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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사속의 명설교

    성경신학과 신명기 설교

    페이지 정보

    성경본문: | 설교자:

    본문

    경신학과 신명기 설교

    송제근 교수

    본론 : 신명기의 신학과 설교
    1. 성경신학의 핵심으로서의 언약(신학)
    2. 오경을 중심한 언약신학의 수립을 위하여
    3. 신명기의 핵심으로서 모압언약의 성경신학적인 특이성
    4. 신명기의 구조와 그 특이성
    5. 신명기의 법(신 5-11, 12-26장)의 특이성
    6. 신명기 1-3 // 31-34
    7. 신명기 4 / 29-30
    결론 : 성경신학적으로 신명기를 설교하기 위한 제언들

    도입
    성경신학자로서 가장 잘 알려진 사람 중의 하나인 G.v. Rad는 1929년에 쓴 자신의 학위논문을 시작으로 하여서 일생동안 신명기에 대해서 네 권의 책을 썼다. 이것은 그가 얼마나 신명기를 중요하게 생각했고 신명기의 본질을 더 깊이 알고자 하는 열망을 가졌던 것을 나타낸다. 그는 근본적으로 거시성경학자 즉 성경신학자로서 신명기를 그렇게 집요하게 연구해 왔는데 과연 신명기는 성경신학의 근본을 제시할 수 있을 정도로 중요한 책인가?
    오늘 <한국신학정보연구원>이 제공하는 성경해석과 설교라는 주제 하에서 발표되는 다른 논문들은 모두 해석학의 방법론과 관련되어 있다. 그러나 신명기를 어떻게 설교할 것인가 하는 문제를 다루는 이 발표에서 해석학적인 문제보다도 더 중요한 것은 신명기가 성경전체와 어떻게 관련되어 있느냐는 문제 즉 성경신학적인 문제이다.
    신명기가 성경신학 전체에 있어서 중요하다는 것을 본격적인 의미에 있어서 학문적으로 고려되기 시작한 것은 de Wette를 거쳐서 J. Wellhausen 이후부터이다. 그러나 이렇게 신명기의 중요성이 인정된 것은 신명기가 주전 7세기 요시아 왕 시대 이후의 작품이라는 전제위에서 되었다. 그러나 만약 신명기가 주전 7세기 훨씬 이전 즉 민족으로서의 이스라엘의 초기의 글이라면 이런 가설이 성립될 수 있을 것인가 ? 주전 7세기 가설은 20세기 중반까지 위세를 떨쳤던 자료비평과 양식비평의 결과로 만들어진 것이나 이제는 그런 방법론들 자체가 무너졌고 또 이제 더 중요한 것은 신명기가 현재의 모습 그대로가 어떤 내용을 담고 있는가를 아는 것이 되었다. 한 책이 어떻게 형성되었는가 하는 역사적인 질문을 하기 전에 먼저 해야 할 일은 그 본문 전체가 어떻게 수미일관한 의미를 전달하는 것이 될 수 있는가를 살피는 것이다. 만약에 우리가 수미일관한 통일성을 발견할 수 있다면 그 다음에 비로소 다른 성경과의 관련성을 생각할 수 있게 된다.
    우리는 이런 신명기의 통일성에 근거하여서 이 발표에서는 신명기를 어떻게 설교할 것인가를 다루려고 한다. 이 경우 이해해야 할 신명기에 나타난 성경신학적인 관점은 세가지이다 :
    (1) 신명기가 통일성을 지니는 실체이며 그 통일성의 근본 내용은 하나님이 이스라엘과 갱신하시는 언약인 모압언약이다.
    (2) 신명기의 핵심으로서의 모압언약은 그 전에 있었던 민족으로서의 이스라엘이 하나님과 맺은 최초의 근본언약이었던 시내산 언약과 쌍을 이루며,
    (3) 이 두 언약은 구약의 나머지 책들의 형성에 절대적인 기준이 되었다.
    이제 우리는 이 세가지 내용을 아래에서 구체적으로 생각해 보자.

