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사학적 해석과 시편설교- 영상의 수사학을 중심으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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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사학적 해석과 시편설교
- 영상의 수사학을 중심으로 -
김정우 교수
목차
들어가는 말
I. 자연현상의 수사학
II. 식물의 수사학
III. 동물의 수사학
IV. 인생의 수사학
V. 사회생활의 수사학
결론
들어가는 말
나의 과제는 시편과 설교를 잇는 데 있다. 시편과 설교를 잇는 데 수많은 방법들이 있지만, 나는 <수사학적 분석>으로 연결을 하고자 한다. 이것은 유일한 방법은 아니며, 하나의 방법이다. 그러나 우리에게 도움이 된다. 그렇다면 <수사학적 분석>은 무엇인가? 어느 초등학교 1학년 학생이 <풍선>에 대해 쓴 산문시를 보라.
\하늘에 뜬 풍선, 어디 어디 날아 가나.
우리 집 위에 떠있나. 엄마 회사 위에 떠있나.
멀리 멀리 날아가는 풍선. 나무가지 위에 걸려 있나 하늘 위에 떠 있나.
둥실 둥실 날아가는 예쁜 풍선\
이 시에는 이 아이의 마음이 배여있다. 그는 무엇을 말하고 있는가? 이 산문시를 수사학적으로 분석할 수 있을까? 많은 언어들 중 어느 것이 가장 강력한가? \엄마의 사무실 위에 뜬 풍선\에는 그의 엄마를 향한 그리움이 배여있다.
시편에서 <수사학적 분석>은 한 시의 통일성과 총체성을 보지만, 그 중에 강한 \설득의 장치\를 찾아내는 것이다. <수사학적 분석>은 역사도 길고, 이론도 복잡하지만, 가장 기본적인 개념은 \은 쟁반의 금 사과\처럼(잠 25:11), 형식의 아름다움과 내용의 호소력을 찾는 데 있다. 혹은 \전도자가 힘써 아름다운 말을 구하였나니 기록한 것은 정직하여 진리의 말씀이니라\(전12:10)에서와 같이 \아름다운 말의 표현\과 \진리의 말씀\을 동시에 찾는 데 있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수사학은 \구성의 예술성\과 \설득의 기교\를 동시에 찾는 작업이라고 할 수 있다. 나는 다양한 수사학적 장치 중 특히 \영상의 수사학\을 중심으로 시편과 설교를 이어보고자 한다. 나는 \영상의 수사학\을 자연현상, 식물, 동물, 인생, 사회생활의 다섯 가지 영역에서 찾고 적용하고자 한다.
1. 자연현상의 수사학
1.1. 이슬
1.1.1. 헐몬의 이슬 (133:3)
3절 헐몬의 이슬이 시온의 산들에 내림 같도다
거기서 여호와께서 복을 명하셨나니 곧 영생이로다
\헐몬의 이슬\은 \많은 이슬\에 대한 격언적 표현이다. 헬몬산은 높고 장엄하다. 사시사철 눈이 덮여 있다. 엄청난 이슬이 내린다. 그래서 마치 밤새 비가 내린 것 같다. 이슬은 신선함에 대한 상징이다. 형제간의 우애는 마치 온 나라에 이슬이 모든 식물과 채소와 동물들에 내린 것 같은 영향을 준다. 형제들이 함께 있을 때, 신선한 에너지를 느낀다. 사회생활과 교회생활에 새 힘을 준다.
1.1.2. 새벽 이슬 같은 당신의 청년들(110:3)
3절 당신의 권능의 날에 당신의 백성이 거룩한 옷을 입고 즐거이 헌신하니
새벽 이슬 같은 당신의 청년들이 당신께 나오는도다
원어에 따르면, \아침의 모태에서\ 이슬이 나온다고 말한다. 이슬이 의인화 되고 있다(욥38:12, 13). 이슬은 여명의 모태에서 넘치게 흘러 나온다. 이슬은 새벽에 태어나 자연을 새롭게 한다. 마치 아침에 이슬이 넘치도록 내리듯이, 시인은 젊은이들이 전쟁터에서 넘치는 활력으로 메시야 왕을 도울 것을 그리고 있다. 밀턴의 실락원 5:744에는, \밤의 별처럼 헤아릴 수 없는 대군이요, 아침의 별들 처럼, 이슬은 모든 잎과 모든 꽃 위에서 보석처럼 반짝인다\고 한다. 시편 110:3에서 \새벽 이슬 같은 당신의 청년들\은 젊은 날 우리의 헌신이 \새벽 이슬 같았음\을 말해준다. 정말 순수한 원형적 헌신이었다. 때묻지 않았다. 그때로 다시 돌아갈 수 있을까?
1.2. 비
1.2.1. 흡족한 비(68:9)
9절 하나님이여 흡족한 비를 보내사 주의 산업이 곤핍할 때에 견고케 하셨고
\흡족한 비\는 늦가을에 오는 심한 비이다. 이 비는 땅을 부드럽게 하고 다음해를 위해 씨를 뿌릴 수 있도록 한다. 이스라엘이 약속의 땅에 거할 때 (10절), 주님은 때를 따라 흡족한 비를 주셨다. 가나안 땅은 애굽 땅과 비교할 때, 너무나 좋은 땅이다. 흡족한 비가 있는 땅이다 (신11:10-12; 시65:9). 흡족한 비는 하나님께서 자신의 백성에게 넘치게 부어주시는 모든 복을 상징해 준다.
1.2.2. 벤풀에 내리는 비(72:6)
6절 저는 벤풀에 내리는 비 같이 땅을 적시는 소낙비 같이 임하리라.
시인은 단비 이미지를 사용하여 왕의 사역을 말해준다. 우리는 긴 가뭄을 여러번 체험했기 때문에 단비가 얼마나 귀한지 안다. 특히 농경사회에서 단비는 너무나 귀중하다. 그러나 시인은 단순히 단비라고 말하지 않고 \벤풀에 내리는 단비\라고 말한다. 풀을 벤 후에 내리는 비는 너무나 적절할 때에 내린 비이다. 이때 비가 내리면, 풀이 더 잘자란다. 또한 왕의 은혜는 땅 위에 내리는 소나기 같다. 즉 그의 은혜에서 피할 자가 없다. 그의 은혜가 온땅을 적신다. 그의 자비와 사랑이 모든 사회계층에 임한다. 단비와 소나기는 이스라엘의 기후에서 젖줄과 같다. 이것은 유목생활과 농경생활을 하는 사람들의 생업을 좌우한다.
왕의 통치가 단비와 소나기 같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오늘날 얼마나 있을까? 우리는 정치하는 사람을 생각할 때, 마치 초장을 습격하는 황충, 메뚜기떼 처럼 생각한다 (암7:1). 그들은 우리를 도우는 자가 아니라 혼란스럽게 하는 자이다. 그들은 백성에게 행복이 아니라 고통을 주는 자이다. 참된 지도자는 단비요 소나기이다. 소나기가 내릴 때 오랫동안 말라있던 광야가 해갈하고, 산천 초목이 춤을 춘다. 올바른 목회자를 만나는 것은 얼마나 큰 축복인가. 모든 짐승이 해갈한다. 시냇물이 넘친다. 우리의 지도자들이 단비와 소나기 같기를 기도해야 되지 않을까?
1.2.3. 바람
1.2.3.1. 바람날개를 타신 주님 (18:10)
10절 그룹을 타고 날으심이여 바람날개로 높이 뜨셨도다
이 절은 주님께서 신속하게 강림하심을 강조하고 있다. 주님은 \그룹\과 \바람날개\를 타시고 움직이신다. \그룹\은 날개달린 짐승 (사자, 황소, 독수리)으로 천상에 있는 주님의 보좌를 지키는 자이다(겔1:5-14; 10:21). 언약궤 위에는 황금으로 된 그룹이 있다 (출25:17-22). 이것은 주님의 보좌(시80:2; 99:1), 즉 언약궤를 가리킨다 (삼상4:4; 삼하6:2; 왕하19:15). 대상 28:18에는 \타시는 처소된 그룹\ 이 나타난다. 하반절은 \바람 날개\는 마치 바람이 날개를 단 새와 같은 영상으로 제시된다(호 4:19 참조). 주님께서 이 날개를 타고 나르신다 (시104:3). 이 소절은 새가 먹이를 낚아 채기 위해 \하강하는\ (swoop down) 모습 같다 (신28:49; 렘48:40).
1.2.3.2. 다시스의 배를 깨뜨리는 동풍같이 (48:7)
7절 주께서 동풍으로 다시스의 배를 깨뜨리시도다
성경에서 \동풍\은 심판의 상징으로 (욥27:21; 사27:8; 렘18:17) 특히 파괴적인 바람이다. 바울도 동풍에 떠밀려 파선하였다(행27:14). 배가 풍랑을 만나 떠밀려 가면, 정신을 차릴 수 없다. \다시스의 배\는 그 당시에 가장 큰 배요 단단한 배이며 지중해를 주름잡는 페니시아인들의 배들이다. \다시스의 모든 배\는 가장 견고하고 안전하고 화려한 것을 상징한다(사2:16). 페니시아의 배들은 스페인에 있는 다시스까지 항해하였다. 이곳은 스페인의 한 동네로서 페니시아의 식민지였다. 강력한 동풍이 대양에 다니는 배들을 때리고 있다. 이와같이 시온을 쳐들어 온 열국의 왕들을 향해 주님의 바람이 때리자 그들은 기겁을 하고 있다.
1.2.4. 구름
1.2.4.1 구름타고 광야에 행하시던 자 (68:4)
4절 하나님께 노래하며 그 이름을 찬양하라 타고 광야에 행하시던 자를 위하여
대로를 수축하라 그 이름은 여호와시니 그 앞에서 뛰놀찌어다
\타다\에서 목적어 \구름\이 생략된 것으로 본다면, \구름 타는 분\으로 볼 수 있다. 우가릿어에서 \구름타는 자\(rkb \rpat)는 풍년의 신 바알의 칭호이다. 바알의 칭호를 사용한 것은 변증적인 의도가 있다. 비와 풍년을 주시는 이는 바알이 아니라 여호와 하나님이시다. 구름은 하나님의 전차이다.
1.2.4.2. 구름보다 높은 주님 은혜 (36:5; 57:10; 108:4참조)
5절 여호와여 주의 인자하심이 하늘에 있고 주의 성실하심이 공중에 사무쳤으며
주님의 은총은 무한한 하늘까지 이른다. 나아갈 수 없는 구름층까지 이른다(출34:6). 이 세상을 채우는 것은 악인의 악이 아니고, 하나님의 은총이다. 악인들이 아무리 날뛰어도 하나님의 은총이 이 세상을 이끄신다.
1.2.5. 천둥(시편 29편)
3절 여호와의 소리가 물 위에 있도다
4절 여호와의 소리가 힘 있음이여 여호와의 소리가 위엄차도다
5절 여호와의 소리가 백향목을 꺾으심이여 여호와께서 레바논 백향목을 꺾어 부수시도다
7절 여호와의 소리가 화염을 가르시도다
8절 여호와의 소리가 광야를 진동하심이여 여호와께서 가데스 광야를 진동하시도다
9절 여호와의 소리가 암사슴으로 낙태케 하시고 삼림을 말갛게 벗기시니
주님은 레바논의 백향목을 꺾으시고, 헬몬산을 뒤흔드신다. 이 세상의 가장 견고하고 든든한 것을 다 흔들어 버리신다. 세상 사람들이 실상이라고 생각하는 것들을 다 허상으로 만들어 버리신다. 세상 사람들이 가장 안전하고 값진 것으로 생각하는 것들을 다 허물어 버리신다.
1.2.6. 바다와 강
1.2.6.1 바다를 변하여 육지로 (66:6)
6절 하나님이 바다를 변하여 육지되게 하셨으므로
무리가 도보로 강을 통과하고 우리가 거기서 주로 인하여 기뻐하였도다
주님의 수많은 행적 중에서 시인은 오직 두개 (혹은 한개)를 언급한다. 홍해를 건넌 사건이다 (출14:21-22; 15:19). 요단강을 건넌다. 정복의 시작이다 (수3:14-17). 이 두개의 사건은 모든 구원사를 대표한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큰 구원을 체험했다. 구원사의 기초요 기둥이다.
