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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사속의 명설교

    서사적 설교(Narrative Preaching)와 마가복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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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경본문: | 설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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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사적 설교(Narrative Preaching)와 마가복음

    심 상법 교수(총신대 신대원 신약학)

    <들어가는 말>

    70년대 말(末)에서 시작하여 80년대에 이르러 설교에서의 스토리 전달기법(storytelling method)에 대한 관심이 여러 학자들(Jensen 1980; Bass 1982; Craddock 1978, 1979, 1985; Lowry 1980, 1985; Rice 1980; 등등) 에 의해 고조되어 왔다. 이것은 현대의 설교가 지나치게 딱딱하거나 단조롭고 생동감이 없는 (교리적/사변적) 모습 때문에 그러하다고 하겠다. 이런 까닭에 최근 설교의 갱신에 대한 방법으로서 스토리 설교 혹은 스토리 전달기법이 소개되었다(Eslinger 1987:17). 특별히 복음서에 대한 문학적 해석의 시도들(수사적 해석을 포함)이 1980년대에 이르러 활발하게 진행되면서 복음서 설교에 있어 서사적 설교(narrative preaching)의 필요성과 중요성은 다양한 이유로부터 등장하게 된다. 그 중에서 복음서의 장르인식은 복음서의 서사적 설교에 대한 틀을 제공해 주었고, 여기에 그 당시 구전사회(oral society)에서의 서사기법 혹은 스토리 전달기법의 사용에 대한 이해는 복음서의 서사적 설교를 이해하고 형성하는데 매우 중요한 배경들을 제공하여 주었다. 이러한 관점에 비추어서 본 글은 해석학(hermeneutics)과 설교학(homiletics)에 있어서의 서사적 설교 혹은 내러티브 설교가 갖는 의미를 살펴볼 뿐 아니라 이러한 설교기법이 복음서 설교 - 특히 마가복음을 예로 들어서 - 에 어떤 공헌을 하는 지를 보다 구체적으로 살피게 될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고찰 전에 필자는 무엇보다도 스토리 혹은 스토리 전달기법(storytelling technique)이 우리의 일상에서의 의미전달(communication)에서 갖는 역할과 효과를 살펴봄으로써 이 기법이 설교에 또한 얼마나 효과적인 것인지를 보다 강조하게 될 것이다.

    1. ‘스토리’ 혹은 ‘내러티브’에 대한 이해

    ‘스토리(story)’ 혹은 ‘내러티브(narrative)’란 인간의 삶 곧 문화(文化)를 반영하는 표현양식으로서 인간의 보편적 경험(과 역사)을 서술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삶 혹은 역사를 다루는 스토리는 보다 실제적이고(reality) 경험적이고(experience) 전체적이기(totality) 때문에 추상적이고 사색적이며 논리적인 개념(idea)과는 차별성을 둔다.

    원래 ‘스토리’(story)라는 단어는 ‘역사’(history)라는 단어와 동일한 어원(estoire -> histoire)에서 나왔고, 한 때는 정확히 같은 것을 의미하였다(cf. Robinson 1990:4). Oxford English Dictionary에 따르면 이 단어는 주로 역사(歷史)와 밀접하게 관련되어 다음과 같이 정의되었다: 1) “사실 혹은 사실로 추정된 것으로서 중요한 사건들과 관련되거나 다소 먼 과거의 사람을 칭송하는 설화(說話)”; 2) “역사적 작품 혹은 역사책”; 3) “일반적인 의미에서 역사적 작품이나 기록들; 지식의 한 부류로서나 픽션과 반대된 것으로서의 역사; 역사가에 의해서 기록된 사건들”; 4) “일어난 사건들에 대한 설명”. 물론 이 단어는 부가적인 의미로서 5) “실제적 사건들 혹은 대개 청중의 즐거움을 위해 고안된 가상적 사건들에 대한 설화(說話)”로 이해되기도 한다. 또한 웹스터 사전(제 8 판)은 이 단어를 1) “사건들의 기록”(an account of incidents or events); 2) “의문의 상황과 관련된 사실들에 대한 진술”(a statement regarding the facts pertinent to a situation in question)로 정의하는 것을 볼 때 흔히 사람들이 “스토리”라고 할 때 그것을 단순히 “허구”나 “거짓”으로만 이해하는 것은 매우 좁고 한정된 정의임을 알 수 있다.

    이처럼 ‘스토리’란 인간의 경험과 삶을 반영하는 사건들의 기록인 역사와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 그러므로 스토리 혹은 내러티브로 전달된 메시지는 삶의 한 부분(사건 혹은 일화: event or episode)으로서 우리에게 자연스럽게 다가온다.

    1) 스토리 혹은 스토리 전달기법의 중요성: 인간의 보편적 경험의 전달과 기억의 용이성

    인쇄매체의 문자시대가 아닌 고대의 구전시대에서는 스토리가 사회-문화 전반(특히 종교와 교육)에서 갖는 의미전달 혹은 의사소통(communication)에서의 중요성이란 이루 말할 수 없이 컸다. 우리가 성경을 통해 만나는 고대 유대사회나 초대 교회는 그들의 사고와 행동 양식이 전형적으로 스토리를 통해서 형성되는 사회였다. 커뮤니케이션에서 스토리가 갖는 중요성은 오늘날에도 마찬가지이다. 다중문화매체(multi-media)의 영상문화 속에 살아가는 현대인에게 ‘스토리적 사고’(thinking in story)란 이러한 문화를 수용하는 근본적인 통로로서 의미전달/의사소통의 효과는 매우 크다(Jensen 1995). TV, 영화, 컴퓨터, 심지어는 광고에 이르기까지.... 그리고 최근의 듣는 음악에서 스토리를 가미한 보고 듣는 ‘뮤직 비디오’(M TV)는 이러한 사실을 가장 극명하게 보여주는 한 예라고 할 수 있다.

