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을 찾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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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요 4:1-18 | 설교자: 이익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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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을 찾아 (요 4:1-18)
이익로
탈무드에 개에 관한 우화가 있습니다. 한 랍비의 집에 개가 있었는데 그 개는 자기 꼬리에 행복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자기 꼬리를 잡으려고 열심히 노력했습니다. 그러나 꼬리를 잡으려고 하면 할수록 제자리에서 빙빙 돌 뿐이었습니다. 드디어 그 개는 지쳐서 쓰러졌습니다. 그러자 그 모습을 바라보고 있던 한 늙은 개가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나도 한때는 자네처럼 그랬지만 결국 실패하고 한 가지 사실만 깨달았다네! 꼬리를 잡으려면 어지러울 뿐이지만 한 가지 목표를 향해 달리면 꼬리가 나를 따라왔어.”그렇습니다. 행복은 열심히 노력하고 탐구해서 얻는 것이 아니라 전정한 목표를 정해놓고 달리는 사람에게 따라오는 결과입니다. 오늘도 많은 사람들이 행복을 잡으려고 안간힘을 씁니다. 그러나 잡힐 것 같으면서도 잡히지 않는 것이 행복입니다.
본문에 나타난 우물가의 여인이 마치 행복의 꼬리를 물고자 빙빙 도는 개와 같았습니다. 그는 행복의 꿈을 찾아 이곳저곳을 헤매며 결혼을 다섯 번이나 했습니다. 그러나 행복의 갈증은 해소되지 않았습니다. 이렇게 행복에 갈한 여인에게 예수님은 말씀하시기를“이 물을 먹는 자마다 다시 목마르려니와 내가 주는 물을 먹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나의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요한복음 4:13-14)하셨습니다.
이 세상의 모든 사람이 갈망하는 행복은 네 가지 차원이 있습니다. 어떤 행복을 찾아 따르느냐에 따라 삶의 질과 인격이 달라집니다.
1. 필요한 것이 충족되었을 때 얻어지는 행복입니다.
내가 갖고 싶은 것을 갖게 되었을 때에 느끼는 행복입니다. 내 집이 없어 이집 저집 떠돌아다니며 온갖 서러움을 다 당하다가 내 집을 마련했을 때 느끼는 행복이 얼마나 큽니까? 감격스러워 잠을 이루지 못할 것입니다. 그러나 몇 달만 지나면 그 감격은 사라지고 맙니다. 셋집에서 살 때나 내 소유의 좋은 새집이나 생활의 느낌에는 별 차이가 없습니다.
고3 자녀와 함께 어머니도 고3이 되어 애태우며 공부하던 자녀가 원하는 대학에 들어갔을 때 느끼는 기쁨과 행복이 얼마나 큽니까? 그러나 입학을 하고나면 그 기쁨도 곧 사라지고, 과중한 학비부담에 힘들어하게 됩니다. 이처럼 내가 원하는 것들이 충족되었을 때 느끼는 행복은 그리 길지 않습니다. 이것이 세상적인 요구충족으로 인한 행복의 한계입니다.
어느 분은 욕구충족으로 인한 행복에 대해 이렇게 말했습니다.
하루를 행복하게 지내려면 이발을 하라.
일주일을 행복하게 지내려면 말을 사서 타고 다녀라.
한달을 행복하게 지내려면 자가용을 사서 타라.
일년을 행복하게 지내려거든 결혼을 하라.
평생을 행복하게 지내려거든 하나님을 섬기며 진실하게 살아가라.
육신의 요구를 충족시키므로 얻어지는 행복은 이처럼 지극히 한시적이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마치 목이 갈한 사람이 신기루를 찾아 따르는 것과 같습니다. 본문의 사마리아 여인이 그 사람입니다. 육신의 욕구 충족을 위해 다섯 번 결혼을 했지만 여전히 행복에 목말라 하고 있었습니다. 이 여인을 향해 주님은 말씀하시기를“이 물을 먹는 자마다 다시 목마르려니와 내가 주는 물을 먹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나의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요한복음 13-14)하셨습니다.