1.2.6.2. 바다야 강아 (114:3, 5)
3절 바다는 이를 보고 도망하며 요단은 물러갔으며
5절 바다야 네가 도망함은 어찜이며 요단아 네가 물러감은 어찜인고
출애굽 때 바다를 건넌 것이 암시된다. 물론 바다는 태초의 혼돈세력을 상징해 준다. 주님은 바다와 싸울 필요가 없었다. 바다가 보고 먼저 도망친다. 주님의 모습만 보아도, 두렵다 (77:16; 합3:10). \요단은 물러갔으며\. 여호수아 3장을 회화적으로 정리한 것이다. 요단 강을 건늘 때, 요단이 도망친다. 홍해에서 요단강까지 묘사되며, 이 두 사건은 이미 여호수아 4:23에서 이어진다. 5절에는 수사의문이 계속 나온다. \부드러운 아이로니\가 있다. 아이로니와 유모어가 있다. 어떻게해서 이들이 이렇게 비정상적으로 움직이는가?
1.2.6.3. 바다에서부터 바다까지(72:8)
8절 저가 바다에서부터 바다까지와 강에서 부터 땅끝까지 다스리리니
여기의 바다는 자연적인 관점에서 보면 지중해를 가리키며, 강은 유프라테스 강으로 볼 수 있다(창15:18; 왕상5:1; 슥9:10). 즉 메시야 왕의 통치는 바다 끝까지, 땅 끝까지이다. 그는 땅 끝까지 다스릴 것이다 (스가랴 9:10을 보라). 주님의 교회는 땅 끝까지 퍼져야 한다.
1.2.7. 산
1.2.7.1. 하나님이 거하시려 하는 산을 시기하지 말라 (68:15-16)
15절 바산의 산은 하나님의 산임이여 바산의 산은 높은 산이로다
16절 너희 높은 산들아 어찌하여 하나님이 거하시려 하는 산을 시기하여 보느뇨
진실로 여호와께서 이 산에 영영히 거하시리로다
헬몬산 뿐 아니라, 바산의 산맥과 높이 치솟은 현무암 봉우리는 장엄성과 고대성과 불가침성을 보여주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자신의 처소로 선택한 보잘 것 없는 시온산을 깔보며, 시기하게 되었다. 사실 시온산은 가나안에서 가장 높은 산은 아니다. 그것이 높은 것은 주님께서 선택했기 때문이다. 시내산은 일시적인 처소요 (출24:16), 시온산은 영원한 처소로 선택되었다 (왕상8:12, 13참조).
1.2.7.2. 산이 요동할찌라도 (46:2, 3)
2절 그러므로 땅이 변하든지 산이 흔들려 바다 가운데 빠지든지
3절 바닷물이 흉용하고 뛰놀든지 그것이 넘침으로 산이 요동할찌라도
우리는 두려워 하니하리로다
산은 이 세상에서 가장 안정되고 견고한 것의 상징이다. 따라서 산이 흔들리는 것은 가장 무서운 일이다. 사람들은 변화를 두려워 한다. 산이 흔들리는 변화를 감당할 사람이 어디있겠는가. 이 지진은 혼돈의 세력을 암시하고 있다. 이 힘이 늘 창조질서를 위협한다. 시인은 이런 혼란스러운 상황 속에서 \두려워 아니하리라\고 고백하고 있다. 그의 마음 속에는 큰 떨림이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두려워 아니하리라\고 신앙고백을 한다. 세상의 모든 것이 다 변해고, 흔들리며, 사라져가도 그는 주님을 믿을 것이다.
2. 식물의 수사학
2.1. 종려나무와 백향목 (92:12)
12절 의인은 종려나무 같이 번성하며 레바논의 백향목 같이 발육하리로다
14절 늙어도 결실하며 진액이 풍족하고 빛이 청청하여
\종려나무\는 번성하는 나무의 상징이다. 의인의 형통을 잘 말해준다 백향목은 힘과 영광의 상징이다 (사2:3; 슥11:2). 특히 \레바논의 백향목\은 가장 좋은 목재이다. 우리의 원래 소나무 같다. 우리 소나무는 \남산 위의 저 소나무 철갑을 두른듯\에서처럼 원래 곧고 컸다고 한다. 일제가 우리 민족성을 약화시키기 위해 다 꼬부라진 소나무만 심었다고 한다.
이스라엘인들의 이상적인 삶의 모습이 그려져 있다. 신명기 저자는 모세의 모습을 이렇게 그린다(신34:7). 역대기자는 다윗의 죽음을 이렇게 묘사한다 (대하29:28). 시인은 경건한 자의 삶을 노년에도 힘이 넘치고 활기찬 것으로 묘사한다.
2.2. 감람나무
2.2.1. 나는 하나님의 집에 있는 푸른 감람나무 같음이여 (52:8)
8절 오직 나는 하나님의 집에 있는 푸른 감람나무 같음이여
감람나무는 사철나무이며, 가나안에서 가장 값진 나무 중 하나이다(신8:8; 왕하18:32). 약 10-12미터로 자라고, 수백년 동안 (격년으로) 감람열매를 맺는다. 그 열매를 먹기도 하도, 부수어서 기름을 만들기도 한다. 약용으로도 사용된다 (사1:6). 화장 (전9:7-8), 성전의식 용 등잔기름으로 사용된다 (출29:40; 민48:5). 감람 나무를 키우는 것은 그 과정이 느리고 길지만, 결국 많은 수확을 거두게 된다. 이 나무는 의인에 대한 은유로 사용된다 (시 92:3-15).
2.2.2. 어린 감람나무 같은 자식들 (128:4하)
3절 네 집 내실에 있는 네 아내는 결실한 포도나무 같으며
네 상에 둘린 자식은 어린 감람나무 같으리로다
\어린 감람 나무\는 무한한 가능성이 있다. 자라가고 열매맺을 가능성이 아이들 속에 있다. 이들이 왜곡되지 않도록, 깨끗한 환경에서 살도록 해야 한다. 마약과 본드와 술과 담배와 향락을 피하고, 주님의 나무로 푸르고 청청하게 자라가야한다. 이들이 이 땅에 더욱 깊이 뿌리내리도록 키워야 한다.
2.3. 포도나무
2.3.1. 결실한 포도나무(128:4상)
아내는 \결실한 포도나무\로 묘사된다. \꽃피고 결실치 않는 벗나무 (사쿠라)가 아니라, 열매가 많고, 달고, 아름답고, 귀한 포도나무이다. 포도나무이므로, 계속 시절을 좇아 과실을 맺을 것이다. 사실 포도나무는 약하고, 그렇게 모양이 멋있지 않다. 그러나 포도나무 보다 귀한 나무가 또 어디 있겠는가?이스라엘의 포도는 너무나 달고 맛있다. 그래서 포도나무는 구약에서는 이스라엘을, 신약에서는 교회를 상징하는데, 여기에서는 아내를 상징하게 되었다. 다 열매를 맺어야 하기 때문이다.
2.3.2. 애굽에서 가져온 포도나무 (80:8)
8절 주께서 한 포도나무를 애굽에서 가져다가 열방을 쫓아내시고 이를 심으셨나이다
고대세계에서 포도는 가장 비싸고 귀한 과일이었기 때문에 하나님의 백성을 설명하는데 아주 적절한 은유가 되었다. 이스라엘은 포도나무처럼, 열국들 중 가장 큰 특권을 받은 나라였다
2.4. 버드나무 (시 137:2)
2절 그 중의 버드나무에 우리가 우리의 수금을 걸었나니
\버드나무\가 바람에 흔들리며 울고 있는 모습이 포로의 모습과 유사하다. 여기에서는 \버드나무\가 비애를 상징한다. 그 옆에 차가운 강물이 흐른다. 이 절에는 바람 소리(쉬~쉬)가 많이 나타난다(`!AYci ryVimi Wnl\ Wryvi hx\m.fi Wnylel\Atw> ryvi-yreb.DI WnybeAv WnWlaev. ~v\ yKi). 이 독특한 음소를 통해 그의 분노와 고통이 잘 묘사된다. \우리의 수금을 버드나무에 걸었다.\ 원래 수금은 기쁨을 노래하는 악기이다 (창31:27; 욥30:31; 사24:8). 기쁨을 노래하는 하아프 (수금)가 울고 있는 버드나무에 걸린 모습이다. 이 영상을 통해 시인은 하아프가 슬픈 노래를 하고 있는 것 같은 모습을 그려준다.
2.5. 알곡과 쭉정이 (1:3, 4)
3절 저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시절을 좇아 과실을 맺으며
그 입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으니 그 행사가 다 형통하리로다
4절 악인은 그렇지 않음이여 오직 바람에 나는 쭉정이와 같도다
악인이 \쭉정이\로 비유된 것은 그가 가볍고 그 속에 내재적인 가치를 갖고 있지 않다는 점을 말해준다. 쭉정이는 가볍고 쓸모없는 것이다(사33:11). 결국 쭉정이는 버리는 것이다. 그러나 여기에서는 단순한 \쭉정이\가 아니라, \바람\에 날리는 \쭉정이\이다.
3. 동물의 수사학
3.1. 사자 (17:12)
12절 저는 그 움킨 것을 찢으려 하는 사자 같으며
은밀한 곳에 엎드린 젊은 사자 같으니이다
시편에 나오는 시인의 원수들은 자주 야생동물의 은유로 등장하며, 여기에서 원수는 사자의 은유로 나온다. 원수의 적대감이 사자의 잔인성과 무서움과 비교되고 있다 (7:2; 10:8-10; 22:12). 사자가 그 먹이를 잡아 갈갈이 찢는 것처럼, 원수가 시인을 잡아 찢어 삼켜 먹으려고 한다. 하반절은 상반절 보다 은밀성을 강조하며, 그 공격의 갑작스러움과 무서움을 강조하고 있다. 원수는 시인이 볼 수 없는 곳에 기다리고 있다. 공격할 지점에서 숨어 기다린다. 시인은 원수의 비열성과 사나움과 무서움을 호소함으로써, 하나님의 개입을 간청한다.
3.2. 사슴 (42:1)
1절 하나님이여 사슴이 시냇물을 찾기에 갈급함 같이
내 영혼이 주를 찾기에 갈급하니이다
왜 이 사슴은 목이 마른가? 어떤 사람들은 이 사슴이 사냥꾼에게 쫓기고 있다고 보나, 근거가 확실치 않다. 아마 오랜 가뭄으로 목이 타는 것으로 보는 것이 타당해 보인다 (욜 1:20; 렘15:5, 6참조). 갈증으로 죽을 것 같다. 물 없이 더 이상 살 수 없다. 여름 더위에 녹았다. 목을 떨어 뜨린다. 사슴이 시냇물을 찾는 모습은 시인이 하나님을 찾는 모습과 아주 잘 어울린다. 그는 자연계의 갈증으로 영적인 갈증을 묘사하고 있다. 마치 주님께서 우물가의 여인에게, 이 우물을 마시는 자는 다시 목마르려니와 내가 주는 물을 마시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않으리라고 말씀하신 것과 같다.
3.3. 청각장애 독사(58:4-5)
4절 저희의 독은 뱀의 독 같으며 저희는 귀를 막은 귀머거리 독사같으니
악인은 뱀 처럼 음흉하고 교활할 뿐 아니라, 독사처럼 독을 품고 다닌다. 그들의 말에는 독이 묻어 있다. 그 독은 뱀의 독이다. 그들은 훼방하고, 거짓된 고발을 하며, 저주하고, 중상모략하고, 비방하고 헐뜻는 말을 한다. 독있는 말에 물리면, 생명에 위협을 받는다. 독사에게 물려 죽어가는 사람을 본 적이 있는가? 얼굴이 파래진다. 독이 온몸으로 퍼져간다. 점점 숨을 쉴 수 없다. 중상모략을 당하면, 우리는 숨을 쉴 수 없게 되고, 죽어가게 된다.
5절 곧 술사가 아무리 공교한 방술을 행할지라도 그 소리를 듣지 아니하는 독사로다
영상이 독특하다. 이 독사는 술사의 말을 듣지 않는다. 아무리 공교한 방술을 베풀어도 이 독사는 듣지 않고 있다. 왜냐하면, 귀가 먹었기 때문에, 어떤 요술도 통하지 않는다. 요술사가 피리를 불어도 들려지지가 않는다. 따라서 아무리 공교한 방술도 도움이 안된다. 악한 지도자는 아무리 애원하고 호소해도 통하지 않는다. 그들은 너무 부패하였다. 어떻게 설득할 수가 없다. 그들은 치명적이고, 어떻게 고쳐볼 수가 없다. 독사를 주문으로 사로잡는 것은 고대에 자주 있었던 일이다 (전10:11; 사3:3; 렘8:17). 악인은 그 어떤 경고나 책망이나 회유나 격려도 듣지 않는다.