    본론 : 신명기의 신학과 설교

    1. 성경신학의 핵심으로서의 언약(신학)
    1.1. 언약신학들에 대한 재평가
    언약이 성경신학의 핵심이라는 생각과 또 그것으로 성경신학이나 조직신학의 근본을 형성해 보려는 시도는 새로운 것이 아니다. 그러나 이 때까지의 언약신학은 다음의 두 가지 한계를 가진다.
    하나는 신학적으로 자유주의적인 언약신학의 한계이다. 이 신학은 근본적으로 ‘언약’(berith)이라는 것은 이스라엘과 하나님 사이에 있었던 역사적인 제도가 아니라 어떤 신학자 또는 그 학파가 만들어낸 신학적인 개념에 불과할 뿐이라고 주장한다. 이런 해석은 근본적으로 19세기 말의 구약관 즉 구약종교의 출발은 선지자에 있으며 오경은 제일 마지막에 형성되었다는 생각에 근거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이 생각은 현대에 오면서 고고학적인 증거가 정교하게 드러날수록 포기되어져야 했다. 고대근동에서 이스라엘이 하나님과 맺은 언약과 유사한 사회적인 제도였던 결혼, 입양, 조약 등의 인간끼리의 관계를 설정하는 것들이 시간적으로 넓게, 또 공간적으로 많은 곳에서 발견되었기 때문이다. 이런 제도들은 선지자들의 시대에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선지자 시대 훨씬 전부터 널리 애용되던 제도들인 것이다. 이 제도들을 그들이 생각하듯이 요시야 이후에 천재적인 신학자들이 만들어낸 개념으로 보는 것은 거부되어져야 한다.
    또 하나는 보수주의적인 언약신학의 한계이다. 이 전통은 일반적으로 그 신학에 대하여 주석적인 근거를 약하게 가지거나 아예 가지도 않았던 경우가 많았다. 단순히 조직신학적인 요청으로 언약신학이 만들어지는 경우까지 있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언약이라는 것이 구체적으로 무엇인가를 정교하게 정의하여야 한다. 언약은 단순히 약속인가 ? 아니면 언약은 구약이 쓰여진 그 당시의 구체적인 삶의 제도와는 전혀 무관하게 하늘에서 뚝 떨어진 제도인가 ? 아니면 구약 시대의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쉽게 알 수 있는 제도였던가 ? 그리고 그 제도가 만들어지는 구체적인 과정은 무엇인가 ? 또 우리는 그것을 어떻게 증명할 수 있을 것인가 ? 이런 질문들에 대하여 이 신학적인 전통은 성실하게 답변하지 못한 것 같다.
    이제 이런 두 전통의 약점을 보완하여 우리는 새로운 차원의 구약의 언약을 해석해야 하기 위하여 두 가지 차원의 연구가 필요한 것을 알게 된다. 첫째는 보수주의적인 전통의 언약신학의 한계를 넘어서기 위하여 철저한 주석적인 연구를 할 필요가 있다. 조직신학적인 요청 때문에 성경학에서 언약신학을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라 그 실제적인 언약의 내용이 그 시대의 삶의 상황속에서 무엇인가를 드러내어야 한다. 둘째는 자유주의적인 전통을 넘어서 성경의 언약이 과연 고대근동의 유사한 제도와 어떻게 관련되며 또 독창성이 어디에 있는지를 지적할 수 있어야 한다.

    1.2. 언약(berith)이란 무엇인가?
    위에서 보았듯이 de Wette, Wellhausen과 같은 자유주의자들 뿐 아니라 보수주의자들 속에서도 구약의 구체적인 삶의 현장 속에서 그것이 어떠했을까를 나타내는 일에 실패하였다. 그러면 우리는 언약을 무엇이라고 정의하여야 하는가 ? 구약에 있는 ‘언약’(berith)의 본질적인 내용은 단순한 약속(promise)도 아니며, 어떤 선물을 주는 것(grant)도 아니다. 그것은 인격 당사자 간의 일정한 공적인 관계가 형성되는 것을 의미한다. 물론 구약에서 berith란 단어가 쓰였으나 이런 것을 의미하지 않고 단순히 약속이나 선물을 의미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런 것들은 어떤 공적인 제도가 형성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므로 엄격한 의미에서 위에서 내린 정의에서의 언약으로 번역하여서는 안된다. 또 구약에서 berith란 단어가 쓰이지 않았으나 언약의 제도 형성을 의미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고려해야 한다.
    이런 의미의 언약이 바로 구약에서 이스라엘의 본질적인 종교제도였다. 이제 이런 언약은 그 당시의 고대 이스라엘인들이 전혀 모르는 가운데 위에서 뚝 떨어져서 주어진 제도인가 ? 그런 것은 아니었다. 이것과 유사한 제도는 고대 이스라엘이나 근동에 많이 있었는데 대표적인 제도가 남녀의 관계를 공적으로 규정하는 결혼제도, 양아버지와 양아들의 관계를 공적으로 정하는 입양제도, 그리고 국가간의 공적관계를 정의하는 조약이다. 이런 제도의 실제적인 내용이 구약에서의 언약의 실제적인 내용과 유사한 것이 많은 데 특히 국가간의 조약, 그 중에서도 강대국과 약소국 간의 조약은 성경의 언약과 아주 유사하다는 것을 신학적인 진영을 막론하고 인정하는 편이다. 길고 다양한 조약역사 속에서도 성경의 언약과 가장 많이 닮은 것은 이스라엘에 출애굽을 한 당시와 거의 유사한 시대인 주전 15-13세기에 강력하게 활동한 지금의 터어키 지역을 장악했던 헷 제국의 조약인 것이라는 점은 이제 거의 상식이 되었다. 그럴 뿐 아니라 헷 제국이 당시의 또 다른 대국인 애굽과 활발한 관계를 가졌는데 이스라엘은 그 애굽의 북쪽 고센 땅에 위치하여 이 두 나라의 조약에 대해서 아주 익숙하였을 것으로 보는 것은 자연스럽다. 이런 지리적 역사적 상관성 속에서 조약개념과 유사한 구약의 언약 개념이 창조적으로 만들어졌을 가능성이 아주 높은 것이다.
    고대 근동의 이러한 공적 관계를 맺는 제도와 유사한, 하나님과 이스라엘의 관계를 공적으로 규정하는 언약의 구체적인 내용은 다음과 같다 :
    (1) 하나님과 이스라엘의 공적인 관계의 쌍방정의 (여호와는 이스라엘의 하나님 / 이스라엘은 여호와의 보배로운 백성),
    (2) 언약 당사자의 공적인 대면,
    (3) 언약관계법의 제시와 수납,
    (4) 언약 체결/비준 제사 및 언약문서 작성,
    (5) 언약 체결 후의 피로연.