2. 인식의 전환으로 인한 행복이 있습니다.
이는 깨달음에서 오는 행복을 말합니다. 처한 상황은 변함이 없는데 깨닫고 보니 지금의 상황이 얼마나 다행하며 감사한지 이로 인해 느끼는 행복입니다. 이전에는 몰랐는데 깨달음으로 인해 기뻐하고 감사하며 행복해 하는 것입니다.
제가 이 성전이 있는 내손동이 개발되기 전, 이 지역에 있었던 낡은 구옥(舊屋)에서 2년가량 살았습니다. 그 집은 하루 종일 햇빛 한번 들어오지 않는 집이었습니다. 항상 낮에도 불을 켜야만 했습니다. 여름에는 습기가 많아 지렁이가 기어다는 집이었습니다. 그 후 개발로 집은 철거되고 평촌의 한 아파트로 이사를 했습니다. 그 집은 아침부터 해질 때가지 하루 종일 햇빛이 거실을 비추는 남향집이었습니다. 그 햇빛으로 인해 얼마나 기뻐하며 하나님께 감사했는지 모릅니다. 그 전에도 태양은 있었지만 햇빛의 소중함을 모르고 살았습니다. 그런데 햇빛의 고마움을 깨닫고 보니 그렇게 감사할 수가 없었습니다. 참으로 행복했습니다.
우리들의 삶 속에는 이처럼 깨어나 감사해야할 일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인간의 타성이나 욕심에 가로막혀 잠들어 있는 행복의 조건들이 수없이 많습니다. 이를 찾아내 깨워야 합니다. 행복이 가득할 것입니다.
3. 자족(自足)으로 인한 행복이 있습니다.
자족이란 어떠한 형편에서든지 스스로 만족해하는 것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행복과 불행은 생각의 차이입니다. 생각에 따라 행복할 수도 있고 불행할 수도 있습니다. 자족의 삶에 대하여 바울사도는 빌립보서 4:11~12의 말씀에“내가 궁핍하므로 말하는 것이 아니라 어떠한 형편에든지 내가 자족하기를 배웠노니 내가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 일에 배부르며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고 했습니다. 욕심을 버리고 자족하면 행복해집니다.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플라톤은 행복하기 위한 조건 5가지를 말했습니다. 먹고 입고 살기에 조금은 부족한 듯한 재산, 모든 사람이 칭찬하기에는 약간 부족한 외모, 자신이 생각하는 것의 반밖에 인정받지 못하는 명예, 남과 겨 루어 한사람은 이겨도 두 사람에게는 질정도의 체력, 연설했을 때 듣는 사람의 반 정도만 박수를 치는 말솜씨입니다.
플라톤은 행복의 조건을 완벽함이 아니라 부족한데서 찾고 있습니다. 사실 100% 만족이란 없습니다. 내게 없는 것을 생각하고 상대적으로 나보다 많이 가진 자를 바라본다면 행복할 수 없습니다. 지금 내게 있는 것, 그것이라 도 있음을 감사하면서 살아갈 때 우리는 행복을 느낄 수 있는 것입니다. 즉 자족의 행복입니다.
