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조 분석과 사사기 설교- 사사기 1:1-21을 중심으로 -
페이지 정보
본문
구조 분석과 사사기 설교
- 사사기 1:1-21을 중심으로 -
김지찬 교수
1. 대체 구조가 뭐꼬?
2. 사사기 1장 의 혼란상
3 사사기 1:1-21 의 구조
4 설교의 예: 생명의 길과 죽음의 길
1. 대체 구조가 뭐꼬?
1.1. 인식의 자동화 현상
우리가 학교에서 그동안 배운 독서법은 수동적 독서법이었다. 이런 독서법에 의하면 본문의 의미는 저자의 사상이나 의도로서 형식 너머의 밑바닥에 고정된 형태로 매장되어 있다고 전제한다. 따라서 본문을 읽는다는 것은 저자의 사상과 의도를 파악하기 위해 본문의 밑바닥으로 내려가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형식은 가능한 한 빨리 지나쳐야 할 대상으로 바뀐다. 한마디로 말해 수동적인 독서법은 형식을 슬쩍 통과한 후 본문의 내용을 찾는데 초점을 두는 방법이다.
이 방법을 수동적이라고 부르는 이유는 내용 파악에 중점을 두므로 독자는 그저 본문을 요약하는 정도의 기능 밖에 담당하지 않기 때문이다. 한번 찾아내서 재구성되고 요약된 저자의 의도나 사상은 고정화된 것이기에 2 차, 3 차 독서에서도 크게 달라질 리가 없다. 이렇게 되면 우리의 본문에 대한 인식은 자동화된다. 우리는 이런 현상을 인식의 자동화 현상이라고 부른다. 본문을 보자마자 “이 본문은 이런 의미야” 라고 자동적으로 인식하는 것을 말한다. 자동화된 인식은 우리의 차후 독서를 지배하게 되고, 결국 독서할 때 우리의 기대치는 작아진다.
심지어 매주일 설교해야 하는 목회자나 신학생들, 그리고 교사들조차도 성경을 읽으면서 새로운 의미를 기대하지 않는 경우가 많이 있다. 자주 우리의 본문에 대한 인식은 이미 낡은 관념의 노예가 되어 버렸고, 이로 인해 인식의 자동화 현상이 생겼다. 따라서 새로운 이야기를 하기 위해, 주석책, 남의 설교집을 뒤져 보지만, 별 뾰족한 내용을 발견하지 못하고, 결국은 설교 원고 마감 시간에 쫒겨 부랴부랴 설교를 마무리하는 경험을 하게 마련이다. 그러다보니 늘 다른 본문에서 같은 결론을 끌어내는 설교를 듣는데 이골이 난 교인들과 학생들은 설교를 들을 때에도 그저 뻔한 이야기라고 생각하며 기대하지 않는 경우가 적지 않다.
1.2 낯설게 하기
이런 인식의 자동화 현상을 타개하는 방법은 무엇인가? 그것은 “낯설게 하기” 를 시도하는 것이다. 이미 너무 잘 알고 낯익다고 생각한 것을 낯설게 함으로서, 이질감을 느끼게 하고, 그로 인해 다시 찬찬히 들여다 봄으로서, 그동안 보지 못하던 것을 보게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이미 다 안다고 생각하면 더 이상 찬찬히 들여다볼 여유를 가질 수가 없는 것이다.
쉬클로프스키라는 학자는 낯설게 하기 위해서는 (1) 순수하게 자신의 경험으로 발견하라; (2) 비일상적 시각을 동원하라; (3) 현미경적 시각으로 관찰하라; (4) 인습적인 인과 관계에서 벗어나 역전적인 발견을 하라; (4) 낯선 대상과 병치함으로서 새로운 인상을 주라고 충고한다. 우리는 이런 낯설게 하기의 탁월한 예를 워즈워즈에게서 찾아볼 수 있다.
