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 엿보기 5] - 목회자 사모는 투명인간?! / 이재순
페이지 정보
성경본문: | 설교자:
본문
목회 엿보기
목회자 사모는 투명인간?!
이재순(김인중 목사 사모)
목회자 사모는 투명인간이 되어야 하나보다. 있기는 있으나 없는 존재, 듣고 보기는 하나 말을 해서는 안되는 존재, 판단을 언제나 유보해야만 하는 존재이다. 있어야 할 곳에는 항상 있고 없어야 할 곳에는 지혜롭게 빠져야 하는 민감성이 있어야 일등 사모(?)로 대접받는다. 있는 것 같은데 없고 없는 것 같은데 있는 것, 그것이 어찌 쉽단 말인가?
개척교회 시작할 때 선배 목사님이 충고해 주셨다. \사모는 그저 가만히 있는 것이 목회 돕는 거야. 사모는 백가지 일하면 욕먹고 일 안하면 안한다는 한 가지 욕밖에 안 먹는다.\고. \그 사모들은 능력이 없어서 그럴꺼야. 잘하고 열심히 하는데 누가 욕을 하겠어. 성심 성의껏 섬기는데 진실이 안 통하겠어.\
나의 교만과 거만이 고개를 들고 있었다. 그러나 그 목사님 말씀의 진의를 깨닫고 욕먹기 전에 한 발 뒤로 물러나야겠다는 결단을 내리는 데는 긴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사모인 내가 전화를 받는데도 목사님 찾아서 전화번호를 물을 때, 사모님하고 구역예배 드리니 좋긴한데 우리끼리 할 이야기를 다 못한다고 할 때, 사모님은 빨리 가셔서 목사님과 아이들에게 잘 해 주라고 할 때, 사모님이 설거지하시니 부담된다고 할 때, 나도 다 아는 일을 꼭 목사님하고만 의논한다고 할 때, 내가 인도하는 성경공부에서 일 년간이나 은혜 받던 성도가 그의 중요한 가정 문제를 목사님하고만 상담할 때 뭔가 되어가고 있는 줄 알고 있던 나는 정신을 차리기 시작했다. 한 권사님께 \그간 딸네 집 다녀 오셨냐?\고 물었다가 \한 달간 병원에 입원했다가 겨우 나왔다\는 대답을 들을 때 당황과 함께 느끼는 소외감은 거의 노여움에 가까웠다. \왜 아무도 내게는 알려주지 않았지?\
사모님의 \사\자만 들어도 알레르기 반응을 보이며 부담스러워 하는 것 같은 부교역자들의 마음을 느낄 때, 개척교회 초기에는 그렇게 많은 일을 하게 하고 매사에 나와 의논하던 남편이 말이 적어지고 가장 중요한 교회 일을 주보에서 보고 알게 될 때, 미련한 나는 \이제는 교회 일에 무관심해도 되겠구나\는 편안함보다 섭섭함이 앞섰다. 결혼해서 들어 온 새 며느리에게 살림 가르쳐서 독립시켜 잘 살면 그것으로 될 텐데 그래도 못 믿어서 참견하는 시어머니의 형국이 나의 모습이다. 나를 필요로 해서 찾을 때만 도와주면 되련만 자꾸 궁금해진다. 아쉬울 때만 찾는 남편도 야속하다. \한국 남자들은 성공하기까지만 마누라가 필요하지. 이름나게 되면 아내는 사라져 주기 바란다.\던 한 부인의 푸념이 나의 말이 되려고 했다. 아무 데도 낄 수 없는 나는 \평신도보다 더 교회 봉사를 안 하는 신자가 되겠구나\하는 위기감마저 느껴졌다. 그래도 행복한 나는 성경공부반 인도와 가정상담 사역을 도우며 나의 위치를 파악하고 40대의 방황을 끝내고 있다.
얼마 전 이웃교회의 사모가 전화를 했다. 본인은 결혼 전에 전도사로 사역을 했다고 한다. 지금은 개척교회를 섬기니까 열심히 교회 일을 하고 싶은데 남편이 전혀 일을 못하게 하니 답답하다는 것이다. 교사로 가르치고 싶고 심방과 상담도 하고 싶은데 믿음이 어린 여집사들과 일하려 한다는 것이다. 차라리 다른 교회의 전도사로 가려는데 사모님 생각은 어떠시냐?는 것이 질문의 요지였다.