청교도들이 메이플라워호를 타고 미국에 도착하여 얼마 지나지 않아 그들 중 반 이상이 굶어 죽고 병들어 죽었습니다. 게다가 남아있는 사람들마저 해마다 겹치는 흉년으로 고통을 당했습니다. 도무지 밝은 전망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금식기도를 선포하고 하나님께 매달렸습니다.“하나님, 이 상황을 돌보아 주십시오. 우리를 도와주시옵소서.”이렇게 금식을 선포하고 기도를 한 것이 한두 번이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땐가 또 한번 대단히 어려운 형편에 놓이게 되자 그들은 다시 금식 기도를 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금식 기도를 놓고 의논하는 자리에서 어떤 농부 한사람이 이러한 제의를 했습니다.“지금까지 우리는 금식하면서 하나님께서 도와주시기를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그러나 이제 달리 생각하기를 원합니다. 비록 농사가 흉년이 들고 형제자매들이 병으로 쓰러지는 어려움을 겪지만 이 가운데서도 우리가 감사할 것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식량이 풍족치 않고 여건이 유럽보다 편안하지는 않지만 신앙의 자유가 있고 정치적인 자유가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 앞에는 광대한 대지가 열려 있습니다. 이것을 가지고 금식 대신에 감사 기간을 정하고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는 것이 어떻습니까?”농부의 그 말은 참석한 사람들에게 깊은 감화를 주었습니다. 그래서 금식기도 주간을 선포하는 대신 감사주간을 선포하고 하나님 앞에 감사하면서 기뻐했습니다. 이것이 추수감사 주일의 기본 동기였습니다. 감사의 조건을 찾는 곳에 행복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말씀하시기를“범사에 감사하라”(데살로니가전서5:18)하셨습니다. 자족하는 마음이 없이 범사에 감사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모두 바울 사도의 심정처럼 자족하는 삶을 살아야 하겠습니다.“어떠한 형편에든지 내가 자족하기를 배웠노니 내가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 일에 배부르며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빌립보서 4:11~12) 지금의 형편에서 자족한다면 풍성한 행복을 느끼게 될 것입니다.
4. 헌신으로 인한 행복이 있습니다.
이웃을 사랑하기 위해 또는 내게 주어진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 내 것을 내어 놓을 때 느끼는 행복입니다. 이는 사람이 누릴 수 있는 가장 큰 행복입니다. 가장 수준 높은 행복입니다. 이기심에 사로잡혀 자기밖에 모르는 인색한 사람은 이 행복을 전혀 경험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기를“범사에 너희에게 모본을 보였노니 곧 이같이 수고하여 약한 사람들을 돕고 또 주 예수의 친히 말씀하신 바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이 있다 하심을 기억하여야 할지니라”(사도행전 20:35)하셨습니다.
또 말씀하시기를“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줄 것이니 곧 후히 되어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하여 너희에게 안겨 주리라”(누가복음 6:38)하셨습니다. 어려움에 처한 이웃이 내가 베푼 사랑으로 인해 기뻐하는 그의 모습을 보므로 느껴지는 행복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기쁨과 보람과 만족이 있습니다. 그때 비로소“내가 인간다운 일을 했구나.”하는 보람과 만족이 있습니다.
미국 서커스 매표소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가난하지만 단란해 보이는 한 가족이 매표소 앞에 서 있습니다. 열두 살 이하의 아이들이 무려 여덟 명이나 되는 대식구였습니다. 한껏 기대에 부푼 아이들과는 달리 아버지는 왠지 초조해 보였습니다. 순서가 되자 아버지가 매표소 직원에게 말합니다.“아이 여덟, 성인 둘, 모두 얼마입니까?”직원이 입장료를 말하자 순간 아버지의 입술이 가늘게 떨립니다.“방금 얼마라고 했소?”아무래도 가진 전돈이 모자라는 모양이었습니다. 이제 와서 아이들에게 돈이 모자라니 그냥 돌아가자고 말할 수도 없고 난감한 표정이 역력합니다.
바로 그때입니다. 매표 순서를 기다리며 뒤에서 모든 상황을 지켜보던 한 남자가 주머니에 손을 넣더니 슬그머니 20달러짜리 지폐를 바닥에 떨어뜨렸습니다. 그리고는 어쩔 줄 모르고 서 있는 그 아버지의 어깨를 두드리며 말했습니다.
“여보시오. 선생! 방금 당신의 호주머니에서 돈이 떨어졌소.”그 아버지는 무슨 의미인지 금방 알아 차렸습니다. 그리고는 남자의 눈을 쳐다보며 울먹이는 목소리로 속삭였습니다.
