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언자, 시인 그리고 설교자에 대한 논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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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언자, 시인 그리고 설교자에 대한 논평
박영재 목사(침신대 설교학)
근간에 한국 교회에 새 바람이 일고 있다. 그것은 신학자들의 설교학에 대한 관심이다. 이러한 관심은 한국교회의 설교 발전에 공헌을 가져올 것이다. 설교학자의 한 사람으로서 이보다 더 좋은 소식은 없다.
류교수는 위의 주제를 다루는데 있어서 설교의 문제를 지적함으로 그의 글을 시작한다. 종교 행습에 익숙해 있는 청중들이 설교를 듣는데 있어서 기대감을 상실한 채 지루하게 시간을 허비하고 있다. 이는 ‘사건행위’(event)로서의 설교의 의미를 상실했기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현대설교가 ‘사건’으로서의 의미를 상실한 이유는 본문(text)의 진리를 ‘몇가지 축약된 형태의 원리들’로 나타내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이는 간혹 강해설교에 대한 잘못된 인식 즉, ‘강해설교가 본문의 내용을 분해하고 분석하는 일’이란 개념은 잘못된 생각이라는 엘리어트(T.S. Eliot)의 말, 즉 ‘분해하고 분석하는 연구는 단지 암탉이 알을 품는 것에 불과하다’는 의견과 일치한다(T.S. Eliot, \On Poetry and Poets,\ London: Faber and Faber, 1957, 27). 또 무인격주의의 설교는 ‘사건’으로서의 설교의 의미를 상실했다고 류교수는 지적한다. 결국 무인격주의 설교는 청중이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거나 인격적인 처방과 진단이 어렵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는 필립 부룩스(Brooks)의 설교란 \설교자의 인격을 통한 진리의 전달’이라는 설교 정의와 어울리는 말이다. 결국 성서실증주의와 무인격주의로 인해서 현대 설교는 청중에게 전달되지 않고 있음을 류교수는 지적한다.
결국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류교수는 뷰크너(Buechner)의 주장, 즉 설교자가 인간에 대한 이해의 폭이 넓어야 청중들에게 깊이있는 설교가 될 수 있음을 밝히고 있다. 미국감리교회는 목사가 되기전에 1년간 병원에서 실습을 하면서 병으로 죽어가거나 고통을 겪는 사람들 곁에 있어야 한다. 인간 이해에 대한 폭을 넓히기 위해서이다. 단지 신학을 했다는 이유로 인간을 이해하는 연구나 기회를 갖지 못한채 설교자가 되어 메마른 설교, ‘무인격주의’설교를 하는 설교자에게 류교수는 경종을 울리고 있다.
설교자의 자질에 관한 언급뿐만 아니라 이제 류교수는 효과적인 설교를 위한 방법론을 언급하고 있다. 특히 예언서가 산문이 아니라 시문형태로 되었음을 강조하면서 현대 설교자는 시문형태의 설교를 해야함을 강조한다. 류교수는 특히 시문 설교가 ‘함축적인 언어들을 가장 경제적으로 사용’(4)하는 것이며 이 시적 표현을 위한 설교자의 의도를 밝혔다. “시인들은 그들의 언어를 사용하여 그들이 보여주려는 세계를 창조하고 있으며, 동시에 그들은 독자들에게, 청중들에게 비로 이 새로운 세계 속으로 들어오는 것을 촉구하며 초청하는 사람들입니다.”(4) 류교수는 지루하고 단조로운 산문 형태설교를 벗어나 청중들이 예측하지 못했던 방향으로 이끌면서 감동을 주려는, 시적표현의 감각을 설교에 활용해야 함을 역설한다. 이러한 주장은 워렌 위어스비의 생각과 일치하는데 (시적 표현의 자세한 방법에 대해서는 워렌 위어스비(Warren Wiersbe), ‘상상이 담긴설교’와 ‘이미지가 담긴 설교,’ 요단출판사, 1997를 참조하라.) 결국 한국설교자들이 가장 큰 취약점을 지적한 것이다. 헬라교육이 서구교육에서 한국교육으로 그 맥을 이어오면서 우리는 좌뇌교육 즉 논리전개에 대해서만 교육을 받아왔을 뿐 시적표현을 통해 감정에 자극을 주는 우뇌훈련을 받지 못했다. 이는 시적 표현에 대해서는 한국목회자들이 무관심해 왔음을 말한다. 결국 우리의 설교가 ‘뭔가를 설명하려는 것’이 아니라 보여주려는 것이어야 함을 류교수는 강조한다. 예를 들어 ‘사랑’에 대해서 설명하지 말고 ‘사랑’을 하고 싶은 생각이 불끈 찾아들게 감동을 주어야한다는 것이다. 결국 황무지처럼 메마르게 설교하는 것이 아니라 청중들에게 하나의 ‘사건’으로 만들어야 하고 이를 위해서 시적표현, 즉 청중의 감동을 불러 일으키려는데 온 관심을 가져야 함을 역설한다. 감동을 불러일으키는 구체적인 방법에 대해서는 필자의 저서들을 참조하라(박영재, ‘설교자가 꼭 명심할 9가지 설득의 법칙,’과 ‘설교가 전달되지 않는 18가지 이유’).
