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방 칼럼 7] - 언제까지 / 이재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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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까지 \하나님 이번만 봐 달라\고 할 것인가?
이재순(김인중 목사 사모)
나는 목사의 사모로서 교인들 보기에 민망한 때가 많다. 나는 전혀 성도들의 별세나 사고 소식을 모르고 있는데 오늘 새벽기도회 시간에 광고했다고 남편이 말할 때, 정말 나는 민망하다. 더불어 \오늘 또 새벽기도 못나갔구나….\ 가슴 깊은 곳에서 탄식이 흘러 나온다. 철야기도 시간에 부르는 노래집을 찾지 못했을 때, \하필 내가 못간 주간에 노래집을 만들게 뭐람….\ 원망 아닌 원망을 한다. 항상 기도에 최선을 다하지 못하는 약점이 드러날 때, 하나님과 성도들 앞에 죄송한 마음이 든다. \죄송하면 좀 철저히 하라\는 남편의 충고를 20년 간 듣고도 내 모습은 그대로니 이 일을 어쩌랴.
\등신은 죽어야 고친다\는 속담이 나를 두고 한말인가? 면서 날마다 나는 후회를 한다. 하지만 내 피를 이어받은 딸이 늘 공부에 뒤쳐질 때마다 딸을 타박만 했다. 주님께 용서를 구할 일이다.
\당신은 잠만 자도 교회가 부흥되니 참 은혜다\ 라고 남편이 힐책하면 \잘 자야 생각이 정리되고 대낮에 여유 있게 성도를 잘 섬기죠\라면서 궁지에 몰린 나는 말도 안 되는 괴변으로 방어하지만 속으로는 못난 내 모습 때문에 위장병에 걸릴 지경이다. \우리 교회의 영적인 어머니\라는 말이 얼마나 듣기 거북한 지 모른다.
내가 인도하는 \베델생활편\에 오는 분의 아들이 교통사고로 중상을 당해 기도를 하면서도 그 분의 아들인지를 몰랐을 때의 당황함이라니…. 하필 컴퓨터 교적부에 다친 아이 사진만 나와 있었다고 변명을 해봐도 중환자실에 면회 못간 미안함을 어찌 면할 수 있겠는가?
교회가 해마다 실시하는 전도 집회에 한 사람도 못 데리고 와서 혼자 앉아 전도설교를 들을 때, 나는 여러 교인들 속에 섞여 앉고 싶은 유혹을 느낀다.
남편이 설교를 흡족하게 못하거나 나와 아이들 이야기를 예로 들어서 마음이 불편할 때, 나는 교인들과 인사를 나누지 않고 그냥 집에 가고 싶어진다. 그래도 웃으면서 반갑게 인사를 하고 서 있자니 얼마나 민망한 일인가?
유명한 피아니스트가 하루를 연습 안 하면 내가 알고 삼일을 연습 안 하면 청중이 안다고 했다는데…. 나의 모습을 내가 알고 하나님이 알고 교인들이 불꽃같은 눈으로 지켜보는데, 은혜가 아니면 당장에 쫓겨 날 판이다.
11년째 맞는 올해의 \대각성 전도대회\에 나는 자력으로는 한사람도 데려오지 못하고 남편이 전도한 부부를 나도 거든 냥 하면서 창피를 모면하려 했다.
9월부터 온 교회가 \내가 건진 한 영혼 새 천년의 주인공\이라는 구호 아래 전도에 힘썼다. 전도대상자 써내기, 발바닥 전도, 교회신문과 홍보 안내문 돌리기, 금식기도, 교구 40일 연속철야기도 등등 열심을 다했다. 일부 성도들은 \벌써 또 전도집회가 돌아왔어! 또 누구를 데려오나\라고 말하면서 부담스러워 하지만 억지로 하지 않으면 자발적으로 전도를 하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하면서 교회는 계속 독려를 한다. 어떤 여 집사는 동네 사람 전도해서 데리고 와 예배시간 내내 그 아이들 봐주다가 지쳐서 병원 응급실에 실려 가기도 했다. 그런 충성스런 분들 때문에 금년에도 500여 명의 결신자를 얻었다.