    2. 오경을 중심한 언약신학의 수립을 위하여
    2.1. 구분되어야 할 게념으로서의 세 언약 : 아담언약, 노아언약, 족장언약.
    그러면 구약의 첫 번째 책 다발인 오경은 언약을 어떻게 표현하는가 ? 오경에서 혹은 오경을 향하여 언약이라는 표현은 여러 군데서 발견할 수 있다. 그 중에서 우리가 본격적으로 다루려고 하는 시내산 언약과 모압언약을 제외하고 통상 언약으로 표현된 것이 아담언약, 노아언약, 족장언약이다. 이 개념들이 우리의 이해에 어떤 혼돈을 주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아담언약, 노아언약은 근본적으로 위에서 말한 언약의 정의, 즉 인격 당사자끼리의 공적인 관계형성이라는 사실과 무관하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위에서 말한 다섯 단계를 결하고 있다. 그러므로 이것들은 언약이라기 보다 하나의 명령이나 약속이라고 볼 수 있다. 또 족장언약은 그 자체가 본질적인 내용이라기 보다 시내산 언약과 모압언약이 장차 세워진다는 것을 준비하는 것과 같은 것이다. 근본적으로 아브라함과 하나님 사이에 어떤 영구한 관계가 형성된다고 보기보다는 민족이 될 이스라엘과 하나님 사이에 영원한 관계가 형성된다고 보아야 하고 족장언약은 이것을 이루기 위한 예비적인 것으로 볼 수 있다.

    2.2. 오경의 삼구분과 (창세기 // 출애굽기-레위기-민수기 // 신명기) 언약
    구약에서 하나님과 이스라엘 사이에 맺어진 공적인 언약의 결과로 생기게 되는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하나님이 통치하시는 하나님 나라이다. 한 나라의 구성요소는 주권, 주민(씨), 영토(땅)다. 그런데 오경은 전체로 이 구성요소가 어떻게 완전하게 형성되는가를 보이는 책이다. 우선 주권은 이스라엘의 하나님되신 여호와께 있다.
    그 씨와 그 땅이 형성될 준비가 완전하게 되는 것이 창세기이다. 즉 아브라함이 사라를 묻기 위하여, 야곱이 돈을 주고 산 땅이 마련되었고, 완전수 70명으로 상징된 씨의 완전한 준비로 창세기는 마감한다.
    출애굽기는 그 본질적인 내용은 출애굽 자체가 아니다. 출애굽은 단지 1-15장에 기록되었을 뿐이며, 어떤 더 근본적인 것을 이루는 하나의 준비에 불과한 것이다. 그 근본적인 것은 하나님과 이스라엘 사이에 공적인 관계로 수립되어야 하는 시내산언약이다 (출 19-24). 출 25-31/35-40장의 법막은 단순한 거룩한 장막이 아니라 언약 당사자가 만나서 언약을 유지하기 위한 장소였고, 레위기의 제사제도는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언약관계를 회복하는 공적인 절차로 주어진 것이다. 그리고 민수기의 내용은 첫 번째 인구조사로 다 된 것이 아니라 그들이 순종하는 씨가 되지 아니할 때 진멸되었고 두 번째 인구조사가 불가피한 것을 나타낸다. 이렇게 출애굽기에서 민수기까지는 씨의 완성에 대해서 말하고 있다.
    그러나 신명기의 궁극적인 관심은 씨가 아니라 땅이다. 이제 요단강 너머로 가나안 땅을 바라보고 그 땅을 얻었을 경우에 어떻게 그 땅을 이스라엘의 땅으로 유지하여야 할 것을 말한다. 씨의 경우와 같이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을 경우에는 그 땅도 빼았기고 말 것이다. 신명기는 땅의 완성을 나타낸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책과 언약을 다음과 같이 표현할 수 있다.
    (1) 창세기는 모든 언약의 준비로서의 족장언약이 주어졌다.
    (2) 출애굽기에서 민수기는 씨의 완성이라는 관점에서 시내산 언약이 주어졌다.
    (3) 신명기는 땅의 완성이라는 관점에서 모압언약이 주어졌다.
    이제 우리는 시내산 언약과 모압언약의 구체적인 모습에 대해서 생각할 때가 되었다.

    2.3. 시내산 언약과 모압언약
    (1) 신 29:1에 나타난 ‘모압언약’은 실체가 있는가 아니면 도깨비 언약인가?
    이제 우리는 신명기의 본질이 과연 모압언약인가를 고려해야 한다. 모압언약이라는 말은 신 29:1에 나온다. 이것이 실체가 있는 것인가 아니면 도깨비와 같은 것인가에 대하여 꽤 많은 논의가 되어왔다. 그러나 우리는 신명기 자체의 주장과 같이 이것을 실체가 있는 언약으로 간주한다면 그 실체성을 증명해야 한다. 이미 다룬 바대로 우리는 신 29:1의 앞부분에서 위에서 말한 언약의 본질적인 내용을 다 발견할 수 있다는 것을 말하였다. 즉 신 5-28의 전체 내용이 바로 모압언약의 구체적인 내용을 다 포함하고 있다는 것이다.

