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후 4:17, 마 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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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고후 4:17, 마 5:9 | 설교자: 박연서
본문
1.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은 일종의 ‘주의’가 아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은 사람들이 이른바 어떤 주의와 같이 아니하다. 예수를 믿는 사람들이 흔히 말하기를 우리는 이제로부터 기독교주의에 산다고 말한다. 이것은 틀린 말이다. 그리스도는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들을 어떤 원예가가 나무를 자기 집 정원에 심어 놓고 우뚝우뚝 솟아 오르는 지엽을 자르고 가다듬어 저가 보기가 좋은 기형을 만드려는 분이 아니시다.
그러나 고금을 물론하고 잘못된 생각을 가진 기독교인들은 자기의 이상대로 어떠한 형을 만들어 놓고 사람을 그 형에 두드려 맞춰서 소위 식 기독교인을 만들려 한다. 만일 그 형에 맞춰지지 않고 또는 자기의 신앙에 맞지 아니하면 이단자라, 혹은 불신행자라, 심하게는 원시하여 자기들의 권외로 축출한다. 예수 당시에 종교가들도 또한 그러하였으니 예루살렘에 나면서 눈이 먼 자가 예수에게 고침을 받은 후에 유대의 종교가들과 변론하다가 저들에게 축출을 당한 사실로 보나, 예수께서 박해를 받으시고 십자가에 달리심을 보나 부인할 수 없는 명료한 사실이 되었다.
우리가 그리스도를 믿는 것은 저를 통하여 우주의 절대자인 하나님을 알고 또는 그에게 몸을 바치어 하나님을 내 몸에 나타내려는 것이다. 예수께서 우리에게 보여주신 하나님은 이론적 개념을 만든 하나님이 아니라 실재의 참신으로 우주와 만물을 창조하시고 섭리하시며, 온 인류의 아버지가 되시고, 진․선․미․애의 근원이 되시는 하나님이시다. 그리고 이 하나님은 항상 우리와 교통하고 계시다.
주께서 말씀 하시기를 “내 아버지는 포도원 농부요,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고 하시었다. 그리고 다시 말씀하시기를 “사람이 내 안에 있고, 내가 저 안에 있으면 과실을 많이 맺으리라” 하셨다. 이것을 보면 그리스도께서 가르치신 복음의 본질을 우리가 알 수 있으니, 곧 화평한 중에서 하나님과 우리가 하나가 되게 한 것을 알고 또는 힘을 써서 지키는 데 있다. 생명은 그 주위와 환경에 교통함으로써만 성장하는 것이다. 인간의 육체적 성장은 그 주위에 있는 맑고 깨끗한 물, 신선한 공기, 따뜻한 일광과 사귀는 데에서만 건전히 자라난다. 그러므로 체위 향상을 목적으로 선전하는데 ‘대기와 친하여라’, ‘일광에 욕하여라’ 하는 포스터와 삐라를 우리는 어디서든지 볼 수 있다. 육체적 성장은 위에서 말한 것과 같거니와 정신의 성장에는 하나님, 부모, 형제, 친우들의 온화한 마음으로 서로 사랑하고 교통하는 데서만 자라가는 것이다.
여기에 한 가지 주의할 것은 우리의 생명이 그 환경과 화합하는 데 있다. 그러나 화합이라고 하는 것을 잘못 생각하면 안 된다. 화합이라 하는 것은 바람부는 대로 물결치는 대로 소위 근대식 위선의 타협이거나, 무절조한 음부의 웃음이 아니라, 정상한 관계로만 맺어지는 것이니, 마치 수술한 환자에게 피가 적을 때에 수혈을 하여야 하는 것과 같다. 수혈하는 데에 있어서는 같은 형의 피를 수혈하여야 한다. 환자의 피가 A형이면 A형을 B형이면 B형을 수혈해야 한다. 그러나 만일 다른 피를 수혈하면 부작용을 일으키어 해를 입는 것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우리도 자기 생명에 대해서 충실히 살피면 정당한 관계는 화합을 힘쓸 것이다.
2. 화합하라.
1) 자연과의 화합
하나님이 우주와 만물을 창조하시고 지배하신다. 그러므로 자연에는 신의 성이 갖추어져 있다. 누구든지 자연을 보고 아름답지 않다고 할 사람이 없다. 또 자연을 통하여 하나님이 계심을 분명히 알 수 있다. 그러므로 인생은 자연의 감화를 말하는 것이다.
