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의 복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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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교회 초기 설교
평화의 복음 (엡 2:13-22)
임학수
평화의 복음으로 건설한 교회가 종종 불미한 사건이 발생됨은 뉘라서 개탄하지 아니하리요. 이제 본문대로 하나님의 뜻을 생각하는 동시에 교회에 봉사하는 일반 교우에게 만일의 참고가 될까 하여 몇 말씀 드립니다.
Ⅰ 평화의 원리로 창조하심
1) 상위가 평화 중에 존재하시다.
하나님께서는 지위와 명분의 계급이 없고, 영광과 존귀의 차별이 없이 동등으로 존재하사 성부는 대주재로 창조하시고, 성자는 위임자로 창조하시고, 성신은 시행자로 창조하시되 협동적으로 화의적으로 동사하셨읍니다. 우리는 같은 지위에서 같은 사업을 경영하되 협동이 못되고 원망과 시비가 암암리에 있게 됨은 어찌함인가 참 통탄할 바올시다.
2) 만물이 평화 중에서 지음을 받으시다.
뭇별이 평화 중에 운행(運行)하는데, 항성은 궤도를 벗어나지 않고 일정 불역하여 사시가 순응하고 음양이 상화하는 것이요, 식물도 평화 중에 지음을 받은고로 꽃은 웅예자예(雄蕊雌蕊)가 있고 가지는 연리지(連理枝)가 잇으며, 동물도 평화 중에 지음을 받은고로 꾀꼬리는 벗을 부르고, 기러기는 항렬을 지어 날아가며, 인생을 평화의 원리로 지은고로 남녀를 각각 흙으로 지으시지 않고 남자의 뼈로 여자를 지으시고, 자녀를 가끔가끔 흙으로 지어내시지 않고 부모의 피로 자녀를 지으사 대대 상전하게 하셨읍니다. 인간을 이같이 가장 귀한 지위로 평화의 원리로 지으셨읍니다마는 사람의 죄로 인하여 불평한 세상이 되었읍니다. 예를 들어 말하면 (1) 하나님과 사람이 서로 떠나게 되었읍니다. 아담이 범죄한 후로 감히 하나님 앞에 서지 못하고 나무 아래 은피하였으며, 동산에서 축출을 당하여 하나님의 사랑하시는 얼굴을 보지 못하게 되었읍니다. (2) 사람이 서로 떠나게 되었읍니다. 가인이 아벨을 죽였으며 바벨탐을 쌓다가 성공을 못하고 언어를 불통하게 되어 사방으로 흩어졌으며 그 후로 가정 불평, 사회 불평, 민족 불평, 국가 불평으로 본 세상은 불평으로 화하였읍니다.
(3) 사람뿐 아니라 만물이 모두 불평하게 되었읍니다. 큰 고기는 중간 고기를 먹고, 중간 고기는 작은 고기를 먹는다. 다시 말하면 뱀은 개구리를 먹고, 개구리는 파리를 먹는다. 아 슬프다. 평화롭게 창조함을 받은 이 세상이 왜 이다지 불평한 세상이 되었는가, 누구가 이 불평한 세상을 평화의 세상으로 만들꼬.
2. 평화의 사명으로 강림하심
이 불평한 세상을 평화롭게 하실 이는 예수 그리스도 밖에 없는고로 당신이 친히 평화의 보좌를 떠나 이 불평한 세상에 강림하셨읍니다.
1) 평화의 자취
유대와 사마리아는 몇 백년 원수로 지났는데, 예수께서 한번 지나가시는 동시에 길이 통하였으며, 여인에게 물을 청구하시므로 여자를 우대하셨읍니다(요 4:3-7). 우리는 한번 왕래에 불평을 일으키는 일이 많읍니다. 갑과 을 사이에 분쟁을 일으키고 병과 정 사이에 원수를 맺게 합니다. 그러나 주님은 한번 왕래에 평화를 나타냅니다. 예컨대 바리새교인과 사두개교인이 서로 화목하게 됨도 주님의 왕래하신 자취요, 정당과 종교인의 상합함도 주님의 왕래하신 자취이시요(마 22:15-16), 갈릴리 바다 풍랑을 잔잔케 하고 밟아 건너가심도 주님의 발자취가 아닙니까(마 14:25).
2) 평화의 말씀
우리는 구설로 불평과 분쟁을 일으키는 일이 너무도 많으나 주님은 한 목소리에 천하를 평화롭게 하신다. 주님 말씀 하시기를 “내가 세상을 평화케 하러 온 것이 아니라 도리어 분쟁케 하러 오셨다”(마 10:34-39) 하심은 이 불평한 세상을 근본적으로 대혁명을 일으켜서 평화의 세상으로 화하게 하실 목적이란 뜻이고, 절대로 불평한 세상을 만든다는 의미는 아니올시다. 그 때에 정당의 불평, 종교의 불평, 빈부의 불평, 유무식의 불평, 관민간의 불평, 계급불평 기타 모든 불평이 쌓인 세상인고로 이같이 근본적으로 평화를 창도하신 말씀이올시다.
어린 아이를 세우고 천국의 큰 자라(마 18:1-5) 하심은 불평한 제자를 화평하게 하라는 실물 교훈이시요, 어린 아이를 안으시고 축복하심은(마 19:13-15) 그 때에 압제와 무시를 받는 아이를 평화롭게 위로하신 것이요, 시몬의 집에서 기름붓는 여인에게 하신 일이며(눅 7:37, 50), 혈루증 있는 여인에게 하신 일이며(막 5:25, 34), 부정한 여인을 끌고 와서 힐문하는 일에 대하여 해결하시는 일들은(요 8:1-11) 불평과 억울함에 쌓인 여인들에게 평화를 베푸신 것이요. 포도나무의 비유는(요 15:1, 3) 뿌리와 줄기와 가지와 연락하는 것으로 주님과 제자가 상합할 것과 제자와 제자끼리 화목하여야 할 만고에 변치 못할 진리의 교훈이시요, 성찬교리도 또한 주와 성도가 연합할 것과 성도와 성도끼리 서로 연합할 것으로 실물교환한 것이 아닌가.