3.4. 학(104:17)
17절 새들이 그 속에 깃을 들임이여 학은 잣나무로 집을 삼는도다
나무들이 흡족하게 마셨기 때문에, 크고 튼튼하게 자라 새들을 품어주게 되었다. 그래서 \새들\이 그 속에 깃들고, 구체적으로 \학은 잣나무로 집을 삼는다\. 표준새번역은 개역의 \학\(hasidah)을 \황새\(stork)로 번역한다. \전나무\는 레바논에서 자라며, 잣나무는 가나안 본토 소생이라고 한다. \황새\는 어릴 때, 너무나 사랑스러우며, 그 둥지가 너무나 커서 크고 높은 나무 위에 집을 짓는다고 한다. 이 새는 자기 새끼를 성심으로 돌보며, 해마다 자기 보금자리로 돌아오는 습관으로 유명하다(렘8:7). 시인은 새들 중에 대표적인 새로 학, 혹은 황새를 꼽고 있다.
3.5. 참새와 제비(84:3)
3절 나의 왕, 나의 하나님,만군의 여호와여
주의 제단에서 참새도 제 집을 얻고 제비도 새끼 둘 보금자리를 얻었나이다
84편은 목마른 사슴 대신에 참새와 제비를 가져온다. 참새는 얼마나 보잘 것 없는 새인가. \참새 두 마리가 한 앗사리온(1000원)에 팔리지 아니하냐?\ (마10:29). \너희는 많은 참새 보다 귀하니라\(마10:31; 눅12:6, 7참조). 그렇지만, 참새도 주님의 집 안에 거할 수 있는 은총을 입는다. 제비도 새끼둘 보금자리를 찾았다. 하나님의 집은 세상에서 가장 안전한 곳이므로, 제비는 새끼들의 안전을 위해 이곳에서 둥지를 튼다. 새끼들이 기뻐하는 곳을 만든다.
3.6. 까마귀 새끼 (147:9)
9절 들짐승과 우는 까마귀 새끼에게 먹을 것을 주시는도다
하나님은 들짐승과 새도 돌보신다. 작은 것과 큰 것을 다 돌보신다. 까마귀가 우는 것을 생각해보라. 아주 거칠고, 시끄럽다. 아름답지 않다. 정확하지도, 섬세하지도 않다. 그러나 주께서 기도를 들으신다. 자비를 구하는 것은 이와같다. 우리는 까마귀 보다 훨씬 귀하다. 불멸의 영혼이 있다. 불쌍한 새소리를 들으시는 주님이 우리 소리 안듣겠는가.
4. 인생의 수사학
4.1. 출생
4.1.1. 주께서 나를 모태에서 나오게 하시고(22:9-10)
9절 오직 주께서 나를 모태에서 나오게 하시고
내 모친의 젖을 먹을 때에 의지하게 하셨나이다
10절 내가 날 때부터 주께 맡긴바 되었고
모태에서 나올 때부터 주는 내 하나님이 되셨사오니
시인은 자신의 생명의 출발점에 대해 생각한다. 주님은 그를 모태에서 나오게 하셨다. 이 용어 \나오게 하시고\는 구약에서 단 한번 나타나며, 기본적으로 \안전하게 태어났다\를 의미한다. 그러나 이것은 모태에서부터, 시인과 하나님의 특별한 관계가 있음을 강하게 말해준다. 칼빈이 말한 바와 같이, \어머니의 태 속에서 나는 썩을 수도 있었고, 죽을 수도 있었지만, 주님께서 나오게 하셨다.\
4.1.2. 악인은 모태에서부터 멀어졌음이여 (58:3)
3절 악인은 모태에서부터 멀어졌음이여
나면서부터 곁길로 나아가 거짓을 말하는도다
\모태로부터 멀어진\ 모습은 아직 어머니의 뱃속에 있을 때부터, 이미 변질되고 빗나갔음을 말해준다. 악인의 변질은 그 존재가 시작될 때부터 생긴 것이다. 정말 지독하게 악인을 묘사하고 있다. 악인의 존재의 심연에 악이 있었다. 악인은 언제부터 거짓말하는가? 그들은 나면서부터 거짓말한다. 이와같이 악인에 대한 이해가 우리와 다르다. 구약성경에서는 인간의 악이 훨씬 깊이 다루어진다.
4.2. 젊음
4.2.1. 나를 어려서부터 교훈하신 주님 (71:5, 17)
5절 주 여호와여 주는 나의 소망이시요 나의 어릴 때부터 의지시라
17절 하나님이여 나를 어려서부터 교훈하셨으므로
내가 지금까지 주의 기사를 전하였나이다
시인은 어려서부터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들을 위해 베푸신 구원사를 배웠다. 그는 한평생 주님의 제자였다. 하나님의 학교에서 배웠다 (사8:16; 50:4; 54:13).
4.2.2. 내 소시의 죄와 허물(25:7)
7절 여호와여 내 소시의 죄와 허물을 기억지 마시고
주의 인자하심을 따라 나를 기억하시되 주의 선하심을 인하여 하옵소서
그는 특히 \내 소시의 죄\를 용서해 주시길 구한다. 이것은 그가 아직 성숙하지 않았을 때, 도덕적인 책임감이 생기기 전에 지은 죄를 뜻한다 (욥13:26 참조). 혹은 \젊은 날 멋모르고 지은 실수\이다. 그때는 죄도 쉽게 저질렀다. 이제 시인은 중년이 되었는데도 그 죄에서 벗어나기 힘들어 한다.
4.2.3. 늙음: 늙어 백수가 될 때에도(71:9, 18)
9절 나를 늙은 때에 버리지 마시며 내 힘이 쇠약한 때에 떠나지 마소서
18절 하나님이여 내가 늙어 백수가 될 때에도 나를 버리지 마시며
내가 주의 힘을 후대에 전하고 주의 능을 장래 모든 사람에게 전하기까지
시인은 늙어가고 있다. 그는 힘도 없고, 기력이 갈 수록 쇠한다. 따라서 원수와 싸울 수 없다. 이 때 그는 \주의 팔\(\주의 힘\)을 생각한다. 팔은 공격적이든 방어적이든 힘의 상징이다. 주님의 팔은 주님의 큰 도움을 뜻한다. 시인은 자신의 인생에 나타난 하나님의 구원을 생각하고 있다. 주의 팔은 인도하심, 돌보심, 보호하심, 다스리심, 책망하심, 승리를 뜻한다.
4.2.4. 병
4.2.4.1. 병든 원수를 위한 금식 기도 (35:13)
13절 나는 저희가 병 들었을 때에 굵은 베옷을 입으며
금식하여 내 영혼을 괴롭게 하였더니 내 기도가 내 품으로 돌아왔도다
\굵은 베옷을 입는\ 행동은 가족의 일원처럼 대하는 것이다 (삼하12:16). 의로운 행동의 좋은 예이다. 베옷은 슬픔, 애곡, 회개를 상징한다. \금식하여 내 영혼을 괴롭혔다.\ 우리가 금식할 때 주님은 우리를 불쌍히 여기신다. 구약시대에 금식은 공적이 아니었다. 금식은 하나님과 교통하기 위해 (출34:27; 단10:3) 하기도 한다. 금식할 때는 올바른 태도를 가져야 한다 (렘14:12; 슥7:4이하).
4.2.4.2 범죄로 인한 병(107:17-18)
17절 미련한 자는 저희 범과와 죄악의 연고로 곤란을 당하매
18절 저희 혼이 각종 식물을 싫어하여 사망의 문에서 가깝도다
\저희 혼\(nepesh)은 이 절에서 \영혼\이 아니라, \입맛\을 가리킨다. 즉, 이들은 병들어 \식욕\을 상실하였다. 아무 것도 먹고 싶지 않아, 결국 \사망의 문에 가깝게 되었다.\ 즉, 그는 피골이 상접하여, 이미 죽은 자처럼 되었다. 이전에 아름답고 영광스럽던 모습은 모두 사라졌다.
4.2.5. 죽음
4.2.5.1. 내가 무덤에 내려갈 때에(30:9)
9절 내가 무덤에 내려갈 때에 나의 피가 무슨 유익이 있으리요
어찌 진토가 주를 찬송하며 주의 진리를 선포하리이까?
\내가 죽으면, 누가 하나님을 찬송하며, 누가 주님의 진리 (혹은, 진실)를 선포하겠습니까?\ (시편 6:5; 88:10-12; 115:17; 118:175). 사람이 죽으면, 하나님을 찬양할 수 없다. 하나님을 찬양한다는 것은 살아 있는 인생이 하는 것이다. \오직 산자, 곧 산자는 오늘날 내가 하는 것과 같이 주께 감사하리이다\ (사 38:19). 산자의 가장 큰 특권과 의무는 주님을 찬양하는 것이다.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이 인간의 존재 목적이다.
4.2.5.2. 성도의 죽음(116:15)
15절 성도의 죽는 것을 여호와께서 귀중히 보시는도다
교회에서는 장례예배 때, 이 절을 인용하지만, 원래의 뜻은 하나님께서 성도의 생명을 귀하게 돌보신다는데 있다. 주님은 죽음의 재앙이 그의 성도에게 엄습하지 못하게 개입하신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원수의 손에 맡기지 않을 것이다. 이것이 우리의 위로가 된다. 하늘의 아버지는 자기의 어린 소자가 멸망하도록 버려두지 아니하신다. 목자는 자기의 양떼가 이리에게 먹히도록 버려두지 않는다. 세상의 정복자들은 그렇지 않다. 바로와 시저와 나폴레옹은 승리를 위해 자기 용사들의 피를 귀히 여기지 않았다. 그러나 왕 중 왕은 세상의 독재자나 정복자와 같지 않다. 그는 가난하고 궁핍한 자들을 돌보시고, 그들의 피를 귀히 보신다. \성도의 죽는 것을 주께서 귀중히 보신다\는 말씀은 원래의 의미를 넘어 이차적 의미를 지닌다. 안디옥의 감독 바빌라스(Babylas)는 데시우스 황제의 핍박 때 순교를 당하면서, 이 말씀으로 찬송하였다. 사실 죽음 자체는 하나님의 눈에 귀한 것이 아니다. 그러나 성도의 죽음은 다른 차원을 가진다. 성도의 죽음은 이 세상을 떠나 하나님의 나라로 들어가는 것이다. 성도라면 누구나 다 그 죽음이 귀하다. 꼭 순교자의 죽음이 귀한 것 만이 아니다.
4.2.6. 눈물
4.2.6.1. 눈물의 회개 (6:6, 8)
6절 내가 탄식함으로 곤핍하여
밤마다 눈물로 내 침상을 띄우며 내 요를 적시나이다
\밤마다 눈물로 내 침상을 띄우며\는 시인의 고난이 너무나 심각함을 시적으로 표현한 은유이다. 시인의 많은 눈물은 그의 고통의 깊이를 말해준다. 그는 밤에도 잘 수가 없었고, 고통으로 울며 밤을 지샌다. 밤의 고적함과 외로움으로 그의 고통은 더욱 심해진다. 환자에게 밤의 시간은 따뜻한 인간의 사랑이 그리울 때이다.
4.2.6.2. 밤의 눈물과 아침의 기쁨 (30:5)
5절 이는, 그 노염은 잠간이요 은총은 평생이며
저녁에는 울음이 기숙할찌라도 아침에는 기쁨이 올 것이기 때문이로다.
이 절에는 주님의 \노염과 은총,\ \순간과 평생,\ \울음과 기쁨,\ \저녁과 아침\의 대조가 나타나며, 이 강한 대조를 통해 우리의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 잘 설명해 준다. 시인은 \빛이 새벽의 미명을 깨뜨리고 나오는\ 영상에서 \슬픔을 깨고 기쁨을 회복하는\ 모습을 발견한다. 하루의 순환에서 저녁이 오고, 밤이 깊어지는 것은 주님의 \노염\을 경험하는 것을 상징하듯이, 먼동이 트는 것은 구원을 상징해 준다.
