하여튼 금년 초처럼 한국 땅에 교회가 잘되는 것이 최근 삼, 사년 동안에 없대요. 교회마다 첫 째주, 둘째 주가 초만원이래요 우리 교회도 400명 이상 왔는데 사, 오백명 가까이 두 주 사이에 사람들의 마음 속에 어떤 굶주림이 있어요. 하나님을 향한 마음이 다시 열리기 시작합니다. 이것이 부흥의 싸인이라 믿습니다. 수치, 부끄러움, 우리는 이 골짜기에서 이루어지는 회복의 드라마를 보십시오.
    아골 골짜기는 첫째로 타락의 골짜기였습니다.
    두 번째로 징계의 골짜기였습니다. 그러나 이 골짜기는 세 번째로 회복의 골짜기입니다. 회복의 골짜기에서 이루어지는 회복의 드라마를 보십시오. 이 아골 골짜기는 분명히 저주의 골짜기이고 심판의 골짜기 였어요.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이 골짜기에서 새 일을 시작하십니다. 회복의 드라마를 시작하십니다.

    회복의 단계

    회복이 어떻게 이루어지는가? 이것도 세 가지 단계로 이루어지는데 우선 첫째로 하나님은 광야에서 우리를 설득하십니다.

    광야의 설득

    14절 “그러므로 내가 저를 개유하여 거친 들로 데리고 가서 말로 위로하고” 거친들, 조용한 들판 다른 것에 장애를 받지 않을 수 없는 아주 조용한 곳에서 단둘이 만나 설득하기 시작합니다. “다시 돌아오지. 그래 난 아직도 너를 사랑한단 말이야.”
    조용히 설득 합니다. 내가 저를 개유하여 타이른다 이 말이예요. 안타까운 가슴으로 타이르는 거예요. 공갈하는 게 아니예요. “안돌아오면 죽어! 공갈하는 것이 아니라 돌아와 내 가슴이 찢어 지고 있어 나는 당신을 생각 하면서 잠을 못 이루고 있어 돌아오시오 여보!”
    그리고 위로 합니다. 어디에서? 거친 들로 가서 거친들 광막한 적막한 들 얼마나 일대일로 만나기에 좋은 곳입니까? 하나님은 이스라엘 민족이 회복되도록 이스라엘 민족이 진정한 깨우침을 위해서 그들을 먼 들로 끌고 가셨습니다. 그게 바벨론이야 예요. 바벨론이야. 거기 까지 끌고 가셨어요. 거기서 돌아와야 해 나를 다시 경외해야해 놀라운 사실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흩어지고 나서 그 먼 바벨론의 포로로 끌려와서 하나님을 열심히 경외하고 회복되기 시작합니다. 광야의 체험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회복하기 전에 우리에게 광야로 데려가세요. 광야 적막한 광야 그러나 이 고독한 광야에서 들려오는 음성을 가만히 들어 보십시오.
    “나는 너를 포기하지 않았다. 나는 너를 아직도 사랑한다.”
    이 하나님의 애절한 설득의 목소리를 들어 보시기 바랍니다. 광야의 설득입니다.

