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 엿보기 6] 첫사랑을 회복하라 / 이재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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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회 엿보기
첫사랑을 회복하라
이재순(김인중 목사 사모)
올 여름 나는 남편의 미국 이민교회 부흥집회에 동행했다. \사모님 미국 구경 많이 하셨죠?\, \사모님처럼 가끔 해외 여행도 하고 살았으면 좋겠어요.\라고 교인들은 말한다. 정말 미국 이민 교회 구경은 많이 했다. 5주 동안 여섯 교회에서 똑같은 내용의 설교를 들으면서도 잘 견딜 수 있었던 것은 각 교회의 사정과 형편이 때로는 충격으로, 때로는 안타까움으로, 때로는 감사함으로 다가 왔기 때문이었다.
가는 곳마다 그 지역의 명소도 보여주고, 좋은 음식으로 대접도 해 주었다. 그러나 개교회의 형편을 듣고, 집회에 은혜를 끼쳐야 하는 남편으로서는 나만큼 신기해하거나 감격해 하지 않았다. 집회 전에는 밥맛도 없어했고, 집회 끝난 주일 밤이 지난 월요일에나 남편은 회복되었다. 같은 설교를 매번 하는데도 그 교회의 상황마다 다른 사정들이 시간시간 성령님을 사모하게 한다고 남편은 말했다. 긴장하는 남편 옆에서 난들 편하겠는가?
\같이 밥 먹고 사는 데 당신만 그렇게 편안히 잠만 잘 수 있느냐?\고 남편은 나에게 핀잔 아닌 핀잔을 준다. \대한민국에 물건이 없어서 여기서 그런 것을 사려느냐? 공항의 세관원들이 보면 목사가 창피하지 않느냐? 어떤 목사님은 해외에 다녀 올 때마다 짐이 칫솔밖에 없어서 공항 직원들이 놀랬다더라\ 하면서 핍박(?)을 한다.
남편은 \집을 떠나면 다 맡겨야지 왜 자꾸 교회와 집에 전화를 하려느냐?\고 말하고 \나는 전화도 마음대로 못하게 하면 집에 가버린다\고 남편에게 공갈(?)을 쳤다. 집회에 대한 부담감이 우리 마음에서 여유를 빼앗아 버린 듯했다.
그런 중에도 무엇보다 유익했던 것은 그 이민교회들을 보면서 우리 목회를 다시 한번 돌이키게 했다는 것이다. \나는 저렇게 하지 말아야지! 나도 조심해야지!\를 되풀이했다.
공항의 마중에서부터 식사 대접, 숙소 안내 등 모든 것을 목회자 중심으로 하는 교회, 장로님이 주도적으로 하고 심지어 집회 때 예배사회까지 장로님들이 하는 교회, 목사님과 장로님들이 적당히 나누어서 하는 교회, 사모님들이 뒤에서 웃으며 인사만 하는 교회, 좀더 활발하게 참여하는 교회, 부흥집회 강사가 교인들과 인사하는 것도 부담 느끼는 교회 등등, 여러 유형들을 경험하였다.
가장 크게 나를 당황케 한 것은 교회마다 강사로 온 목사 내외를 환대한다는 점이었다. 목회자나 장로님, 특히 장로님들의 적극적인 관심이 나를 놀라게 했다. 평일인데도 공항에 여러분들이 마중 나오는 모습들, 식사 때마다 시간을 내서 접대하는 정성들…. 저들이 얼마나 바쁜 생활을 한다는 것을 들어서 안 나로서는 그들의 접대가 황송할 지경이었다.
무슨 일이든지 간편하고 실용적인 것을 원하는 남편은 한 달간이나 해외에 나가는데도 기사 외에는 공항에 배웅 나오는 것을 원치 않는다. 어쩌다 비행기 시간을 묻는 교인이 있으면 잘 모른다고 대답하라고 한다. 그런 습관 속에 살다보니 \자연히 손님대접도 소홀히 하지 않았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저 목사가 교회 크다고 강사를 가볍게 대접한다\고 섭섭해하지는 않았을까 염려되기도 했다. 이제부터라도 좀더 정성껏 접대해야겠다고 결심하게 되었다.
또한 나는 한 영혼 한 영혼을 소중히 여기는 마음을 회복해야 한다고 다짐하게 되었다. 교민 수는 제한되어 있는데 교회와 교역자가 많으므로 대부분이 작은 교회였다. 한 교인이 문제가 생겨 교회에 안나온다는 말을 듣고, 한숨도 못 자고 고민하는 목회자를 보면서 한 교인의 의미를 다시 생각해 보게 되었다.