    (2) 시내산 언약과 모압언약의 전체적인 비교
    시내산 언약과 모압언약을 그 전체적인 모습을 다음과 같이 비교할 수 있게 되었다.
    시내산 언약모압 언약1. 언약당사자의 쌍방관계 규명
    2. 언약당사자끼리의 공적 대면
    3. 언약관계법의 제시와 수납 (십계명)

    4. 언약 체결/비준 제사 및 언약문서
    5. 언약 체결 후의 피로연 출 19:5-6
    출 19:9-25
    출 20:1-17
    출 20:22-23:33
    출 24:3-8
    출 24:9-11 신 26:18-19
    신 5:2-3
    신 5:7-21
    신 6-11/12-26
    신 27
    신 27:7
    여기서 차이를 보이는 면들도 여러 가지가 있다. 예를 들면 시내산 언약에서는 축복과 저주가 없으나 모압언약에는 축복과 저주가 신 28장에 나와 있다. 또 신명기에 나타난 모압언약에는 고대 근동의 다른 제도속에서는 없는 요소가 있다. 그것은 언약을 파괴한 이스라엘에 베푸시는 하나님의 특별한 용서의 차원이다. 이 점은 물론 시내산 언약에서 제사제도를 마련함으로 제사를 통해서 언약이 다시 갱신되도록 한 것의 연장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무서운 현실은 이런 제사제도조차도 무효가 될 경우가 생기는데 그것은 제사를 마음으로 드리는 것이 아니라 형식과 외식으로 드릴 때의 문제였다. 이 경우에 하나님의 완전한 진노가 임하는데 신명기에 특이한 것은 이런 경우에도 진실된 이스라엘인들이 회개하며 하나님의 자비를 간구할 것과 특별히 하나님의 특별한 사랑으로 마음의 할례까지 주시는 것이다 (신 30:6). 이런 점들은 시내산 언약은 하나님과 민족이된 이스라엘 사이의 최초의 언약이고 모압언약은 새로운 상황에서 갱신된 언약이란 데서 오는 것이다.

    2.4. 오경의 언약과 구약의 다른 책들과의 성경신학적인 관계
    우리는 오경의 성경신학적인 본질이 시내산 언약과 모압언약이며 궁극적으로 이것을 통하여 하나님 나라가 법적으로 수립된 것을 보여준다는 사실을 보았다. 이제는 이런 점이 구약의 다른 책들과 어떤 관계가 있는가를 살피려고 한다. 즉 성경신학적으로 오경의 언약신학이 어떻게 구약 다른 책의 신학에 영향을 미치는가를 간략하게 살피려고 한다.

    (1) 오경의 언약과 선지서
    19세기 말부터 고전적인 자유주의자들은 성경종교의 유일성을 윤리적인 유일신론으로 삼았다. 그 결과 그들은 선지자가 이스라엘 종교의 출발점으로 생각했고 오경은 이스라엘 역사의 최말기에 형성된 것으로 하시하였다. 그러나 20세기 후반에는 성경학과 고고학의 발전과 더불어 이런 시각이 점점 사라져 갔으나 여전히 선지서의 멧세지의 출발 또는 근거가 무엇인가의 문제에 대해서 명확한 시각을 가지지 아니하였다.
    그러나 이제 우리의 주장은 오경의 언약신학이 사실상 선지서의 멧세지의 핵심구조를 형성한다는 것이다. 선지서의 멧세지의 내용은 정죄 - 심판 - 소망이라는 세가지 축 속에서 주어진다고 볼 수 있다. 이 세가지 내용은 어디서 근거를 찾을 수 있을 것인가 ?
    (ㄱ) 정죄 : 대부분의 선지서의 멧세지의 출발은 법을 어긴 이스라엘에 대한 강렬한 정죄와 책망에서 시작된다. 이것은 무엇을 말하는가 ? 그것은 이 멧세지를 받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미 선지자가 말하는 법이 무엇인가를 알고 있었다는 것을 나타낸다. 이렇게 선이해된 이스라엘 백성의 법의식은 어디서 근거를 가지는가 ? 그것은 이미 주어진 언약법에 근거한 것임이 명확하다.
    (ㄴ) 심판 : 또 한 사람에 대한 심판보다 이스라엘 민족과 나라 전체에 대한 심판의 선언은 어디서 근거를 가지는 것인가 ? 그것은 다름아닌 이미 선포되고 알려진 언약적 저주의 당연한 귀결인 것이다.
    (ㄷ) 소망 : 그리고 남은 것은 거의 대부분의 선지자에게서 나타나는 갑자기 나타나는 소망의 멧세지의 근거는 어디에 있는가 ? 모든 인생의 문제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마음의 문제이다. 즉 선지자들은 마음의 근본적인 문제를 일소하는 소망의 멧세지를 과연 어디에 근거하여 외쳤겠는가 (예 : 렘 31:31-34의 새언약, 겔 36-37의 화평의 언약) ? 그 소망은 이스라엘의 회개를 궁극적인 근거로 한 것은 아니었다. 하나님이 거저 행해 주시는 것이라는 점이 특이한 것이다. 이 소망은 바로 모압언약의 마지막 부분인 신 30장에서 발견할 수있다. 특히 신 30:6에서 선지자가 그렇게 안타깝게 마음에 할례를 행하라고 외치던 선포가 하나님에 의해서 거의 자동적으로 행해져 버리는 것은 모든 선지자의 소망의 선포의 핵심을 이루고 있다.
    그러나 신 30:6은 주위의 문맥 속에서 아주 특이하게 표현되어 있다. 신 30장에서 이스라엘의 회개의 책임을 끝까지 강조하는 가운데 이 멧세지가 주어졌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거의 자동적으로 인생의 마음의 할례를 행해 주시는 것을 신 30:6에서 말하고 곧 다시 이스라엘의 회개의 책임을 말하는 것으로 넘어가 버렸다. 이것은 게으른 인간들이 이런 자동적으로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을 쉽게 발견하지 못하도록 하며 인간편에서는 끝까지 책임을 다하여 회개하며 노력해야 할 것을 말하고 최종적으로 그 한계에 도달했을 때에 모든 문제를 해결하시는 하나님의 자비가 주어지는 것을 말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책임과 행동의 문제에 있어서 줄다리기를 하고 있는 것과 같다고 할 수 있다. 이런 신명기의 멧세지는 원리적으로 주어진 것이다.
    그러나 선지자의 상황은 다르다. 그들은 구체적인 현실, 즉 이스라엘의 범죄에 대한 하나님의 정죄와 그 구체적인 심판을 지금 경험하거나 앞으로 할 상황 속에서 멧세지를 받고 있다. 심지어 현재의 이스라엘이 자기 시대에 완전히 파멸할 것을 선언하여야 했다. 이런 상황 속에서 갑자기 이스라엘이 회복되는 멧세지가 주어지며 가장 중요한 인간의 심성이 고쳐지며 마음의 할례가 행해지는 역사가 주어질 것을 선포한 것이다. 특히 이것이 대선지서 중의 두 책인 예레미야와 에스겔에서 각각 새언약과 평화의 언약으로 표현된 것이 중요한 것이다. 즉 그들은 각각의 멧세지 속에서 새로운 언약 속에 궁극적인 소망을 걸고 있는데 그것은 신 30:6이 말한 사람의 마음이 할례를 받는 것이 궁극적으로 성취되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오경의 언약신학 특히 신명기에 나타난 모압언약은 선지서의 멧세지의 핵심을 형성한다고 할 수 있다.