5. 사회생활의 수사학
5.1. 농사 (126:5,6)
5절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리는 자는 기쁨으로 거두리로다
시인은 뿌리는 때와 거두는 때를 전체로 보며, 씨 뿌리는 수고와 추수의 기쁨이 비교될 수 없음을 말하고 있다. 씨 뿌림이 없이 결실이 있을 수 없기 때문에, 그들의 기쁨은 그들의 고통 때문에 더욱 커진다.
6절 울며 씨를 뿌리러 나가는 자는 정녕 기쁨으로 그 단을 가지고 돌아 오리로다
우리는 울면서 씨를 뿌리는 자이다. 우리의 격정 때문에 울고, 한계 때문에 울고, 때로는 마음이 민감하여 운다. 하나님은 머리 좋고, 똑똑한 사람을 선택하여 씨뿌리라고 말씀하시지 않으시고, 우리처럼 흥분도 잘하고, 화도 잘내며, 또 울기도 잘하는 우리를 부르셨다. 울수 없는 자는 설교할 수 없고, 전할 수 없다. 우리는 돌이 아니기 때문에 운다. 우리는 영혼을 사랑하기 때문에 운다. 우리는 우리 부족 때문에 운다. 하나님을 섬기는 것은 쉬운일이 아니다. 우리 힘으로 할 수 없다. 따라서 우리는 운다. 인간 마음이 강퍅함 때문에 운다. 처음에는 위대한 진리를 전해주기만 해도, 사람이 즉시에 변화 될 줄로 안다. 복음만 전하면, 사람들이 기뻐 뛸 줄 안다. 우리는 선교도 얼마나 쉽게 생각하는가? 그렇지만, 이제 우리는 우는 것을 안다. 실망할 때가 있음을 안다.
5.2. 목축
5.2.1. 저희의 목자가 되사 드십소서 (28:9)
9절 주의 백성을 구원하시며 주의 산업에 복을 주시고
또 저희의 목자가 되사 영원토록 드십소서
\저희의 목자가 되소서\는 기본적으로 \저들을 먹이소서\라는 의미이다 (23:1). 주님은 목자로서 자기 백성을 먹일 뿐 아니라, 또한 \이끄신다\(na\sa\). 이 번역은 \드십소서\(개역) 보다 좋으며, \메고 다니다\(공동) 보다 덜 회화적이며, 결국 \보살피다\ (표준)는 뜻이다.
5.2.2. 사망이 저희 목자일 것이다(49:14)
14절 양같이 저희를 음부에 두기로 작정되었으니 사망이 저희 목자일 것이라
아주 강한 시적인 영상으로 부자들의 어리석음이 그려진다. 그들은 어리석은 양과 같다. 죽기로 작정된 양과 같다 (시44:12). 그들은 어디로 가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들이 그들 인생의 달콤한 목장에서 풀을 뜯어먹고 있을 때에, 모든 것이 평안하고 형통하다고 생각할 때에, 죽음이 이미 그들을 \뜯어먹고 있다.\
5.2.3. 요셉을 양 떼 같이 인도하시는 이스라엘의 목자여(80:1)
1절 요셉을 양 떼 같이 인도하시는 이스라엘의 목자여 귀를 기울이소서
\이스라엘의 목자\라는 표현은 구약성경에 단 한번 나오지만, 목자이신 하나님에 대한 시상은 우리에게 친숙하다. 옛날에 \목자\라는 칭호는 \왕\과 평행으로 함께 나온다 (삼하5:2; 대상11:2; 겔37:24; 나훔3:18; 슥11:6). 즉, 목자라는 칭호 속에 왕권사상이 깊이 배여있다 (시100:3). 우리의 목자는 우리의 왕이시다. 그러나 하나님을 \왕\으로 부르지 않고, 목자로 부르는 이유는 목자가 왕보다 훨씬 더 친밀하기 때문이다. 이 칭호 속에는 하나님에 대한 깊은 신뢰가 담겨 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그들의 목자로 의지하며 산다. 하나님은 선한 목자로서 그들을 도우시며 지도하신다. 목자는 양을 말이나, 나귀나 노새처럼 다루지 않는다. 목자는 양을 방목하며, 심하게 통제하지 않는다. 양은 온순하긴 하지만 머리가 둔하여, 길을 잘도 잊는다. 양은 철저히 의존적 동물이며, 목자 없이 홀로 살 수 없다.
5.3. 건축
5.3.1. 여호와께서 집을 세우지 아니하시면(127:1)
1절 여호와께서 집을 세우지 아니하시면 세우는 자의 수고가 헛되며
여호와께서 성을 지키지 아니하시면 파숫군의 경성함이 허사로다
\집을 세우다\는 표현이 성경에서 자주 나온다. 히브리어에서 집은 상당히 포괄적인 단어이다. 이것은 한 가정을 뜻할 수도 있고, 도시 (시78:69), 성전 (시122:1, 9; 134:1; 23:6등), 왕국(삼하7:13)을 가리키기도 한다. 궁극적으로 집을 세우는 이는 하나님이다. 하나님의 축복이 있을 때 집이 세워진다.
5.3.2. 건축자의 버린 돌(118:22)
22절 건축자의 버린 돌이 집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나니
이 절은 아마 격언일 것이다. 쓸모 없던 것이 영광의 자리에 앉았다는 뜻이다.
강한 대조가 여기에 있다. 건축자가 버린 돌이니 무슨 쓸모가 있겠는가. 전문가가 보았을 때, 별 소용이 없는 것이었다. 우리는 자주 희망을 꺾는 이야기를 많이 듣는다. \세살 버릇 여든간다.\ \싹이 노랗다.\ \나무는 떡잎부터 알아본다.\ 건축자가 보았을 때, 좋은 돌이 아니었다. 세상의 전문가들 말은 무섭다. 그러나 세상의 전문가들도 얼마나 편견이 많은지 모른다. 성경의 역사를 보면, 건축자의 버린돌이 모퉁이 돌이 된다. 야곱, 요셉, 다윗, 예수 그리스도는 모두 건축자들이 버린돌이 역사의 모퉁이 돌이된다.
5.4. 해운
5.4.1. 다시스의 배를 깨뜨리시는 주님(48:7)
7절 주께서 동풍으로 다시스의 배를 깨뜨리시도다
\다시스의 배\는 그 당시에 가장 큰 배요 단단한 배이며 지중해를 주름잡는 페니시아인들의 배들이다. \다시스의 모든 배\는 가장 견고하고 안전하고 화려한 것을 상징한다(사2:16). 페니시아의 배들은 스페인에 있는 다시스까지 항해하였다.
5.4.2. 항해사들이 본 주님의 행사(107:23-27)
23절 선척을 바다에 띠우며 큰 물에서 영업하는 자는
24절 여호와의 행사와 그 기사를 바다에서 보나니
26절 저희가 하늘에 올랐다가 깊은 곳에 내리니 그 위험을 인하여 그 영혼이 녹는도다
27절 저희가 이리저리 구르며 취한 자같이 비틀거리니 지각이 혼돈하도다.
산더미 같은 파도가 일어날 때, 배를 타고 항해하던 자들은 하늘까지 올랐다가, 바다 끝 깊음까지 내려간다. 이리하여 \그들의 영혼이 녹는다.\ 즉, 그들은 어찌할 바를 모른다. 그들은 술취한 자 처럼 비틀거린다. 다 멀미하는 모습이 그려지고 있다. 멀미를 하다보니, \지각이 혼돈하다.\ 여기에서 \지각\은 구체적으로 \항해술\을 가리킨다고 볼 수 있다. 대풍으로 멀미하는 그들에겐 항해술 조차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어릴 때부터 익힌 항해 기술이 이 무서운 자연의 변화 앞에 아무런 소용이 없다. 모두 다 자포자기에 빠진다. 파도에 휩쓸려 파선하기 직전의 절망적인 모습이다.
5.5. 전쟁
5.5.1. 암사슴의 발 같이(18:33-34)
33절 나의 발로 암사슴 (발) 같게 하시며 나를 나의 높은 곳에 세우시도다
\암사슴의 발\은 \빠르게 하다\ (공동), 혹은 \튼튼하게 하다\(표준) 뜻이다. 모든 전쟁에서 빠른 발은 필수적이다(삼하2:18; 대상12:8). 왕의 발이 암사슴으로 비유된다. 암사슴은 험한 산악지역에서도 민첩하고, 빠르고, 자유롭고, 확실하게 뛴다.
5.5.2. 군대가 나를 대적하여 진 칠지라도 (27:3)
3절 군대가 나를 대적하여 진 칠지라도 내 마음이 두렵지 아니하며
전쟁이 일어나 나를 치려 할지라도 내가 오히려 안연하리로다
\진치다\는 기본적으로 \둘러 싸다\는 의미로서 \나를 거스려\(\alay)와 함께, \나를 치려고 에워싸다\(공동; 표준역)는 의미이다. 즉, 시인은 사방으로 우겨쌈을 당하고 있다. 그러나 \내 마음이 두렵지 아니하다\고 말한다.
5.5.3. 말은 헛것임이여(33:16, 17)
16절 많은 군대로 구원 얻은 왕이 없으며 용사가 힘이 커도 스스로 구하지 못하는도다
17절 구원함에 말은 헛것임이여 그 큰 힘으로 구하지 못하는도다
4행으로된 이 두 절에는\없다\, \못한다\, \헛되다\, \못한다\가 반복되고 있음을 주의하라. 17절은 \헛되다\ 혹은, \거짓되다\로 시작한다. 이런 용어들은 지혜문학의 영향을 보여준다. 이 세상을 사는데 참된 지혜와 힘이 어디 있는지를 본문은 분명히 해준다.
\말\은 전마요, 왕이 타는 기마이다. 이것은 군사력을 상징적으로 가리키는 용어이다. \혹은 병거, 혹은 말을 자랑하나, 우리는 여호와 우리 하나님의 이름을 자랑하리로다\ (20:7; 사31:1; 겔17:15참조). 말은 세상 권세의 축도이다. 현대어로 번역하면, 탱크라고 할 수 있다. 말이 아무리 잘 달리고 힘차도 구원을 주지 못한다 (사30:15이하; 31:1이하). 인간의 힘과 위대함은 한계 속에 있다. 그것이 아무리 높다 하더라도, 믿을 수 없는 헛된 것이다.
결론
오경에서 하나님은 모세와 제사장을 통해 말씀하시며, 역사서에서는 사사와 왕을 통해, 선지서에서는 성령의 감동을 받은 선지자를 통해 말씀하신다. 시편으로 들어오면, 비로소 시인이 하나님께 말한다. 이제 말의 방향이 바뀌고 있다. 하나님에게서 사람에게 오던 말씀이, 이제 사람에게서 하나님에게로 향하고 있다. 비로소 사람들의 말문이 터진 것 같다. 이제는 그냥 듣고 묵종하는 신앙이 아니라, 말하고 불평하고 푸념하고 때로는 대어드는 신앙으로 넘어간다. 어떻게 보면, 시인들은 한없이 건방지고 주제넘는 것 같다. 그렇지만 하나님도 잘 참고 들으시는 것 같다. 시인들은 삶의 온갖 정황 속에서 하나님께 드릴 말씀이 많았다. 수사학적 분석을 그들이 어떻게 말했는지 우리에게 모델을 준다.
루터는 그의 친구에게 보낸 편지에서 성경해석에 있어서 수사학의 중요성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나는 문학에 대한 지식 없이 순수한 신학이 전혀 설 수 없다는 점을 확신하게 되었다. 따라서 문학이 쇠퇴해질 때, 신학도 처참하게 무너져 내릴 것이다. 정말이지, 하나님께서 언어와 문자가 생기게 하고 발전하게 하지 않으셨다면, 결코 위대한 하나님의 말씀의 계시가 없었을 것이다. 마치 세례 요한이 없었던 것 처럼.... 나는 가능한 한 많은 시인과 수사학자가 나오길 소원한다. 이는 그 어떤 다른 방법 보다도 이 연구가, 사람들은 거룩한 진리를 깨닫고, 그것을 적절하고 기쁘게 다룰 수 있도록 가장 잘 도와 주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나는 여러분들이 젊은 이들로 시와 수사학 연구에 애쓰도록 권해주길 간청합니다 (이 간청에 무게가 있다면).”