“고맙소, 선생 이것은 나와 내 가족에게 있어 일평생 가장 큰 선물이 될 것이오.”아버지의 눈에는 눈물이 글썽거렸습니다. 일가족은 곧 표를 사 가지고 서커스장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하지만 주머니를 털어 돈을 내 준 남자는 아들과 함께 집으로 돌아와야 했습니다. 그들 역시 그러 넉넉한 형편이 아니었기에 표를 사지 못한 것입니다.
그날 밤, 아들의 일기장에는“우리는 오늘밤 서커스를 구경하지 못했다. 그러나 나는 그 어느 날보다 행복했다.”라고 적혀 있었습니다. 이것이 곧 자기희생으로 인한 행복입니다.
뿐만 아니라 희생의 삶을 살아가는 사람에게 하나님께서 주시는 축복을 통해 또 다른 행복을 누릴 수 있습니다.“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줄 것이니 곧 후히 되어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하여 너희에게 안겨 주리라”(누가복음 6:38)하셨습니다. 나는 작은 것을 내어 놓았는데 하나님은 차고 넘치도록 흔들어 안겨 주신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곧 선순환의 행복입니다.
지금까지 말씀드린 모든 것들을 초월한 절대 행복의 단계가 있습니다. 그것은 곧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오는 행복입니다. 이 행복은 지금까지 말씀드린 네 가지 행복의 원동력이 되는 것입니다. 예수 안에서 우리는 필요를 공급 받습니다. 예수 안에 서 우리는 날마다 새롭게 깨닫습니다. 예수 안에서 우리는 세상과 비교할 수 없는 만족을 얻습니다. 예수 안에서 우리는 일생의 사명을 발견하는 것입니다. 예수 신앙으로 말미암아 우리는 더 높은 차원, 더 아름답고 고상한 행복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이 행복은 상황을 초월 합니다. 능력을 초월합니다. 고통, 고난까지도 초월하는 전천후 행복입니다 여기, 행복의 최고봉을 경험하는 참 행복자의 고백을 들어 보십시오.
“주님, 나는 출세를 위해 강한 힘을 원했으나 당신은 저에게 순종을 배우라고 약함을 주셨습니다. 주님, 나는 위대한 일을 하고 싶어 건강을 청했으나 당신은 보다 큰 선을 행하게 하시려고 병고를 주셨습니다. 주님, 나는 행복하고 싶어 부귀를 구했으나 당신은 내가 지혜로운 자가 되도록 가난을 주셨습니다. 주님, 나는 만민이 존경하는 사람이 되고 싶어 명예를 청했으나 당신은 나를 다른 사람들을 위해 희생하게 하셨습니다. 비록 내가 당신께 청한 것 하나도 받지 못하였으나 당신이 바라시던 그 모든 것을 주셨으니 참으로 나는 행복한 사람입니다.”
이러한 전천후 행복에 대하여 본문에 말씀하시기를“이 물을 먹는 자마다 다시 목마르려니와 내가 주는 물을 먹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나의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요한복음 13-14)하셨습니다.
참 행복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 안에만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푯대로 삼고 그를 따라 살아가는 사람만이 샘솟는 행복을 누릴 수 있습니다. 이 행복의 근원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사마리아 여인을 만나 주시듯, 주님은 우리에게도 찾아 오셨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 이끌지 아니하면 아무라도 내게 올 수 없으니 오는 그를 내가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리라”(요한복음 6:44)하셨습니다.
고린도전서 12:3에는“성령으로 아니하고는 누구든지 예수를 주시라 할 수 없느니라.”하셨습니다.
이 존귀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시기 바랍니다.
이 존귀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마음과 정성과 뜻을 다해 사랑하시기 바랍니다.
이 존귀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의지하시기 바랍니다.
이 존귀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에 순종하시기 바랍니다.