    이처럼 스토리는 구전사회에서 뿐만 아니라 오늘날의 다중문화매체가 주도하는 전자사회에서도 인간의 보편적 경험을 자연스럽게 전달해주고 기억을 용이하게 해 주는 의사소통의 주요한 매개체임이 확실하다.

    커뮤니케이션에서 ‘스토리’ 혹은 ‘스토리 화법’의 중요성은 특별히 광고분야에서 가장 극명하게 드러나고 있다. 광고의 생명은 고객(구매자)으로 하여금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내용)를 저항 없이 가장 자연스럽게 수용하고 또한 잘(오래) 기억하게 해 주는데 있다. 이점에 있어서 스토리와 그 전달기법의 역할은 매우 크다.

    최근의 TV광고분야에 가장 격렬한 전쟁터가 있다면 그것은 이동 통신 광고라고 할 수 있다. 그 이유는 급속히 늘어나는 PCS 이동 통신에 대한 소비자들의 구매욕구와 함께 여기에는 엄청난 수익이 따르기 때문일 것이다. 이런 까닭에 자사제품의 선전을 위한 이동 통신 광고는 마치 전쟁을 방불케 한다. 그런데 이들 광고들을 관찰해 보면 대체적으로 하나의 에피소드(episode) 혹은 일련의 연속된 에피소드들로 구성되어 있음을 본다. 즉 최근의 커뮤니케이션 이론이 이 분야에 굉장한 영향을 발휘하고 있는데 그 중에 광고효과에 있어서 스토리 화법(story-telling technique)의 중요성이 여기에 잘 드러나고 있다. 특히 PCS 017의 TV선전은 ‘전파[017]의 힘이 강하다’는 주제를 중심으로 매우 코믹한 스토리로 구성되었는데 이러한 일련의 스토리는 청중들(소비자들)로 하여금 017이 얼마나 강한 이동 통신인지를 보다 쉽게 그리고 오래 기억하도록 해 준다. 이 점은 016의 ‘소리가 보여요’의 광고 시리즈나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습니다’라는 011의 광고 시리즈에도 마찬가지다. 그 중에 017의 TV선전을 한 예를 살펴본다면:

    배경 #1: 울릉도 앞 바다...
    이 창명: (이동 전화기를 들고 조그마한 배에서 물을 퍼내며 외침) 짜장면 시키신 분!!!
    장면이 바뀌면서,

    배경 #2: 마라도 앞 바다...
    김 국진: (역시 이동 전화기로)미안한데 말이야. 내가 마라도로 옮겼어.
    이 창명: 네? (충격을 받고) 못 살아! (외치며 물에 풍덩 빠짐)
    (얼마 후, 마라도 근처에 한 상어가 지나가며 철가방이 표류하는 것을 본) 김 국진은 매우 놀라며 “창명아!”라고 안타깝게 외침. (최근 광고에 이 부분은 삭제되고 상어에 쫓기는 이창명을 김국진이 구해주면서 “017이 과연 세지”로 바꾸어 졌다.)
    이어서 광고의 주제인 ‘전파의 힘이 강하다. 파워 디지털 017’이 나온다.

    위의 TV 광고에서 보는 대로 이러한 스토리(story)를 통한 의미전달은 인간의 보편적인 혹은 일상적인 삶의 모습으로 투영하여 전하기 때문에 설득하고자하는 메시지를 자연스럽게 전달해 줄 뿐만 아니라, 또한 듣는 사람들의 마음속에 전달하려는 주제가 일련의 영상(映像)으로 남기 때문에 기억하기에도 매우 쉽고 또한 오래가는 장점을 가지고 있다. 이점은 TV 드라마나 영화 혹은 비디오에서도 마찬가지다.

    이러한 의사전달의 기법은 예수님의 가르침 속에서도 잘 나타난다. 복음서의 중심된 주제들 중에 하나인 ‘하나님의 나라’에 대한 예수님의 가르침이 주로 비유(parable)로 주어진 것도 이러한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다(즉 비유는 전하고자 하는 주제와 일상의 스토리와의 관련성을 통해 기억과 전달을 쉽게 할 수 있다). 이러한 예수의 가르침에 대해 막 12:37에 보면 “백성이 즐겁게 듣더라”고 언급하고 있는데 이것이 스토리기법이 갖는 의미전달의 탁월한 예가 된다. 사실 이러한 전달기법은 초대교회의 메시지 전달의 주된 표현양식이었다(Wilder 1964:64).

    2) 성경 장르의 주요 유형으로서의 스토리와 스토리 전달기법

    성경의 상당한 부분이 “스토리(story)”라고 부르는 설화[說話] 문학(narrative literature)으로 되어 있다. 그러나 많은 설교자들이 본문에 있는 그와 같은 형태대로 이 부분을 설교하지 않기 때문에 이런 타입의 설교의 이점(利點)을 충분히 안식하지 못하고 있다. ‘스토리’란 내재된 일정한 틀과 예증하고 있는 영원한 진리를 포함하고 있으며, 또한 이야기 자체 내에 적용이 들어 있다.... 그러므로 강해 설교자는 성경의 스토리 부분을 자신의 설교에 유익한 자료로 사용할 수 있다[Duel 1992:383(한국 번역판)].