- 영상의 수사학을 중심으로 -
김정우 교수
목차
들어가는 말
I. 자연현상의 수사학
II. 식물의 수사학
III. 동물의 수사학
IV. 인생의 수사학
V. 사회생활의 수사학
결론
들어가는 말
나의 과제는 시편과 설교를 잇는 데 있다. 시편과 설교를 잇는 데 수많은 방법들이 있지만, 나는 <수사학적 분석>으로 연결을 하고자 한다. 이것은 유일한 방법은 아니며, 하나의 방법이다. 그러나 우리에게 도움이 된다. 그렇다면 <수사학적 분석>은 무엇인가? 어느 초등학교 1학년 학생이 <풍선>에 대해 쓴 산문시를 보라.
\하늘에 뜬 풍선, 어디 어디 날아 가나.
우리 집 위에 떠있나. 엄마 회사 위에 떠있나.
멀리 멀리 날아가는 풍선. 나무가지 위에 걸려 있나 하늘 위에 떠 있나.
둥실 둥실 날아가는 예쁜 풍선\
이 시에는 이 아이의 마음이 배여있다. 그는 무엇을 말하고 있는가? 이 산문시를 수사학적으로 분석할 수 있을까? 많은 언어들 중 어느 것이 가장 강력한가? \엄마의 사무실 위에 뜬 풍선\에는 그의 엄마를 향한 그리움이 배여있다.
시편에서 <수사학적 분석>은 한 시의 통일성과 총체성을 보지만, 그 중에 강한 \설득의 장치\를 찾아내는 것이다. <수사학적 분석>은 역사도 길고, 이론도 복잡하지만, 가장 기본적인 개념은 \은 쟁반의 금 사과\처럼(잠 25:11), 형식의 아름다움과 내용의 호소력을 찾는 데 있다. 혹은 \전도자가 힘써 아름다운 말을 구하였나니 기록한 것은 정직하여 진리의 말씀이니라\(전12:10)에서와 같이 \아름다운 말의 표현\과 \진리의 말씀\을 동시에 찾는 데 있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수사학은 \구성의 예술성\과 \설득의 기교\를 동시에 찾는 작업이라고 할 수 있다. 나는 다양한 수사학적 장치 중 특히 \영상의 수사학\을 중심으로 시편과 설교를 이어보고자 한다. 나는 \영상의 수사학\을 자연현상, 식물, 동물, 인생, 사회생활의 다섯 가지 영역에서 찾고 적용하고자 한다.
1. 자연현상의 수사학
1.1. 이슬
1.1.1. 헐몬의 이슬 (133:3)
3절 헐몬의 이슬이 시온의 산들에 내림 같도다
거기서 여호와께서 복을 명하셨나니 곧 영생이로다
\헐몬의 이슬\은 \많은 이슬\에 대한 격언적 표현이다. 헬몬산은 높고 장엄하다. 사시사철 눈이 덮여 있다. 엄청난 이슬이 내린다. 그래서 마치 밤새 비가 내린 것 같다. 이슬은 신선함에 대한 상징이다. 형제간의 우애는 마치 온 나라에 이슬이 모든 식물과 채소와 동물들에 내린 것 같은 영향을 준다. 형제들이 함께 있을 때, 신선한 에너지를 느낀다. 사회생활과 교회생활에 새 힘을 준다.
1.1.2. 새벽 이슬 같은 당신의 청년들(110:3)
3절 당신의 권능의 날에 당신의 백성이 거룩한 옷을 입고 즐거이 헌신하니
새벽 이슬 같은 당신의 청년들이 당신께 나오는도다
원어에 따르면, \아침의 모태에서\ 이슬이 나온다고 말한다. 이슬이 의인화 되고 있다(욥38:12, 13). 이슬은 여명의 모태에서 넘치게 흘러 나온다. 이슬은 새벽에 태어나 자연을 새롭게 한다. 마치 아침에 이슬이 넘치도록 내리듯이, 시인은 젊은이들이 전쟁터에서 넘치는 활력으로 메시야 왕을 도울 것을 그리고 있다. 밀턴의 실락원 5:744에는, \밤의 별처럼 헤아릴 수 없는 대군이요, 아침의 별들 처럼, 이슬은 모든 잎과 모든 꽃 위에서 보석처럼 반짝인다\고 한다. 시편 110:3에서 \새벽 이슬 같은 당신의 청년들\은 젊은 날 우리의 헌신이 \새벽 이슬 같았음\을 말해준다. 정말 순수한 원형적 헌신이었다. 때묻지 않았다. 그때로 다시 돌아갈 수 있을까?
1.2. 비
1.2.1. 흡족한 비(68:9)
9절 하나님이여 흡족한 비를 보내사 주의 산업이 곤핍할 때에 견고케 하셨고
\흡족한 비\는 늦가을에 오는 심한 비이다. 이 비는 땅을 부드럽게 하고 다음해를 위해 씨를 뿌릴 수 있도록 한다. 이스라엘이 약속의 땅에 거할 때 (10절), 주님은 때를 따라 흡족한 비를 주셨다. 가나안 땅은 애굽 땅과 비교할 때, 너무나 좋은 땅이다. 흡족한 비가 있는 땅이다 (신11:10-12; 시65:9). 흡족한 비는 하나님께서 자신의 백성에게 넘치게 부어주시는 모든 복을 상징해 준다.
1.2.2. 벤풀에 내리는 비(72:6)
6절 저는 벤풀에 내리는 비 같이 땅을 적시는 소낙비 같이 임하리라.
시인은 단비 이미지를 사용하여 왕의 사역을 말해준다. 우리는 긴 가뭄을 여러번 체험했기 때문에 단비가 얼마나 귀한지 안다. 특히 농경사회에서 단비는 너무나 귀중하다. 그러나 시인은 단순히 단비라고 말하지 않고 \벤풀에 내리는 단비\라고 말한다. 풀을 벤 후에 내리는 비는 너무나 적절할 때에 내린 비이다. 이때 비가 내리면, 풀이 더 잘자란다. 또한 왕의 은혜는 땅 위에 내리는 소나기 같다. 즉 그의 은혜에서 피할 자가 없다. 그의 은혜가 온땅을 적신다. 그의 자비와 사랑이 모든 사회계층에 임한다. 단비와 소나기는 이스라엘의 기후에서 젖줄과 같다. 이것은 유목생활과 농경생활을 하는 사람들의 생업을 좌우한다.
왕의 통치가 단비와 소나기 같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오늘날 얼마나 있을까? 우리는 정치하는 사람을 생각할 때, 마치 초장을 습격하는 황충, 메뚜기떼 처럼 생각한다 (암7:1). 그들은 우리를 도우는 자가 아니라 혼란스럽게 하는 자이다. 그들은 백성에게 행복이 아니라 고통을 주는 자이다. 참된 지도자는 단비요 소나기이다. 소나기가 내릴 때 오랫동안 말라있던 광야가 해갈하고, 산천 초목이 춤을 춘다. 올바른 목회자를 만나는 것은 얼마나 큰 축복인가. 모든 짐승이 해갈한다. 시냇물이 넘친다. 우리의 지도자들이 단비와 소나기 같기를 기도해야 되지 않을까?
1.2.3. 바람
1.2.3.1. 바람날개를 타신 주님 (18:10)
10절 그룹을 타고 날으심이여 바람날개로 높이 뜨셨도다
이 절은 주님께서 신속하게 강림하심을 강조하고 있다. 주님은 \그룹\과 \바람날개\를 타시고 움직이신다. \그룹\은 날개달린 짐승 (사자, 황소, 독수리)으로 천상에 있는 주님의 보좌를 지키는 자이다(겔1:5-14; 10:21). 언약궤 위에는 황금으로 된 그룹이 있다 (출25:17-22). 이것은 주님의 보좌(시80:2; 99:1), 즉 언약궤를 가리킨다 (삼상4:4; 삼하6:2; 왕하19:15). 대상 28:18에는 \타시는 처소된 그룹\ 이 나타난다. 하반절은 \바람 날개\는 마치 바람이 날개를 단 새와 같은 영상으로 제시된다(호 4:19 참조). 주님께서 이 날개를 타고 나르신다 (시104:3). 이 소절은 새가 먹이를 낚아 채기 위해 \하강하는\ (swoop down) 모습 같다 (신28:49; 렘48:40).
1.2.3.2. 다시스의 배를 깨뜨리는 동풍같이 (48:7)
7절 주께서 동풍으로 다시스의 배를 깨뜨리시도다
성경에서 \동풍\은 심판의 상징으로 (욥27:21; 사27:8; 렘18:17) 특히 파괴적인 바람이다. 바울도 동풍에 떠밀려 파선하였다(행27:14). 배가 풍랑을 만나 떠밀려 가면, 정신을 차릴 수 없다. \다시스의 배\는 그 당시에 가장 큰 배요 단단한 배이며 지중해를 주름잡는 페니시아인들의 배들이다. \다시스의 모든 배\는 가장 견고하고 안전하고 화려한 것을 상징한다(사2:16). 페니시아의 배들은 스페인에 있는 다시스까지 항해하였다. 이곳은 스페인의 한 동네로서 페니시아의 식민지였다. 강력한 동풍이 대양에 다니는 배들을 때리고 있다. 이와같이 시온을 쳐들어 온 열국의 왕들을 향해 주님의 바람이 때리자 그들은 기겁을 하고 있다.
1.2.4. 구름
1.2.4.1 구름타고 광야에 행하시던 자 (68:4)
4절 하나님께 노래하며 그 이름을 찬양하라 타고 광야에 행하시던 자를 위하여
대로를 수축하라 그 이름은 여호와시니 그 앞에서 뛰놀찌어다
\타다\에서 목적어 \구름\이 생략된 것으로 본다면, \구름 타는 분\으로 볼 수 있다. 우가릿어에서 \구름타는 자\(rkb \rpat)는 풍년의 신 바알의 칭호이다. 바알의 칭호를 사용한 것은 변증적인 의도가 있다. 비와 풍년을 주시는 이는 바알이 아니라 여호와 하나님이시다. 구름은 하나님의 전차이다.
1.2.4.2. 구름보다 높은 주님 은혜 (36:5; 57:10; 108:4참조)
5절 여호와여 주의 인자하심이 하늘에 있고 주의 성실하심이 공중에 사무쳤으며
주님의 은총은 무한한 하늘까지 이른다. 나아갈 수 없는 구름층까지 이른다(출34:6). 이 세상을 채우는 것은 악인의 악이 아니고, 하나님의 은총이다. 악인들이 아무리 날뛰어도 하나님의 은총이 이 세상을 이끄신다.
1.2.5. 천둥(시편 29편)
3절 여호와의 소리가 물 위에 있도다
4절 여호와의 소리가 힘 있음이여 여호와의 소리가 위엄차도다
5절 여호와의 소리가 백향목을 꺾으심이여 여호와께서 레바논 백향목을 꺾어 부수시도다
7절 여호와의 소리가 화염을 가르시도다
8절 여호와의 소리가 광야를 진동하심이여 여호와께서 가데스 광야를 진동하시도다
9절 여호와의 소리가 암사슴으로 낙태케 하시고 삼림을 말갛게 벗기시니
주님은 레바논의 백향목을 꺾으시고, 헬몬산을 뒤흔드신다. 이 세상의 가장 견고하고 든든한 것을 다 흔들어 버리신다. 세상 사람들이 실상이라고 생각하는 것들을 다 허상으로 만들어 버리신다. 세상 사람들이 가장 안전하고 값진 것으로 생각하는 것들을 다 허물어 버리신다.
1.2.6. 바다와 강
1.2.6.1 바다를 변하여 육지로 (66:6)
6절 하나님이 바다를 변하여 육지되게 하셨으므로
무리가 도보로 강을 통과하고 우리가 거기서 주로 인하여 기뻐하였도다
주님의 수많은 행적 중에서 시인은 오직 두개 (혹은 한개)를 언급한다. 홍해를 건넌 사건이다 (출14:21-22; 15:19). 요단강을 건넌다. 정복의 시작이다 (수3:14-17). 이 두개의 사건은 모든 구원사를 대표한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큰 구원을 체험했다. 구원사의 기초요 기둥이다.