이제 류교수는 설교방법론에 대한 설명을 그치고 그의 전문인 예언자에 대해 밝히고 있다. 류교수는 현대 설교자는 구약의 예언자의 예언자적 기질, 하나님을 의식하는 태도, 하나님의 심성을 있는 그대로 청중들에게 전해야 함을 강조한다. 특히 청중들에게 하나님의 감정, 의지, 심장을 있는 그대로 전달해야 함을 강조한다. 이를 위해서 현대 설교자는 에언자들이 하나님을 ‘직면’(encounter)하면서 얻은 ‘잊을수 없는 경외적인 경험’(unforgettable awesome experience)을 구약의 백성들에게 전달한것과 같이 현대 청중들에게도 전달해야함을 말한다. 이는 설교자의 영성부분에 대한 자질을 강조한것으로서 설교의 생명이라고 볼수 있는 설교자의 하나님을 상대하는 시간 과정 노력등을 강조한 것이라고 볼수 있다. 이제 류교수는 현대 설교자가 무엇을 설교할것인가에 관한 주제를 또한 다루고 있다. 즉 설교자는 왕이신 하나님의 심판과 구원, 다가올 하나님의 나라등을 설교하면서 청중들이 그 하나님 말씀앞에 도전받고 감동받아 하나님의 백성으로 거듭나게 만들어야 함을 말하고 있다. 결국 ‘모든 설교는 예언자적이며, 시적이며 종말론적이어야 한다는 주장으로 글을 맺고 있다.
류교수의 글을 잠시 생각해 보고자 한다. 우선 필자에게 아쉽게 느껴지는 것들을 감히 언급해 보고자 한다. 설교에서의 ‘사건’은 실로 중요한 내용인데, 그 무게에 비해서 중요시 취급되지 않았다. ‘사건’으로서의 설교 개념을 좀 자세히 다루고 시적 표현의 의미를 다루었더라면 독자들이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었으리라 본다. 또 효과적인 설교방법론을 찾는 독자들에게 대안을 제시하지 못하고 다만 원론만을 다루었다는 것이다. 예를들면, 시적 표현을 위해서 어떻게 해야 효과적으로 설교할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다. 이런 면에서 류교수의 글은 다소 원론적이고 실제적이지 못하다고 볼수 있다. 게다가 소 주제를 다루면서 지나치리만치 짧게 설명해 나갔다. 이는 더 상세히 알고 싶은 독자들에게 아쉬움을 남긴다.