    위의 언급은 성경적 설교의 한 부분으로서 ‘서서적 설교’(narrative preaching)의 필요성과 중요성을 잘 피력하고 있다. 어떤 사람도 성경의 주요 표현 양식이 이야기 형태(story-type)로 되어 있다는 사실을 결코 부인할 수 없다.
    성경에서 이야기 형태로 기술된 것은 주로 역사적 기사들(historical narratives)을 묘사되고 있는 부분들(구약에서는 모세 오경의 대부분과 역사서들[창세기에서 열왕기하와 에스더서를 포함한 그 외의 역사서들]과 선지서의 여러 부분이며[Berlin 1983:13]; 신약에서는 사복음서와 사도행전이 크게 이에 속한다)로 이것들은 단순히 추론과 관념적 세계(개념의 집합체)의 영역을 벗어나서 역사적 삶의 세계를 다루고 있는 것들이다. 무엇보다도 이것들은 계시와 현실(또는 더 넓게 역사라고 부를 수 있음)이 결합된 구원사적 스토리이기 때문에 우리는 여기서 신앙적 삶의 깊이를 배울 수 있다.

    그러므로 이러한 서사적인 성경의 이야기를 딱딱한 관념적인 언어로 표현하여 설교한다면 그것은 성경 자체의 독특한 표현양식을 바꾸어 버리는 일종의 ‘비성경적인’(unbiblical) 설교형태로 간주될 수 있다. 이점은 이미 오래 전에 예일대학교 신학대학원에서 신약학을 가르치며 또한 그곳의 원장을 지냈던 린더 켁(Leander Keck) 교수가 주장한 대로 ‘성경적 설교란 성경이 설교의 내용을 결정하고 설교의 기능이 성경 본문의 기능과 유사할 때를 말하는 것’으로서 이것은 한 마디로 “설교가 성경적인 방법 가운데서[필자의 강조] 성경적인 말씀을 전할 때”(it[preaching] imparts a Bible-shaped word in Bible-like way)를 말한다(Keck 1978:106; cf. Long 1987). 만약 설교자가 성경의 이러한 표현양식을 무시한 채 그것의 의미만을 단순히 개념적으로 전달한다면 청중은 성경의 그러한 부분에 의도된 역동적인 의미효과를 상실하게 된다(Wilder 1964:127-128; Holbert 1992:25).

    이처럼 스토리 전달기법은 과거의 신앙적 세계(받은 전통)를 현재의 청중들에게 친근하고 생동감 있게 전달해 주기 때문에 청중은 보다 자연스럽게 스토리의 세계 속으로 들어가(참여) 거기서 신앙적 가치를 큰 저항 없이 쉽게 주고받게 된다. 특별히 고대 구전사회(oral society)에서 스토리 형식의 전달 방법(storytelling technique)은 오늘날의 의사소통 혹은 의미전달(communication)로 말하자면 TV나 컴퓨터나 영화와 같은 주된 영상매체 혹은 멀티미디어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다. 우리가 아는 대로 그 당시 사회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문자로 책을 읽는 사회가 아니라 소리내어 읽혀지고 듣는 사회(oral-aural society)이기 때문에 그들의 귀에 잘 남고 마음의 영상에 잘 새겨지고 오래 기억될 수 있는 여러 가지 구전 기법들(oral techniques), - 특히 시적 표현과 스토리형식 - 은 그들의 의사소통(의미전달)에 매우 중요한 방법이었다(Wilder 1964:63-64). 여기에 스토리 형태의 의미전달기법은 공동체의 주요 역사(歷史) 혹은 전통(傳統)을 보다 잘 전수해 주었다. 그러므로 이러한 전달기법은 우리가 논의할 ‘서사적 설교’(narrative preaching)를 이해하는데 적절한 통찰을 준다.

    2. 복음서 연구와 서사비평(narrative criticism)

    최근 복음서 연구에 서사비평(narrative criticism)이 남긴 공헌은 지대하다(마가복음의 Rhoads; 마태복음의 Kingsbury; 누가-행전의 Tannehill; 요한복음의 Culpepper; Stibbe; Powell; 등등). 특별히 ‘내러티브’(narrative)로서 복음서의 장르인식은 복음서 연구에 하나의 새로운 장을 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Shim 1994, 1995). 우리의 복음서 설교는 복음서가 쓰여진 이러한 형식(type)을 결코 간과해서는 안될 것이다. 복음서의 장르인식과 더불어 복음서 연구에 또 다른 주요한 공헌이 있다면 그것은 구전 사회(oral society)에 대한 이해라고 할 수 있다(Ong; Kelber; Dewey; Shim). 이 둘은 필자가 이미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복음서의 서사적 설교를 이해하고 형성하는데 주요한 시발점이 된다. 그러므로 마가복음의 서사적 설교의 이해를 위해서 먼저 이 둘을 적절히 논의하여야 할 것이다.

    1) 복음서의 장르이해와 서사적 설교
    복음서 자체는 거의 대 부분이 인물(人物), 배경(背景), 사건(事件), 그리고 대담(對談)으로 구성된 일종의 스토리 형식을 지닌 내러티브(narrative)로 기술되어 있다. 그러므로 복음서에 대한 내러티브적(인 특징들에 대한) 이해는 복음서의 의미 산출(meaning construction)과 의미 효과(meaning effect)에 있어서 과히 필수적이라고 할 수 있다. 그 이유는 ‘내러티브’는 내용(content)과 형식(form) 둘 다에 깊이 연루되어 있는 장르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이유로 최근 복음서 연구에 있어서 내러티브에 대한 장르인식이 갖는 주석적 또는 더 나아가 설교적 의미와 역할이 많은 학자들에 의해 논의되었다(Shim 1994, 1996).

