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혜(恩惠)받는 비결(柲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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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네가 만일 하나님의 선물과 또 네게 물좀 달라 하는 이가 누구인 줄 알았다면 네가 그에게 구하였을 것이요 그가 생수를 네게 주었으리라
본장의 문제 인물은 사마리아 여인이라고 하고 싶다. 이때에 주님은 인성(人性)을 가지신 이만큼 피곤한 때이다. 그러나 가련한 여인을 보시고 은혜를 주시려고 도리어 여인에게 물을 요구하셨다. 이해 없는 여인은 반항하는 태도로 반문을 했다. 그러나 설왕설래에 여인은 점입가경으로 차차 이해력이 생기고, 이해가 될수록 진리에 들어가 은혜를 받게 되었다. 이는 마치 부모가 자녀의 손에 돌을 달랄 때에 더 좋은 과자를 주려는 것과 마찬가지다. 주님이 인생에게 요구가 있다면, 이는 실로 은혜를 주시려는 것이니, 주의 이 요구는 천재일우의 시기이다. 은혜 길을 막지 마라.
가령 봄날에 하나님이 농부에게 종자를 요구하되 땅에 던지라 명한다. 어리석은 자는 “왜 땅에 던져?” 하고 2, 3일 양식감을 삼고, 지혜 있는 농부는 하나님의 요구대로 종자를 뿌린다. 그러면 가을날에 누가 백배 60배의 결실의 은사를 받을까? 진리가 여기 있다. 하나님이 인생을 어떠한 방법으로 취급하시는지 신구약을 통해 그 실례를 들어 보고자 한다.
1. 아브라함에게 요구한 것과 은사(창 22장)
첫째, 요구는 아브라함에게는 비상한 문제다. 가정에 우글거리는 소와 양을 요구하지도, 금전을 요구함도 아니다. 인정상 딱하고 딱한 만득자 이삭을 번제를 드리라는 요구이시다. 그야말로 가슴이 막막하고 정신이 아득할 만한 문제이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개의치 않고 주의 요구대로 순종을 하였다. 과연 신앙가요, 우리의 모범적이다. 이런 역경을 순경(順境)으로 보고 나아가는 모험적 신앙은 신인(神人)이 감탄할 바이다.
둘째, 은사(恩賜). 절대 신앙을 가진 아브라함은 모리아선상이서 이삭을 번제를 드렸다. 그런 까닭에 성자 신손이 하늘이 별 같고, 바다의 모래같이, 번성할 허락을 얻고, 또 만국만민의 번제물 되신 그리스도가 그의 후예가 되셨다.
2. 벳새다 광야에서 요구와 은사(마 14:18)
첫째, 요구.
이때에 대중은 열광적으로 병 고칠 욕망만 가지고 서산에 해지는 것도, 주린 것도 잊고 주를 따랐다. 그 광경을 본 제자들은 민망히 여겨 선생님께 해산시키기를 여쭈었지마는, 주님은 『갈 것 없다. 너희들이 먹을 것을 주라』하시니 그때에 어린이가 떡 다섯 덩이와 고기 두 마리를 주께 드렸다. 참 훌륭하다. 어린이로서, 대중을 위하여 주께 드린 성의야말로 누가 탄복치 않을까?
둘째, 은사.
주님은 이 떡과 고기를 들으시고 축하한 후 각 사람에게 먹여 주시니 먹은 무리가 5천명이요, 남은 것이 12바구니가 되었으니 참 이적이요, 큰 은사이다. 이 어린 소자의 마음과 우리의 마음을 비교한다면 공포만 있다.
3. 금일 우리에게 요구와 은사
첫째, 시간(신5:13).
사람마다 시간을 귀중히 여기지만 실제로 광음을 이용치 못하고 백일만 허송만 한다. 그 까닭에 우리 주님은 이 시간을 존중히 여기는 동시에, 6일 동안 부지런히 일을 보고, 한 날은 완전히 주께 바치라 하였다. 그러나 사람사람이 이 날을 각오치 못하여 이해 타산이 없다. 자, 수학 상으로 계산하자. 일주일에서 하루씩 제한다면 일년에 52일이요, 70년을 1기라 계산한다면 불과 10년뿐이다. 이것도 한 살부터 70년을 줄곧 1주일도 범치 않고, 다 계산한대야 10년이라는 숫자가 생길 것이다. 이 시간이야말로 주님은 우리의 썩은 시간을 받으시고, 매우 귀한 시간을 주시는 오묘한 법칙임을 누가 알까? 영원부터 영원이 사는 이 생명 시간은 주를 위하여 바친 자에게만 줄 것이다. 참 할렐루야 감사할 것 뿐이다.