샘솟는 행복한 삶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효민교회 담임목사
행복을 찾아 (요 4:1-18)
이익로
탈무드에 개에 관한 우화가 있습니다. 한 랍비의 집에 개가 있었는데 그 개는 자기 꼬리에 행복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자기 꼬리를 잡으려고 열심히 노력했습니다. 그러나 꼬리를 잡으려고 하면 할수록 제자리에서 빙빙 돌 뿐이었습니다. 드디어 그 개는 지쳐서 쓰러졌습니다. 그러자 그 모습을 바라보고 있던 한 늙은 개가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나도 한때는 자네처럼 그랬지만 결국 실패하고 한 가지 사실만 깨달았다네! 꼬리를 잡으려면 어지러울 뿐이지만 한 가지 목표를 향해 달리면 꼬리가 나를 따라왔어.”그렇습니다. 행복은 열심히 노력하고 탐구해서 얻는 것이 아니라 전정한 목표를 정해놓고 달리는 사람에게 따라오는 결과입니다. 오늘도 많은 사람들이 행복을 잡으려고 안간힘을 씁니다. 그러나 잡힐 것 같으면서도 잡히지 않는 것이 행복입니다.
본문에 나타난 우물가의 여인이 마치 행복의 꼬리를 물고자 빙빙 도는 개와 같았습니다. 그는 행복의 꿈을 찾아 이곳저곳을 헤매며 결혼을 다섯 번이나 했습니다. 그러나 행복의 갈증은 해소되지 않았습니다. 이렇게 행복에 갈한 여인에게 예수님은 말씀하시기를“이 물을 먹는 자마다 다시 목마르려니와 내가 주는 물을 먹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나의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요한복음 4:13-14)하셨습니다.
이 세상의 모든 사람이 갈망하는 행복은 네 가지 차원이 있습니다. 어떤 행복을 찾아 따르느냐에 따라 삶의 질과 인격이 달라집니다.
1. 필요한 것이 충족되었을 때 얻어지는 행복입니다.
내가 갖고 싶은 것을 갖게 되었을 때에 느끼는 행복입니다. 내 집이 없어 이집 저집 떠돌아다니며 온갖 서러움을 다 당하다가 내 집을 마련했을 때 느끼는 행복이 얼마나 큽니까? 감격스러워 잠을 이루지 못할 것입니다. 그러나 몇 달만 지나면 그 감격은 사라지고 맙니다. 셋집에서 살 때나 내 소유의 좋은 새집이나 생활의 느낌에는 별 차이가 없습니다.
고3 자녀와 함께 어머니도 고3이 되어 애태우며 공부하던 자녀가 원하는 대학에 들어갔을 때 느끼는 기쁨과 행복이 얼마나 큽니까? 그러나 입학을 하고나면 그 기쁨도 곧 사라지고, 과중한 학비부담에 힘들어하게 됩니다. 이처럼 내가 원하는 것들이 충족되었을 때 느끼는 행복은 그리 길지 않습니다. 이것이 세상적인 요구충족으로 인한 행복의 한계입니다.
어느 분은 욕구충족으로 인한 행복에 대해 이렇게 말했습니다.
하루를 행복하게 지내려면 이발을 하라.
일주일을 행복하게 지내려면 말을 사서 타고 다녀라.
한달을 행복하게 지내려면 자가용을 사서 타라.
일년을 행복하게 지내려거든 결혼을 하라.
평생을 행복하게 지내려거든 하나님을 섬기며 진실하게 살아가라.
육신의 요구를 충족시키므로 얻어지는 행복은 이처럼 지극히 한시적이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마치 목이 갈한 사람이 신기루를 찾아 따르는 것과 같습니다. 본문의 사마리아 여인이 그 사람입니다. 육신의 욕구 충족을 위해 다섯 번 결혼을 했지만 여전히 행복에 목말라 하고 있었습니다. 이 여인을 향해 주님은 말씀하시기를“이 물을 먹는 자마다 다시 목마르려니와 내가 주는 물을 먹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나의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요한복음 13-14)하셨습니다.