    그것의 정의를 살펴본다면:

    ‘내러티브(narrative)가 무엇이냐?’고 질문하면 흔히 그것은 곧 스토리를 의미한다고 대답하는데 그 대답은 옳지만 충분하지는 않다. 내러티브가 곧 스토리라는 이해는 매우 단순한 이해라고 할 수 있다. 내러티브는 확실히 스토리의 내용과 형식을 지닌다. 그러나 내러티브는 스토리 이상의 것 곧 스토리(story)에 해설자(narrator)가 포함(현존)된 것을 의미한다(Scholes & Kellogg 1966:4; Fackre 1983:341). 이점은 최근 서사학(narratology)을 통해서 잘 논의되어 왔다(Scholes & Kellogg 1966; Bal 1985, 1991; etc). 특히 고대 내러티브에 대한 Scholes와 Kellogg의 정의(1966:12)를 참고하여 복음서의 내러티브를 이해한다면 ‘내러티브’(narrative)란 ‘전통적 이야기(그것이 ‘역사’든 ‘케리그마’든 간에)를 다시(새롭게) 말한 것’(the retelling of a traditional story - whether history or kerygma)으로 본문의 내용(What)과 형식(How)을 모두 고려한 “역사든/와(or/and) 케리그마와 내레이션의 혼합체”로 이해된 장르인식을 말한다(Shim 1994:).

    이것을 간략하게 도표로 이해하자면 다음과 같다:

    STORY + DISCOURSE
    ‘내러티브’로서의 복음서 => ‘전통적 스토리’를 다시[새롭게] 말함

    역사적 사건들/사도적 전승 수사학적 기법
    (내용) (형식)

    복음서의 경우 역사성에 기초한 복음서의 내용(content)으로서 ‘전통적 스토리’(traditional story)란 ‘예수의 생애에 대한 역사적 사건들’ 혹은 더 엄밀하게 말한다면 ‘예수의 생애에 대한 사도적 전통들’을 말하는 것이고, 그것을 ‘다시 말함’(retelling)이란 과거의 역사적 사실을 단순히 녹음기처럼 반복하여 말하는 것이 아니라(repetition의 의미가 아님), 청중의 상황을 적절하게 고려한 복음서의 저자가 그 상황에 맞게 자신의 특별한 관점과 의도를 가지고 ‘말함’(telling), 즉 ‘새롭게 말함’을 의미한다. 여기서 ‘다시 말함’(retelling)에 대한 인식은 우리의 서사적 설교(narrative preaching)를 이해하고 체계화하는 데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이점은 다음 단락에서 보다 자세하게 논의할 것이다.

    이러한 장르인식은 역사성에 기초한 복음서의 내용(what)에 대한 강조와 함께 그것의 전달방식인 형식(how)을 고려한 것으로서 여기에는 저자의 의도(intention)와 청중에 대한 수사학적 효과(effect)의 중요성에 대한 강조가 동시에 나타난다. 즉 ‘내러티브’(narrative)로서의 이러한 장르인식은 우리의 복음서 설교에 다음과 같은 두 가지 강조점을 갖도록 해 준다.

    1) 첫 번째는 복음서의 (작품)세계에 대한 적절한 이해로 나아가게 해 주는데 복음서의 세계 즉 인물, 배경, 사건과 담화로 구성된 스토리 세계(story world)에 대한 이해는 서사적 설교의 골격(骨格)을 형성해 준다.

    2) 두 번째는 복음서의 저자가 예수의 생애에 대한 [역사적/전통적] 스토리(story)를 자신의 청중들의 상황(문제)에 비추어서 적절하게 ‘다시(새롭게) 말함’(retelling)으로써 예수님의 생애에 대한 의미를 보다 역동적이며 효과적으로 전달하고 있음을 깨닫게 해 준다.

    결과적으로 ‘내러티브’(narrative)로서 복음서에 대한 장르인식은 복음서의 주해와 설교에 새로운 지평을 열어준다. 특히 이러한 장르인식은 서사적 주해와 설교에 있어서 복음서의 스토리 세계(복음서의 내용)에 대한 이해(인물; 배경; 사건과 그에 따른 줄거리/구성 이해)와 함께 그것의 전달기법과 효과(복음서의 형식)에 대한 강조를 가진 수사학적인 이해로 나아가게 해 준다(cf. Shim 1994:79-80). 다시 말하면 이러한 내러티브적 장르인식에 기초한 서사적 설교는 특정한 본문 혹은 사건의 의미를 복음서의 세계, 즉 복음서 전체의 스토리 세계(narrative world) 안에서 이해하도록 해 줄 뿐만 아니라, 그것이 가지는 수사학적 이해를 통해서 복음서 저자의 의도(개개의 사건들이 가지는 원 의미)를 파악하여 이것을 다시 현재의 청중의 상황에 어울리는 스토리의 형식(이것을 유진 로우리는 ‘homiletic plot\이라고 부름)으로 전환하여 본문의 메시지를 재조정(redirection)하고 재진술(restatement)하여 전달함으로써 청중의 적극적 참여와 반응을 자연스럽게 유도하여 설교의 효과를 극대화시켜준다.

    이러한 장르인식은 또한 구전(口傳:orality)과 구전 사회(oral society)를 이해할 때 복음서의 서사적 설교의 효과를 보다 잘 감지할 수 있다.