개척교회 시절, 한 사람의 전도를 위해 그렇게 애썼건만, 지금은 누가 안나와도 이사를 가도 모르는 지경이 되었으니…. 그때의 \영혼 사랑\이 열심히 교인 수를 늘리는 데 있었단 말인가? 전도에 열심인 권사님이 \빨리 부흥되어야 교회 짓지요\해서 나를 실망시켰던 일이 있었다. \잿밥\에만 관심이 있는 삯군은 되지 않겠다고, 그렇게도 결심했건만 20년 목회 속에서 교인을 숫자로만 세는 데 익숙해져 있었던 것이다.
\큰 교회 목사는 다 가짜\라고 외치는 어떤 목사님의 말씀이 다 사실은 아니라는 것을 증명해 보여야 하지 않는가!
또한 이민 교회를 달리 보게 한 것은 하나님의 은혜를 열심히 사모하는 성도들이 많다는 것이었다. 하루 종일 직장에서 일하고, 저녁 집회에 한 시간씩 차를 타고 오는 분을 볼 때 마음이 뜨거워 졌다. 땅이 넓은 나라라서 그런지 한 두 시간 차 타는 것을 보통으로 여기는 듯 했다. 30분만 차 타면 충분히 올 수 있는 거리인데도 교회가 멀다고 엄살을 부리는 교인들 때문에 더 이상 고민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 교인들은 거리가 문제가 아니라 훈련되기 나름인 것이다. 한 젊은 부부가 거의 두 시간 걸리는 지역에서 집회를 참석하고, 마지막 날에는 밤 10시에 직장으로 돌아가 밤새도록 병원 청소를 하고 다시 한 숨도 못 자고 새벽기도에 와서 기도 제목을 내놓았을 때 저들 부부를 축복해 달라고 간구하지 않을 수 없었다.
목회자로서 이민교회를 섬기는 것은 한국에서 목회 하는 것보다 몇 배는 더 어려운 듯 했다. 내 나라에서 아름다운 모국어로 설교하고 기도하며, 순수한 교인들과 목회한다는 것이 큰 축복이라고 새삼 느끼게 되었다. 교회의 분열이 많고, 목회자와 교인 간에 불신이 심한 것이 이민교회의 실정이었다. 미국에서 공부하는 우리 조카는 이민교회의 분열 상에 실망을 느껴 차라리 미국교회에 나간다고 했다. 미국인들의 개인주의가 얼마나 우리와 다른지 도저히 이해할 수 없어도 그래도 미국교회를 택했다고 한다. 3년만에 자기 집에 찾아온 동생과 함께 식당에서 식사를 하고서, 각자 돈을 내는 형에게 \너를 찾아 왔는데 그럴 수 있느냐\고 했더니 \저 애도 직장이 있다\고 해서 외계인 같은 느낌을 받았다는 그 미국인들인데도 그래도 미국교회가 낫다고 했다. 어떤 목사님이 \이민교회 교인들은 다 정신병자로 봐야한다\고 했다는 말을 전해 듣고 \얼마나 어려우시면 그랬으랴\는 생각에 마음이 아팠다. 목회자나 교인들이 \인정 욕구\와 \섭섭 마귀\가 얼마나 많은지 감당하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분열하므로 성장한다\는 자조적인 말을 들을 때 우리 민족의 민족성에 대해서 절망하기도 했다.
이제는 자라나는 이민 1.5세 2세에게 희망을 걸고 있었다. \저 자녀들은 바나나 같다\고 했다. 겉은 노란데 까보면 하얗다는 것이다. 사고 방식이 부모와 전혀 다른 서양 사람인 저들의 교육을 어떻게 성공하느냐가 미래 한국 이민교회의 숙제였다. 장년 신자의 부속물처럼 여겼던 우리 주일 학교 꿈나무들에게 20년만 투자하면 우리 교회와 민족의 기둥들이 될 것이 아닌가. 어려울수록 정도를 가라며 신생아 때부터, 아니 태교부터 교인 교육을 다시 하라던 목회 상담학 교수의 말이 머리를 떠나지 않았다. 이번 여름은 우리 부부 목회에 \첫 사랑을 회복하라\고 주님이 주신 참으로 유익한 여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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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순 / 안산동산교회 김인중 목사 사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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