1.3 워즈워즈 (W. Wordsworth) 의 무지개
하늘의 무지개를 볼 때마다
내 가슴 설레느니,
나 어린 시절에 그러했고
다 자란 오늘에도 매 한가지
쉰 예순에도 그렇지 못하다면
차라리 죽음이 나으리라
어린이는 어른의 아버지
바라노니 나의 하루하루가
자연의 믿음에 매어지고자
“어린이는 어른의 아버지” 라는 한 구절로 유명해진 시이다. 어린 아이에게도 배울 것이 있다는 속담을 우리는 알고 있다. 이 속담은 우리가 너무나 자주 듣기에 굳어진 관념이 되어 버렸으며, 따라서 관념의 노예가 되어 버리면 으레 그러려니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어린이는 어른의 아버지” 라는 새로운 표현을 통해서 우리는 이미 알고 있는 사실을 새롭게 인식하게 된다.
우리가 늘상 접하는 일상적 삶의 모습은, 하나님과의 관계나 이웃과의 관계까지 포함해서 때로는 낡은 관습에 젖어, 그 생동감과 직접성을 상실하고 추상화되고 평판화되기마련이다. 그저 판에 박힌대로 그러그러한 삶을 사는 것이 우리 인생이라는 인식을 갖고 산다. 따라서 하나님과의 친밀하고도 늘 새로워야할 관계도 인습적인 골화된 관계로 전락하기가 쉽다. 이같은 관계에 새로운 충격과 인식을 불러 일으키기 위해서 인습적이고 낡은 언어로는 불가능하다. 이미 다 알고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런 굳어진 관념의 노예가 되어 있는 현대인들에게는 표현의 새로움과 색다른 언어의 형식을 통해 이미 알고 있다고 생각한 것을 새롭게 느끼는 개안이 필요한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성경을 대할 때도 마찬가지로 낯설게 하기를 해야한다. 이미 다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성경 본문을 새롭게 느끼도록 하기 위해서는 낯설게 하기를 해야 한다. 그렇다면 성경을 어떻게 낯설게 할 수 있는가? 물론 여러 가지 방법이 있을 수가 있다. 그러나 그 중에 하나는 찬찬히 본문의 구조를 뜯어보는 것이다.
1.4 구조: 전체와 부분의 관계
구약의 역사서가 대부분 그렇듯이 사사기 본문은 “교묘하게 서로 연결된 통일체” 이다. 사사기를 읽어보면 “앞선 데이타의 의미가 후속 데이타의 첨가로 인해 점진적으로, 그리고 조직적으로 계시되고 풍요롭게 되는 일련의 일관된 스토리” 임을 알 수가 있다. 사사기는 단편적인 이야기들의 단순한 모음집으로 보아서는 아니된다. 만일 사사기가 잘 엮어진 통일된 이야기라고 한다면 우리는 사사기 전체를 처음부터 끝까지 일관성있게 읽어야 (coherent reading) 한다.
이렇게 일관성 있게 읽으려면 사사기를 전체와 부분과의 관계를 이해하면서 읽어야 한다. 구조란 “전체와 부분, 부분과 부분과의 관계”를 가리키는 용어이다. 구조에 대한 이해가 없으면 본문은 아무런 연관이 없는 단편들의 집합으로 전락하게 마련이다. 사사기는 단순한 대상이 아니라, 매우 복잡한 유기체로서 다양한 의미의 층과 상호 연관성을 가지고 있다. 따라서 일차원적으로, 평면적으로 보아서는 결코 그 복잡성과 상호 유기성을 이해할 수가 없다. 이를 올바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삼차원적으로, 구조적으로 이해해야 한다. 따라서 구조에 대한 이해가 없이는 우리의 본문 해석은 “장님 코끼리 만지기” 식이 되기 쉬운 법이다.
그 동안은 자유와 보수를 막론하고 본문의 전체 구조를 이해할 수 있는 해석의 도구를 제공하지 못하였다. 전통적인 해석 방법은 한 절씩 한 절씩 짚어가며, 문법적 특이성과 역사적 배경, 신학적 의미만을 언급할 뿐 각 절이 어떻게 연결되어 한 문단을 이루고, 이 문단이 어떤 방식으로 결합되어 한 에피소드를 이루며, 이 에피소드들이 모여 한 스토리를 이루는지에 대해서는 큰 관심을 기울이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다시 말해 절을 넘어서는 본문 단위에 대해서는 이를 전체 구조 가운데서 해석할 도구가 없다는 말이다.