    2) 구전사회에서의 서사기법과 서사적 설교
    흔히 문자시대 혹은 인쇄시대 전의 사회를 구전사회(oral society)라고 부르며 그러한 사회의 문화를 구전문화(oral culture)라고 부른다. 구전문화의 커뮤니케이션은 현대의 인쇄문화의 것과는 달리 모든 의사소통을 귀(ear)에다 호소한다. 이 경우 기억(memory)은 지식획득의 근본적인 통로이다. 구전사회는 그 나름대로의 전달기법을 가지는데 우리는 이것을 구전기법이라고 부른다. 지금의 (신약) 성경은 구전문화의 산물로서 우리가 성경의 메시지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구전문화와 그에 따른 의사소통 혹은 의미전달(communication)의 특징들에 대한 이해가 반드시 선행되어야 한다. 특히 신약의 복음서를 이해하는데 있어서 우리가 주지해야 할 구전-문화적 의사소통의 특징들로는(Jensen 1995:17-29):

    1) 문자를 조용히 읽는 눈보다는 전해진 말로 듣는 귀에다 호소하는 의사소통이었기 때문에 반복법과 같은 구전기법들을 중시한다(어거스틴과 암부르스의 예).
    2) (추상적) 개념의 서술이나 나열보다는 사건을 알리는 일화적 스토리로 그 메시지가 전달되었다.
    3) 짧은 일화들(사건중심으로 전래된 구전들)이 함께 꿰어져서 구성되었다.
    4) 꿰진 일화들이 반드시 선적인 정확한 시간구성으로 되지는 않았다(사건으로 받아들여진 스토리 전개): 회상 혹은 예견형식.
    5) 시간적이고 논리적인 개념 이해에 중점을 두기보다는 청중을 스토리 세계 안으로 자연스럽게 참여시켜 그 세계를 경험하게 하고 거기서 실제적 교훈과 삶의 변화를 촉구한다(미쉬나 혹은 미드라쉬의 예).
    6) 그 당시 복음서의 기자(설교자)는 일종의 (성령의 능력에 의한) 역동적 재담가(storyteller)였다.

    이러한 특징들에 비추어서 복음서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고대의 세계에서의 역사기술에 대한 적절한 이해가 있어야 한다. 고대사회에서의 역사기술은 현대사회에서의 역사기술과는 다르다. 물론 고대사회라고 해서 역사의 기술(記述)이 사실(fact)에 기초하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그러나 그들의 역사기술은 인쇄매체가 발달된 오늘날처럼 정확한 사실들을 문자로 다 남길 수 없기 때문에 구전형태에 적합하게 전달되어야 하였다. 이러한 구전형태로서의 역사전달은 글자를 모르는 대다수의 문맹의 청중들에게 그것의 오랜 기억과 효과적인 설득을 위하여 사실규명에만 그치는 역사기술이라기 보다는 오히려 교훈적이며 교육적인 내용에 강조를 둔 ‘극적 역사’(dramatic history)로 전달되어졌다(Shim 1994:66). 한마디로 ‘극적 역사’로서의 이러한 역사전달은 듣는 청중들로 하여금 전해진 역사를 현재적인 사건으로 받아들여 그러한 역사에 참여케 하는 스토리 형식으로서의 역동적인 역사기술과 역사전달을 의미한다.
    ‘극적 역사’로서의 이러한 모습은 특별히 성경의 복음서와 같은 소위 ‘거룩한 역사’(sacred history)를 전달(기술)함에 있어서 더 잘 드러났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생애의 ‘거룩한 역사’를 기술하고 전달함에 있어서 저자는 무엇보다도 글자를 알지 못하는 청중(구전[口傳]의 청중)을 고려해야 하였고, 특별히 이 ‘거룩한 역사’가 이들 청중들 가운데 소리내어 읽혀져 전달되어야 하는 초대교회의 상황을 고려한다면 여기에는 이들 청중들의 귀(ear)에 쉽게 잘 전달되어지고, 일화적인 사건으로 마음(heart)속에 잘 각인(刻印)될 수 있는 다양한 구전기법들과 표현방법들이 고용되어야 하는데 여기에 탁월한 형태가 스토리형식이고 이에 따른 의미전달(communication)의 기법을 우리는 ‘스토리 화법’(story-telling method)이라고 부른다.

    의사소통의 이러한 전달 방법은 (인쇄매체에 적절한) 눈보다는 (구전매체에 적절한) 귀에다 호소하기 때문에 그 당시의 사람들은 이러한 성경의 ‘거룩한 역사’를 단순히 ‘개념적으로 생각하기’(thinking in ideas) 보다는 ‘스토리를 통해 생각하는 데’(thinking in story) 익숙하였다. 글자를 읽는 눈이 아니라 전해진 말을 듣는 귀에다 호소하는 구전의 스토리화법은 무엇보다도 ‘지식은 기억(memory)에 한정된다’는 것을 염두에 둔 것으로서 여기에는 inclusio, 반복법(repetition), 병행법(parallelism), 운율적 구성(ring composition), 관행어들이나 관행구들(stock words or phrases)의 사용과 같은 구전기법들이 고용되어졌다. 이러한 구전기법들과 함께 스토리를 통해 전달된 역사는 단순히 선적인 시간구성(linear time-plot)으로 서술(표현)되지 않고 때로는 과거의 사건을 ‘회상하는’(flashback) 형태나 또는 미래의 사건을 ‘예시하는’(foreshadowing) 형태에 의해서 사건중심의 스토리 형식으로 전달되기 때문에 청중은 들려진 스토리의 세계 안으로 자연스럽게 초대되어져서 그 세계 안에서 일어나는 사건들이 마치 지금 자신들의 세계 속에서 일어나는 것으로 경험할 뿐 아니라 자신들도 그 세계 속에 참여하여 거기서 자신들의 현실적 삶이 이러한 신앙적 (스토리의) 세계에 의해 도전 받거나 격려 받는다. 여기에 복음 전파자로서의 재담가(才談家: storyteller)의 강력한 스토리화법이 주어져서 그것의 효과가 강화된다. (이것은 마치 드라마를 청취하는 것과 같은 효과이다.)

