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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사속의 명설교

    예수를 師하라

    페이지 정보

    성경본문: 빌립보서1:5 | 설교자: 고득순

    본문

    예수를 師하라



    너희는 이 마음을 품으라 곧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이니(빌립보서1:5)

    하나님이 천지 만물을 창조하시고 인생을 지으신 후로 아담과 하와를 비롯하여 완전한 인생이 하나도 없었으며 하나님의 경륜하신 모든 뜻은 낭패되고 말았을 터인데, 예수님 한 분께서 비로소 완전한 인격을 가지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봉사하였으니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이시고 인생의 사표가 되신지라. 그런고로 하나님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사 만유 위에 높이시고 만유 주를 삼으셨으니, 만일 누가 예수의 본을 받아서 예수와 같이 하나님을 봉사할 것이면 하나님은 또한 예수와 같이 동등으로 대우하실 것은 필연한 일이다. 어찌 의심하리요. 그런고로 바울께서 이 뜻을 깊이 깨닫고 로마서 6장을 말씀하셨으며, 예수를 본받아 행하게 하기 위해 빌립보 2장을 말씀하셨으니, 진실로 예수는 왕고래금(往古來今)과 천하 만민의 표본이 되셨으며 하나님의 창세하신 큰 목적을 성취하신 이다. 이제 예수께서 평생에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여 인생의 목적을 성취하신 것을 생각하여 보자.

    1. 하나님을 친애하시므로 인생의 표본이 되신 것이다.
    사람으로서 하나님을 친애하는 것이 당연한 일이나 육체를 가진 사람으로서 신이신 하나님을, 곧 보이지 아니하시고 나타나지 아니하시는 하나님을 친애하기가 극난하지마는 오직 예수께서는 하나님만을 극히 친애하셨다. 그의 하나님을 친애한 것은 어떠하였는가?
    첫째로 생각할 것은 예수의 말씀이니, 그는 항상 하나님에게 \아버지, 아버지,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라 하셨다. 마치 어린 아이가 부모를 친애함과 같이 하셨다. 가히 생각할 만한 말씀이다. 어찌하여 아버지라 불렀으며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라 하셨는가? 진실로 극진한 지정이 발하지 아니하고는 아니될 일이다. 예수께서도 하나님과 동등이 되시고 부족하심이 조금도 없으시지마는 자기는 다 잊어버리시고 하나님 아버지로만 주장을 삼았다. 곧 자기를 드려 하나님 아버지를 봉사하시는 표본이시다. 둘째로 생각할 것은 예수의 행하신 일이다. 예수께서는 하나님의 뜻을 아시고 그의 마음을 기쁘시게 할 작정이었으므로 범사가 다 하나님만을 기쁘시게 하는 일 뿐이다. 잠을 자지 아니하시고 기도하시는 것과,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파하시며, 병든 자를 고치시고, 죽은 자를 살피시며 소경을 보게 하며, 앉은 뱅이를 걷게 하시니 이러한 모든 일들은 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신 일이다. 그런고로 예수께서는 하나님을 기브시게 하신 일로 인생의 표본이 되신다. 세째로 생각할 것은 하나님의 영을 순종하심이다. 예수의 평생 사업은 다 하나님의 예정하신 순서대로 집행하심이요 한 가지라도 자의로 하신 것은 없다. 부모가 있는 사람은 불감유기신(不敢有基身)하여 불감사기재라 하였으니 과연 부모를 사랑하면 그 의지를 순종하며 그 사업을 성취함이 당연하다. 고로 예수는 아버지를 친애하시는 출천의 대효이시다. 전전긍긍하시며 동동촉촉하시사 하나님 아버지의 뜻을 성취하심에 진력하셨으니 이것이 인생의 표본이 되신 것이다.

