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방 칼럼 - 바벨탐과 개미 / 김우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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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방 칼럼
바벨탑과 개미
김우영
천국과 지옥의 차이
우리는 흔히 \팔이 안으로 굽는다\는 속담을 인용해 자기 중심, 혹은 자기 가족 중심적 가치관을 변호하고 합리화시킬 때가 많다. 그러나 팔이 안이나, 밖으로 전혀 굽혀지지 않도록 고정되어 있다면 불구자이기 이전에 지옥과 같은 고통을 맛볼 것이다. 하지만 그런 사람들에게도 천국의 소망이 있다는 것을 우리는 들어서 알고 있다. 어떤 사람이 죽어서 저 세상을 갔는데 천국과 지옥은 긴 숟가락 사용의 차이에 있었다고 한다. 지옥에서는 긴 숟가락 끝을 잡고서 음식을 자기 입에다 넣으니까 밥 한 알도 입에 넣을 수 없지만, 천국에서는 옆이나 앞에 있는 사람에게 음식을 먹여주며 서로 나누어 먹을 수 있어서 사람들이 살이 찌고 행복한 삶을 살아가고 있었다고 한다.
팔이 뻣뻣하게 굳어져서 자기 손으로 음식을 자기 입에 넣을 수 없는 사람이 살 수 있는 방법은 남의 입에 음식을 넣어주고, 자신은 그에게 얻어먹는 것이다. 이렇게 거래가 형성돼서 시장이 생기는 곳이 천국이라면 서로 거래가 형성되지 않는 곳, 팔이 뻣뻣하게 굳어도 자기 입만을 생각하고 남에게 아무 것도 나눠주지 않는 곳이 곧 지옥이다.
시장은 관계를 형성시켜주고, 이런 관계가 사람들의 생계를 가능케 해주는 곳이다. 나눔이란 단순히 숟가락으로 나눠 먹는 음식만을 말하고 있지 않다. 교육도 나눔이고, 봉사도 나눔이고 심지어 놀고 즐기는 것도 나눔이다. 이런 나눔의 관계가 시장을 형성하는 것이고, 시장이 형성되는 곳에 천국이 존재한다는 이야기이다.
그러나 나눔 자체가 곧 천국이 될 수만은 없다. 자신의 이윤을 위해 다른 사람에게 손해만 끼쳐 공정한 거래가 이뤄지지 않을 때가 있기 때문에 \공정 거래 위원회\라는 기관도 생겼고 노동자와 고용주 사이에 부당한 거래가 있기 때문에 \노사정위원회\라는 것도 만들어 그들이 서로 주고받는 일이 좀 더 공정해지도록 배려하고 있는 것을 봐도 이 사실을 알 수 있다.
시장을 무너뜨리는 탐욕
그렇다면 거래가 공정하지 못하고 시장이 좋게 형성되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사람들마다 바벨탑을 쌓고 있기 때문이다. 받기만 하고 돌려줄 줄 모르고 탑을 쌓듯이 자기만을 위해 높게 쌓아올리려는 탐욕 때문이다. 당시 사람들은 하늘까지 높아지려고 여러 사람들이 한 탑을 쌓았지만, 오늘날엔 나만을 위해서 자신의 탐욕의 탑을 쌓아가고 있다. 그 어떤 탑이든 바벨탑의 운명과 동일한 결과를 맞게 되어 있다. 주고받는 거래가 중단되면 언젠가는 무너지기 때문이다. \공든 탑이 무너지랴\라는 우리 속담은 공든 탑은 무너지지 않는다고 가르치고 있지만, 아무리 튼튼하게 공들인 탑도 개미 한 마리의 끈질긴 시간 투자 때문에 무너지는 수가 있다.