    결론적으로 구전사회에 대한 이러한 이해는 우리의 복음서 주해와 설교에 많은 통찰을 던져주는데 그 중에 스토리 전달기법(storytelling method)과 재담가(storyteller)에 대한 이해는 매우 중요한 고려사항이 된다.

    - 스토리 전달기법(storytelling method)
    고대의 구전사회가 자신들의 주요한 역사(전통)의 효과적 전달(오래 기억될 수 있게)과 생생한 교훈(단순히 추상적 개념에 의한 교훈이 아니라 삶이 담긴 교훈)에 강조를 두며 사용한 스토리 전달기법에 대한 이해는 우리의 서사적 주해와 설교에 많은 통찰을 던져준다. 특히 스토리 화법 내의 ‘다시 말함’(retelling)의 문제는 우리의 설교가 역동적인 모습을 취하는데 큰 통찰을 준다. 스토리 전달기법의 역동적인 모습은 유대-크리스천들의 성경적 전통(Berlin 1983:11; Light [1978]1986)뿐만 아니라 초대교회의 정황(Wilder 1968:64f)에서도 잘 나타난다. 이 중에 성경의 인용과 함께 여러 가지 구전기법들을 사용한 스토리 전달기법에 대한 이해는 서사적 설교가 어떻게 형성되어야 할 것인가에 대하여 적절한 윤곽을 제공해 준다. 특별히 여기서 ‘다시 말함’(retelling)이란 유대 사회의 제의적(祭儀的) 상황 즉 종교적 페스티발의 상황에서는 일종의 ‘(극적) 현실화’(actualization)라고 불려지는 것과 유사하다(von Rad).

    구전문화에서의 이러한 스토리 중심의 의사소통의 형태는 눈으로 글자를 읽는 인쇄매체에서 귀로 듣고 영상(映像)으로 보는 전자매체(electronic media) 또는 영상매체(multi-media)로 전환된 오늘날의 설교의 상황에서도 동일하게 강조될 수 있다(Jensen 1995). 이점은 이미 앞에서 필자가 TV광고에 나타난 모습을 통해서 적절히 제시하였다. 이처럼 구전 문화에서의 사고양식: ‘스토리적 사고’(thinking in story)는 전자문화 또는 영상 문화 속에서 살아가는 청중들에게 설교해야하는 오늘의 설교자들에게도 동일하게 역동적 설교의 형태로 나타날 가능성을 제공하여 준다.

    - 재담가(storyteller)에 대한 이해
    고대 구전사회에서 역사가(특히 헬라의 역사가들)란 수사학으로 훈련된 일종의 ‘극적(劇的)인 역사가’(dramatic historian)로 나타나는데(Aune 1990:18) 이들은 일종의 storyteller(만담가 혹은 재담가)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구전사회, 특히 그 중에서도 거룩한 종교적 공동체에 있어서 자신들의 ‘거룩한 역사’를 전달하는 사도 혹은 전도자는 신적 권위(exousia)와 능력(dynamis)을 가진 일종의 강력한 storyteller(만담가 혹은 재담가[?])나 웅변가(orator)의 모습이었다. 특히 구약의 선지자들과 유대교의 랍비들의 모습이나 초대 기독교 교부들의 모습 속에서 이러한 storyteller의 모습을 우리는 어느 정도 추론해 볼 수 있다. 이들의 스토리 전달기법들(storytelling techniques)에 대한 탐구는 우리의 서사적 설교에 많은 도움을 줄 것이다.

    지금까지 우리는 복음서에 대한 서사적 설교의 내용과 골격을 형성하는데 많은 도움을 주는 복음서의 장르인식과 그 당시의 구전사회의 모습에 대하여 살펴보았다. 위의 이러한 이해에 비추어서 이제 필자는 서사적 설교가 무엇이며 또한 서사적 설교가 어떠한 형태와 과정을 통해 만들어 가는지를 마가복음의 한 본문(막 3:1-6)을 예를 가지고 서사적 주해와 함께 구체적으로 살펴볼 것이다.

    3. 서사적 설교(Narrative Preaching)란 무엇인가?

    1) 서사적 설교란?
    ‘서사적 설교’(narrative preaching)란 커뮤니케이션(communication)의 효과에 중점을 둔 설교의 형태로 설교의 내용(전하고자 하는 메시지)을 인간 경험의 보편성과 유사성에 근거를 두는 이야기 형태(일종의 간접화법에 해당)로 전달함으로써 청중으로 하여금 저항 없이 자연스럽게 이야기의 세계 속으로 참여하게 하여 그들로 하여금 그 안에서 자신들의 신앙과 삶의 역동적 변화를 촉구하는 설교를 말한다(Craddock 1987:251). 이러한 설교는 청중으로 하여금 자신의 삶과 유사한 삶의 모습으로 전해진 스토리 안에서 자신들의 모습을 자연스럽게 인식(발견)하게 해 줄 뿐만 아니라, 또한 스토리를 통해서 자신을 쉽게 변혁시키도록 도와준다(탁월한 성경적인 예로서는 다윗에 대한 나단 선지자의 비유나 예수님의 비유에 의한 가르침을 들 수 있다). 이것은 간접수사학(indirect rhetoric/speech)의 탁월한 예다. 우리가 흔히 남의 이야기에 쉽게 ‘어깨너머로 청취’(overhearing)하는 성향(어린아이들은 이 부분에 천재다)과 또한 많은 사람들이 그 흔한 줄거리를 가진 드라마에도 쉽게 빠져 눈물을 흘리고 감동을 받는 이유가 바로 그러하다.