    2. 생활을 깨끗이 하시므로 인생의 표본이 되셨다.
    대저 인생의 처세하는 길은 겸결로써 방법을 삼는 것이다. 공자가 인지생야직(人之生也直)하니 강지생야(岡之生也)는 행이면(幸而免)이라 하였으니, 불의의 재물로써 자기를 이용케 하고 사람을 해하기를 마음대로 하는 것을 어찌 인생이라 하리요. 우리 예수의 처세생활하심을 생각하여 보라. 첫째로 생각할 것은 에수께서 빈한한 생활을 하셨으나 부귀에 개의치 아니하심이다. 심경중에 예수께서 가난한 생활을 하였다 한 곳이 없지마는 성경을 상고하여 보면 그는 빈한한 생활을 하셨다. 어찌 그런고 하니 예수를 탄생 후에 성전에 바칠 때에 비둘기 한 상이나 반구 둘을 드리려 하셨으니 이는 요셉의 생활이 빈한한 증거이며, 또는 목수의 지목을 받으신 것이며, \여우도 굴이 있고 공중에 나느 ㄴ새도 깃들일 곳이 있으되 오지 ㄱ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다\하신 것이며, 십자가 위에서 그의 모친을 요한에게 부탁하신 것을 살펴보면 예수의 생활이 빈한 하였던 것을 가히 알 것이다.
    그러나 부귀한 자를 가까이 하지도 아니하시고 도리어 5천명을 먹이셨으며 모든 사람의 환난을 구제하여 주셨다. 이와같이 빈한하게 생활을 하시나 자급하시며 겸겸하심이 인생의 표본이 되신다. 둘째로 생각할 것은 예수의 생활은 배척을 받는 생활이다. 바리새인의 투기와 교법사의 배척이 여간한 것이 아니었다. 죽이기르 괴하고 백방으로 모해하며 성 모퉁이 낭떠러지로 차 밀어버리기도 하였지마는 그렇다고 가실 곳을 안 가시거나 하실 일을 못하시지도 아니하셨다. 아무리 못 당하실 곤욕을 보셨으나 한 번도 원망한 일이 없으셨으며, 배반을 당하시되 낙심하시거나 게으르시거나 회피하시는 법이 도무지 없었다. 과연 배반 받는 세상에서 승리의 생활을 하신 것은 진실로 인생의 표본이 되신다. 세째로 생각할 것은 예수의 생활은 남을 모든 환난에서 구원하시기에 진력하셨다.
    예수의 하신 일은 모두가 세상 사람을 구원하시는 일이었다. 주린 자를 먹이는 일, 병든 사람 고치는 일, 죽은 사람 살리는 일이었다. 과연 세상의 모든 조직을 보더라도 다 남을 돕기 위하여 된 것이다.
    관청이나 회사에 사무를 보는 것도 그 일하느 ㄴ자기의 일이 아니다. 서로 서로 남의 일을 하는 것으로 자기의 책임을 삼는 것이다. 그런고로 예수는 한 평생을 남의 일에만 진력하신 것이 인생의 표본이 되시는 것이다. 그런즉 예수의 생활은 빈한한 생활이시며, 배척받는 생활이시며, 남에게 봉사하시는 생활이었다. 그는 생활로 모든 인생의 스승이 되셨다.

    3. 십자가에 못박히시되 변심치 아니한 것으로 인생의 표본이 되신다.
    십자가의 악형은 당할 수 없는 형벌일 뿐 아니라 당하는 사람도 감내(堪耐)할 수 없는 형벌이 아닌가? 만일 예수께서 십자가의고난을 당하실 때에 잠깐이라도 원수를 미워하셨거나 뉘우치시거나 일각이라도 마음이 변하셨더면 죽으시기는 하시나 우리의 스승이 되시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예수는 하나님을 공경하고 사람을 사랑하는 마음이 최후의 일각가지 변함이 없었으니 진실로 시종 여일하신 성심성의는 과연 인생의 표본이 되시기에 합당하다.

    그런고로 하나님께서 예수를 다시 살피시고 교주로 삼으시며 하늘 위의 권세를 다 주셨으니, 이것이 하나님께서 창세하시고 사람을 지으신 목적을 성취하심이다. 고로 누구든지 예수의 본을 받아 순종하고 신앙하면 하나님께서 예수와 같이 대접하실 터이니, 우리 인생이 마땅히 예수를 배우고 본을 받아서 하나님을 친애하며 처세생활을 겸결케 하여 끝까지 본심을 변치 말고 완전하신 하나님의 경륜하신 큰 뜻을 성취함이 가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