영웅은 산고수려한 곳에서 탄생한다는 말에 진리가 있음을 우리는 안다. 예수께서 나사렛의 아름다운 자연에 화합하시고 조화된 가운데서 자라나심에 큰 인상을 받으셨을 것이다. 그런즉 우리도 자연과 합하지 아니하면 안 된다. 우리들의 신체에 있어서 공기․물․일광이 가장 필요하다. 이것을 화합하여 잘 이용하는 때에 예술도 있고, 위대한 발명도 있고, 발견도 하는 것이다. 만일 이와 반하여 자연으로 더불어 불화합하는 때에는 파괴도 있고 사멸도 생기는 것이다. 만물도 이것을 원치 않는다. 바울은 말하기를 “창조함을 받은 만물이 간절히 바라는 것은 하나님의 뭇 아들이 나타나기를 기다린다”고 하였다.
구리는 자연으로 더불어 화합할 뿐 아니라, 또는 자연을 정복한다. 예수께서는 자연을 정복하사 인류의 행복을 증진시키셨고, 저를 따르는 위대한 사람들도 그러하였다. 그런즉 우리는 자연을 공포할 것이 아니라 자연으로 더불어 화합하고 정복하여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인류의 행복을 더 하여야 할 것이다.
2) 사람과 화합하라.
사람과 나 사이에 화목함이 없을 때에는 허위와 가식이 생기는 것이다. 화합치 못하면, 마음과 마음과의 사랑이 없어진 면목으로 대하지 못하고 위선으로 대하는 것이다. 이로 인하여 분쟁이 일어나고 투선으로 대하는 것이다. 이로 인하여 분쟁이 일어나고 투기․질시․원한이 일어난다. 세계 인류가 불안에 싸여 있고, 전쟁의 와중에 허덕이고 신음하고 있음이 이를 잘 증명한다. 그러므로 예수는 말씀하시기를 “화목케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를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을 것이요” 하시고 바울은 말하기를 “우리를 저와 화목케 하시고 또 화목케 하는 직책을 우리에게 주셨다” 하였다.
그런즉 내가 사람과 더불어 화목할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으로 하여금 화목케 하여야 하겠다. 개인의 분쟁, 당파의 투쟁, 이러한 것들을 정지시키고 참된 평화의 사람들을 만들어야 하겠다. 이 일을 위하여서는, 붓으로 혹은 말로 정의의 검을 무기로 하여 분전치 않으면 안 된다. 최족으로 다른 사람을 위하여 나의 몸을 드려 화목의 제물이 되지 않으면 안 된다.
3) 자아와 화목하라.
이 말은 독자에게 웃음거리가 될지는 모르나 자아와 자아 사이에 화합이 있을 수 없다.
그러므로 바울은 말하기를 “선행을 하려는 마음은 내게 있으나 그대로 이루는 것은 없는지라, 내가 원하는 선은 행치 아니하고 도리어 원치 않는 그 악을 행하는도다……내가 선을 행하고자 할 때에 악이 함께 있도다. 내 속에 있는 사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되 사뭇 체중에 다른 법이 있는 것을 보매 내 마음에 있는 법과 함께 싸워 나를 사로잡아 나의 체에 있는 죄의 법에 복종케 하니 오호라 나는 괴로운 사람이로다. 누가 이 사망의 몸에서 나를 구원하랴” 하며 탄식을 하였다. 이는 분명이 자체의 모순당착이 있음을 근심하고 고투한 흔적이 완연히 보인다. 육의 사람과 영의 사람이 화합하여 완전히 하나를 이루는 때에야 완전한 선의 사람이다.
4) 하나님과 화합하라.
하나님과 화합치 못하매 회의나 불신이 생기고, 회의와 불신이 있으므로 이반이 생기고, 이반이 있으므로 반역이 생기는 것이다. 그러므로 성경에 믿지 않는 것은 죄라 가르치시었다. 본래 우리는 하나님을 믿지 아니하므로 하나님과 원수가 되었다. 여기에 그리스도의 복음이 필요하다. 하나님은 반역하고 그의 성업을 파괴하여 범죄하고 영원히 멸망할 수밖에 없는 인간을 위하여 십자가에 달리셔 사죄제와 화목제를 드리시었다.
이로써 하나님과 원수되었던 높은 담이 헐리어지고, 하나님의 거룩하신 손이 위로부터 우리에게 내리시고, 우리의 손을 높이 들어 하나님의 손을 겸손히 잡으며 “나는 하나님을 회의하고 불신으로서 하나님을 반역하고 성업을 파괴하던 큰 죄인입니다” 라고 고백할 때에 하나님은 우리를 포옹하시고 말씀하시기를 “이는 나의 잃었던 아들이오 죽었던 아들을 다시 찾았노라”고 하시며 접대하실 때에 천군과 천사들은 노래하여 가로되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보내고 땅에서는 기뻐하심을 입은 사람들이 평안할지어다” 하고 창조함을 받은 만물들은 하나님과 하나님의 뭇아들이 나타나서, 하나님과 화목하여 합일하여 미완성의 하나님의 나라가 성취되어 감을 보고 저들은 썩어짐의 종을 벗어나 하나님의 아들의 가치 있게 귀히 쓰여짐을 더욱 기뻐할 것이다.
