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 엿보기 4] - 버리고 떠나는 연습하기 / 이재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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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회 엿보기
버리고 떠나는 연습하기
이재순(김인중 목사 사모)
남편은 불끄기 선수다. 집에서나 교회에서나 전기 스위치를 내린다. 뒤에 사람이 있는데도 앞서 가며 꺼대는 통에 나는 어둠 속을 헤맨다(?).
\뒷 사람도 손 있어요.\
나는 소리를 지른다. 다른 사람 좀 믿고 큰 일에나 신경 쓰라고 잔소리를 해도 남편은 여전하다. 전기 한 등이라도 아껴야 한다는 철저함이 남편의 몸에 배어 있다.
서재의 책상 위에도 안 버린 파지가 수두룩하다. 그것을 한꺼번에 치우는 일은 언제나 나의 몫이다. 몇 주간 집을 비울 때면 \내 책상 함부로 건드리지 마쇼.\라고 말한다. 그러나 때를 만난 나는 깨끗이 정리해 버린다. 다시 찾지도 않을 서류인데도 \알아서 잘 보관했지\라며 남편은 나에게 다시 묻곤 한다.
교회에서 휴지 줍는 실력도 남편이 최고다. 그냥 지나쳐도 될텐데 청소하는 직원 민망하게 완전 자동으로 휴지에 손이 간다. 목사가 허리를 구부리는데 교인들은 가만히 있을 손가! 그래도 여전히 교회당에 쓰레기가 있으니 어찌해야 하나! 예배 끝난 후 교육관을 내려가 보면 방마다 백열등이 환할 때는 내 차례가 된다.
남편은 \주인이 되면 보인다.\고 한다. 어디에 무엇이 있어야 하는지 나그네는 모른다는 것이다. 그래서 담임목사가 잔소리가 많고 참견을 안 할 수 없는 모양이다.
한번은 우리교회에 계시다가 개척교회를 하게 된 목사님이 \이제야 김목사님을 이해하겠어요\라고 말한 적이 있다. 지금은 교회에서 자기에게만 보이는 것이 너무 많다는 것이다. 교인들과 직원들이 야속하고 답답하다는 것이다. 남편은 \그 목사님 이제야 철난다\고 했다.
남편 다음으로 교회에서 여러 가지 상황을 잘 보는 사람이 나인 듯하다. 마이크 소리, 강대상의 모든 상황, 커튼, 비디오 화면의 상태 등등, 무엇 하나 제대로 되지 않으면 신경이 쓰여서 예배에 집중이 안 된다. 마이크 소리가 이상한 날, 부교역자도 장로님도 일어나지 않는데 사모가 일어나 설칠 수 없어서 참고 예배드리자니, 보통 인내심이 필요한 게 아니다. 남편은
\오늘 소리가 왜 이래!\하며 짜증을 낸다.
\당신이라도 방송실에 말하지 뭘 했어.\
만만한 내가 항상 동네북이다.
교회 개척 초기에는 남편이 앞에서 설교하면, 나는 뒤에서 마이크 소리 조정, 주보 나눠 주기, 자리 안내, 아이 보기 등 모든 일을 혼자서 다했다. 나는 모처럼 예배 드리러 온 초신자들이 은혜 받아야 한다는 일념으로 성도들의 온갖 시중을 들었다.
우리 큰딸이 다섯 살쯤 되었을 때 \너 커서 무엇이 될래?\하고 물으니까 \나도 커서 엄마처럼 사모님 돼서 뒤에서 왔다 갔다 할래요\라고 대답해서 나를 정신 차리게 했다. 지금도 나는 교회 장의자의 한 가운데 앉지 못한다. 문 가까이에 있는 의자의 가장자리에 앉아야 마음이 편안하다. 일단 유사시(?)에 뛰어나가 일 처리하던 그 버릇 때문이다. 지금은 일어나지 않는 데도 출입문 가까이에 있는 의자를 여전히 선호한다.
설교를 들을 때도 마찬가지다. 교인들은 은혜 받고 \아멘, 아멘!\하는데 나는 마음이 조마조마하다.