    (2) 오경의 언약과 역사서
    신명기와 역사서의 첫 번째 시리즈인 여호수아서-열왕기서의 관련성은 누구나 인정하는 것이다. 즉 이 첫 번째 시리즈의 각 책은 궁극적으로 신명기의 신학에 영향을 받고 있다. 그 내용은 결국 선지서에서와 같이 정죄와 심판의 멧세지로 나타나며 그 속에 일단의 소망의 요소를 보이는 점도 있다는 점에서 그러하다. 그 중에서도 열왕기상 8장의 솔로몬의 기도에 나타난 내용들은 거의 신 28장이나 레 26장의 저주에서 나타난 목록과 유사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 기도의 마지막 부분에 나타난 포로가 된 이후의 상황에서 하나님의 용서와 그 결과로 이스라엘을 돌이키심을 탄원하는 장면은 신 28장과 함께 신 30장의 모습을 깊게 담고 있다. 그러나 이 첫 번째 시리즈 역사서는 궁극적으로 마지막 점은 북조 이스라엘과 남조 유다의 멸망이다. 그러므로 이 시리즈에서 주로 나타나는 멧세지의 내용은 이스라엘의 소망은 법을 지킴에 있고 이스라엘의 범죄의 결과로 주어진 하나님의 심판은 의로우므로 이스라엘은 이제 회개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역사서의 두 번째 시리즈인 역대기-에스라-느혜미야는 상황이 전혀 다른 가운데 주어진 책들이다. 하나님의 심판의 시간은 지나갔고 지금은 회복의 시기가 되었다. 오랫동안 이스라엘에 소망을 잃고 사는 사람들에게 필요한 것은 하나님이 과거에 주신 소망의 멧세지를 회고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스라엘이 언약법에 다시 진정으로 돌아가고 하나님과의 언약을 갱신하는 것이다 (느 7-9장).
    이것으로 역사서도 그 궁극적인 멧세지의 내용은 하나님과의 근본적인 언약을 갱신하는 것이고 그것에 돌아가는 것이다.

    (3) 오경의 언약과 시가서
    시가서가 탄생된 근본을 이스라엘의 언약갱신의 상황 속에서 찾는 학자들이 제법 많이 있다. 그 중에서도 S. Mowinckel의 이론을 수정한 A. Weiser는 이런 주장을 하는 대표적인 사람이다. 그는 많은 호소력있는 주장을 하여 많은 시들이 그 근본적인 출발이 이스라엘이 하나님과 맺었던 언약과 언약갱신에 근거하고 있음을 보였다. 그러나 근본적인 근거를 제시하지 못한 것은 오경의 근본적인 뒷받침을 받지 못하였기 때문이다. 그가 학문적인 활동을 하던 당시에 오경의 통일성이 인정될 수 없었고 따라서 시내산언약과 모압언약의 실체는 주석적으로 인정되지 않았다.
    그러나 이제 우리는 오경의 실체인 시내산언약과 모압언약을 규명한 유리한 입장에 있다. 그러므로 시가서에 나타난 언약과 관련된 수많은 주제들을 쉽게 다룰 수 있게 되었다. 예를 들면 토라와 그 구체적인 법의 내용에 대한 관심이라든가 (시 1, 19, 119, 15, 24), 언약갱신과 직접 관련된 시편과 함께 (시 24, 50), 참된 제사나 예배에 대한 관심, 등과 같은 것이 있다. 시가서의 많은 내용들은 신 31:9이하에서 주어진 매 7년마다 정기 초막절에 공적으로 치루어야 할 언약갱신축제에 근거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그 이후에 만들어진 왕제도와 예루살렘 성전과 같은 주제들이 많이 있지만 이런 주제들도 궁극적으로 독립적인 것이 아니라 여호와 하나님이 이스라엘과 맺은 근본언약에 기초로 하고 주어진 것이며 발전된 형태의 것이다.