둘째, 몸(롬12:1).
몸으로 산 제사를 드리라 하셨다. 우리의 몸을 돌아본다면 참 가치가 적은 것이다. 약하기는 풀대 같고, 불결하기도 짝이 없다. 감기만 와도 고통, 추의만 받아도 벌벌 떨고, 하루만 굶어도 죽을 듯, 왕후장상이라도 죽고 보면 괴악한 냄새뿐이다. 우리는 무엇이 자랑스러운가. 우리는 이 몸을 드려 의(義)의 종이 되자. 바울같이 헌신적인 생활을 하자. 그러면 주 재림할 때는 이미 죽은 자는 부활의 몸을 얻겠고, 생존한 자는 변화할지니, 사망을 이기고서 개선가를 높이 부를 때이다. 이 두 몸을 비교한다면 헌신치 않을 자 없겠다.
셋째, 마음(벧전 7:3).
우리의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정성을 다해 하나님을 공경하라 하셨다. 그러나 사람의 마음은 너 나 할 것 없이 표리가 부동하고, 괴악한 것이다. 사람의 마음은 신(神) 외에 알 자가 없다. 사람마다 거죽으로는 의인ㆍ군자 ㆍ선인 같고 진실한 체 하나 속으로는 부패하였다. 악한 것도, 추한 것도, 혐한 것도 사람의 마음이요, 시기ㆍ질투ㆍ교만ㆍ분쟁도 사람의 마음에 있다. 그 까닭에 우리 마음을 드려 개심(改心)할 것이다. 혹 자발적 수양으로 개심한다는 것은 실제상 불합리다. 작심삼일이라는 말도 있다. 고금을 통하여 실행한 사람이 없다. 우리는 이론을 떠나 실지로 들어가야 되겠다. 참 마음을 바치라. 금일이라도 흠 없는 양심과 거룩하고, 의롭고 깨끗하고 사랑스러운 마음을 받게 될 것이다.
넷째, 재능(고전1:26, 7).
세상에서 누가 지혜 있으며, 재능이 있으며, 잘난 자가 있는가. 이것으로 하나님 앞에 자랑치 못할 것이다. 혹 약간의 지혜와 재능 있는 대도 재승박덕(才勝薄德)이라는 말과 같이, 자고 자만하며 기인술(欺人術)로써 투기업을 일삼으니, 도덕상 죄인뿐이요, 또한 과학만능을 주창하여 신(神)의 존재를 부인하니, 내세가 아득하며 한심한 인생뿐이다. 내일 일을 모르는 인생아, 한날에 불귀의 객이 된다면, 그 믿는 재능은 도리어 자신의 결박거리만 될 뿐이다. 이것을 한편 주RP 드린다면, 금상첨화로 덕이 되는 동시에 기능이적이 된다. 믿음이 겨자씨만 하면 산을 옮겨 물에 들어가기도 한다 하셨다. 그 광경을 무엇으로 비교할 것인가 생각할 것이다.
다섯째, 재물(마 6:30, 말3:10).
지금 부자들은 은행을 튼튼히 믿는다. 그러나 미국서도 은행이 파산을 당하였다. 주님의 말씀을 믿으라. 도적도 구멍을 뚫지 못하고, 동족도 슬지 못하는 천성 은행(天城銀行)에 예금하라. 완전한 것이요 튼튼한 것이다. 이식도 많다. 마땅히 11조를 드리는 자의 곳간에는, 하늘복이 차고 넘친다 하셨다. 시험하여 보라, 윌리암이라는 늙은이는 자작자수(自作)自手)로 비누를 만드는 자였다. 그는 11조를 실행한 결과 재산이 점점 늘어갔다. 늘어감에 따라서, 11조를 15조까지 드렸고, 또 그후는 10분지 9를 드리고, 10분지 1로써 자기 생활을 해도 만족하였다 한다. 참 복을 원하거든 속히 시행하여 보라.
금전은 노력의 댓가가 되는 동시에, 하나님의 선물이다. 그런 까닭에 사람마다 하나님의 청지기다. 청지기면 충성스럽게 11조를 바치라. 하늘문이 열리나 아니 열리나 시험하여 보자.
4. 결론
주 말씀하시길, 소자에게 냉수 한 그릇 주는 자도 결단코 상을 잊지 않겠다 하셨다(마10:42). 그러면 주께 드린 자는 상이 크리라. 그러나 우리의 천감이 되는 바리새적 심리나, 아나니아의 심리로 온 몸을 불살라 드릴지라도 유익이 없을 것이다. 다과를 막론하고, 각각 적성(赤誠)으로서 드린다면 주님의 허락을 받을 것이다.
장로교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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