집회 중 식사 초대를 받고 가보니 다세대인 그 집 대문마다 다 동산교회 교패가 붙어 있었다. 그 다세대 전체가 한 구역이라고 했다. 몸에 장애가 있고 경제적으로도 넉넉지 못한 집사 부부가 얼마나 이웃을 잘 섬겼던지 이렇게 많은 전도의 열매를 맺었다고 했다. 이 일이 감사해서 우리에게 식사 대접을 한다고 우리를 초청한 것이다. 교회에서 상을 주어야 하는데 도리어 대접을 받으니 이것이 하나님의 일인가 싶었다. 저들이 하늘의 상급 받기를 간절히 기도했다. 남편이 처음 교회왔다고, 시부모 모시고 나왔다고 기뻐하면서 인사를 시키는 교인들의 심정을 예수 잘 믿는 남편과 사는 내가 어찌 알랴….
나도 전도 대상자들을 적고 기도했다. 해마다 생활의 범위가 좁고 인간 관계의 한계를 통탄하면서 의도적으로라도 불신자들과 만나보려고 했는데 쉽지가 않았다.
우리 아파트 13층 부인은 한때 교회 다니다 지금은 절에 가끔 나가며 골프를 치면서 산다니 접촉해 볼만 하다. 10층 부인은 전에 구역예배만 나오다가 겨우 이사왔는데 하필 우리와 같은 통로에 살게되어 나를 보면 피하는 분이다. 큰딸을 가까운 동산고 대신 다른 학교로 보낼 정도로 교회를 기피하지만 그래도 기도 중이다.
동산고 학부형인 1층, 5층 분들은 강압적인 권유로는 안되고 좋은 관계 유지해야 한다. 2층 노부부는 그 분의 친구가 우리보고 꼭 전도해 달라고 부탁한 분이다. 마침 큰 수술 후라고 해서 가보았으나 아직은 교회에 관심이 없다고 한다. 수위 두 분은 이 동에 목사님이 두 분이나 사시니까 안심이라고 말씀하셨다. 그분들께 천국의 축복을 전해야 한다. 한 분은 가능성이 있을 것 같다.
야쿠르트, 신문, 녹즙을 끊고 싶어도 전도를 목적으로 계속 관계를 유지한다. 빵집, 김밥 집, 약국 약사를 목적을 가지고 기도하는 데 아직 열매가 없다. 그 약국의 여자 약사는 약간의 문제가 있다. 목사님이 감기 약을 지으러 가면 하나님의 전능성(?)이 의심받을까봐 조심 되지만 아플 때마다 다른 동네를 전전할 수 없어서 계속 애용하고 있다.
전도하는 데 있어서 나의 약점은 소심증이다. \목사\ 사모라는 전치사를 붙이고 산 후부터 서서히 증가되기 시작한 이 병은 지금 중증이다.
\강권해서 내 집을 채우라\ 는 주님의 명령보다는 인간관계를 해치지나 않을까 하는 염려에 더 비중을 둔다. 한 마디로 \왕따\이기를 작정하지 못한 나는 한 두 번 권하다가 포기해 버린다. 목사 사모가 인상 좋은 동네 아줌마로만 남는다면 하나님이 기뻐하실까?
일본 사람들이 전도 못하는 가장 큰 이유가 남에게 실례되는 일을 못하기 때문이라는 선교사의 말을 듣고 웃은 적이 있는데 그런 현상이 내게도 똑 같이 있다. 우리 교회에서 가장 전도를 많이 하던 분은 \찰거머리\라는 별명이 붙어 있어서 동네 사람들이 그를 기피했지만 그래도 전도를 제일 많이 하니 어쩌랴.
처음 예수 믿을 때 \사영리\를 들고 서울역에서 전도하던 열심, 같은 과 친구들을 많이 데리고 나가 교회에서 최우수 전도상을 탔던 일…. 전도는 과거의 영웅담이 아니고 현재의 사건이 되어야 하지 않는가? 전도보다 양육에 은사가 있다고 변명해 봐야 위로가 되지 않는다. 믿음의 감격과 기쁨은 전도한 자만이 가지는 특권이라는 말씀을 들을 때 가슴이 저려오는 부끄러움을 느끼면서도 나의 입술은 닫혀있기만 하다.
