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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사속의 명설교

    구약 율법의 완성

    페이지 정보

    성경본문: 마 5:1-48 | 설교자: 박유미

    본문

    마태복음 5장의 산상설교는 예수님이 4장에서 하나님 나라가 도래하였음을 전파하시고 치유의 기적을 베푸신 후에  나오는 본문으로 하나님 나라의 백성으로서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는 말씀하고 있다. 이것은 구약의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의 큰 구원하심으로 출애굽한 후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시내산으로 부르셔서 그곳에서 거룩한 하나님 백성으로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모세를 통해 알려 주시는 것과 같다. 예수님께서는 시내산의 하나님처럼 산위에 앉아 밑에 있는 백성들에게 새로 도래한 하나님 나라의 백성으로서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말씀하고 계신 것이다. 5장의 전체 구조는 다음과 같이 나눌 수 있다.      
    5:1-2  서론 예수께서 산에 오르심    
    5:3-12 8복 설교    
    5:13-16 빛과 소금의 비유    
    5:17-48 구약 율법에 대한 새로운 해석      
             a. 율법에 대한 기본적인 예수님의 입장(17-20)      
             b. 살인에 대하여(21-26)      
             c. 간음에 대하여(27-30)      
             d. 이혼에 대하여(31-32)      
             e.맹세에 대하여(33-37)      
             f. 보복에 대하여(38-42)      
             g. 원수 사랑에 대하여(43-48)
    서론에서 예수님께서 산에 오르신 것은 시내산에서 모세가 하나님의 말씀을 받기 위해 산에 오르는 것과 같은 동사를 사용하여 산상설교의 말씀이 시내산에서 내려주신 율법과 같은 권위가 있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3-12절의 팔복설교는 심령이 가난한 자로 시작하고 있는데 누가복음에서는 “심령이”란 말이 빠져있다. 가난한 자는 구약에서 특별한 관심의 대상이었다. 이들은 물질적으로 돈이 없는 사람만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 약자 특히 고아 과부 이방인들을 모두 포함하고 있다. 레위기 민수기 신명기의 율법에서는 항상 이들에 대해 특별한 관심을 가지고 이들을 보호하는 법을 많이 말하고 있다. 예를 들면 신명기 24장에서는 가난한 사람의 저당물은 해지기 전에 돌려주며 품꾼을 학대하지 말고 품삯은 당일 해지기 전에 주고 고아와 과부의 송사를 억울하게 하지 말고 밭의 곡식은 일단 한번 추수하면 남은 것은 다시 거두지 말고 가난한 자를 위해 남겨두라고 하였다. 이 모든 이유는 바로 이스라엘이 애굽의 종으로 있었던 것을 여호와께서 구원해 주셨기 때문이다. 구약에서의 이런 배려들이 이제 예수님시대에는 단순히 배려차원이 아니라 아예 하나님 나라가 이들을 위한 것이라고 선포하고 계신 것이다. 또한 4절에서는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다고 하셨다. 그동안 억울한 눈물을 흘린 자들, 가난으로 멸시 받으며 피눈물을 흘리던 자들이 하나님 나라에서는 위로를 받을 것이다.
    그리고 5절에서는 온유한 자가 땅을 기업으로 받으리라 하셨다. 땅의 세상은 부유한 자의 것이며 권력을 잡은 자의 것이며 폭력으로 사람들을 짓밟고 올라서는 자의 것이었다. 이런 세상에서 가난한 자, 애통한 자, 온유한 자는 발 붙일 곳이 없다. 하지만 예수님은 천국은 바로 이런 자들을 위한 것이라고 세상의 관점을 완전히 뒤집어 버렸다. 그리고 6절은 세상에서 의를 구하려고 하였지만 의를 구하지 못한 자들은 하나님 나라에서 의를 넘치게 경험할 수 있고 결국 마음이 깨끗한 자만이 하나님 나라에서 하나님을 볼 수 있다고 하였다. 하지만 아직 세상에 있으므로 의를 위해 핍박을 받을 수 있으나 하나님 나라는 이들의 것이며 하늘의 상이 아주 크다고 약속을 해주셨다. 여기에서 `‘이미’와 `‘아직’의 긴장 관계가 있다.
    즉, 새로 도래한 하나님 나라는 가난한 자들, 온유한 자들, 의로운 자들의 것이지만 아직 완성이 되지 않았기 때문에 핍박도 같이 있을 것이라는 것이다. 13-16절은 이런 긴장관계 속에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구약의 백성들이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하여 세상 열국이 내가 하나님을 알게 하라”는 명령을 받은 것처럼 예수님은 그 제자들에게 세상에서 빛과 소금의 역할을 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고 명령하셨다. 결국 예수님의 오심으로 하나님 나라는 우리에게 왔지만 그곳을 전파하는 것은 우리의 선한 행동들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구원과 율법은 같이 있는 것이지 따로 떨어져 있는 것이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17절부터는 율법에 대한 예수님의 입장과 새로운 해석들을 밝히고 있다. 17-20절에서 예수님은 자신이 율법을 폐하려고 온 것이 아니라 완전케 하려고 오셨다고 분명히 밝히셨다. 심지어는 너희의 의가 그렇게 비판 하시던 서기관과 바리새인에 못미친다면 천국에 못들어 간다고 하셨다. 즉, 예수님에게 있어서 율법과 하나님 나라는 경쟁관계나 하나를 버리고 하나를 취해야하는 것이 아니다.