    물론 여기서 필자가 말하는 ‘서사적 설교’란 - 특히 복음서의 서사적 설교란 - 이미 앞에서 자세히 논의한 것처럼 그것을 전하는 내용(content)과 형식(form)이 다 서사적(敍事的)이어야 하는 설교를 의미한다. 그러므로 필자가 여기서 제안하는 ‘서사적 설교’(narrative preaching)란 설교자가 내러티브의 본문을 설교할 때 먼저 본문의 주해가 내러티브적 장르의 특징을 살린 주해로 나아가야 하며, 그리고 그것의 설교 또한 이러한 내러티브의 장르적인 특징을 살린 설교를 의미한다.

    2) 서사적 설교의 형태
    서사적 설교의 형태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로 논의되겠지만 대개 두 가지로 제시될 수 있다. 하나는 유진 로우리(E Lowry)가 제안한 대로 설교가 주어진 본문의 주제를 살려서 그 자체 하나의 줄거리(plot)를 가진 스토리 형태(이것을 로우리(1982)는 ‘이야기식 설교구성’(homiletic plot)이라고 불렀다)로 구성된 것을 말하고, 또 다른 하나는 성경 본문의 스토리가 서사적 설교의 기초와 골격이 되어 전달되되 서론(序論)이나 중간의 예화(例話) 혹은 결론(結論)을 또 다른 스토리들(즉, 개인의 신앙적 스토리나 역사적 신앙공동체의 신앙적 스토리들[신앙인물들의 전기들이 이에 속함])로 구성하여 이것들을 성경의 스토리에 잘 가미하여 전달하는 것을 말한다(Thulin 1990).

    결론적으로 이러한 서사적 설교가 어떠한 형태를 띄어야 할 것인가 하는 점은 설교자의 취향에 따라 결정되지만 그것의 요소들인 성경의 스토리(THE STORY)와 설교자 개인의 신앙 스토리(personal story)와 공동체의 스토리(community\s story)가 잘 병합된 형태(Fackre 1983)로 되어져야 한다는 사실만은 명백하다.

    3) 서사적 설교의 특징들에 대한 이해
    위의 정의와 형태에 비추어서 필자가 제안하는 서사적 주해와 설교의 모습들은 다음과 같이 이해될 수 있다:

    서사적 설교란 먼저 전하고자 하는 내러티브 본문의 장르에 대한 인식에 근거하여 본문의 스토리 세계를 이해하여 이것이 설교의 내용과 형식에 적절히 반영된 설교를 말한다. 스토리의 세계는 언제나 스토리의 구성요소인 사건(event), 배경(settings), 인물(characters), 줄거리/구성(plot)을 가지고 있는데 이에 대한 이해가 내러티브 주해와 설교에 반영되어야 한다.

    스토리의 세계가 관찰되어지면 해석자는 두 번째로 내러티브에 현존하고 있는 해설자(narrator)에 대한 인식과 함께 사건의 진술(narration)과 해설(commentary)로서의 ‘다시 말함’(retelling)의 기법들(서사-수사적 기법들)을 파악해야 하는데 이점에 있어서 우리의 서사적 설교는 이러한 스토리 전달기법이 보다 역동적으로 설교작성과 전달에 반영된 설교를 말한다. 특별히 ‘다시 말함’(retelling)의 인식은 본문의 (역사적/수사적) 정황과 의미를 적절히 발견하게 해 줄 뿐만 아니라 우리의 설교가 어떻게 오늘의 상황에 성육화되고 또한 역동적으로 전달되어야 될 것인가에 대해 많은 통찰을 던져준다.

    복음서의 상황에서 이러한 ‘다시 말함’의 기법은 쓰여진 복음서가 storyteller들에 의해 ‘또 다시 구전으로 전달’될 때는 보다 생생하고 역동적인 효과를 가지고 전달되는데 이 경우 ‘다시 말함’의 효과란 이루 말할 수 없이 크다고 하겠다. 이러한 ‘다시 말함’의 중요성은 어린이 만화영화의 예를 통해 보다 잘 이해될 수 있다. 이 점은 특별히 월트 디즈니사가 만든 만화 영화들(이미 잘 알려진 과거의 흥미로운 스토리들을 오늘의 상황에 어울리게 애니메이션으로 각색하여 만듦)이 이러한 기법의 중요성을 가장 잘 보여주는 예가 된다. 그 중에 가장 탁월한 한 예를 든다면 그것은 ‘알라딘’(Aladdin)일 것이다. 이 영화의 스토리 가운데 나오는 램프 속의 요술쟁이 ‘지니’(Genie)의 모습은 현대 어린이들에게 익숙한 음악(비트)과 용어들과 영상들 가운데 매우 극적이고 흥미롭게 재현되는데 특히 지니가 나오는 장면에서 어린아이들(어른들까지도)은 마치 영화의 스토리 세계가 지금 자신들의 현실세계인양 착각할 정도로 스토리에 나오는 사건들과 자신의 삶이 동일시가 되어지고 또한 자연스럽게 감정이입(empathy)이 되어 마치 그 세계 속에서 살고 있는 듯한 착각 속에 빠지는 것을 본다.