3) 거룩한 진노도 역시 평화의 목적이시다.
우리는 분노하면 단순히 분노뿐으로 범죄할 때가 많으나 주님은 분노 중에도 사랑과 평화가 쌓인 것이올시다.
성전을 성결하심이 평화의 목적이시다(요 2:13, 16). 소를 파느니, 양을 사느니, 돈을 바라느니 하는 그들이 서로 목욕으로 쟁투와 원망과 시기로 불평한 수라장을 만들어 강도의 굴혈을 만든고로 진노의 채찍으로 쫓아내셨으며 풍랑을 책망하심도 평화의 목적이시니(마 8:23, 27), 그때에 불평한 풍랑에 빠진 제자ㄷ만을 구원하실 뿐이 아니라, 이 고해 같은 세상 불평한 환난 풍파를 잔잔케 하고, 평화의 왕국으로 화하게 하실 장래 일을 예증하신 것이올시다.
무화과를 저주하심도 평화의 목적이시라(마 21:18, 22). 외식과 시기와 원망과 불평한 자는 열매 없는 무화과와 같은 것이니 같은 저주를 받을 실물교수로서 제자에게 반성, 회개할 기회를 주심이올시다. 오늘날 신자도 이점에 대하여 삼가 조심하고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회개할 것이 아닙니까.
4. 평화의 사업. 세상 사람들은 모두가 불평한 사업을 경영하여 각색 무기를 예비하고 별다른 준비를 확장하여 바다에는 군함, 공중에는 비행기 같은 것을 국재를 기울여서 제작한다. 그러나 주님의 정신은 불평 중에 헤매는 민족을 위하여 일하셨읍니다. 예를 들면 불평 중에 고용을 부르짖는 각색 병자를 고치심과 불평 중에 굶주리고 목마른 자에게 먹이시고 마시움이 평화의 목적이시다.
3. 평화의 정신으로 못 박히심
1) 십자가의 모양이 평화의 표상이시다.
세워 놓으면 상하와 좌우가 연락 상합하고 눕혀 놓으면 동서와 남북이 왕래 교통이 되나니 곧 존비귀천을 물론하고 서로 화목할 수 있으며, 원근친소를 막론하고 서로 화합할 수 있는 의미가 포함한 것이올시다.
2) 십자가의 여러 가지 기사가 평화의 표징이시라(마 27:52).
휘장이 찢어짐은 사람이 감히 하나님 앞에 들어갈 수 없는 것인데, 십자가로 인하여 하나님과 사람이 화평하게 되어서 아무 사람이든지 십자가를 의지하여 기도할 수 있고, 십자가로 말미암아 천국에 들어갈 수 있다는 표상이며, 지동함은 불평을 가득히 실은 지구가 십자가로 말미암아 평화스러운 지상 천국을 건설할 징조이며, 바위가 터짐은 바위같이 굳게 맺힌 원망과 원수도 십자가로 인하여 서로 타파하고 서로 화목하게 될 징조이며, 무덤이 열림은 예로부터 시기와 원망과 불평의 세상에서 애매히 죽음을 당한 성인들이 십자가로 인하여 신원하고 평화를 얻을 징조이올시다.
3) 십자가상의 말씀이 평화의 목적이시다.
원수를 향하여 기도함은 과연 평화의 정신으로 원수를 용서하십시요. 도적을 위하여 축복함은 공포와 비애에 싸여 있는 자에게 무쌍한 위로로 복지를 허락함이시니, 이에서 더한 평화가 어디 있으리요. 모친을 위하여 부탁하심은 어느 가정이든지 불평이 많은 세상에 평화의 생활을 하도록 사랑 많은 사도 요한에게 부탁하심이요.
그밖에도 고통의 죽음을 당하는 그때에 조금도 발악하시지 않고 말씀마다 평화의 음성으로 하시사 도덕과 진리를 완전케 하시며 불평한 세상과 불평한 사외 민중 위에 평화스러운 교회를 건설하심이올시다. 이 평화의 복음을 전하시기 위하여 성신을 보내시고, 이 평화의 복음을 전하시기 위하여 성신을 보내시고, 이 평화의 교회를 위하여 성신의 감화가 종종 내리시건마는 성신을 거느리고 소멸하고 근심케 하는 일이 많은 것은 참말 통탄할 바이올시다.
4. 결말
복음은 참 평화의 복음이올시다. 삼위일체이신 하나님이 평화의 원리로 이 세상을 창조하셨건마는, 창조함을 받은 이 세상이 불평의 죄악이 가득함으로 성자 예수께서 평화의 사명으로 강림하시고, 필경 평화의 정신으로 못박혀 죽으사 불평 중에 깊이 빠진 인간을 구원하사 평화의 복음 위에 교회를 세우셨으나, 평화의 복음으로 구원을 얻은 신자가 어찌하여 불평이 많으며, 평화의 복음으로 세우신 교회가 왜 이렇게 불평이 많은가? 교회 내에 교직이나 평신도나 무슨 단체, 무슨 집회 할 것 없이 모두 다 불평과 시기와 원망 중에 평화스러운 주님을 욕되게 하고 근심되게 하는 일이 너무도 많으므로, 불평 중에 일분자인 교제가 스스로 개탄을 이기지 못하여 동감이 많으신 여러분에게 이만큼 드립니다.
장로교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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