    (4) 오경의 언약과 지혜서
    서구의 구약신학, 특히 독일의 구약신학에서 천대를 받고, 구약의 본질과의 연관성을 잘 맺지 못하는 것으로 생각된 부분이 지혜서이다. 지혜서는 하나님과의 언약과 상관없는 인간의 깊은 자기반성과 성찰의 결과로 주어진 것과 같이 생각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것은 피상적인 관찰의 결과라고 할 수 있다. 지혜서의 근본적인 주제는 여호와를 두려워함이다는 것은 누구나 인정한다. 그리고 지혜서에서 강조하는 것도 여호와의 토라라는 점도 인정한다. 그러나 이제 우리는 어떻게 지혜가 여호와를 두려워하는 것이 되었으며 또 그것이 토라를 지키는 것과 관련되었는지를 물어야 한다. 왜 이스라엘의 지혜는 여호와를 두려워하는 것이 되었을까 ? 우리는 그 대답을 다른 곳이 아닌 바로 언약에서 찾을 수가 있다. 언약에서 중요한 두 번째 요소가 바로 언약당사자의 직접대면이다. 이 점을 거의 대부분의 학자들이 놓친 이유는 출 19:9-25에 대해서 일방적인 주석을 하였기 때문이다. 이 본문을 너무나 단순하게 하나님의 임재, 즉 신현(theophany)이라고 정의한다. 그러나 이 부분은 하나님의 내려오심만 있는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의 올라감도 있다. 왜 동일한 장소에 동일한 시간에 하나님은 내려오시고 이스라엘은 올라가는가 ? 그것은 언약의 당사자들이 이제는 중재자를 통해서가 아니라 공적으로 서로 마주 대하기 위해서이다. 즉 이 장면은 이 발표의 1.2에서 정의한대로 언약당사자의 공적 대면을 그리고 있다.
    이 해석은 시편과 선지서에 나타나는 신현에 대한 기존의 잘못된 해석을 수정할 수 있는 엄청나게 중요하다. 그럴 뿐 아니라 이 해석은 지혜서가 어떻게 성경신학적으로 구약 책중에서 고아가 되거나 구약의 변두리가 아니라 ,구약의 핵심과 직결하고 있음을 보인다. 즉 지혜서의 근본인 하나님을 두려워함은 바로 이스라엘이 하나님과 근본적인 시내산 언약을 세울 때에 경험하였던 그 두려운 하나님을 정당하게 두려워하는 것에서 나온 것이다. 즉 민족으로서 이스라엘이 하나님과 세운 원초적인 언약체결의 경험에 돌아가서 하나님을 만나는 그 두려움에 돌아간다. 그리고 이것은 다음의 문제를 해결하는데 도움을 준다. 하나님을 두려워함을 기본으로 하는 지혜서에 나타난 하나님의 법에 대한 강조는 언약을 맺을 때와 관련있다. 즉 언약을 맺을 때 두 번째의 과정인 언약당사자의 공적대면에 이어지는 것은 바로 언약조건인 법을 제시하고 수납하는 원초적인 과정과 지혜서의 내용이 일치한다. 이것은 바로 신 4장에서 근본적으로 천명되었다. 즉 이스라엘이 시내산에서 하나님과 만나 두려움을 경험한 것과 그 하나님의 토라를 지킬 것을 말한 것은 지혜서 신학의 근본내용과 일치한다.
    이런 면에서 오경의 언약신학은 지혜서 신학의 근간을 형성한다. 이런 면을 이해하지 않고 오경, 특히 신명기, 그리고 구약의 다른 책을 설교할 때에 부분적으로 다루게 된다든지 아니면 잘못된 태도로 다룰 수가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신명기를 설교할 때 가지는 가장 중요한 장점은 이런 성경신학의 핵심과 정점을 다루게 된다는 것이고 이것을 통해서 구약의 다른 책들을 이해하고 설교할 수 있는 신학적인 기초를 제공해 준다는 것이다.

    3. 신명기의 핵심으로서 모압언약의 성경신학적인 특이성
    예수님이 시험을 이기실 때에 사용한 세 번의 성경귀절이 나온 신명기는 과연 어떤 책인가 ? 이 질문에 대하여 우리는 신명기의 핵심이 모압언약이며 (신 5-28), 이 내용을 설명하고 보충하는 것이 (신 1-4, 29-34) 현재의 신명기이다 라고 대답하려고 한다. 그 구체적인 모습을 이제 살펴보자.