    첫 사랑의 교제의 회복

    두 번째로 첫사랑의 데이트를 회복시켜 주십니다. 첫사랑의 교제를 회복하십니다. 이 회복의 두 번째 체험입니다. 15절 “거기서 비로소 저의 포도원을 저에게 주고 아골 골짜기로 소망의 문을 삼아 주리니 저가 거기서 응대하기를 어렸을 때와 애굽 땅에서 올라오던 날과 같이 하리라”, “저가 거기서 응대하기를 어렸을 때처럼” 젊었을 때처럼 이 말입니다.
    이게 아주 어리다는 뜻보다도 젊었을 때처럼 애굽 땅에서 올 때 하나님의 놀라운 기적이 나타나고 그들을 자유케 하시고 그들을 굳은 손으로 붙잡아 주시던 그 격렬한 사랑의 체험이 일어나던 그 첫사랑의 순간 첫사랑의 드라마 그것은 얼마나 흥분이었습니까? 그것은 얼마나 난폭한 열정이고 로맨스였습니까? 그 흥분의 시절로 다시 우리를 돌이켜 끌고 가시는 하나님!
    “다시 시작하자! 다시 그 사랑에 빠지자! 우리 어렸을 때 사랑을 처음 알았을 때 맹목처럼 그 로맨스의 불붙어 오르던 그 가슴에 계절로 다시 돌아가잔 말이야!”라면서 첫사랑을 회복하자고 요구하시는 하나님. 그 첫 사랑의 경험은 얼마나 가슴 설레이는 환희였습니까? 첫사랑의 체험
    16절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그 날에 네가 나를 내 남편이라 일컫고 다시는 내 바알이라 일컫지 아니하리라” 호세아 1장 마직막절을 생각해 보세요. 1장에 마지막 부분에서 쭉 무슨 이야기를 했어요?
    고멜이 누구를 낳습니까? 맨 처음 이스르엘, 그다음은 로루하마를 낳습니다.
    뜻이 뭐라구 했어요? “내가 너를 긍휼히 여기지 않는다.” 그다음에 또 누굴 낳습니까? 로암미. 그 뜻은 “내 백성이 아니다.” “너는 내 백성도 아니다 나는 너를 긍휼히 여길 수도 없다.”
    이것을 호세아와 고멜의 관계에 적용하면 어떤 얘기예요? “너는 내 아내도 아니다. 너는 내 사랑일 수 없다. 나는 너를 도저히 불쌍히 여길 수 없다!”
    이렇게 선언 했었어요. “너는 절대로 내 아내가 아니다!”
    그러나 지금 뭐라고 얘기해요? 비교해 보세요. 16절에 “여호와께서 그날에 네가 나를..” 그러니까 이 여인도 도무지 그를 내 남편이라고 부를 수가 없었어요. 피하며 그의 시선은 그녀의 시선은 남편으로부터 도피하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 거친 들에서 만나줄 때 나를 향해 진노했었을 그 남편이 나를 설득하는 그 품에 안겨 울면서 뭐라고 말합니까? “여보. 당신은 내 남편이야.”
    첫사랑의 교제를 회복하자는 선언이예요. 드디어 신원이 회복합니다. 새로운 관계가 설정됩니다. 새로운 관계가 완전히 회복됩니다. 그 회복의 선언이 18절, “그날에는 내가 저희를  위하여 들짐승과 공중의 새와 땅의 곤충으로 더불어 언약을 세우며 또 이 땅에서 활과 칼을 꺽어 전쟁을 없이 하고 저희로 평안히 눕게 하리라”
    여기서 제일 중요한 단어는 언약입니다. “새로운 언약을 맺자. 새로운 약속을 맺자. 내가 이 땅에 평안을 주고 그리고 이 땅을 복되게 하겠다.”
    하나님이 새로운 언약을 선포하십니다.
    19절, “내가 네게 장가들어 영원히 살되 의와 공변됨과 은총과 긍휼히 여김으로 네게 장가들며”  
    20절, “진실함으로 네게 장가들리니 네가 여호와를 알리라” 이미 그들은 부부였어요. 그렇죠? 그러나 이것은 새로운 부부관계의 회복을 토한 선언이예요.
    “여보. 나는 당신과 다시 약속하자구 우리 다시 시작하자구.”
    새로운 언약을 통한 회복 새로운 언약의 책이 바로 뭐예요? 신약이예요
    그리고 우리 나는 당신에게 새롭게 장가들겠다고 우리의 남편되신 여호와 하나님이 그 하나님을 버리고 고멜처럼 음탕하고 고멜처럼 다른 것에 시선을 두고 하나님 아닌 것에 내 삶에 희망을 두고 있던 나를 쫒아와서 내게 말씀하시기를 “나는 너에게 새로운 장가를 들겠다 우리 다 새로 시작 합시다.”라고 하는 겁니다.  
    새로운 회복이 있습니다. 그리고  이런 선언을 하십니다.
    22절 “땅은 곡식과 포도주와 기름에 응하고 또 이것들은 이스르엘에 응하리라”
    이스르엘 뜻이 뭐라고 했어요? 흩어놓으신다. 또 하나 뜻이 있어요. 두 가지 뜻이 있어요. 흩어놓으신다는 뜻도 되지만 또 하나 하나님이 심으신다는 뜻도 되요. 하나님이 심어 주신다. 그런 뜻도 됩니다. 처음에는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스르엘이었어요. 하나님이 흩어놓으신다. 범죄 때문에 주께서 흩을 수 밖에 없었던 이 백성들 그러나 이제 그들이 회개하고 주님과의 새로운 언약의 관계를 설정하자 하나님이 어떻게 말씀하십니까?
    너는 다른 이스르엘 이제는 뭐예요? 내가 새롭게 심겠다. 새로운 열매를 맺고, 새롭게 꽃을 피우고 이제 모든 것을 새롭게 시작 하겠다. 여기 하나님의 회복의 은총이 새롭게 시작됩니다. 그리고 이 백성은 이제 하나님을 새롭게 알게 될 것입니다.
    20절에 “진실함으로 네게 장가 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