개미의 삶은 이제 그만…
바벨탑은 인간의 오만한 탐욕이 무너져버린 부정적 이미지의 화신이다. 그러나 유대주의 랍비들은 개미에게서도 부정적인 이미지를 찾아내고 있다. 우리가 상식적으로 알고 있는 개미는 부지런함의 화신이다. 그러나 유대주의 랍비들은 개미에게서 쓸 데 없는 일에 시간을 낭비하는 사람의 이미지를 찾아내 교훈하고 있다. 사실 개미는 한 철을 지내기 위해선 밀알 두 톨만 있어도 충분하다는데 그들은 너무나도 많은 시간을 투자해 한없이 쌓아놓으려 한다. 거기에 투자된 시간은 결국 낭비된 시간이다. 게으른 사람은 개미에게서 부지런함을 배울 필요가 있는지는 몰라도 필요 이상으로 많은 것을 쌓아놓기 위해서 많은 시간을 투자했다면 그것은 쓸 데 없는 일에 시간을 낭비한 어리석은 개미이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광야의 삶을 살 때에 개미의 부지런함을 가르치지 않았고 또한 요구하지도 않았다. 만나, 곧 일용할 양식만을 거둬서 살도록 하셨다. 쓸 데 없이 많은 시간을 투자해 필요 이상을 거둬서 쌓아놓지 않도록 하셨다. 그곳에선 정말 개미의 부지런함이 아무런 쓸모가 없었다. 쓸모 없는 시간 낭비였다. 마치 그들의 광야 생활 40년이 쓸모 없는 시간 낭비처럼 보여지는 것은 웬 일일까?
신학교와 개미들
나의 쓸 데 없는 노파심일지 몰라도 미국의 많은 신학교엔 한국의 유학생들이 너무 많다. 아니 한국의 어느 신학교에서는 일년에 6백 명의 졸업생을 배출하고 있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복음전파에 그 많은 물질과 시간을 투자해야 하는 그런 전문 인력이 그토록 많이 필요한 것일까? 복음 전도자가 되는데 왜 그토록 많은 시간과 돈을 투자해야 하는지, 단순히 자신들의 입지를 위해 학문을 쌓고 있는 것은 아닌지, 복음이 전문적인 학문을 통해서만 이해되고 전파되어야 하는 것인지 생각하면 할수록 필요 이상으로 부지런히 너무 많은 것을 쌓아가고 있는 개미가 생각난다. 너무 많은 사람들이 학문을 위해, 또한 박사 학위를 위해서 너무나 많은 시간과 물질을 투자하고 있는 것 같아서 안타깝다. 하기야 너무 짧은 시간에 너무 많은 돈을 들여 간단히 학위를 사가는 사람들을 보면 슬픔을 느끼기도 하지만, 누구라도 하나님의 나라는 학문으로 발전하는 것이 아니라, 단순한 복음 전파로 확충되는 것이라는 걸 알았으면 좋겠다. 실제로 개미의 부지런함이 요구되는 것은 복음 전파이다. 하나님께선 우리에게 부지런히 복음을 전하라고 말씀하신다.
그러나 자신의 학문적 업적을 위해서 필요 이상으로 한없이 쌓아올리기만 하는 개미의 부지런함이 지혜로운 삶만은 아니다. 자신을 위해서 탑을 쌓는 일이라면 쓸 데 없는 시간낭비요, 조만간 무너져 버릴 바벨탑을 쌓는 일이다.
학문하는 일은 개미가 제 먹을 것을 쌓는 행위에 비할 바가 아니고, 가도가도 끝이 없는 학문의 깊고 높은 세계를 모르는 것은 아니지만, 생명 기관인 하나님의 몸된 교회가 각자가 받은 은사를 무시하고 필요 이상의 많은 사람들이 필요 이상으로 오랫동안 학문(?)에 매달려 있는 현실을 너무나 당연시하는 현실이 안타깝다. 바벨탑과 개미를 연결시킨 것도 학문이 부족한 나의 무식의 소산일 수도 있다. 그러나 자고로 교회는 하나님 아버지의 말씀을 학문화시켜 자신들의 전유물로 만든 사람들에 의해서 상처를 입었고, 나누어졌다는 걸 인정한다면 복음을 위한다면서 투자하는 그 많은 시간들이 복음을 나눠주기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을 위해 바벨탑을 쌓고 있는 것은 아닌지 깊이 생각해 보아야 하지 않을까?