    이 둘은 같이 가야하는 것이며 하나님 나라의 백성은 율법의 요구를 온전히 준수해야하는 것이다. 그러면서 21절부터는 “옛사람에게 말한바…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혹은 “…너희가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라는 형식으로 6개의 구약 율법을 예수님이 새롭게 해석하셨다. 예수님의 새로운 율법은 자신의 선언처럼 없애거나 약화되는 방향이 아니라 강화하고 완전케 하는 방향으로 진행이 된다.
    21-26절에서는 살인에 대한 율법으로 구약은 사람을 직접 죽이는 것만을 금지 하였지만 예수님께서는 형제에게 화를 내고 욕을 하고 인격을 무시하는 말을 하여 인간의 정신적인 면에 상처를 주는 것도 심판의 대상이라고 말씀하셨다. 그리고 제사를 드릴 때는 이렇게 남의 맘에 상처주고 남에게 해를 입힌 것을 사죄하고 제물을 드리라고 명하셨다. 심지어는 상대방의 용서를 받지 못하고 완전히 갚지 못하면 감옥에서 나올 수 가 없다고 하셨다. 27-30절의 간음에 대한 율법에 대해서도 직접 간음죄를 범하는 것뿐만 아니라 마음에 음욕을 품는 것도 죄라고 하셨다.
    간음과 연결하여 이혼에 대한 것도 언급하고 있는데 신24장에는 아내에게 수치스러운 일이 있거든 이혼 증서를 써주고 아내와 이혼할 수 있고 여자는 이 이혼 증서를 가지고 다른 남자와 결혼을 할 수 있다고 하였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음행한 연고 외에는 아내를 버리지 말라고 하셨다. 당시 유대 사회는 신 24장의 “수치스러운 일”이라는 애매한 항목을 남편의 눈에 안차는 모든 것들로 보고 늙어서 미워졌다는지, 음식을 못한다든지 하는 사소한 것들을 트집 잡아 이혼을 빈번하게 하였다. 이에 대해 마태복음은 음행한 연고 외에는 이혼을 하지 말라고 하였다. 이 “음행한 연고”라는 말도 마태복음에만 나오고 마가와 누가에서는 나오지 않고 그냥 이혼하지 말라고 하고 있다. 이렇게 예수님은 이혼을 금지하셨을 뿐만 아니라 한 발 더 나아가 이혼을 하고 다른 사람과 결혼하는 것을 간음이라는 중죄로 취급하셨다.
    이혼은 십계명에 안 나오지만 간음은 10계명에 금지하는 아주 중한 죄이기 때문이다.33-37절은 맹세에 대한 것으로 맹세한 것을 지키라는 율법에 대해 예수님께서는 아예 맹세를 하지 말라고 명하신다.
    다만 지금 할 수 있는 것과 하지 못하는 것, 옳은 것과 그른 것을 분명히 밝히라고 말하신다. 38-42절에서는 보복에 대한 것으로 구약의 원칙은 “눈에는 눈 이에는 이”`이다. 이것도 과도한 보복과 보복의 순환을 끊기 위한 합리적인 법이었는데 예수님은 여기서 한 발 더 나가 보복을 포기하고 심지어는 더한 희생을 하라고 명하신다.
    즉, 하나님 나라의 법은 용서와 화해와 사랑이지 보복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43-48절은 원수를 사랑하라고 명하신다. 구약에는 이웃을 사랑하라는 말은 있어도 원수를 미워하라는 명령은 없다. 하지만 당시 유대인들은 율법을 왜곡하여 원수를 미워하라는 항목을 추가하였던 것이다. 이에 대해 예수님은 심지어 원수를 사랑하라고 하신다.
    이런 사상은 출 23:4-5과 잠 25:21-22 등에서 보여지는 원수를 미워하지 말라는 의미를 좀 더 확대시키신 것이다. 원수를 사랑하고 핍박을 하는 자들을 위해 기도하면 하나님의 아들이 된다고 하므로 결국 이 말씀은 마5:9절의 “화평케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이라는 구절과 쌍을 이룬다.
    이웃과 원수를 사랑하는 것이 곧 하나님의 아들의 행동이라는 것이다. 48절은 하나님이 온전하니 너희도 온전하라는 말로 새로운 율법을 지키는 것이 온전해 지는 길이며 예수님이 17절에서 선언하신 것처럼 율법을 완전케 하신 것은 결국 제자들이 하나님처럼 온전해 지도록 하기 위해서라고 결론을 맺고 있다. 전체적으로 마5장은 복음은 가난한 자, 애통한 자,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 온유한 자들에게 주신 것이며 또한 복음을 받은 자들은 율법을 완전히 지킴으로 긍휼이 여기는 자, 의를 위해 핍박 받는 자, 마음이 청결한 자, 화평케 하는 자가 되며 하나님의 나라는 바로 이런 사람들을 위한 곳이라고 말씀하신다.
    그리고 구약의 율법을 새로운 빛 아래서 형식적인 부분만이 아니라 내면적인 죄까지도 심화되어 하나님 나라는 몸과 마음 모두가 정결한 사람을 요구하신다고 하시므로 예수님의 사랑은 크고 깊어 죄인들을 품어주시지만 또한 우리에게 자녀된 자로서의 정결한 삶을 요구하고 계신다. 우리는 이 두 가지가 결코 둘이 아니라 하나라는 것을 바로 인식하고 예수님의 말씀을 따르는 자녀가 되어야 할 것이다.