어떤 사모는 개척교회를 시작하여 열심히 교회를 섬겨 교인이 400명 정도 되었다. 그 때부터 남편을 졸라서 다시 개척하자고 했다. 그 이유는 이 교회는 더 이상 사모를 필요로 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좀 심한 경우이기는 하지만 사모도 뭔가 의미 있는 역할을 하고 싶은 욕구가 크다는 사실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예이다.
남이 부러워하는 대학교수인 한 사모는 자기가 내조를 못해서 남편이 목회를 못하는 것 같다며 지금이라도 그만두고 남편의 목회를 도와야 하지 않겠는가?며 물어올 때 나는 \예. 그만 두세요.\라고 말하지 못했다. 사실 교회에서 하고 싶은 역할을 찾아서 봉사를 한다 해도 어려운 일이 많다. \목사님의 사모님\이라는 이름 때문에 혹 실수할까 봐 조심스럽기만 하다.
\사모님이 상담을 세상적(?)으로 해 주셔서 우리 교구 식구가 힘들어 하니 꼭 심방 한 번 해 주세요.\라고 말한다. \사모님이 했다.\고 말하는데 변변한 변명도 못한다. 이런 저런 말이 들리면 위축되어 \가만히 있으면 중간이나 가지\하는 적당주의에 빠지고 싶은 마음도 생긴다.
예배 중에 심하게 돌아 다니는 아이들을 제지하면 \사모님은 왜 우리 애만 야단치시냐?\고 한다니 도대체 어떻게 하라는 말인가? 사모는 양손을 묶어 두어야만 한다. 타고 다니는 차 때문에 나는 정신분석을 당하고 있다. \우리 사모님은 그 많은 차 중에서 하필이면 왜 경주용 차인 스쿠프를 타고 다닐까?\, \대한민국에서 스쿠프 타고 다니는 사모님은 우리 사모님밖에 없으실 꺼야.\ 이렇게 말한다고 한다. 스쿠프는 5년 전 해외 주재원으로 가는 남동생이 주어서 타게 된 10년 된 고물차다. 좀 안 어울린다는 생각은 했어도 \공짜\이기 때문에 앞 뒤 가릴 것 없이 차를 받았다. 오랫동안 자전거를 타다가 자동차를 운전하니 몸무게가 느는 것 외에는 몸에 날개를 단 듯 편리했다. \사모님하고 안 어울리네요.\하는 말을 들어도 성격이 무딘 나는 \검소하다는 말이겠지.\하고 그 말을 넘겼다. 그렇다고 공짜로 줘서 타고 다닌다고 교회 앞에 광고를 할 수도 없고…. \쉰이 된 기념으로 새 차 하나 살까?\하고 생각하다가도 \차를 어떻게 사. 이 IMF 시대에 차 샀다고 무슨 소리를 들으려고….그냥 버티는 게 낫지.\하고 쉽게 포기해 버린다.
십자가 군병으로 힘차게 복음의 대열에 나섰던 사모들은 그 길이 험란하고 협착하여 쓰러진다. \왜 나는 있는 그대로의 나일 수 없는가?\, \나의 지성과 헌신된 믿음은 누구를 위한 것인가?\
교회에서 내가 감당할 수 있는 의미있는 역할에 대한 갈증으로 언제나 목이 마르다. 세상은 \암탉이 울어야 알을 낳는다.\고 하면서 여성의 능력을 발휘하도록 하는 분위기가 아닌가? 가장 준비된(?) 여성 인력인 사모들에게 \복음의 알\을 낳도록 둥지를 마련해 줄 수는 없는가? 학교 다닐 때 털 고무신을 신고 다니던 배짱과 남편의 격려가 없었더라면 나는 벌써 우울증에 시달렸을 것이다. \영원히 고기를 먹지 아니하며 내 형제를 실족지 않게 하리라.\고 한 사도 바울의 말씀이 사모들의 삶에 어떻게 적용되어야 하는가? 오늘도 나는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않는 사모의 역할을 두고 고민한다.
---------------
이재순 / 안산동산교회 김인중 목사 사모
목회자 사모는 투명인간?!