남편은 나와는 다르다. 평소에도 전도에 열심이지만, 특히 전도대회 때가 되면 모범을 보이려고 무척 애를 쓴다. 평소에 불신자를 만날 기회가 없으니 어쩌랴! 아침에 등산할 때마다 열심히 인사하면서 사람을 사귄다. 조금만 낯이 익으면 \저는 동산교회 목사인데요, 종교가 있으세요?\라고 묻는다. 어쩌다 조금 반응만 보이면 어떻게 해서든지 전화번호를 알아서 외웠다가 집에 와서 확인을 하고 다시 집회 참여를 독려한다. 산에서 만난 사람들이 종종 교회에 등록하는 것을 보면 그 노력 때문이다. 똑같이 산에 가도 나는 신분을 밝히지 않는데 남편은 적극적이다. \저 사람이 동산교회 목사고 동산고 이사장이래.\ 사람들이 뒤에서 수근거려도 나는 모른 척 한다.
이번 집회에서 남편을 가장 기쁘게 한 일은 20년 전 개척교회 할 때 한 집에서 살던 분 내외를 드디어 교회에 데리고 온 일이다. 20년 동안 한 동네에서 사니 그 분도 죽을 지경이었을 것이다. 그래도 교회에서 만나니 얼마나 반가워하는지.
\전도는 귀찮아서라도 한번 나와 주어야겠다\고 할 때까지 강권해야 된다는 것이 남편의 생각이다. 우리도 그렇게 해서 믿지 않았느냐?는 것이다. 남편은 주유소, 이발소, 목욕탕도 전도할 목적으로 한 곳만 간다. 동산고 학부형들 중 불신자를 접촉하여 전도하려고 그 바쁜 중에도 힘쓰고 있다.
나는 오늘도 \금년 한 해만 참아 주소서\라고 하나님께 애원한다. \너 그 기도 벌써 몇 년 째냐? 언제까지 부끄럽다고 고백만 할 것이냐?\는 주님의 질책을 들으면서도 또 새해를 기약하며 주님께 기도한다. 나는 하나님과 사람 앞에 부끄럽지 않은 모습으로 서기 위해 성령의 불덩어리를 받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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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순 / 안산동산교회 김인중 목사 사모
언제까지 \하나님 이번만 봐 달라\고 할 것인가?
이재순(김인중 목사 사모)
나는 목사의 사모로서 교인들 보기에 민망한 때가 많다. 나는 전혀 성도들의 별세나 사고 소식을 모르고 있는데 오늘 새벽기도회 시간에 광고했다고 남편이 말할 때, 정말 나는 민망하다. 더불어 \오늘 또 새벽기도 못나갔구나….\ 가슴 깊은 곳에서 탄식이 흘러 나온다. 철야기도 시간에 부르는 노래집을 찾지 못했을 때, \하필 내가 못간 주간에 노래집을 만들게 뭐람….\ 원망 아닌 원망을 한다. 항상 기도에 최선을 다하지 못하는 약점이 드러날 때, 하나님과 성도들 앞에 죄송한 마음이 든다. \죄송하면 좀 철저히 하라\는 남편의 충고를 20년 간 듣고도 내 모습은 그대로니 이 일을 어쩌랴.
\등신은 죽어야 고친다\는 속담이 나를 두고 한말인가? 면서 날마다 나는 후회를 한다. 하지만 내 피를 이어받은 딸이 늘 공부에 뒤쳐질 때마다 딸을 타박만 했다. 주님께 용서를 구할 일이다.
\당신은 잠만 자도 교회가 부흥되니 참 은혜다\ 라고 남편이 힐책하면 \잘 자야 생각이 정리되고 대낮에 여유 있게 성도를 잘 섬기죠\라면서 궁지에 몰린 나는 말도 안 되는 괴변으로 방어하지만 속으로는 못난 내 모습 때문에 위장병에 걸릴 지경이다. \우리 교회의 영적인 어머니\라는 말이 얼마나 듣기 거북한 지 모른다.
내가 인도하는 \베델생활편\에 오는 분의 아들이 교통사고로 중상을 당해 기도를 하면서도 그 분의 아들인지를 몰랐을 때의 당황함이라니…. 하필 컴퓨터 교적부에 다친 아이 사진만 나와 있었다고 변명을 해봐도 중환자실에 면회 못간 미안함을 어찌 면할 수 있겠는가?