2. 인식의 전환으로 인한 행복이 있습니다.
이는 깨달음에서 오는 행복을 말합니다. 처한 상황은 변함이 없는데 깨닫고 보니 지금의 상황이 얼마나 다행하며 감사한지 이로 인해 느끼는 행복입니다. 이전에는 몰랐는데 깨달음으로 인해 기뻐하고 감사하며 행복해 하는 것입니다.
제가 이 성전이 있는 내손동이 개발되기 전, 이 지역에 있었던 낡은 구옥(舊屋)에서 2년가량 살았습니다. 그 집은 하루 종일 햇빛 한번 들어오지 않는 집이었습니다. 항상 낮에도 불을 켜야만 했습니다. 여름에는 습기가 많아 지렁이가 기어다는 집이었습니다. 그 후 개발로 집은 철거되고 평촌의 한 아파트로 이사를 했습니다. 그 집은 아침부터 해질 때가지 하루 종일 햇빛이 거실을 비추는 남향집이었습니다. 그 햇빛으로 인해 얼마나 기뻐하며 하나님께 감사했는지 모릅니다. 그 전에도 태양은 있었지만 햇빛의 소중함을 모르고 살았습니다. 그런데 햇빛의 고마움을 깨닫고 보니 그렇게 감사할 수가 없었습니다. 참으로 행복했습니다.
우리들의 삶 속에는 이처럼 깨어나 감사해야할 일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인간의 타성이나 욕심에 가로막혀 잠들어 있는 행복의 조건들이 수없이 많습니다. 이를 찾아내 깨워야 합니다. 행복이 가득할 것입니다.
3. 자족(自足)으로 인한 행복이 있습니다.
자족이란 어떠한 형편에서든지 스스로 만족해하는 것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행복과 불행은 생각의 차이입니다. 생각에 따라 행복할 수도 있고 불행할 수도 있습니다. 자족의 삶에 대하여 바울사도는 빌립보서 4:11~12의 말씀에“내가 궁핍하므로 말하는 것이 아니라 어떠한 형편에든지 내가 자족하기를 배웠노니 내가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 일에 배부르며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고 했습니다. 욕심을 버리고 자족하면 행복해집니다.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플라톤은 행복하기 위한 조건 5가지를 말했습니다. 먹고 입고 살기에 조금은 부족한 듯한 재산, 모든 사람이 칭찬하기에는 약간 부족한 외모, 자신이 생각하는 것의 반밖에 인정받지 못하는 명예, 남과 겨 루어 한사람은 이겨도 두 사람에게는 질정도의 체력, 연설했을 때 듣는 사람의 반 정도만 박수를 치는 말솜씨입니다.
플라톤은 행복의 조건을 완벽함이 아니라 부족한데서 찾고 있습니다. 사실 100% 만족이란 없습니다. 내게 없는 것을 생각하고 상대적으로 나보다 많이 가진 자를 바라본다면 행복할 수 없습니다. 지금 내게 있는 것, 그것이라 도 있음을 감사하면서 살아갈 때 우리는 행복을 느낄 수 있는 것입니다. 즉 자족의 행복입니다.