이재순(김인중 목사 사모)
목회자 사모는 투명인간이 되어야 하나보다. 있기는 있으나 없는 존재, 듣고 보기는 하나 말을 해서는 안되는 존재, 판단을 언제나 유보해야만 하는 존재이다. 있어야 할 곳에는 항상 있고 없어야 할 곳에는 지혜롭게 빠져야 하는 민감성이 있어야 일등 사모(?)로 대접받는다. 있는 것 같은데 없고 없는 것 같은데 있는 것, 그것이 어찌 쉽단 말인가?
개척교회 시작할 때 선배 목사님이 충고해 주셨다. \사모는 그저 가만히 있는 것이 목회 돕는 거야. 사모는 백가지 일하면 욕먹고 일 안하면 안한다는 한 가지 욕밖에 안 먹는다.\고. \그 사모들은 능력이 없어서 그럴꺼야. 잘하고 열심히 하는데 누가 욕을 하겠어. 성심 성의껏 섬기는데 진실이 안 통하겠어.\
나의 교만과 거만이 고개를 들고 있었다. 그러나 그 목사님 말씀의 진의를 깨닫고 욕먹기 전에 한 발 뒤로 물러나야겠다는 결단을 내리는 데는 긴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사모인 내가 전화를 받는데도 목사님 찾아서 전화번호를 물을 때, 사모님하고 구역예배 드리니 좋긴한데 우리끼리 할 이야기를 다 못한다고 할 때, 사모님은 빨리 가셔서 목사님과 아이들에게 잘 해 주라고 할 때, 사모님이 설거지하시니 부담된다고 할 때, 나도 다 아는 일을 꼭 목사님하고만 의논한다고 할 때, 내가 인도하는 성경공부에서 일 년간이나 은혜 받던 성도가 그의 중요한 가정 문제를 목사님하고만 상담할 때 뭔가 되어가고 있는 줄 알고 있던 나는 정신을 차리기 시작했다. 한 권사님께 \그간 딸네 집 다녀 오셨냐?\고 물었다가 \한 달간 병원에 입원했다가 겨우 나왔다\는 대답을 들을 때 당황과 함께 느끼는 소외감은 거의 노여움에 가까웠다. \왜 아무도 내게는 알려주지 않았지?\
사모님의 \사\자만 들어도 알레르기 반응을 보이며 부담스러워 하는 것 같은 부교역자들의 마음을 느낄 때, 개척교회 초기에는 그렇게 많은 일을 하게 하고 매사에 나와 의논하던 남편이 말이 적어지고 가장 중요한 교회 일을 주보에서 보고 알게 될 때, 미련한 나는 \이제는 교회 일에 무관심해도 되겠구나\는 편안함보다 섭섭함이 앞섰다. 결혼해서 들어 온 새 며느리에게 살림 가르쳐서 독립시켜 잘 살면 그것으로 될 텐데 그래도 못 믿어서 참견하는 시어머니의 형국이 나의 모습이다. 나를 필요로 해서 찾을 때만 도와주면 되련만 자꾸 궁금해진다. 아쉬울 때만 찾는 남편도 야속하다. \한국 남자들은 성공하기까지만 마누라가 필요하지. 이름나게 되면 아내는 사라져 주기 바란다.\던 한 부인의 푸념이 나의 말이 되려고 했다. 아무 데도 낄 수 없는 나는 \평신도보다 더 교회 봉사를 안 하는 신자가 되겠구나\하는 위기감마저 느껴졌다. 그래도 행복한 나는 성경공부반 인도와 가정상담 사역을 도우며 나의 위치를 파악하고 40대의 방황을 끝내고 있다.
얼마 전 이웃교회의 사모가 전화를 했다. 본인은 결혼 전에 전도사로 사역을 했다고 한다. 지금은 개척교회를 섬기니까 열심히 교회 일을 하고 싶은데 남편이 전혀 일을 못하게 하니 답답하다는 것이다. 교사로 가르치고 싶고 심방과 상담도 하고 싶은데 믿음이 어린 여집사들과 일하려 한다는 것이다. 차라리 다른 교회의 전도사로 가려는데 사모님 생각은 어떠시냐?는 것이 질문의 요지였다.