교회가 해마다 실시하는 전도 집회에 한 사람도 못 데리고 와서 혼자 앉아 전도설교를 들을 때, 나는 여러 교인들 속에 섞여 앉고 싶은 유혹을 느낀다.
남편이 설교를 흡족하게 못하거나 나와 아이들 이야기를 예로 들어서 마음이 불편할 때, 나는 교인들과 인사를 나누지 않고 그냥 집에 가고 싶어진다. 그래도 웃으면서 반갑게 인사를 하고 서 있자니 얼마나 민망한 일인가?
유명한 피아니스트가 하루를 연습 안 하면 내가 알고 삼일을 연습 안 하면 청중이 안다고 했다는데…. 나의 모습을 내가 알고 하나님이 알고 교인들이 불꽃같은 눈으로 지켜보는데, 은혜가 아니면 당장에 쫓겨 날 판이다.
11년째 맞는 올해의 \대각성 전도대회\에 나는 자력으로는 한사람도 데려오지 못하고 남편이 전도한 부부를 나도 거든 냥 하면서 창피를 모면하려 했다.
9월부터 온 교회가 \내가 건진 한 영혼 새 천년의 주인공\이라는 구호 아래 전도에 힘썼다. 전도대상자 써내기, 발바닥 전도, 교회신문과 홍보 안내문 돌리기, 금식기도, 교구 40일 연속철야기도 등등 열심을 다했다. 일부 성도들은 \벌써 또 전도집회가 돌아왔어! 또 누구를 데려오나\라고 말하면서 부담스러워 하지만 억지로 하지 않으면 자발적으로 전도를 하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하면서 교회는 계속 독려를 한다. 어떤 여 집사는 동네 사람 전도해서 데리고 와 예배시간 내내 그 아이들 봐주다가 지쳐서 병원 응급실에 실려 가기도 했다. 그런 충성스런 분들 때문에 금년에도 500여 명의 결신자를 얻었다.
집회 중 식사 초대를 받고 가보니 다세대인 그 집 대문마다 다 동산교회 교패가 붙어 있었다. 그 다세대 전체가 한 구역이라고 했다. 몸에 장애가 있고 경제적으로도 넉넉지 못한 집사 부부가 얼마나 이웃을 잘 섬겼던지 이렇게 많은 전도의 열매를 맺었다고 했다. 이 일이 감사해서 우리에게 식사 대접을 한다고 우리를 초청한 것이다. 교회에서 상을 주어야 하는데 도리어 대접을 받으니 이것이 하나님의 일인가 싶었다. 저들이 하늘의 상급 받기를 간절히 기도했다. 남편이 처음 교회왔다고, 시부모 모시고 나왔다고 기뻐하면서 인사를 시키는 교인들의 심정을 예수 잘 믿는 남편과 사는 내가 어찌 알랴….
나도 전도 대상자들을 적고 기도했다. 해마다 생활의 범위가 좁고 인간 관계의 한계를 통탄하면서 의도적으로라도 불신자들과 만나보려고 했는데 쉽지가 않았다.
우리 아파트 13층 부인은 한때 교회 다니다 지금은 절에 가끔 나가며 골프를 치면서 산다니 접촉해 볼만 하다. 10층 부인은 전에 구역예배만 나오다가 겨우 이사왔는데 하필 우리와 같은 통로에 살게되어 나를 보면 피하는 분이다. 큰딸을 가까운 동산고 대신 다른 학교로 보낼 정도로 교회를 기피하지만 그래도 기도 중이다.
동산고 학부형인 1층, 5층 분들은 강압적인 권유로는 안되고 좋은 관계 유지해야 한다. 2층 노부부는 그 분의 친구가 우리보고 꼭 전도해 달라고 부탁한 분이다. 마침 큰 수술 후라고 해서 가보았으나 아직은 교회에 관심이 없다고 한다. 수위 두 분은 이 동에 목사님이 두 분이나 사시니까 안심이라고 말씀하셨다. 그분들께 천국의 축복을 전해야 한다. 한 분은 가능성이 있을 것 같다.