    3.1. 땅의 신학으로서의 신명기 언약신학
    신명기의 신학적 특성의 하나가 땅이라는 점에는 많은 학자들이 동의한다. 그러나 이 때까지 대부분의 연구경향이 분석적이고 부분 부분을 독립적으로 다루어 왔기 때문에 그것이 어떻게 앞의 책, 출애굽기-민수기와 관련하는지를 잘 밝힐 수가 없었다.
    그러나 우리는 이 발표 2.2.에서 이미 본 바와 같이 신명기의 모압언약은 근본적으로 시내산언약과 하나가 되어서 하나님 나라 형성에 기여한다. 즉 시내산언약은 하나님 나라의 씨의 완성에 관련하나, 모압언약은 하나님 나라의 땅의 완성에 관여하는 것이다. 시내산언약이 공적으로 맺어진 것을 나타내는 출 19-24장과 그 언약의 후역사가 기록된 출 25장-민 36장은 결국 이스라엘이 요단강을 건너서 약속의 땅에 건너가기 전에 이미 그 씨가 완성된 것을 나타낸다. 반면에 모압언약은 이제 그 씨가 준비된 땅에 건너가서 어떻게 살 것인가를 다루고 있다. 그래서 그 땅에서의 삶의 구체적인 면들을 시내산언약의 경우보다 아주 상세하게 소개한다.
    그런데 시내산언약에서 씨의 신학과, 모압언약의 땅의 신학이 근본적으로 일치하는 것이 있다. 그것은 씨가 숫자적인 준비 그 자체로 완성된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님과 같이, 그 땅도 단순히 들어가서 정복하는 것으로 완성된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민수기에서는 인구조사가 두 번이나 나온다. 이것은 씨의 신학의 핵심을 그대로 보여준다. 씨가 아무리 충만한 숫자에 이르러도 그 씨가 언약적 순종의 삶을 살지 않을 때 하나님의 가차없는 심판을 받았다. 그래서 철저히 순종하기로 작정된 언약의 백성에 대한 두 번째 인구조사가 필요하였다. 마찬가지로 땅의 신학도 이런 조건성을 가진다. 아무리 그 씨가 그 땅을 정복하여도 그 땅에서의 삶이 언약적이지 않을 때는 그 땅에서 삶이 피폐해질 것이고 하나님의 경고와 심판에도 불구하고 돌아서지 않을 경우에는 그 땅에서 쫒겨나게 될 것이다.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언약의 백성이 되는 무조건적인 선택의 은총이 있었으나 이스라엘이 그 은총 아래 머물기 위해 언약에 순종하는 행동을 하지 않을 때 바로 그 조건 때문에 심판을 받게 되는 것이다. 이 점도 신명기 뿐 아니라 다른 구약의 책을 설교할 때에 결정적으로 중요한 요소이다.

    3.2. 토라란 무엇인가 ?
    신명기의 모압언약을 살펴볼 때에 생각해야 할 또 하나의 중요한 요소는 ‘토라’(Thorah)란 무엇인가 하는 문제이다. 성경의 한 책들을 그 전체로 이해하려는 시도는 분석적인 연구시대에는 불가능했다. 그러나 최근에 고전적 연구의 한계를 발견하고 성경 각권을 총체적으로 보려는 시도가 늘어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연구가 신명기에 적용되는데는 시간이 걸리는 것같다. 민수기 연구로 유명한 D.T. Olson은 최근에 쓴 신명기 연구서에서 이 문제를 다룬다. 이 문제를 다루면서 그는 신명기는 자신을 가리키는 용어로 토라를 선택했다는 것을 말하고 그 토라를 하나의 ‘카테키즘서(書)’로 인식한다. 이런 주석은 유대교적인 해석과 상통하는 것이 될 것이다. 그는 비록 신명기에서 토라라는 용어가 아주 특이하게 쓰였다는 것을 발견하였고 그것이 신명기 자체를 지칭하는 용어가 될 수 있다는 것을 발견하기는 했다. 그러나 그는 근본적으로 신명기의 핵심적인 내용이 모압언약이라는 점을 발견하지 못하였다.
    우리는 이제 이 점을 재정리하는 것이 필요하다. 신명기에서 ‘토라’라는 용어는 특이하게 쓰였다. 즉 신명기의 중심부분인 모압언약 자체를 가리키는 부분내에서는 (즉 신 5-28장) 신 17:18-19의 왕의 제도를 말할 때를 제외하고는 쓰이지 않았고 그 앞부분(신 1-4장)이나 그 뒷부분(신 29-34장)에서 주로 쓰였다. 특히 신 29-31장에 이 표현이 많이 나오는데 그것은 신명기가 자신의 언약의 문서를 지칭하는 용어로서 토라라는 용어를 사용하였다는 추론을 가능하게 한다. 이것은 마치 시내산언약의 언약문서가 ‘언약의 책’(the book of the covenant 출 24:7)라고 지칭된 것과 상응한다. 즉 신명기 기자는 자신의 책을 가리키는 용어로 창세기-민수기에서 아주 드물게 그리고 막연하게 쓰이던 용어인 토라라는 용어를 골라서 구체적으로 모압언약의 문서를 지칭하는 것으로 만들었을 가능성이 있다. 그러나 이 단어는 Olson의 생각과 같이 막연한 법을 가리키는 용어가 아니라 언약을 가리키는 용어인 것이다. 토라는 모름지기 법이 아니라 언약인 것이다.
    이런 ‘토라’ 해석은 유대교적인 토라 해석과 근본적으로 방향을 달리한다. 이 토라가 단순히 위에서 주어진 지켜지지 않으면 벌받는 법이 아니라,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은혜로 선택하고 가장 보배로운 백성(am segullah)으로 언약을 세웠고 이 언약을 계속 유지하기 위하여 주신 것이 언약법인 것이다. 그러므로 이 언약법은 단순히 위에서 강압적으로 주어진 것이 아니라 언약을 계속적으로 유지하기 위한 수단으로 주신 하나님 편에서 보면 사랑의 표현이다. 토라는 궁극적으로 언약을 말하는 것이지 법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이 점이 유대교의 토라이해와 근본적으로 달리하며 또 고대 근동의 강압적인 법이해와도 근본적으로 다르다.
    이 해석은 구약의 다른 책에서 표현된 토라를 이해하는데 도움을 준다. 거기서 표현된 토라를 대부분 법 그 자체로만 이해하려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그 속에서 더 근본적인 언약적인 요소를 빼어버릴 때는 구약의 신학적인 내용은 유대교의 틀을 결코 벋어날 수 없을 것이다. 이 점이 신명기를 통하여 다른 구약의 책들을 설교할 때에 중요한 것이다.
    3.3. 언약과 법의 상관관계
    위의 내용은 더 근본적인 문제와 관련되어 있다. 그것은 언약과 법의 상관관계이다. 일반적으로 구약의 법을 일반법이나 다른 종교의 법과 유사한 것으로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구약의 법은 일반법과 같이 인간들이 단순히 법 앞에만 서 있는 그런 것을 전제로 하지 않는다. 또 다른 종교의 계율과 같이 단순히 신이 위에서 내려주어서 인간이 지키도록 한 법은 아니다. 구약법의 독특성은 그 법 자체에 있다기 보다 그 법의 존재바탕인 언약에 있다. 즉 법은 그 자체로 유효한 것이 아니라 언약이라는 제도 속에서 효력을 발휘한다. 언약이 있어야 법이 효력을 발휘하는 것이다. 이 점이 시내산언약을 맺기 전에는 (출 16-18) 이스라엘이 물과 빵의 문제로 하나님께 범죄하였으나 심판받지 않았으나 언약맺은 후에는 (민 10이하) 동일한 문제로 하나님은 심판을 하셨다는 사실에서 나타난다.
    또 언약은 법적인 행동의 동기를 제시한다. 즉 법적인 행동을 하는 이유는 단순히 저주를 면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언약을 맺은 다른 상대가 이런 일을 요구하였기 때문이다. 그(하나님)가 이렇게 요구하는 것은 그가 이스라엘을 은혜속에서 선택하였기 때문이다. 그런 은혜를 받은 이스라엘은 언약법에 따라 행동할 것이 요구되었다. 은혜의 언약에 근거하여서 법적인 행동을 하는 것이 구약 법철학의 근원이다.