류호준교수의 글은 아쉬운점보다 장점이 훨씬 많다. 자료선정에 있어서 류교수는 적절한 선택을 했다. 위의 주제를 다루는데 있어서 월터 부르그만(Walter Brueggemann)의 Finally Comes the Poet이나 후레드릭 뷰크너(Frederick Buechner)의 Telling Secrets: A Memoir등은 가장 적절한 자료이다. 비록 두 자료를 지나치게 의존했다는 것이 아쉽기는 하지만 최선의 자료를 선택했다는 것이 돋보인다. 방법론에서도 설교학적 관점에서 볼 때 그 전개가 독특하다. 서론에서 문제를 제기하고 그 문제에 대한 해결책을 제시 했다는 점이며 끝부분에 가서그 해결책을 개인에게 적용하려고 유도했다는 점이 돋보인다. 이는 설교학문이 이론이 아니라 독자들이 실제적이며 개인적인 것이 되도록 만든다는 점에서 류교수의 글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게다가 반대개념이나 사상을 주장하려는 내용과 적절히 석어서 설명했다는 점에서 독자들로 하여금 이해하기가 쉽고 설득력이 보다 분명하다. 류교수 글의 우수함은 방법론에만 있지 않다. 내용면을 살펴볼 때 한국설교자들이 가장 취약한 부분을 다루었다는 것이 무엇보다 큰 공헌이라고 생각된다. 예를 들면, ‘사건’으로서의 설교의 필요성, 감동을 위한 시적 설교의 중요성, 설교자의 영적 자질등은 한국 설교자들에게 가장 필요한 부분이 아닌가 싶다. 필요한 시점에 필요한 것을 적절히 강조했다는 점에서 큰 공헌이라고 믿는다. 이뿐 아니다. 필자의 두 저서는 효과적인 설교를 위한 방법론 즉 ‘how\에 대해 주로 다루었는데 방법론만 다루다보면 ‘원론’의 중요성을 망각할수 있는 단점이 있다. 류교수의 글은 설교학 원론의 중요성(에를 들어, 무엇을 설교하며 왜 설교해야 하며 설교자의 자질은 어떠해야 하는가등)을 강조함으로서 방법론을 다루는 필자와 독자들에게 그 원론의 중요성을 상기 시켰다는 것이다. 결국 원론을 다룬 것이 장점이기도 하다. 한가지 더 생각해 볼수 있는 것은 류교수의 글은 읽는 사람마다 심장이 뜨거워 질것이라는 것이다. 그만큼 류교수는 하나님을 사랑하고 설교자로서의 바른 모습을 가지려한다는 인상을 독자들에게 깊이 심어주었다. 류교수의 설교자로서의 아름다운 심성, 뜨거운 영성이 그의 학문성뿐 아니라 독자들에게 많은 영향을 주리라 확신한다. 훌륭한 글에 감사한다.
박영재 목사(침신대 설교학)
근간에 한국 교회에 새 바람이 일고 있다. 그것은 신학자들의 설교학에 대한 관심이다. 이러한 관심은 한국교회의 설교 발전에 공헌을 가져올 것이다. 설교학자의 한 사람으로서 이보다 더 좋은 소식은 없다.
류교수는 위의 주제를 다루는데 있어서 설교의 문제를 지적함으로 그의 글을 시작한다. 종교 행습에 익숙해 있는 청중들이 설교를 듣는데 있어서 기대감을 상실한 채 지루하게 시간을 허비하고 있다. 이는 ‘사건행위’(event)로서의 설교의 의미를 상실했기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현대설교가 ‘사건’으로서의 의미를 상실한 이유는 본문(text)의 진리를 ‘몇가지 축약된 형태의 원리들’로 나타내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이는 간혹 강해설교에 대한 잘못된 인식 즉, ‘강해설교가 본문의 내용을 분해하고 분석하는 일’이란 개념은 잘못된 생각이라는 엘리어트(T.S. Eliot)의 말, 즉 ‘분해하고 분석하는 연구는 단지 암탉이 알을 품는 것에 불과하다’는 의견과 일치한다(T.S. Eliot, \On Poetry and Poets,\ London: Faber and Faber, 1957, 27). 또 무인격주의의 설교는 ‘사건’으로서의 설교의 의미를 상실했다고 류교수는 지적한다. 결국 무인격주의 설교는 청중이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거나 인격적인 처방과 진단이 어렵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는 필립 부룩스(Brooks)의 설교란 \설교자의 인격을 통한 진리의 전달’이라는 설교 정의와 어울리는 말이다. 결국 성서실증주의와 무인격주의로 인해서 현대 설교는 청중에게 전달되지 않고 있음을 류교수는 지적한다.