1.2.6.2. 바다야 강아 (114:3, 5)
3절 바다는 이를 보고 도망하며 요단은 물러갔으며
5절 바다야 네가 도망함은 어찜이며 요단아 네가 물러감은 어찜인고
출애굽 때 바다를 건넌 것이 암시된다. 물론 바다는 태초의 혼돈세력을 상징해 준다. 주님은 바다와 싸울 필요가 없었다. 바다가 보고 먼저 도망친다. 주님의 모습만 보아도, 두렵다 (77:16; 합3:10). \요단은 물러갔으며\. 여호수아 3장을 회화적으로 정리한 것이다. 요단 강을 건늘 때, 요단이 도망친다. 홍해에서 요단강까지 묘사되며, 이 두 사건은 이미 여호수아 4:23에서 이어진다. 5절에는 수사의문이 계속 나온다. \부드러운 아이로니\가 있다. 아이로니와 유모어가 있다. 어떻게해서 이들이 이렇게 비정상적으로 움직이는가?
1.2.6.3. 바다에서부터 바다까지(72:8)
8절 저가 바다에서부터 바다까지와 강에서 부터 땅끝까지 다스리리니
여기의 바다는 자연적인 관점에서 보면 지중해를 가리키며, 강은 유프라테스 강으로 볼 수 있다(창15:18; 왕상5:1; 슥9:10). 즉 메시야 왕의 통치는 바다 끝까지, 땅 끝까지이다. 그는 땅 끝까지 다스릴 것이다 (스가랴 9:10을 보라). 주님의 교회는 땅 끝까지 퍼져야 한다.
1.2.7. 산
1.2.7.1. 하나님이 거하시려 하는 산을 시기하지 말라 (68:15-16)
15절 바산의 산은 하나님의 산임이여 바산의 산은 높은 산이로다
16절 너희 높은 산들아 어찌하여 하나님이 거하시려 하는 산을 시기하여 보느뇨
진실로 여호와께서 이 산에 영영히 거하시리로다
헬몬산 뿐 아니라, 바산의 산맥과 높이 치솟은 현무암 봉우리는 장엄성과 고대성과 불가침성을 보여주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자신의 처소로 선택한 보잘 것 없는 시온산을 깔보며, 시기하게 되었다. 사실 시온산은 가나안에서 가장 높은 산은 아니다. 그것이 높은 것은 주님께서 선택했기 때문이다. 시내산은 일시적인 처소요 (출24:16), 시온산은 영원한 처소로 선택되었다 (왕상8:12, 13참조).
1.2.7.2. 산이 요동할찌라도 (46:2, 3)
2절 그러므로 땅이 변하든지 산이 흔들려 바다 가운데 빠지든지
3절 바닷물이 흉용하고 뛰놀든지 그것이 넘침으로 산이 요동할찌라도
우리는 두려워 하니하리로다
산은 이 세상에서 가장 안정되고 견고한 것의 상징이다. 따라서 산이 흔들리는 것은 가장 무서운 일이다. 사람들은 변화를 두려워 한다. 산이 흔들리는 변화를 감당할 사람이 어디있겠는가. 이 지진은 혼돈의 세력을 암시하고 있다. 이 힘이 늘 창조질서를 위협한다. 시인은 이런 혼란스러운 상황 속에서 \두려워 아니하리라\고 고백하고 있다. 그의 마음 속에는 큰 떨림이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두려워 아니하리라\고 신앙고백을 한다. 세상의 모든 것이 다 변해고, 흔들리며, 사라져가도 그는 주님을 믿을 것이다.
2. 식물의 수사학
2.1. 종려나무와 백향목 (92:12)
12절 의인은 종려나무 같이 번성하며 레바논의 백향목 같이 발육하리로다
14절 늙어도 결실하며 진액이 풍족하고 빛이 청청하여
\종려나무\는 번성하는 나무의 상징이다. 의인의 형통을 잘 말해준다 백향목은 힘과 영광의 상징이다 (사2:3; 슥11:2). 특히 \레바논의 백향목\은 가장 좋은 목재이다. 우리의 원래 소나무 같다. 우리 소나무는 \남산 위의 저 소나무 철갑을 두른듯\에서처럼 원래 곧고 컸다고 한다. 일제가 우리 민족성을 약화시키기 위해 다 꼬부라진 소나무만 심었다고 한다.
이스라엘인들의 이상적인 삶의 모습이 그려져 있다. 신명기 저자는 모세의 모습을 이렇게 그린다(신34:7). 역대기자는 다윗의 죽음을 이렇게 묘사한다 (대하29:28). 시인은 경건한 자의 삶을 노년에도 힘이 넘치고 활기찬 것으로 묘사한다.
2.2. 감람나무
2.2.1. 나는 하나님의 집에 있는 푸른 감람나무 같음이여 (52:8)
8절 오직 나는 하나님의 집에 있는 푸른 감람나무 같음이여
감람나무는 사철나무이며, 가나안에서 가장 값진 나무 중 하나이다(신8:8; 왕하18:32). 약 10-12미터로 자라고, 수백년 동안 (격년으로) 감람열매를 맺는다. 그 열매를 먹기도 하도, 부수어서 기름을 만들기도 한다. 약용으로도 사용된다 (사1:6). 화장 (전9:7-8), 성전의식 용 등잔기름으로 사용된다 (출29:40; 민48:5). 감람 나무를 키우는 것은 그 과정이 느리고 길지만, 결국 많은 수확을 거두게 된다. 이 나무는 의인에 대한 은유로 사용된다 (시 92:3-15).
2.2.2. 어린 감람나무 같은 자식들 (128:4하)
3절 네 집 내실에 있는 네 아내는 결실한 포도나무 같으며
네 상에 둘린 자식은 어린 감람나무 같으리로다
\어린 감람 나무\는 무한한 가능성이 있다. 자라가고 열매맺을 가능성이 아이들 속에 있다. 이들이 왜곡되지 않도록, 깨끗한 환경에서 살도록 해야 한다. 마약과 본드와 술과 담배와 향락을 피하고, 주님의 나무로 푸르고 청청하게 자라가야한다. 이들이 이 땅에 더욱 깊이 뿌리내리도록 키워야 한다.
2.3. 포도나무
2.3.1. 결실한 포도나무(128:4상)
아내는 \결실한 포도나무\로 묘사된다. \꽃피고 결실치 않는 벗나무 (사쿠라)가 아니라, 열매가 많고, 달고, 아름답고, 귀한 포도나무이다. 포도나무이므로, 계속 시절을 좇아 과실을 맺을 것이다. 사실 포도나무는 약하고, 그렇게 모양이 멋있지 않다. 그러나 포도나무 보다 귀한 나무가 또 어디 있겠는가?이스라엘의 포도는 너무나 달고 맛있다. 그래서 포도나무는 구약에서는 이스라엘을, 신약에서는 교회를 상징하는데, 여기에서는 아내를 상징하게 되었다. 다 열매를 맺어야 하기 때문이다.
2.3.2. 애굽에서 가져온 포도나무 (80:8)
8절 주께서 한 포도나무를 애굽에서 가져다가 열방을 쫓아내시고 이를 심으셨나이다
고대세계에서 포도는 가장 비싸고 귀한 과일이었기 때문에 하나님의 백성을 설명하는데 아주 적절한 은유가 되었다. 이스라엘은 포도나무처럼, 열국들 중 가장 큰 특권을 받은 나라였다
2.4. 버드나무 (시 137:2)
2절 그 중의 버드나무에 우리가 우리의 수금을 걸었나니
\버드나무\가 바람에 흔들리며 울고 있는 모습이 포로의 모습과 유사하다. 여기에서는 \버드나무\가 비애를 상징한다. 그 옆에 차가운 강물이 흐른다. 이 절에는 바람 소리(쉬~쉬)가 많이 나타난다(`!AYci ryVimi Wnl\ Wryvi hx\m.fi Wnylel\Atw> ryvi-yreb.DI WnybeAv WnWlaev. ~v\ yKi). 이 독특한 음소를 통해 그의 분노와 고통이 잘 묘사된다. \우리의 수금을 버드나무에 걸었다.\ 원래 수금은 기쁨을 노래하는 악기이다 (창31:27; 욥30:31; 사24:8). 기쁨을 노래하는 하아프 (수금)가 울고 있는 버드나무에 걸린 모습이다. 이 영상을 통해 시인은 하아프가 슬픈 노래를 하고 있는 것 같은 모습을 그려준다.
2.5. 알곡과 쭉정이 (1:3, 4)
3절 저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시절을 좇아 과실을 맺으며
그 입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으니 그 행사가 다 형통하리로다
4절 악인은 그렇지 않음이여 오직 바람에 나는 쭉정이와 같도다
악인이 \쭉정이\로 비유된 것은 그가 가볍고 그 속에 내재적인 가치를 갖고 있지 않다는 점을 말해준다. 쭉정이는 가볍고 쓸모없는 것이다(사33:11). 결국 쭉정이는 버리는 것이다. 그러나 여기에서는 단순한 \쭉정이\가 아니라, \바람\에 날리는 \쭉정이\이다.
3. 동물의 수사학
3.1. 사자 (17:12)
12절 저는 그 움킨 것을 찢으려 하는 사자 같으며
은밀한 곳에 엎드린 젊은 사자 같으니이다
시편에 나오는 시인의 원수들은 자주 야생동물의 은유로 등장하며, 여기에서 원수는 사자의 은유로 나온다. 원수의 적대감이 사자의 잔인성과 무서움과 비교되고 있다 (7:2; 10:8-10; 22:12). 사자가 그 먹이를 잡아 갈갈이 찢는 것처럼, 원수가 시인을 잡아 찢어 삼켜 먹으려고 한다. 하반절은 상반절 보다 은밀성을 강조하며, 그 공격의 갑작스러움과 무서움을 강조하고 있다. 원수는 시인이 볼 수 없는 곳에 기다리고 있다. 공격할 지점에서 숨어 기다린다. 시인은 원수의 비열성과 사나움과 무서움을 호소함으로써, 하나님의 개입을 간청한다.
3.2. 사슴 (42:1)
1절 하나님이여 사슴이 시냇물을 찾기에 갈급함 같이
내 영혼이 주를 찾기에 갈급하니이다
왜 이 사슴은 목이 마른가? 어떤 사람들은 이 사슴이 사냥꾼에게 쫓기고 있다고 보나, 근거가 확실치 않다. 아마 오랜 가뭄으로 목이 타는 것으로 보는 것이 타당해 보인다 (욜 1:20; 렘15:5, 6참조). 갈증으로 죽을 것 같다. 물 없이 더 이상 살 수 없다. 여름 더위에 녹았다. 목을 떨어 뜨린다. 사슴이 시냇물을 찾는 모습은 시인이 하나님을 찾는 모습과 아주 잘 어울린다. 그는 자연계의 갈증으로 영적인 갈증을 묘사하고 있다. 마치 주님께서 우물가의 여인에게, 이 우물을 마시는 자는 다시 목마르려니와 내가 주는 물을 마시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않으리라고 말씀하신 것과 같다.
3.3. 청각장애 독사(58:4-5)
4절 저희의 독은 뱀의 독 같으며 저희는 귀를 막은 귀머거리 독사같으니
악인은 뱀 처럼 음흉하고 교활할 뿐 아니라, 독사처럼 독을 품고 다닌다. 그들의 말에는 독이 묻어 있다. 그 독은 뱀의 독이다. 그들은 훼방하고, 거짓된 고발을 하며, 저주하고, 중상모략하고, 비방하고 헐뜻는 말을 한다. 독있는 말에 물리면, 생명에 위협을 받는다. 독사에게 물려 죽어가는 사람을 본 적이 있는가? 얼굴이 파래진다. 독이 온몸으로 퍼져간다. 점점 숨을 쉴 수 없다. 중상모략을 당하면, 우리는 숨을 쉴 수 없게 되고, 죽어가게 된다.
5절 곧 술사가 아무리 공교한 방술을 행할지라도 그 소리를 듣지 아니하는 독사로다
영상이 독특하다. 이 독사는 술사의 말을 듣지 않는다. 아무리 공교한 방술을 베풀어도 이 독사는 듣지 않고 있다. 왜냐하면, 귀가 먹었기 때문에, 어떤 요술도 통하지 않는다. 요술사가 피리를 불어도 들려지지가 않는다. 따라서 아무리 공교한 방술도 도움이 안된다. 악한 지도자는 아무리 애원하고 호소해도 통하지 않는다. 그들은 너무 부패하였다. 어떻게 설득할 수가 없다. 그들은 치명적이고, 어떻게 고쳐볼 수가 없다. 독사를 주문으로 사로잡는 것은 고대에 자주 있었던 일이다 (전10:11; 사3:3; 렘8:17). 악인은 그 어떤 경고나 책망이나 회유나 격려도 듣지 않는다.