    3.4. 신명기의 언약은 두 장소 (모압/세겜), 두 시간(현재/미래), 두 지도자 (모세/여호수아)에 의해서 만들어진 특이한 언약이다.
    신명기의 언약이 쉽게 발견되지 않았던 이유가 있다. 그것은 신명기에 표현된 언약이 시내산언약이 출애굽기에 표현된 것처럼 언약을 맺는 여러 단계가 순서대로 기록된 것이 아니라 신명기의 특별한 목적을 따라서 완벽하게 재조정되어서 배치되었기 때문이다. 이렇게 된 것 이스라엘이 이제 모압 땅에서 언약을 갱신해야 했기 때문이다.
    언약갱신은 언약당사자가 바뀌었거나 상황이 바뀌었을 때 이루어진다. 그러면 시내산언약의 상황에서 바꾸어진 신명기에서의 상황은 무엇인가 ?
    (1) 우선 이스라엘은 세대교체를 마무리하였다. 최초의 언약을 맺었을 때의 세대는 다 광야에서 엎드려졌다. 이제 새로운 세대가 일어나서 이스라엘의 핵심을 이루고 있다.
    (2) 이스라엘은 약속의 땅에 들어가야 하며 그 땅에서 언약을 갱신해야 한다.
    (3) 이스라엘의 지도자 모세가 약속의 땅에 들어갈 수 없기 때문에 새로운 지도자로 세대교체를 하여야 했다.
    이런 상황 속에서 언약갱신을 하는 길을 다음과 같은 것이었다. 즉 모든 것을 다 주관하고 다스리던 이스라엘의 위대한 지도자 모세가 할 수 있는 것을 지금 이 모압 땅에서 준비해 주는 것이다. 그리고 나머지 언약체결제사와 같은 예식은 일정한 순서를 따라서 하면 되므로 차세대 지도자에게 맡겨서 그가 미래에 가나안 땅(세겜)에서 행하도록 한 것이다. 그러므로 신명기에 나와있는 이 언약은 아주 특이한 형태를 띄게 되었다. 즉 위에서 언급한 언약의 다섯 단계중에서 처음 세 단계는 모세가 다 준비하여서 지금 모압에서 수행해 놓았다 (언약관계의 선언, 언약당사자의 만남, 언약법의 선포). 그리고 나머지 두 단계는 미래에 세겜에서 행하도록 한 것이다 (언약체결/비준제사와 축복과 저주, 언약의 피로연). 모세가 지금 마련하는 준비는 모든 법적인 것들이며 여호수아가 나중에 할 일은 모든 제의적인 것이다. 그래서 이 둘이 하나가 되도록 한 것이다. 다음과 같이 요약할 수 있다 :

    장소/시간 수행자 / 내용들 / 성경구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