감리교 목사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은 사람들이 이른바 어떤 주의와 같이 아니하다. 예수를 믿는 사람들이 흔히 말하기를 우리는 이제로부터 기독교주의에 산다고 말한다. 이것은 틀린 말이다. 그리스도는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들을 어떤 원예가가 나무를 자기 집 정원에 심어 놓고 우뚝우뚝 솟아 오르는 지엽을 자르고 가다듬어 저가 보기가 좋은 기형을 만드려는 분이 아니시다.
그러나 고금을 물론하고 잘못된 생각을 가진 기독교인들은 자기의 이상대로 어떠한 형을 만들어 놓고 사람을 그 형에 두드려 맞춰서 소위 식 기독교인을 만들려 한다. 만일 그 형에 맞춰지지 않고 또는 자기의 신앙에 맞지 아니하면 이단자라, 혹은 불신행자라, 심하게는 원시하여 자기들의 권외로 축출한다. 예수 당시에 종교가들도 또한 그러하였으니 예루살렘에 나면서 눈이 먼 자가 예수에게 고침을 받은 후에 유대의 종교가들과 변론하다가 저들에게 축출을 당한 사실로 보나, 예수께서 박해를 받으시고 십자가에 달리심을 보나 부인할 수 없는 명료한 사실이 되었다.
우리가 그리스도를 믿는 것은 저를 통하여 우주의 절대자인 하나님을 알고 또는 그에게 몸을 바치어 하나님을 내 몸에 나타내려는 것이다. 예수께서 우리에게 보여주신 하나님은 이론적 개념을 만든 하나님이 아니라 실재의 참신으로 우주와 만물을 창조하시고 섭리하시며, 온 인류의 아버지가 되시고, 진․선․미․애의 근원이 되시는 하나님이시다. 그리고 이 하나님은 항상 우리와 교통하고 계시다.
주께서 말씀 하시기를 “내 아버지는 포도원 농부요,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고 하시었다. 그리고 다시 말씀하시기를 “사람이 내 안에 있고, 내가 저 안에 있으면 과실을 많이 맺으리라” 하셨다. 이것을 보면 그리스도께서 가르치신 복음의 본질을 우리가 알 수 있으니, 곧 화평한 중에서 하나님과 우리가 하나가 되게 한 것을 알고 또는 힘을 써서 지키는 데 있다. 생명은 그 주위와 환경에 교통함으로써만 성장하는 것이다. 인간의 육체적 성장은 그 주위에 있는 맑고 깨끗한 물, 신선한 공기, 따뜻한 일광과 사귀는 데에서만 건전히 자라난다. 그러므로 체위 향상을 목적으로 선전하는데 ‘대기와 친하여라’, ‘일광에 욕하여라’ 하는 포스터와 삐라를 우리는 어디서든지 볼 수 있다. 육체적 성장은 위에서 말한 것과 같거니와 정신의 성장에는 하나님, 부모, 형제, 친우들의 온화한 마음으로 서로 사랑하고 교통하는 데서만 자라가는 것이다.
여기에 한 가지 주의할 것은 우리의 생명이 그 환경과 화합하는 데 있다. 그러나 화합이라고 하는 것을 잘못 생각하면 안 된다. 화합이라 하는 것은 바람부는 대로 물결치는 대로 소위 근대식 위선의 타협이거나, 무절조한 음부의 웃음이 아니라, 정상한 관계로만 맺어지는 것이니, 마치 수술한 환자에게 피가 적을 때에 수혈을 하여야 하는 것과 같다. 수혈하는 데에 있어서는 같은 형의 피를 수혈하여야 한다. 환자의 피가 A형이면 A형을 B형이면 B형을 수혈해야 한다. 그러나 만일 다른 피를 수혈하면 부작용을 일으키어 해를 입는 것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우리도 자기 생명에 대해서 충실히 살피면 정당한 관계는 화합을 힘쓸 것이다.
2. 화합하라.
1) 자연과의 화합
하나님이 우주와 만물을 창조하시고 지배하신다. 그러므로 자연에는 신의 성이 갖추어져 있다. 누구든지 자연을 보고 아름답지 않다고 할 사람이 없다. 또 자연을 통하여 하나님이 계심을 분명히 알 수 있다. 그러므로 인생은 자연의 감화를 말하는 것이다.
영웅은 산고수려한 곳에서 탄생한다는 말에 진리가 있음을 우리는 안다. 예수께서 나사렛의 아름다운 자연에 화합하시고 조화된 가운데서 자라나심에 큰 인상을 받으셨을 것이다. 그런즉 우리도 자연과 합하지 아니하면 안 된다. 우리들의 신체에 있어서 공기․물․일광이 가장 필요하다. 이것을 화합하여 잘 이용하는 때에 예술도 있고, 위대한 발명도 있고, 발견도 하는 것이다. 만일 이와 반하여 자연으로 더불어 불화합하는 때에는 파괴도 있고 사멸도 생기는 것이다. 만물도 이것을 원치 않는다. 바울은 말하기를 “창조함을 받은 만물이 간절히 바라는 것은 하나님의 뭇 아들이 나타나기를 기다린다”고 하였다.