어떤 사모는 개척교회를 시작하여 열심히 교회를 섬겨 교인이 400명 정도 되었다. 그 때부터 남편을 졸라서 다시 개척하자고 했다. 그 이유는 이 교회는 더 이상 사모를 필요로 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좀 심한 경우이기는 하지만 사모도 뭔가 의미 있는 역할을 하고 싶은 욕구가 크다는 사실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예이다.
남이 부러워하는 대학교수인 한 사모는 자기가 내조를 못해서 남편이 목회를 못하는 것 같다며 지금이라도 그만두고 남편의 목회를 도와야 하지 않겠는가?며 물어올 때 나는 \예. 그만 두세요.\라고 말하지 못했다. 사실 교회에서 하고 싶은 역할을 찾아서 봉사를 한다 해도 어려운 일이 많다. \목사님의 사모님\이라는 이름 때문에 혹 실수할까 봐 조심스럽기만 하다.
\사모님이 상담을 세상적(?)으로 해 주셔서 우리 교구 식구가 힘들어 하니 꼭 심방 한 번 해 주세요.\라고 말한다. \사모님이 했다.\고 말하는데 변변한 변명도 못한다. 이런 저런 말이 들리면 위축되어 \가만히 있으면 중간이나 가지\하는 적당주의에 빠지고 싶은 마음도 생긴다.
예배 중에 심하게 돌아 다니는 아이들을 제지하면 \사모님은 왜 우리 애만 야단치시냐?\고 한다니 도대체 어떻게 하라는 말인가? 사모는 양손을 묶어 두어야만 한다. 타고 다니는 차 때문에 나는 정신분석을 당하고 있다. \우리 사모님은 그 많은 차 중에서 하필이면 왜 경주용 차인 스쿠프를 타고 다닐까?\, \대한민국에서 스쿠프 타고 다니는 사모님은 우리 사모님밖에 없으실 꺼야.\ 이렇게 말한다고 한다. 스쿠프는 5년 전 해외 주재원으로 가는 남동생이 주어서 타게 된 10년 된 고물차다. 좀 안 어울린다는 생각은 했어도 \공짜\이기 때문에 앞 뒤 가릴 것 없이 차를 받았다. 오랫동안 자전거를 타다가 자동차를 운전하니 몸무게가 느는 것 외에는 몸에 날개를 단 듯 편리했다. \사모님하고 안 어울리네요.\하는 말을 들어도 성격이 무딘 나는 \검소하다는 말이겠지.\하고 그 말을 넘겼다. 그렇다고 공짜로 줘서 타고 다닌다고 교회 앞에 광고를 할 수도 없고…. \쉰이 된 기념으로 새 차 하나 살까?\하고 생각하다가도 \차를 어떻게 사. 이 IMF 시대에 차 샀다고 무슨 소리를 들으려고….그냥 버티는 게 낫지.\하고 쉽게 포기해 버린다.
십자가 군병으로 힘차게 복음의 대열에 나섰던 사모들은 그 길이 험란하고 협착하여 쓰러진다. \왜 나는 있는 그대로의 나일 수 없는가?\, \나의 지성과 헌신된 믿음은 누구를 위한 것인가?\
교회에서 내가 감당할 수 있는 의미있는 역할에 대한 갈증으로 언제나 목이 마르다. 세상은 \암탉이 울어야 알을 낳는다.\고 하면서 여성의 능력을 발휘하도록 하는 분위기가 아닌가? 가장 준비된(?) 여성 인력인 사모들에게 \복음의 알\을 낳도록 둥지를 마련해 줄 수는 없는가? 학교 다닐 때 털 고무신을 신고 다니던 배짱과 남편의 격려가 없었더라면 나는 벌써 우울증에 시달렸을 것이다. \영원히 고기를 먹지 아니하며 내 형제를 실족지 않게 하리라.\고 한 사도 바울의 말씀이 사모들의 삶에 어떻게 적용되어야 하는가? 오늘도 나는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않는 사모의 역할을 두고 고민한다.
---------------
이재순 / 안산동산교회 김인중 목사 사모
-
- 이전글
- [목회 엿보기 6] 첫사랑을 회복하라 / 이재순
- 24.08.28
-
- 다음글
- 사랑방 칼럼 - 바벨탐과 개미 / 김우영
- 24.08.2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