결국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류교수는 뷰크너(Buechner)의 주장, 즉 설교자가 인간에 대한 이해의 폭이 넓어야 청중들에게 깊이있는 설교가 될 수 있음을 밝히고 있다. 미국감리교회는 목사가 되기전에 1년간 병원에서 실습을 하면서 병으로 죽어가거나 고통을 겪는 사람들 곁에 있어야 한다. 인간 이해에 대한 폭을 넓히기 위해서이다. 단지 신학을 했다는 이유로 인간을 이해하는 연구나 기회를 갖지 못한채 설교자가 되어 메마른 설교, ‘무인격주의’설교를 하는 설교자에게 류교수는 경종을 울리고 있다.
설교자의 자질에 관한 언급뿐만 아니라 이제 류교수는 효과적인 설교를 위한 방법론을 언급하고 있다. 특히 예언서가 산문이 아니라 시문형태로 되었음을 강조하면서 현대 설교자는 시문형태의 설교를 해야함을 강조한다. 류교수는 특히 시문 설교가 ‘함축적인 언어들을 가장 경제적으로 사용’(4)하는 것이며 이 시적 표현을 위한 설교자의 의도를 밝혔다. “시인들은 그들의 언어를 사용하여 그들이 보여주려는 세계를 창조하고 있으며, 동시에 그들은 독자들에게, 청중들에게 비로 이 새로운 세계 속으로 들어오는 것을 촉구하며 초청하는 사람들입니다.”(4) 류교수는 지루하고 단조로운 산문 형태설교를 벗어나 청중들이 예측하지 못했던 방향으로 이끌면서 감동을 주려는, 시적표현의 감각을 설교에 활용해야 함을 역설한다. 이러한 주장은 워렌 위어스비의 생각과 일치하는데 (시적 표현의 자세한 방법에 대해서는 워렌 위어스비(Warren Wiersbe), ‘상상이 담긴설교’와 ‘이미지가 담긴 설교,’ 요단출판사, 1997를 참조하라.) 결국 한국설교자들이 가장 큰 취약점을 지적한 것이다. 헬라교육이 서구교육에서 한국교육으로 그 맥을 이어오면서 우리는 좌뇌교육 즉 논리전개에 대해서만 교육을 받아왔을 뿐 시적표현을 통해 감정에 자극을 주는 우뇌훈련을 받지 못했다. 이는 시적 표현에 대해서는 한국목회자들이 무관심해 왔음을 말한다. 결국 우리의 설교가 ‘뭔가를 설명하려는 것’이 아니라 보여주려는 것이어야 함을 류교수는 강조한다. 예를 들어 ‘사랑’에 대해서 설명하지 말고 ‘사랑’을 하고 싶은 생각이 불끈 찾아들게 감동을 주어야한다는 것이다. 결국 황무지처럼 메마르게 설교하는 것이 아니라 청중들에게 하나의 ‘사건’으로 만들어야 하고 이를 위해서 시적표현, 즉 청중의 감동을 불러 일으키려는데 온 관심을 가져야 함을 역설한다. 감동을 불러일으키는 구체적인 방법에 대해서는 필자의 저서들을 참조하라(박영재, ‘설교자가 꼭 명심할 9가지 설득의 법칙,’과 ‘설교가 전달되지 않는 18가지 이유’).
이제 류교수는 설교방법론에 대한 설명을 그치고 그의 전문인 예언자에 대해 밝히고 있다. 류교수는 현대 설교자는 구약의 예언자의 예언자적 기질, 하나님을 의식하는 태도, 하나님의 심성을 있는 그대로 청중들에게 전해야 함을 강조한다. 특히 청중들에게 하나님의 감정, 의지, 심장을 있는 그대로 전달해야 함을 강조한다. 이를 위해서 현대 설교자는 에언자들이 하나님을 ‘직면’(encounter)하면서 얻은 ‘잊을수 없는 경외적인 경험’(unforgettable awesome experience)을 구약의 백성들에게 전달한것과 같이 현대 청중들에게도 전달해야함을 말한다. 이는 설교자의 영성부분에 대한 자질을 강조한것으로서 설교의 생명이라고 볼수 있는 설교자의 하나님을 상대하는 시간 과정 노력등을 강조한 것이라고 볼수 있다. 이제 류교수는 현대 설교자가 무엇을 설교할것인가에 관한 주제를 또한 다루고 있다. 즉 설교자는 왕이신 하나님의 심판과 구원, 다가올 하나님의 나라등을 설교하면서 청중들이 그 하나님 말씀앞에 도전받고 감동받아 하나님의 백성으로 거듭나게 만들어야 함을 말하고 있다. 결국 ‘모든 설교는 예언자적이며, 시적이며 종말론적이어야 한다는 주장으로 글을 맺고 있다.