3.4. 학(104:17)
17절 새들이 그 속에 깃을 들임이여 학은 잣나무로 집을 삼는도다
나무들이 흡족하게 마셨기 때문에, 크고 튼튼하게 자라 새들을 품어주게 되었다. 그래서 \새들\이 그 속에 깃들고, 구체적으로 \학은 잣나무로 집을 삼는다\. 표준새번역은 개역의 \학\(hasidah)을 \황새\(stork)로 번역한다. \전나무\는 레바논에서 자라며, 잣나무는 가나안 본토 소생이라고 한다. \황새\는 어릴 때, 너무나 사랑스러우며, 그 둥지가 너무나 커서 크고 높은 나무 위에 집을 짓는다고 한다. 이 새는 자기 새끼를 성심으로 돌보며, 해마다 자기 보금자리로 돌아오는 습관으로 유명하다(렘8:7). 시인은 새들 중에 대표적인 새로 학, 혹은 황새를 꼽고 있다.
3.5. 참새와 제비(84:3)
3절 나의 왕, 나의 하나님,만군의 여호와여
주의 제단에서 참새도 제 집을 얻고 제비도 새끼 둘 보금자리를 얻었나이다
84편은 목마른 사슴 대신에 참새와 제비를 가져온다. 참새는 얼마나 보잘 것 없는 새인가. \참새 두 마리가 한 앗사리온(1000원)에 팔리지 아니하냐?\ (마10:29). \너희는 많은 참새 보다 귀하니라\(마10:31; 눅12:6, 7참조). 그렇지만, 참새도 주님의 집 안에 거할 수 있는 은총을 입는다. 제비도 새끼둘 보금자리를 찾았다. 하나님의 집은 세상에서 가장 안전한 곳이므로, 제비는 새끼들의 안전을 위해 이곳에서 둥지를 튼다. 새끼들이 기뻐하는 곳을 만든다.
3.6. 까마귀 새끼 (147:9)
9절 들짐승과 우는 까마귀 새끼에게 먹을 것을 주시는도다
하나님은 들짐승과 새도 돌보신다. 작은 것과 큰 것을 다 돌보신다. 까마귀가 우는 것을 생각해보라. 아주 거칠고, 시끄럽다. 아름답지 않다. 정확하지도, 섬세하지도 않다. 그러나 주께서 기도를 들으신다. 자비를 구하는 것은 이와같다. 우리는 까마귀 보다 훨씬 귀하다. 불멸의 영혼이 있다. 불쌍한 새소리를 들으시는 주님이 우리 소리 안듣겠는가.
4. 인생의 수사학
4.1. 출생
4.1.1. 주께서 나를 모태에서 나오게 하시고(22:9-10)
9절 오직 주께서 나를 모태에서 나오게 하시고
내 모친의 젖을 먹을 때에 의지하게 하셨나이다
10절 내가 날 때부터 주께 맡긴바 되었고
모태에서 나올 때부터 주는 내 하나님이 되셨사오니
시인은 자신의 생명의 출발점에 대해 생각한다. 주님은 그를 모태에서 나오게 하셨다. 이 용어 \나오게 하시고\는 구약에서 단 한번 나타나며, 기본적으로 \안전하게 태어났다\를 의미한다. 그러나 이것은 모태에서부터, 시인과 하나님의 특별한 관계가 있음을 강하게 말해준다. 칼빈이 말한 바와 같이, \어머니의 태 속에서 나는 썩을 수도 있었고, 죽을 수도 있었지만, 주님께서 나오게 하셨다.\
4.1.2. 악인은 모태에서부터 멀어졌음이여 (58:3)
3절 악인은 모태에서부터 멀어졌음이여
나면서부터 곁길로 나아가 거짓을 말하는도다
\모태로부터 멀어진\ 모습은 아직 어머니의 뱃속에 있을 때부터, 이미 변질되고 빗나갔음을 말해준다. 악인의 변질은 그 존재가 시작될 때부터 생긴 것이다. 정말 지독하게 악인을 묘사하고 있다. 악인의 존재의 심연에 악이 있었다. 악인은 언제부터 거짓말하는가? 그들은 나면서부터 거짓말한다. 이와같이 악인에 대한 이해가 우리와 다르다. 구약성경에서는 인간의 악이 훨씬 깊이 다루어진다.
4.2. 젊음
4.2.1. 나를 어려서부터 교훈하신 주님 (71:5, 17)
5절 주 여호와여 주는 나의 소망이시요 나의 어릴 때부터 의지시라
17절 하나님이여 나를 어려서부터 교훈하셨으므로
내가 지금까지 주의 기사를 전하였나이다
시인은 어려서부터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들을 위해 베푸신 구원사를 배웠다. 그는 한평생 주님의 제자였다. 하나님의 학교에서 배웠다 (사8:16; 50:4; 54:13).
4.2.2. 내 소시의 죄와 허물(25:7)
7절 여호와여 내 소시의 죄와 허물을 기억지 마시고
주의 인자하심을 따라 나를 기억하시되 주의 선하심을 인하여 하옵소서
그는 특히 \내 소시의 죄\를 용서해 주시길 구한다. 이것은 그가 아직 성숙하지 않았을 때, 도덕적인 책임감이 생기기 전에 지은 죄를 뜻한다 (욥13:26 참조). 혹은 \젊은 날 멋모르고 지은 실수\이다. 그때는 죄도 쉽게 저질렀다. 이제 시인은 중년이 되었는데도 그 죄에서 벗어나기 힘들어 한다.
4.2.3. 늙음: 늙어 백수가 될 때에도(71:9, 18)
9절 나를 늙은 때에 버리지 마시며 내 힘이 쇠약한 때에 떠나지 마소서
18절 하나님이여 내가 늙어 백수가 될 때에도 나를 버리지 마시며
내가 주의 힘을 후대에 전하고 주의 능을 장래 모든 사람에게 전하기까지
시인은 늙어가고 있다. 그는 힘도 없고, 기력이 갈 수록 쇠한다. 따라서 원수와 싸울 수 없다. 이 때 그는 \주의 팔\(\주의 힘\)을 생각한다. 팔은 공격적이든 방어적이든 힘의 상징이다. 주님의 팔은 주님의 큰 도움을 뜻한다. 시인은 자신의 인생에 나타난 하나님의 구원을 생각하고 있다. 주의 팔은 인도하심, 돌보심, 보호하심, 다스리심, 책망하심, 승리를 뜻한다.
4.2.4. 병
4.2.4.1. 병든 원수를 위한 금식 기도 (35:13)
13절 나는 저희가 병 들었을 때에 굵은 베옷을 입으며
금식하여 내 영혼을 괴롭게 하였더니 내 기도가 내 품으로 돌아왔도다
\굵은 베옷을 입는\ 행동은 가족의 일원처럼 대하는 것이다 (삼하12:16). 의로운 행동의 좋은 예이다. 베옷은 슬픔, 애곡, 회개를 상징한다. \금식하여 내 영혼을 괴롭혔다.\ 우리가 금식할 때 주님은 우리를 불쌍히 여기신다. 구약시대에 금식은 공적이 아니었다. 금식은 하나님과 교통하기 위해 (출34:27; 단10:3) 하기도 한다. 금식할 때는 올바른 태도를 가져야 한다 (렘14:12; 슥7:4이하).
4.2.4.2 범죄로 인한 병(107:17-18)
17절 미련한 자는 저희 범과와 죄악의 연고로 곤란을 당하매
18절 저희 혼이 각종 식물을 싫어하여 사망의 문에서 가깝도다
\저희 혼\(nepesh)은 이 절에서 \영혼\이 아니라, \입맛\을 가리킨다. 즉, 이들은 병들어 \식욕\을 상실하였다. 아무 것도 먹고 싶지 않아, 결국 \사망의 문에 가깝게 되었다.\ 즉, 그는 피골이 상접하여, 이미 죽은 자처럼 되었다. 이전에 아름답고 영광스럽던 모습은 모두 사라졌다.
4.2.5. 죽음
4.2.5.1. 내가 무덤에 내려갈 때에(30:9)
9절 내가 무덤에 내려갈 때에 나의 피가 무슨 유익이 있으리요
어찌 진토가 주를 찬송하며 주의 진리를 선포하리이까?
\내가 죽으면, 누가 하나님을 찬송하며, 누가 주님의 진리 (혹은, 진실)를 선포하겠습니까?\ (시편 6:5; 88:10-12; 115:17; 118:175). 사람이 죽으면, 하나님을 찬양할 수 없다. 하나님을 찬양한다는 것은 살아 있는 인생이 하는 것이다. \오직 산자, 곧 산자는 오늘날 내가 하는 것과 같이 주께 감사하리이다\ (사 38:19). 산자의 가장 큰 특권과 의무는 주님을 찬양하는 것이다.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이 인간의 존재 목적이다.
4.2.5.2. 성도의 죽음(116:15)
15절 성도의 죽는 것을 여호와께서 귀중히 보시는도다
교회에서는 장례예배 때, 이 절을 인용하지만, 원래의 뜻은 하나님께서 성도의 생명을 귀하게 돌보신다는데 있다. 주님은 죽음의 재앙이 그의 성도에게 엄습하지 못하게 개입하신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원수의 손에 맡기지 않을 것이다. 이것이 우리의 위로가 된다. 하늘의 아버지는 자기의 어린 소자가 멸망하도록 버려두지 아니하신다. 목자는 자기의 양떼가 이리에게 먹히도록 버려두지 않는다. 세상의 정복자들은 그렇지 않다. 바로와 시저와 나폴레옹은 승리를 위해 자기 용사들의 피를 귀히 여기지 않았다. 그러나 왕 중 왕은 세상의 독재자나 정복자와 같지 않다. 그는 가난하고 궁핍한 자들을 돌보시고, 그들의 피를 귀히 보신다. \성도의 죽는 것을 주께서 귀중히 보신다\는 말씀은 원래의 의미를 넘어 이차적 의미를 지닌다. 안디옥의 감독 바빌라스(Babylas)는 데시우스 황제의 핍박 때 순교를 당하면서, 이 말씀으로 찬송하였다. 사실 죽음 자체는 하나님의 눈에 귀한 것이 아니다. 그러나 성도의 죽음은 다른 차원을 가진다. 성도의 죽음은 이 세상을 떠나 하나님의 나라로 들어가는 것이다. 성도라면 누구나 다 그 죽음이 귀하다. 꼭 순교자의 죽음이 귀한 것 만이 아니다.
4.2.6. 눈물
4.2.6.1. 눈물의 회개 (6:6, 8)
6절 내가 탄식함으로 곤핍하여
밤마다 눈물로 내 침상을 띄우며 내 요를 적시나이다
\밤마다 눈물로 내 침상을 띄우며\는 시인의 고난이 너무나 심각함을 시적으로 표현한 은유이다. 시인의 많은 눈물은 그의 고통의 깊이를 말해준다. 그는 밤에도 잘 수가 없었고, 고통으로 울며 밤을 지샌다. 밤의 고적함과 외로움으로 그의 고통은 더욱 심해진다. 환자에게 밤의 시간은 따뜻한 인간의 사랑이 그리울 때이다.
4.2.6.2. 밤의 눈물과 아침의 기쁨 (30:5)
5절 이는, 그 노염은 잠간이요 은총은 평생이며
저녁에는 울음이 기숙할찌라도 아침에는 기쁨이 올 것이기 때문이로다.
이 절에는 주님의 \노염과 은총,\ \순간과 평생,\ \울음과 기쁨,\ \저녁과 아침\의 대조가 나타나며, 이 강한 대조를 통해 우리의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 잘 설명해 준다. 시인은 \빛이 새벽의 미명을 깨뜨리고 나오는\ 영상에서 \슬픔을 깨고 기쁨을 회복하는\ 모습을 발견한다. 하루의 순환에서 저녁이 오고, 밤이 깊어지는 것은 주님의 \노염\을 경험하는 것을 상징하듯이, 먼동이 트는 것은 구원을 상징해 준다.