그러나 문제는 한 절이 의미 전달의 최고 단위가 아니라는데 있다. 의미는 한 절, 한 절의 의미를 그냥 합산하는데서 나오는 것이 아니다. 한 스토리의 의미란 스토리 전체로서 전달되는 것이다. 즉 의미란 스토리 전체와 부분과의 관계 가운데서 생성되는 것이다. 따라서 구조에 대한 이해가 필요한 것이다.
2. 사사기 1장의 혼란상
삿 1장을 구조에 대한 이해 없이, 다시 말해 부분과 부분, 전체와 부분간의 관계를 염두에 두지 않고, 대충 읽고 나면 매우 혼란스럽다는 것이 일반적인 반응이다. 사실상 무엇을 이야기하려고 하는 것인지 쉽게 알기가 어렵다. 1장을 한번 훑어 보자.
삿 1장은 먼저 여호수아의 죽음에 대한 언급으로 시작해서 곧 “누가 가나안과 싸우려고 먼저 올라갈꼬?” 라고 묻는 물음이 등장한다. 마치 가나안 정복 전쟁이 시작조차 하지 않은 것처럼 보인다. 여호와께서 “유다가 올라갈지니라” 라고 명하시지자 유다가 시므온 지파에게 함께 싸우자고 제안한 후에 함께 가나안 민족과 싸우는 이야기가 나온다.
그러나 전쟁 보고서에서 우리가 기대하는 일목요연한 전쟁 상황의 보고 보다는, 언뜻 보기에 별로 중요해 보이지 않는 에피소드 둘을 상세히 묘사하는데 지면의 반을 할애하고 있다. 예루살렘 (8절), 산지-남방-평지 (9절), 헤브론 (10,20절), 아랏 남방 (16절), 호르마 (17절), 가사-아스글론-에그론 (18절) 의 정복은 간략히 다룬데 반해, 아도니베섹의 수족을 자르는 에피소드 (4-7절) 와 옷니엘과 악사의 결혼 에피소드 (11-15절) 는 비교적 상세하게 그리고 있다. 도대체 이 에피소드는 무슨 의미인가 생각할 겨를도 없이 성경 기자는 유다가 “골짜기의 거민은 철병거가 있으므로 그들을 쫒아내지 못하였으며” (18절), 베냐민 자손이 “예루살렘에 거한 여부스 사람을 쫒아내지 못하였다” (21절) 고 적고 있다.
그 후 요셉 지파가 벧엘을 정복하는 에피소드가 비교적 상세하게 언급한 (22-26절) 내레이터는 그 다음에는 여러 지파들 (므낫세, 에브라임, 스불론, 아셰르, 납달리, 단) -- 단, 잇사갈은 그냥 언급되지 않고 지나침 -- 정복하지 못한 도시들을 나열한다.
따라서 대충 읽으면 삿 1장의 핵심적 메시지가 무엇인지 알 수 없는 혼란에 빠진다. 따라서 일부 비평주의 학자들은 삿 1장은 여호수아서와는 다른 가나안 정복의 그림을 그리는 것이 목적이라고 말한다. 즉 가나안 정복 전쟁은 여호수아의 지도 아래 일사분란하게 단기간에 이루어진 전쟁이 아니라, 오랜 시간에 걸쳐서 내부 폭동과 오랜 전쟁 끝에 이루어진 것임을 삿 1장이 보여준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과연 삿 1장은 여호수아서와는 다른 가나안 정복 전쟁의 그림을 그리는 것이 목표인가?
보수주의자들은 이런 식으로 까지는 생각하지 않지만 삿 1장을 단지 사사 시대의 사건들에 대한 단순한 역사 기록으로 보아 여호수아 사후에 이스라엘이 가나안 정복에 실패한 이야기를 담고 있는 것이라고 쉽게 넘어간다.