\저렇게 직설적으로 말하면 교인들 상처받을 텐데\,
\왜 예화에서 숫자를 저렇게 틀리게 말하나\,
\좀 세련된 말투로 하지, 무식한 사람처럼 저게 뭐야\,
\시간이 지났는데 그만하지\ 등등.
성도들처럼 예배 중 평안한 마음으로 은혜를 받지 못하는 때가 많다.
30대에서 40대 초까지 정열이 넘쳤을 때는 \비판하므로 성숙시킨다\는 위험한 논리 속에서 남편의 설교에 잔소리를 해댔다. \내가 아니면 누가 고치랴\는 사명감(?)으로 마구 지적을 해댔다. 남편의 겸손과 인내심이 아니었으면 우리는 벌써 콩가루 집안이 되었을 것이다.
몇 년 전, \우리 남편도 저 분 만큼 설교를 세련되게 했으면 좋겠다\라고 생각했던 분을 뵙게 되었다. 그 분도 자기 부인에게서 설교 잘한다는 칭찬을 못 받고, 예배 후에 집에 가기가 겁난다고 농담을 했다. 같이 웃기는 했지만 깨달은 바가 많았다. 어떤 사모는 자기 남편의 설교로만 은혜 받는다는 행복한 소리를 하는데 나는 모름지기 \행복한 전도자\의 \행복한 아내\가 되어야 하지 않는가!
철이 들면서 나의 태도도 바뀌었다. 교회 일도 설교도 결국 남을 돕는 일인데, 남 잘 섬기려고 하다가 우리 부부가 다투며 삶의 낙을 누리지 못하면 무슨 유익이 있으리요! \감사와 칭찬\의 말이 많아진 지금은 새로운 신혼을 사는 것 같은 즐거움을 누리고 있다. 매사에 욕심을 놓으면 이렇게 좋은 걸 예전에는 미처 몰랐던 것이다.
올해로 목회 20년이 된 우리는 믿고 맡기는 연습을 열심히 하기로 했다. 지금부터 두고 떠나는 연습을 하지 않으면 추한 60, 70대가 되기 쉽다는 자각에서다. 아무리 놓지 않으려 해도 다음 세대는 오는 것인 것을….
막내아들이 초등학생일 때 일이다.
\아빠 돌아가시면 교회와 학교는 누구 것이 돼요?\,
\누구 꺼야 교회 것이지\,
\그래도 뭐 조금이라도 없어요?\,
\우리는 심부름꾼 일 뿐이야.\고 했더니 막내아들은 아쉬워했다.
\아빠가 사업을 했으면 모든 것이 우리 것이 되는데…\,
\그러니까 아빠에게 잘 해드려야 해, 아빠 안 계시면 우리는 아무 것도 아냐\
나는 무거운 마음으로 아들의 말에 대답을 했다.
목회자가 망하는 지름길을 3단계로 써놓은 글에 공감을 했다. 1단계는 \이 모든 일을 하나님이 하셨지\이다. 2단계로 접어들면서 \나도 조금은 했지\로 변한다. 마지막 3단계에서는 \나 아니면 안 된다지\라고 생각한다고 한다. 우리 부부라고 이런 못난 짓 하지 말라는 법이 있는가?
전기 조금 더 쓴다고 나라가 망하랴! 쥐가 과자 부스러기 먹으려고 다니고, 그 쥐가 피아노를 갉아먹는다고 찬양 못하랴! 복사 용지 함부로 쓴다고 홍수 나랴! 쓰레기 분리수거 안 한다고 쓰레기더미 위에 앉아 살랴! 무던히 참고 맡기고 스스로 하게 하는 길 외에는 없다. 이것도 믿고 못 맡기면 \그 강단\을 어떻게 맡기고 떠나겠는가. 아름다운 노년을 위하여, 새시대의 새 인물을 위하여, 두고 떠나는 연습을 지금부터 해야 한다.
새로운 주인으로 하여금 또 \그 전깃불\을 끄도록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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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순 / 안산동산교회 김인중 목사 사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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