5. 사회생활의 수사학
5.1. 농사 (126:5,6)
5절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리는 자는 기쁨으로 거두리로다
시인은 뿌리는 때와 거두는 때를 전체로 보며, 씨 뿌리는 수고와 추수의 기쁨이 비교될 수 없음을 말하고 있다. 씨 뿌림이 없이 결실이 있을 수 없기 때문에, 그들의 기쁨은 그들의 고통 때문에 더욱 커진다.
6절 울며 씨를 뿌리러 나가는 자는 정녕 기쁨으로 그 단을 가지고 돌아 오리로다
우리는 울면서 씨를 뿌리는 자이다. 우리의 격정 때문에 울고, 한계 때문에 울고, 때로는 마음이 민감하여 운다. 하나님은 머리 좋고, 똑똑한 사람을 선택하여 씨뿌리라고 말씀하시지 않으시고, 우리처럼 흥분도 잘하고, 화도 잘내며, 또 울기도 잘하는 우리를 부르셨다. 울수 없는 자는 설교할 수 없고, 전할 수 없다. 우리는 돌이 아니기 때문에 운다. 우리는 영혼을 사랑하기 때문에 운다. 우리는 우리 부족 때문에 운다. 하나님을 섬기는 것은 쉬운일이 아니다. 우리 힘으로 할 수 없다. 따라서 우리는 운다. 인간 마음이 강퍅함 때문에 운다. 처음에는 위대한 진리를 전해주기만 해도, 사람이 즉시에 변화 될 줄로 안다. 복음만 전하면, 사람들이 기뻐 뛸 줄 안다. 우리는 선교도 얼마나 쉽게 생각하는가? 그렇지만, 이제 우리는 우는 것을 안다. 실망할 때가 있음을 안다.
5.2. 목축
5.2.1. 저희의 목자가 되사 드십소서 (28:9)
9절 주의 백성을 구원하시며 주의 산업에 복을 주시고
또 저희의 목자가 되사 영원토록 드십소서
\저희의 목자가 되소서\는 기본적으로 \저들을 먹이소서\라는 의미이다 (23:1). 주님은 목자로서 자기 백성을 먹일 뿐 아니라, 또한 \이끄신다\(na\sa\). 이 번역은 \드십소서\(개역) 보다 좋으며, \메고 다니다\(공동) 보다 덜 회화적이며, 결국 \보살피다\ (표준)는 뜻이다.
5.2.2. 사망이 저희 목자일 것이다(49:14)
14절 양같이 저희를 음부에 두기로 작정되었으니 사망이 저희 목자일 것이라
아주 강한 시적인 영상으로 부자들의 어리석음이 그려진다. 그들은 어리석은 양과 같다. 죽기로 작정된 양과 같다 (시44:12). 그들은 어디로 가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들이 그들 인생의 달콤한 목장에서 풀을 뜯어먹고 있을 때에, 모든 것이 평안하고 형통하다고 생각할 때에, 죽음이 이미 그들을 \뜯어먹고 있다.\
5.2.3. 요셉을 양 떼 같이 인도하시는 이스라엘의 목자여(80:1)
1절 요셉을 양 떼 같이 인도하시는 이스라엘의 목자여 귀를 기울이소서
\이스라엘의 목자\라는 표현은 구약성경에 단 한번 나오지만, 목자이신 하나님에 대한 시상은 우리에게 친숙하다. 옛날에 \목자\라는 칭호는 \왕\과 평행으로 함께 나온다 (삼하5:2; 대상11:2; 겔37:24; 나훔3:18; 슥11:6). 즉, 목자라는 칭호 속에 왕권사상이 깊이 배여있다 (시100:3). 우리의 목자는 우리의 왕이시다. 그러나 하나님을 \왕\으로 부르지 않고, 목자로 부르는 이유는 목자가 왕보다 훨씬 더 친밀하기 때문이다. 이 칭호 속에는 하나님에 대한 깊은 신뢰가 담겨 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그들의 목자로 의지하며 산다. 하나님은 선한 목자로서 그들을 도우시며 지도하신다. 목자는 양을 말이나, 나귀나 노새처럼 다루지 않는다. 목자는 양을 방목하며, 심하게 통제하지 않는다. 양은 온순하긴 하지만 머리가 둔하여, 길을 잘도 잊는다. 양은 철저히 의존적 동물이며, 목자 없이 홀로 살 수 없다.
5.3. 건축
5.3.1. 여호와께서 집을 세우지 아니하시면(127:1)
1절 여호와께서 집을 세우지 아니하시면 세우는 자의 수고가 헛되며
여호와께서 성을 지키지 아니하시면 파숫군의 경성함이 허사로다
\집을 세우다\는 표현이 성경에서 자주 나온다. 히브리어에서 집은 상당히 포괄적인 단어이다. 이것은 한 가정을 뜻할 수도 있고, 도시 (시78:69), 성전 (시122:1, 9; 134:1; 23:6등), 왕국(삼하7:13)을 가리키기도 한다. 궁극적으로 집을 세우는 이는 하나님이다. 하나님의 축복이 있을 때 집이 세워진다.
5.3.2. 건축자의 버린 돌(118:22)
22절 건축자의 버린 돌이 집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나니
이 절은 아마 격언일 것이다. 쓸모 없던 것이 영광의 자리에 앉았다는 뜻이다.
강한 대조가 여기에 있다. 건축자가 버린 돌이니 무슨 쓸모가 있겠는가. 전문가가 보았을 때, 별 소용이 없는 것이었다. 우리는 자주 희망을 꺾는 이야기를 많이 듣는다. \세살 버릇 여든간다.\ \싹이 노랗다.\ \나무는 떡잎부터 알아본다.\ 건축자가 보았을 때, 좋은 돌이 아니었다. 세상의 전문가들 말은 무섭다. 그러나 세상의 전문가들도 얼마나 편견이 많은지 모른다. 성경의 역사를 보면, 건축자의 버린돌이 모퉁이 돌이 된다. 야곱, 요셉, 다윗, 예수 그리스도는 모두 건축자들이 버린돌이 역사의 모퉁이 돌이된다.
5.4. 해운
5.4.1. 다시스의 배를 깨뜨리시는 주님(48:7)
7절 주께서 동풍으로 다시스의 배를 깨뜨리시도다
\다시스의 배\는 그 당시에 가장 큰 배요 단단한 배이며 지중해를 주름잡는 페니시아인들의 배들이다. \다시스의 모든 배\는 가장 견고하고 안전하고 화려한 것을 상징한다(사2:16). 페니시아의 배들은 스페인에 있는 다시스까지 항해하였다.
5.4.2. 항해사들이 본 주님의 행사(107:23-27)
23절 선척을 바다에 띠우며 큰 물에서 영업하는 자는
24절 여호와의 행사와 그 기사를 바다에서 보나니
26절 저희가 하늘에 올랐다가 깊은 곳에 내리니 그 위험을 인하여 그 영혼이 녹는도다
27절 저희가 이리저리 구르며 취한 자같이 비틀거리니 지각이 혼돈하도다.
산더미 같은 파도가 일어날 때, 배를 타고 항해하던 자들은 하늘까지 올랐다가, 바다 끝 깊음까지 내려간다. 이리하여 \그들의 영혼이 녹는다.\ 즉, 그들은 어찌할 바를 모른다. 그들은 술취한 자 처럼 비틀거린다. 다 멀미하는 모습이 그려지고 있다. 멀미를 하다보니, \지각이 혼돈하다.\ 여기에서 \지각\은 구체적으로 \항해술\을 가리킨다고 볼 수 있다. 대풍으로 멀미하는 그들에겐 항해술 조차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어릴 때부터 익힌 항해 기술이 이 무서운 자연의 변화 앞에 아무런 소용이 없다. 모두 다 자포자기에 빠진다. 파도에 휩쓸려 파선하기 직전의 절망적인 모습이다.
5.5. 전쟁
5.5.1. 암사슴의 발 같이(18:33-34)
33절 나의 발로 암사슴 (발) 같게 하시며 나를 나의 높은 곳에 세우시도다
\암사슴의 발\은 \빠르게 하다\ (공동), 혹은 \튼튼하게 하다\(표준) 뜻이다. 모든 전쟁에서 빠른 발은 필수적이다(삼하2:18; 대상12:8). 왕의 발이 암사슴으로 비유된다. 암사슴은 험한 산악지역에서도 민첩하고, 빠르고, 자유롭고, 확실하게 뛴다.
5.5.2. 군대가 나를 대적하여 진 칠지라도 (27:3)
3절 군대가 나를 대적하여 진 칠지라도 내 마음이 두렵지 아니하며
전쟁이 일어나 나를 치려 할지라도 내가 오히려 안연하리로다
\진치다\는 기본적으로 \둘러 싸다\는 의미로서 \나를 거스려\(\alay)와 함께, \나를 치려고 에워싸다\(공동; 표준역)는 의미이다. 즉, 시인은 사방으로 우겨쌈을 당하고 있다. 그러나 \내 마음이 두렵지 아니하다\고 말한다.
5.5.3. 말은 헛것임이여(33:16, 17)
16절 많은 군대로 구원 얻은 왕이 없으며 용사가 힘이 커도 스스로 구하지 못하는도다
17절 구원함에 말은 헛것임이여 그 큰 힘으로 구하지 못하는도다
4행으로된 이 두 절에는\없다\, \못한다\, \헛되다\, \못한다\가 반복되고 있음을 주의하라. 17절은 \헛되다\ 혹은, \거짓되다\로 시작한다. 이런 용어들은 지혜문학의 영향을 보여준다. 이 세상을 사는데 참된 지혜와 힘이 어디 있는지를 본문은 분명히 해준다.
\말\은 전마요, 왕이 타는 기마이다. 이것은 군사력을 상징적으로 가리키는 용어이다. \혹은 병거, 혹은 말을 자랑하나, 우리는 여호와 우리 하나님의 이름을 자랑하리로다\ (20:7; 사31:1; 겔17:15참조). 말은 세상 권세의 축도이다. 현대어로 번역하면, 탱크라고 할 수 있다. 말이 아무리 잘 달리고 힘차도 구원을 주지 못한다 (사30:15이하; 31:1이하). 인간의 힘과 위대함은 한계 속에 있다. 그것이 아무리 높다 하더라도, 믿을 수 없는 헛된 것이다.
결론
오경에서 하나님은 모세와 제사장을 통해 말씀하시며, 역사서에서는 사사와 왕을 통해, 선지서에서는 성령의 감동을 받은 선지자를 통해 말씀하신다. 시편으로 들어오면, 비로소 시인이 하나님께 말한다. 이제 말의 방향이 바뀌고 있다. 하나님에게서 사람에게 오던 말씀이, 이제 사람에게서 하나님에게로 향하고 있다. 비로소 사람들의 말문이 터진 것 같다. 이제는 그냥 듣고 묵종하는 신앙이 아니라, 말하고 불평하고 푸념하고 때로는 대어드는 신앙으로 넘어간다. 어떻게 보면, 시인들은 한없이 건방지고 주제넘는 것 같다. 그렇지만 하나님도 잘 참고 들으시는 것 같다. 시인들은 삶의 온갖 정황 속에서 하나님께 드릴 말씀이 많았다. 수사학적 분석을 그들이 어떻게 말했는지 우리에게 모델을 준다.
루터는 그의 친구에게 보낸 편지에서 성경해석에 있어서 수사학의 중요성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나는 문학에 대한 지식 없이 순수한 신학이 전혀 설 수 없다는 점을 확신하게 되었다. 따라서 문학이 쇠퇴해질 때, 신학도 처참하게 무너져 내릴 것이다. 정말이지, 하나님께서 언어와 문자가 생기게 하고 발전하게 하지 않으셨다면, 결코 위대한 하나님의 말씀의 계시가 없었을 것이다. 마치 세례 요한이 없었던 것 처럼.... 나는 가능한 한 많은 시인과 수사학자가 나오길 소원한다. 이는 그 어떤 다른 방법 보다도 이 연구가, 사람들은 거룩한 진리를 깨닫고, 그것을 적절하고 기쁘게 다룰 수 있도록 가장 잘 도와 주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나는 여러분들이 젊은 이들로 시와 수사학 연구에 애쓰도록 권해주길 간청합니다 (이 간청에 무게가 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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