구리는 자연으로 더불어 화합할 뿐 아니라, 또는 자연을 정복한다. 예수께서는 자연을 정복하사 인류의 행복을 증진시키셨고, 저를 따르는 위대한 사람들도 그러하였다. 그런즉 우리는 자연을 공포할 것이 아니라 자연으로 더불어 화합하고 정복하여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인류의 행복을 더 하여야 할 것이다.
2) 사람과 화합하라.
사람과 나 사이에 화목함이 없을 때에는 허위와 가식이 생기는 것이다. 화합치 못하면, 마음과 마음과의 사랑이 없어진 면목으로 대하지 못하고 위선으로 대하는 것이다. 이로 인하여 분쟁이 일어나고 투선으로 대하는 것이다. 이로 인하여 분쟁이 일어나고 투기․질시․원한이 일어난다. 세계 인류가 불안에 싸여 있고, 전쟁의 와중에 허덕이고 신음하고 있음이 이를 잘 증명한다. 그러므로 예수는 말씀하시기를 “화목케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를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을 것이요” 하시고 바울은 말하기를 “우리를 저와 화목케 하시고 또 화목케 하는 직책을 우리에게 주셨다” 하였다.
그런즉 내가 사람과 더불어 화목할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으로 하여금 화목케 하여야 하겠다. 개인의 분쟁, 당파의 투쟁, 이러한 것들을 정지시키고 참된 평화의 사람들을 만들어야 하겠다. 이 일을 위하여서는, 붓으로 혹은 말로 정의의 검을 무기로 하여 분전치 않으면 안 된다. 최족으로 다른 사람을 위하여 나의 몸을 드려 화목의 제물이 되지 않으면 안 된다.
3) 자아와 화목하라.
이 말은 독자에게 웃음거리가 될지는 모르나 자아와 자아 사이에 화합이 있을 수 없다.
그러므로 바울은 말하기를 “선행을 하려는 마음은 내게 있으나 그대로 이루는 것은 없는지라, 내가 원하는 선은 행치 아니하고 도리어 원치 않는 그 악을 행하는도다……내가 선을 행하고자 할 때에 악이 함께 있도다. 내 속에 있는 사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되 사뭇 체중에 다른 법이 있는 것을 보매 내 마음에 있는 법과 함께 싸워 나를 사로잡아 나의 체에 있는 죄의 법에 복종케 하니 오호라 나는 괴로운 사람이로다. 누가 이 사망의 몸에서 나를 구원하랴” 하며 탄식을 하였다. 이는 분명이 자체의 모순당착이 있음을 근심하고 고투한 흔적이 완연히 보인다. 육의 사람과 영의 사람이 화합하여 완전히 하나를 이루는 때에야 완전한 선의 사람이다.
4) 하나님과 화합하라.
하나님과 화합치 못하매 회의나 불신이 생기고, 회의와 불신이 있으므로 이반이 생기고, 이반이 있으므로 반역이 생기는 것이다. 그러므로 성경에 믿지 않는 것은 죄라 가르치시었다. 본래 우리는 하나님을 믿지 아니하므로 하나님과 원수가 되었다. 여기에 그리스도의 복음이 필요하다. 하나님은 반역하고 그의 성업을 파괴하여 범죄하고 영원히 멸망할 수밖에 없는 인간을 위하여 십자가에 달리셔 사죄제와 화목제를 드리시었다.
이로써 하나님과 원수되었던 높은 담이 헐리어지고, 하나님의 거룩하신 손이 위로부터 우리에게 내리시고, 우리의 손을 높이 들어 하나님의 손을 겸손히 잡으며 “나는 하나님을 회의하고 불신으로서 하나님을 반역하고 성업을 파괴하던 큰 죄인입니다” 라고 고백할 때에 하나님은 우리를 포옹하시고 말씀하시기를 “이는 나의 잃었던 아들이오 죽었던 아들을 다시 찾았노라”고 하시며 접대하실 때에 천군과 천사들은 노래하여 가로되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보내고 땅에서는 기뻐하심을 입은 사람들이 평안할지어다” 하고 창조함을 받은 만물들은 하나님과 하나님의 뭇아들이 나타나서, 하나님과 화목하여 합일하여 미완성의 하나님의 나라가 성취되어 감을 보고 저들은 썩어짐의 종을 벗어나 하나님의 아들의 가치 있게 귀히 쓰여짐을 더욱 기뻐할 것이다.
감리교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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