야쿠르트, 신문, 녹즙을 끊고 싶어도 전도를 목적으로 계속 관계를 유지한다. 빵집, 김밥 집, 약국 약사를 목적을 가지고 기도하는 데 아직 열매가 없다. 그 약국의 여자 약사는 약간의 문제가 있다. 목사님이 감기 약을 지으러 가면 하나님의 전능성(?)이 의심받을까봐 조심 되지만 아플 때마다 다른 동네를 전전할 수 없어서 계속 애용하고 있다.
전도하는 데 있어서 나의 약점은 소심증이다. \목사\ 사모라는 전치사를 붙이고 산 후부터 서서히 증가되기 시작한 이 병은 지금 중증이다.
\강권해서 내 집을 채우라\ 는 주님의 명령보다는 인간관계를 해치지나 않을까 하는 염려에 더 비중을 둔다. 한 마디로 \왕따\이기를 작정하지 못한 나는 한 두 번 권하다가 포기해 버린다. 목사 사모가 인상 좋은 동네 아줌마로만 남는다면 하나님이 기뻐하실까?
일본 사람들이 전도 못하는 가장 큰 이유가 남에게 실례되는 일을 못하기 때문이라는 선교사의 말을 듣고 웃은 적이 있는데 그런 현상이 내게도 똑 같이 있다. 우리 교회에서 가장 전도를 많이 하던 분은 \찰거머리\라는 별명이 붙어 있어서 동네 사람들이 그를 기피했지만 그래도 전도를 제일 많이 하니 어쩌랴.
처음 예수 믿을 때 \사영리\를 들고 서울역에서 전도하던 열심, 같은 과 친구들을 많이 데리고 나가 교회에서 최우수 전도상을 탔던 일…. 전도는 과거의 영웅담이 아니고 현재의 사건이 되어야 하지 않는가? 전도보다 양육에 은사가 있다고 변명해 봐야 위로가 되지 않는다. 믿음의 감격과 기쁨은 전도한 자만이 가지는 특권이라는 말씀을 들을 때 가슴이 저려오는 부끄러움을 느끼면서도 나의 입술은 닫혀있기만 하다.
남편은 나와는 다르다. 평소에도 전도에 열심이지만, 특히 전도대회 때가 되면 모범을 보이려고 무척 애를 쓴다. 평소에 불신자를 만날 기회가 없으니 어쩌랴! 아침에 등산할 때마다 열심히 인사하면서 사람을 사귄다. 조금만 낯이 익으면 \저는 동산교회 목사인데요, 종교가 있으세요?\라고 묻는다. 어쩌다 조금 반응만 보이면 어떻게 해서든지 전화번호를 알아서 외웠다가 집에 와서 확인을 하고 다시 집회 참여를 독려한다. 산에서 만난 사람들이 종종 교회에 등록하는 것을 보면 그 노력 때문이다. 똑같이 산에 가도 나는 신분을 밝히지 않는데 남편은 적극적이다. \저 사람이 동산교회 목사고 동산고 이사장이래.\ 사람들이 뒤에서 수근거려도 나는 모른 척 한다.
이번 집회에서 남편을 가장 기쁘게 한 일은 20년 전 개척교회 할 때 한 집에서 살던 분 내외를 드디어 교회에 데리고 온 일이다. 20년 동안 한 동네에서 사니 그 분도 죽을 지경이었을 것이다. 그래도 교회에서 만나니 얼마나 반가워하는지.
\전도는 귀찮아서라도 한번 나와 주어야겠다\고 할 때까지 강권해야 된다는 것이 남편의 생각이다. 우리도 그렇게 해서 믿지 않았느냐?는 것이다. 남편은 주유소, 이발소, 목욕탕도 전도할 목적으로 한 곳만 간다. 동산고 학부형들 중 불신자를 접촉하여 전도하려고 그 바쁜 중에도 힘쓰고 있다.
나는 오늘도 \금년 한 해만 참아 주소서\라고 하나님께 애원한다. \너 그 기도 벌써 몇 년 째냐? 언제까지 부끄럽다고 고백만 할 것이냐?\는 주님의 질책을 들으면서도 또 새해를 기약하며 주님께 기도한다. 나는 하나님과 사람 앞에 부끄럽지 않은 모습으로 서기 위해 성령의 불덩어리를 받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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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순 / 안산동산교회 김인중 목사 사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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