류교수의 글을 잠시 생각해 보고자 한다. 우선 필자에게 아쉽게 느껴지는 것들을 감히 언급해 보고자 한다. 설교에서의 ‘사건’은 실로 중요한 내용인데, 그 무게에 비해서 중요시 취급되지 않았다. ‘사건’으로서의 설교 개념을 좀 자세히 다루고 시적 표현의 의미를 다루었더라면 독자들이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었으리라 본다. 또 효과적인 설교방법론을 찾는 독자들에게 대안을 제시하지 못하고 다만 원론만을 다루었다는 것이다. 예를들면, 시적 표현을 위해서 어떻게 해야 효과적으로 설교할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다. 이런 면에서 류교수의 글은 다소 원론적이고 실제적이지 못하다고 볼수 있다. 게다가 소 주제를 다루면서 지나치리만치 짧게 설명해 나갔다. 이는 더 상세히 알고 싶은 독자들에게 아쉬움을 남긴다.
류호준교수의 글은 아쉬운점보다 장점이 훨씬 많다. 자료선정에 있어서 류교수는 적절한 선택을 했다. 위의 주제를 다루는데 있어서 월터 부르그만(Walter Brueggemann)의 Finally Comes the Poet이나 후레드릭 뷰크너(Frederick Buechner)의 Telling Secrets: A Memoir등은 가장 적절한 자료이다. 비록 두 자료를 지나치게 의존했다는 것이 아쉽기는 하지만 최선의 자료를 선택했다는 것이 돋보인다. 방법론에서도 설교학적 관점에서 볼 때 그 전개가 독특하다. 서론에서 문제를 제기하고 그 문제에 대한 해결책을 제시 했다는 점이며 끝부분에 가서그 해결책을 개인에게 적용하려고 유도했다는 점이 돋보인다. 이는 설교학문이 이론이 아니라 독자들이 실제적이며 개인적인 것이 되도록 만든다는 점에서 류교수의 글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게다가 반대개념이나 사상을 주장하려는 내용과 적절히 석어서 설명했다는 점에서 독자들로 하여금 이해하기가 쉽고 설득력이 보다 분명하다. 류교수 글의 우수함은 방법론에만 있지 않다. 내용면을 살펴볼 때 한국설교자들이 가장 취약한 부분을 다루었다는 것이 무엇보다 큰 공헌이라고 생각된다. 예를 들면, ‘사건’으로서의 설교의 필요성, 감동을 위한 시적 설교의 중요성, 설교자의 영적 자질등은 한국 설교자들에게 가장 필요한 부분이 아닌가 싶다. 필요한 시점에 필요한 것을 적절히 강조했다는 점에서 큰 공헌이라고 믿는다. 이뿐 아니다. 필자의 두 저서는 효과적인 설교를 위한 방법론 즉 ‘how\에 대해 주로 다루었는데 방법론만 다루다보면 ‘원론’의 중요성을 망각할수 있는 단점이 있다. 류교수의 글은 설교학 원론의 중요성(에를 들어, 무엇을 설교하며 왜 설교해야 하며 설교자의 자질은 어떠해야 하는가등)을 강조함으로서 방법론을 다루는 필자와 독자들에게 그 원론의 중요성을 상기 시켰다는 것이다. 결국 원론을 다룬 것이 장점이기도 하다. 한가지 더 생각해 볼수 있는 것은 류교수의 글은 읽는 사람마다 심장이 뜨거워 질것이라는 것이다. 그만큼 류교수는 하나님을 사랑하고 설교자로서의 바른 모습을 가지려한다는 인상을 독자들에게 깊이 심어주었다. 류교수의 설교자로서의 아름다운 심성, 뜨거운 영성이 그의 학문성뿐 아니라 독자들에게 많은 영향을 주리라 확신한다. 훌륭한 글에 감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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