그렇다면 과연 삿 1:1-21 의 유다와 시므온의 이야기를 담고 있는 단락은 실패에 대한 언급은 적은채 아도니베섹의 에피소드와 악사와 옷니엘의 결혼 에피소드를 길게 기술하고 있는 이유는 무엇인가? 이 단락은 내적인 메시지가 없이 그저 일어난 사건을 나열한 역사 보고서인가? 그렇다면 일목요연하게 전쟁 상황과 결과를 보고하지 않고, 두 개의 에피소드를 중간에 삽입시킨 이유는 무엇인가? 그저 과거로부터 전해져 내려온 자료가 그렇기 때문에 단순히 언급한 것뿐인가?
겉으로 보기에 난삽해 보이는 혼란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 것인가? 이것이 설교자에게 주어진 해석의 임무이다. 그러나 지금까지의 주요한 독서법인 수동적 독서법으로 이 단락을 이해하면서 그저 내용파악에 그치면 과거의 유다와 시므온 지파의 가나안 정복 보고라고 넘어가기 쉽다. 한번 이런 식으로 이해된 본문은 몇번의 재차 독서에도 바뀌지 않는다.
그러나 삿 1:1-21 은 단지 과거의 사건을 재구성한 역사 리포트가 아니다. 무엇인가 신학적-설교적 메시지를 담고 있는 본문이다. 따라서 우리가 이런 인식의 자동화 현상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낯설게 하기”를 시도해야 한다. 본문을 낯설게 하기 위해 우리는 어떤 단어가 반복되고 있는지, 반복되면서 변화되는 것은 무엇인지, 전체적 패턴은 무엇인지, 상세히 묘사된 세 개의 에피소들들끼리의 관계는 무엇인지를 살펴보아야 한다. 이런 과정을 통해 우리는 본문이 낯설게 되면서 그동안 보지 못하던 본문의 의미가 본문의 씨줄과 날줄 사이에서 새롭게 떠오르는 것을 느끼게 된다. 따라서 삿 1:1-21 이 전체 사사기에서 어떤 역할과 기능을 감당하는지, 다시 말해 거대구조(macro-structure)를 살펴본 후에, 본문 자체의 미시 구조(micro-structure)를 들여다 보도록 하자
3 사사기 1:1-21 의 구조
3.1 사사기 전체의 구조
I. 서곡 (Overture)
여호수아가 죽은 후에 (1:1)
↓
이스라엘의 정복 실패 (1:1-2:5)
↓
내가 그들을 너희 앞에서 쫒아내지
아니 하리니 (2:3)여호수아가 죽으매 (2:8)
↓
이스라엘의 배도(2:6-3:6)
↓
그 열국을 머물러 두사 속히 쫒아
내지 아니하시며 (2:23)
II. 주요 악장
여호와의 신의 감동을 받은 사사들에 의해 이스라엘을 구원하시는 여호와의 이야기
3:7-11
옷니엘
문예모델3:12-30
에훗
A
고독자; 영웅
동쪽 족
베냐민 지파 4:1-5:31
드보라
B
여인에게 의존 6:1-8:32
기드온
C
바알 공격; 여호와가 왕
8:33-9:62
아비멜렉
C\
바알 이름으로
스스로 왕됨 10:6-12:7
입다
B\
사회적 추방
인사에 의존13:1-16:31
삼손
A\
고독자
영웅
서쪽 적
단지파 바알 숭배와 여호와의 왕권
중심 잇슈
III. 코다 (Coda)
17:1-18:31
종교적 혼란
(1) 단 지파의 이동
(2) 레위인이 단-베냐민 지파 지역을
지나 유다에서 에브라임으로 이동 19:1-21:25
도덕적 부패
(1) 베냐민 지파의 이동
(2) 레위인이 단-베냐민 지파 지역을
지나 에브라임에서 유다로 이동
3.2 제 1 서곡 (1:1-2:5) 의 구조
제 1 서곡은 크게 세 단락으로 나뉜다. 유다 단락 (1:1-21), 요셉 단락 (1:22-36), 보김 에피소드 (2:1-5) 로 나뉘어 진다.
I 유다 단락 (남방; 1:1-21) II 요셉 단락 (북방; 1:22-36)
-
- 이전글
- 시편의 기독론적 설교
- 24.08.28
-
- 다음글
- 사회과학적 해석과 마가복음 설교
- 24.08.2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