    이처럼 ‘다시 말함’(retelling)의 이러한 스토리 전달기법은 고대 사회에서 뿐만 아니라 오늘날의 영상문화 속에 사는 우리들에게도 의미전달의 탁월한 기법으로 이해된다. 이러한 스토리화법의 ‘다시 말함’(retelling)의 기법은 storyteller로서의 설교자의 자질(역량)- 특히 상상력이 잘 동원된 설교자의 자질 - 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

    3) 상상력(imagination)의 동원의 중요성
    설교에 있어서 상상력의 동원은 설교를 보다 생동감 있고 지루하지 않게 해 주는 역할을 한다. 이 상상력의 동원은 본문의 의미를 보다 청중들의 상황에 적절하고 역동적으로 이어주는 가교 역할(선지자들의 외침 속에서)을 할 뿐 아니라 하나님에 대한 우리의 마음을 보다 감성적 또는 시적으로 표현하게 해 줌으로써(시인들의 모습 속에서) 하나님과의 관계를 보다 친밀하게 해 준다. 이러한 상상력의 동원은 설교자 자신의 하나님에 대한 불붙는 사랑과 청중에 깊은 이해를 바탕으로 나타날 뿐 만 아니라 또한 이것은 그것을 적절하게 전달하기 위한 노력의 일환으로 추구된 현실감각과 그에 따른 감성과 표현력으로부터 나온다. 효과적인 전달을 위한 탁월한 현실감각과 감성과 표현력의 중요성에 대해서는 우리가 앞에서 이미 디즈니 만화 영화인 ‘알라딘’의 예를 통해서 잘 보았다. 이러한 상상력이 동원된 설교, 청중을 사로잡는(?) 설교를 위해서 설교자는 시(詩)를 읽는다던가 아니면 소설이나 TV 드라마 혹은 광고(특히 최근 광고 카피를 보면 이 점에 있어 탁월한 모습을 본다) 혹은 최근의 음악에까지 귀기울이는 노력이 필요하다.

    4. 서사적 설교를 어떻게 할 것인가?: 마가복음에 비추어서

    먼저 서사적 설교(narrative preaching)를 위해서 서사적 주해(narrative exegesis)가 선행하여야 한다. 복음서의 서사적 주해는 다음과 같은 순서에 따라 진행될 수 있다. 이 단락에서 편의상 필자는 막 3:1-6을 하나의 예로 사용할 것이다.

    1) 먼저 설교자는 설교할 내러티브 본문의 단원(narrative unit or segment)이 무엇인지를 결정해야 한다. 이것은 설교할 본문의 범위를 결정하는 문제이다. 이 일을 위해서는 소위 ‘드라마적 기준’(dramatic criteria)을 사용하는데 여기서 드라마적 기준이란 주로 시간과 장소를 알리는 배경과 인물들로 구성된 장면의 전환에 대한 관찰과 함께 주제의 전환을 관찰하는 것을 말한다(Shim 1994:80-89). 이 기준에 의해서 설교자는 어느 정도 분량의 본문이 설교를 위한 내러티브의 단원(narrative unit: 이것을 일화[episode]나 장면[scene]으로 부르기도 함)을 이루는 지를 조사한다. 이러한 기준에 따르면 막 3:1-6은 탁월한 예가 된다.

    2) 설교할 내러티브의 단원이 결정되면 그 단원의 사건 혹은 장면의 구조분석을 통해 본문에 대한 갈등구조를 이해하고 거기에 따른 중심된 메시지(high point)를 찾는다. 이 경우 인물들- 특히 사건의 중심인물 - 이 발설하는 대담(對談)이 중심된 메시지를 반영할 때가 많다. 즉 예수님 혹은 사건의 중심된 인물의 입을 통해 선언되어지는 말씀이 이에 해당될 때가 많다. 특히 이적기사나 논쟁기사에서 예수님의 선언이 그러하다. 갈등구조에 의한 장면분석은 아래의 도표로 제시될 수 있다(Longman 1989:102):





    S1 S2 S3 S4 S5 S6 S7
    발단 전개 갈등 절정 파국 종결 대단원
    (1a) (1b) (2-3절) (4절) (5절) (6절------->)

    위의 분석에 따라 사건을 이해하자면 안식일에 예수님이 들어가신 회당에 ‘손 마른 사람’(불결한 병자)이 있다는 해설자(narrator)의 언급(1절)은 사건의 발단과 함께 독자(청중)로 하여금 이 스토리가 어떻게 전개될 것인지를 잘 예견하게 해 준다. 그리고 바리새인들의 송사에 대한 언급(2절)은 갈등이 시작됨을 알려주는 신호로 제시되며 결국 예수님은 이 ‘손 마른 사람’을 일으켜 그들 앞으로 나오게 하심(3절)으로 스토리는 갈등의 상황으로 전개된다. 그리고 이 ‘손 마른 사람’을 앞에 세우고 저희(바리새인들)에게 예수께서 말씀하신 것은 갈등의 절정에 이르는 장면으로 나타나며 이어진 예수님의 치유는 일종의 파국에 해당되며 바리새인들이 나가는 장면과 예수의 살해모의에 대한 언급(3:6)은 이 사건의 종결 혹은 대단원이 될 뿐 아니라 전체 논쟁기사(2:1-3:6)의 결론에 해당된다.

    3) 이렇게 갈등구조를 살피는 장면 분석을 통해서 본문의 중심된 메시지가 어느 정도 결정되어지면 해석자는 아래와 같은 스토리의 요소들(사건; 배경; 그리고 인물)의 의미를 고려해 본다.

    (1) 사건이해: 먼저 설교할 본문의 사건(ev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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