무엇을 키우려고 쌓아놓고 있는가
한국은 IMF 때문에 아우성을 치고 있지만, 한국 교회들 중엔 더 큰 교회건물을 위해서 돈을 쌓아놓고 있는 교회들도 많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소위 교육관을 늘리기 위해서, 혹은 주차장을 늘리기 위해서 이웃집들을 사들여 헐어버리고 교회당이나 부속 건물을 늘려가고 있는 것이다. 개미의 부지런함을 시간 낭비라고 말하는 것은 필요 이상으로 너무나 많은 것을 쌓아놓기 위해 부지런을 피우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세상을 창조하신 것은 인간에게 축복이었다. 그러나 에덴 동산에도 만족을 제한하는 경계를 세우셨다는 걸 잊어서는 안 된다. 사람들이 넘어갈 수 없도록 한계를 정하신 것이다. 그 한계 때문에 인간은 그 한계를 넘어가고 싶은, 그 제한을 철폐하고 싶은 욕망이 생길 수도 있겠지만, 하나님께서 모든 만물을 각기 그 종류대로 지으신 것이 또 다른 한계라면 한계가 아니겠는가? 또한 한계가 있으므로 하나님을 더듬어 찾을 수도 있는 것이 아닌가? 하나님께서 한계를 지어주셨기에 서로 다른 면이 있다는 것, 그러기에 서로 넘어가서는 안 되는 경계가 있다는 걸 알 수 있지 않은가? 하나님께서 아담을 시켜서 모든 피조물에게 이름을 부여토록 하신 것도 개와 고양이의 한계를 정해주듯이 나와 너의 경계를 그어주신 것이고, 그 경계를 지키는 것이 곧 독립이요, 다른 것들과의 공생의 원리가 아닌가?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 온 우주 만물을 만드시고 그들의 경계를 세우셨는데 인간은 바벨탑의 한계를 깨닫지 못했고, 만나가 일용할 양식의 한계임을 깨닫지 못했고, 개미들은 부지런함으로 시간의 한계를 뛰어넘으려는 어리석음을 보이면서 인간들에게 탐욕의 한계를 깨닫지 못하게 만들었다. 하나님께서 정하신 한계를 뛰어넘는 것, 그것을 추구하는 사람에겐 성공처럼 보일지 몰라도 이미 공생의 원칙을 파기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단순히 나라 간의 국경을 넘어가는 것만이 침략이 아니다. 한 나라 백성들의 탐욕이 집약되어서 이웃 나라에 대한 침략으로 나타난다는 걸 알아야 한다. 언젠가는 반드시 무너져버릴 바벨탑을 쌓아가고 있는 세상을 보면서, 또한 성공 신드롬에 사로잡힌 개미 군단들의 부지런함을 보면서 교회가 세상을 닮으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는 것이 너무나 안타깝다. 교회 안을 들여다보면 두 가지가 두드러지게 눈에 띈다. 이미 쌓아 올린 것을 즐기며 세월을 까먹고 있는 교회가 있는가 하면, 그런 교회가 부러워 어쩔 줄 모르고 그들을 따라잡기 위해서 총력전을 벌이고 있는 가엾은 교회 모습도 있다. 그들은 모두 자신들의 계획의 성공 여부만을 가늠해 볼 뿐, 하나님의 뜻이나 목표가 무엇인지에 대해선 관심이 없다. 아니, 그들의 계획이 곧 하나님도 따라가야 할 길, 우리가 살 길이라고 강변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살펴 보아야 한다. 우리는 무너진 바벨탑을 재건하려는 어리석음을 버려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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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우영 / 재미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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