청교도들이 메이플라워호를 타고 미국에 도착하여 얼마 지나지 않아 그들 중 반 이상이 굶어 죽고 병들어 죽었습니다. 게다가 남아있는 사람들마저 해마다 겹치는 흉년으로 고통을 당했습니다. 도무지 밝은 전망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금식기도를 선포하고 하나님께 매달렸습니다.“하나님, 이 상황을 돌보아 주십시오. 우리를 도와주시옵소서.”이렇게 금식을 선포하고 기도를 한 것이 한두 번이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땐가 또 한번 대단히 어려운 형편에 놓이게 되자 그들은 다시 금식 기도를 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금식 기도를 놓고 의논하는 자리에서 어떤 농부 한사람이 이러한 제의를 했습니다.“지금까지 우리는 금식하면서 하나님께서 도와주시기를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그러나 이제 달리 생각하기를 원합니다. 비록 농사가 흉년이 들고 형제자매들이 병으로 쓰러지는 어려움을 겪지만 이 가운데서도 우리가 감사할 것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식량이 풍족치 않고 여건이 유럽보다 편안하지는 않지만 신앙의 자유가 있고 정치적인 자유가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 앞에는 광대한 대지가 열려 있습니다. 이것을 가지고 금식 대신에 감사 기간을 정하고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는 것이 어떻습니까?”농부의 그 말은 참석한 사람들에게 깊은 감화를 주었습니다. 그래서 금식기도 주간을 선포하는 대신 감사주간을 선포하고 하나님 앞에 감사하면서 기뻐했습니다. 이것이 추수감사 주일의 기본 동기였습니다. 감사의 조건을 찾는 곳에 행복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말씀하시기를“범사에 감사하라”(데살로니가전서5:18)하셨습니다. 자족하는 마음이 없이 범사에 감사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모두 바울 사도의 심정처럼 자족하는 삶을 살아야 하겠습니다.“어떠한 형편에든지 내가 자족하기를 배웠노니 내가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 일에 배부르며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빌립보서 4:11~12) 지금의 형편에서 자족한다면 풍성한 행복을 느끼게 될 것입니다.
4. 헌신으로 인한 행복이 있습니다.
이웃을 사랑하기 위해 또는 내게 주어진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 내 것을 내어 놓을 때 느끼는 행복입니다. 이는 사람이 누릴 수 있는 가장 큰 행복입니다. 가장 수준 높은 행복입니다. 이기심에 사로잡혀 자기밖에 모르는 인색한 사람은 이 행복을 전혀 경험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기를“범사에 너희에게 모본을 보였노니 곧 이같이 수고하여 약한 사람들을 돕고 또 주 예수의 친히 말씀하신 바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이 있다 하심을 기억하여야 할지니라”(사도행전 20:35)하셨습니다.
또 말씀하시기를“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줄 것이니 곧 후히 되어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하여 너희에게 안겨 주리라”(누가복음 6:38)하셨습니다. 어려움에 처한 이웃이 내가 베푼 사랑으로 인해 기뻐하는 그의 모습을 보므로 느껴지는 행복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기쁨과 보람과 만족이 있습니다. 그때 비로소“내가 인간다운 일을 했구나.”하는 보람과 만족이 있습니다.
미국 서커스 매표소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가난하지만 단란해 보이는 한 가족이 매표소 앞에 서 있습니다. 열두 살 이하의 아이들이 무려 여덟 명이나 되는 대식구였습니다. 한껏 기대에 부푼 아이들과는 달리 아버지는 왠지 초조해 보였습니다. 순서가 되자 아버지가 매표소 직원에게 말합니다.“아이 여덟, 성인 둘, 모두 얼마입니까?”직원이 입장료를 말하자 순간 아버지의 입술이 가늘게 떨립니다.“방금 얼마라고 했소?”아무래도 가진 전돈이 모자라는 모양이었습니다. 이제 와서 아이들에게 돈이 모자라니 그냥 돌아가자고 말할 수도 없고 난감한 표정이 역력합니다.
바로 그때입니다. 매표 순서를 기다리며 뒤에서 모든 상황을 지켜보던 한 남자가 주머니에 손을 넣더니 슬그머니 20달러짜리 지폐를 바닥에 떨어뜨렸습니다. 그리고는 어쩔 줄 모르고 서 있는 그 아버지의 어깨를 두드리며 말했습니다.
“여보시오. 선생! 방금 당신의 호주머니에서 돈이 떨어졌소.”그 아버지는 무슨 의미인지 금방 알아 차렸습니다. 그리고는 남자의 눈을 쳐다보며 울먹이는 목소리로 속삭였습니다.
“고맙소, 선생 이것은 나와 내 가족에게 있어 일평생 가장 큰 선물이 될 것이오.”아버지의 눈에는 눈물이 글썽거렸습니다. 일가족은 곧 표를 사 가지고 서커스장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하지만 주머니를 털어 돈을 내 준 남자는 아들과 함께 집으로 돌아와야 했습니다. 그들 역시 그러 넉넉한 형편이 아니었기에 표를 사지 못한 것입니다.
그날 밤, 아들의 일기장에는“우리는 오늘밤 서커스를 구경하지 못했다. 그러나 나는 그 어느 날보다 행복했다.”라고 적혀 있었습니다. 이것이 곧 자기희생으로 인한 행복입니다.
뿐만 아니라 희생의 삶을 살아가는 사람에게 하나님께서 주시는 축복을 통해 또 다른 행복을 누릴 수 있습니다.“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줄 것이니 곧 후히 되어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하여 너희에게 안겨 주리라”(누가복음 6:38)하셨습니다. 나는 작은 것을 내어 놓았는데 하나님은 차고 넘치도록 흔들어 안겨 주신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곧 선순환의 행복입니다.
지금까지 말씀드린 모든 것들을 초월한 절대 행복의 단계가 있습니다. 그것은 곧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오는 행복입니다. 이 행복은 지금까지 말씀드린 네 가지 행복의 원동력이 되는 것입니다. 예수 안에서 우리는 필요를 공급 받습니다. 예수 안에 서 우리는 날마다 새롭게 깨닫습니다. 예수 안에서 우리는 세상과 비교할 수 없는 만족을 얻습니다. 예수 안에서 우리는 일생의 사명을 발견하는 것입니다. 예수 신앙으로 말미암아 우리는 더 높은 차원, 더 아름답고 고상한 행복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이 행복은 상황을 초월 합니다. 능력을 초월합니다. 고통, 고난까지도 초월하는 전천후 행복입니다 여기, 행복의 최고봉을 경험하는 참 행복자의 고백을 들어 보십시오.
“주님, 나는 출세를 위해 강한 힘을 원했으나 당신은 저에게 순종을 배우라고 약함을 주셨습니다. 주님, 나는 위대한 일을 하고 싶어 건강을 청했으나 당신은 보다 큰 선을 행하게 하시려고 병고를 주셨습니다. 주님, 나는 행복하고 싶어 부귀를 구했으나 당신은 내가 지혜로운 자가 되도록 가난을 주셨습니다. 주님, 나는 만민이 존경하는 사람이 되고 싶어 명예를 청했으나 당신은 나를 다른 사람들을 위해 희생하게 하셨습니다. 비록 내가 당신께 청한 것 하나도 받지 못하였으나 당신이 바라시던 그 모든 것을 주셨으니 참으로 나는 행복한 사람입니다.”
이러한 전천후 행복에 대하여 본문에 말씀하시기를“이 물을 먹는 자마다 다시 목마르려니와 내가 주는 물을 먹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나의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요한복음 13-14)하셨습니다.
참 행복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 안에만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푯대로 삼고 그를 따라 살아가는 사람만이 샘솟는 행복을 누릴 수 있습니다. 이 행복의 근원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사마리아 여인을 만나 주시듯, 주님은 우리에게도 찾아 오셨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 이끌지 아니하면 아무라도 내게 올 수 없으니 오는 그를 내가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리라”(요한복음 6:44)하셨습니다.
고린도전서 12:3에는“성령으로 아니하고는 누구든지 예수를 주시라 할 수 없느니라.”하셨습니다.
이 존귀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시기 바랍니다.
이 존귀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마음과 정성과 뜻을 다해 사랑하시기 바랍니다.
이 존귀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의지하시기 바랍니다.
이 존귀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에 순종하시기 바랍니다.
샘솟는 행복한 삶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효민교회 담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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